1796년, 가족들을 웃기기 위해 장난스러운 조각글을 끼적이던 제인 오스틴은 소설가가 되었습니다. 스무 살을 갓 넘긴 그는 『이성과 감성』과 『오만과 편견』을 동시에 쓰기 시작했고 3년에 걸쳐 『노생거애비』까지 무려 장편소설 세 권의 초고를 완성합니다. 1796년은 제인 오스틴이 생의 굴레에 옴쭉달싹 못하게 갇혀버렸음을 처음 깨달은 해, 인생이 뜻대로 흘러가지 않을 것임을 불길하게 예감한 해, 참담한 상실을 딛고도 삶은 지속된다는 걸 알아버린 해, 그만 어른이 되어버린 해였습니다.
제인 오스틴의 어린 시절은 행복했어요. 작은 교구 목사였던 아버지는 부업으로 공부방 겸 기숙학교를 운영했고, 집안은 대가족과 학생들로 늘 붐볐고 서재는 철학과 문학, 종교학 서적들로 가득했거든요. 어린 제인은 아침이면 시끄럽게 피아노를 치고 하루 온 종일 서재에 처박혀 책을 읽다가 저녁에는 직접 쓴 웃기고 아이러니한 이야기들을 눈을 빛내며 기다리는 가족에게 읽어주었습니다. 열한 살 무렵부터 영국사를 통째로 냉소하는 당돌한 글들을 써냈지만, 아무도 어린 제인이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걸 타박하거나 말리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아버지는 글쓰기용 탁상을 사주고 귀하고 값비싼 종이를 제본해 “장래의 작가”에게 선물해주었고 오빠들과 언니는 제인이 쓰는 글을 늘 탄복하며 열심히 읽어주었지요. 뛰어나게 재기발랄한 형제자매는 함께 대본도 쓰고 연기와 연출도 겸해 가족극을 선보이곤 했는데, 스티븐턴의 사교계에서 꽤나 인기를 끌었다고 합니다. 말하자면 어린 제인은 자연스럽게 작가로 교육받으며 성장했던 것입니다.
허나 스티븐턴의 자유로운 목사관 바깥 세상은 사정이 달랐습니다. 18세기말 영국사회에서 여자는 집안 살림을 하고 남자에게 위로와 즐거움을 선사하는 장식품에 불과했으니까요. 재산권도 없고 직업을 가질 수도 없고 전적으로 남자에게 생계를 의지해야 하는, 꽃처럼 무력하고 아름다운 존재였어요. 아무리 똑똑하고 글을 잘 써도, 여자는 대학에 진학하거나 전문직을 갖거나 사업을 해서 돈을 벌 수 없었습니다. 해군에 입대해 먼바다에서 자기 운명을 개척할 수도 없었습니다. 결혼적령기에 적당한 남자를 만나 결혼을 하지 못한다면, 영원히 타인의 적선에 기대어 잉여인간처럼 삶을 영위하는 초라한 운명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성년이 된 여자아이는 결국 조건이 좋은 남자를 유혹해 결혼하는 일에 앞으로 살아가야 할 기나긴 나날들이 통째로 걸려 있다는, 잔인한 현실을 깨닫게 됩니다. 하지만 제인 오스틴은 자신이 『오만과 편견』의 샬럿 루카스처럼 애정없는 결혼을 선택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걸 또한 잘 알고 있었습니다.
유년기의 끝에 매몰찬 바깥세상의 외풍이 한꺼번에 불어닥칩니다. 남자형제들은 대학에 진학하거나 해군에 입대해서 저 넓은 바깥세상으로 떠나버립니다. 나이든 아버지가 학교 일을 그만두면서 집안은 휑뎅그레 비어버렸습니다. 영지도 없고 수입도 볼품없는 교구목사의 똘똘한 딸은 결혼시장에서 별 값어치가 없었습니다. 1795년 언니 커샌드라가 큰오빠의 친구이자 아버지의 제자로 이미 가족이나 다름없던 토머스 파울과 약혼하자 제인의 마음도 다급해졌던 모양입니다. 형제자매가 아무도 없는 집에 노쇠한 부모와 혼자 남는다는 공포가 임박한 현실이 되었으니까요. 이 무렵 스티븐턴 사교계에서 제인은 “남편감 잡으러 날아다니는 나비 중에 제일 예쁘고 제일 철없다”는 독설을 들을 정도로 플러팅에 열심이었다고 합니다. 아버지가 플러팅을 좀 살살하라고 말릴 정도였다니까요. 우스꽝스러우리만큼 필사적인 그 노력에서 불안과 공황을 읽어내기란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1796년에서 1797년을 기점으로, 제인 오스틴은 굳이 결혼하려는 노력을 내려놓습니다. 영화 『비커밍제인』에 등장한 톰 르프로이와의 혼사도 물거품으로 돌아가고, 젊은 남자가 몇 명 되지도 않는 비좁은 시골 사교계에서 남편감을 찾을 확률도 현저히 줄어듭니다. 결정적으로, 언니 커샌드라가 진심으로 사랑했던 토머스 파울이 결혼자금을 마련하러 서인도제도로 떠났다가 병에 걸려 그만 세상을 떠나버립니다. 1797년 일생의 연인을 잃은 커샌드라가 비혼을 결심하자 제인도 결혼을 단념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언니 곁에 머물고 싶어서였을까요, 아니면 언니가 있으니 이제 괜찮다고 생각했을까요. 어쩌면 제인은, 결혼하지 않고 언니와 살 수 있다는 가능성에, 어쩌면 마음 깊은 곳에서 조금은 안심했을지도 모릅니다.
이 인생의 기점에서, 제인은 소설을 쓰기 시작합니다.
소설가 제인 오스틴에게 롤모델은 없었습니다. 소설은 이동도서관과 문맹률의 하락에 힘입어 새롭게 떠오르는 중산층의 장르였고 진지한 문학이라기보다는 시간을 때우는 대중오락에 가까웠습니다. 산문으로 쓴 재미있는 이야기이기만 하면 되었고, 이렇다 할 형태도 규칙도 없었습니다. 점잖은 신분의 여자가 글을 팔아 돈을 번다는 건 오히려 수치로 여겨졌습니다. 주변에 작가들도 없었고, 메리 울스턴크래프트와 메리 셸리처럼 낭만주의자들과 어울려 드높은 혁명의 이상에 동참할 수도 없었습니다. 언젠가 원고를 출판해 돈을 벌면 좋겠다고 당연히 생각했겠지만, 막상 기회가 오자 익명으로 출간했으니 필명을 떨칠 목적도 아니었지요.
소설 속에서 제인 오스틴은 그저 이 현실의 부자유와 제약을 뚫고 날아오를 길, 어떤 납득할 수 있는 해피엔딩의 가능성을 꿈꾸었을 뿐입니다. 자기가 살지 못할 삶, 하지만 살고 싶은 삶을 손에 잡힐 듯 생생하게 꿈꾸었을 뿐입니다. 초기작인 『이성과 감성』『오만과 편견』『노생거애비』에서 작가와 주인공의 경계는 유독 흐리고 불투명합니다. “방금 언니한테 받은 편지에서 어찌나 호되게 야단을 맞았는지, 르프로이 씨와 내가 착하게 굴었다는 얘기를 하기가 무섭네!”라고 말했던 젊은 제인에게서 『이성과 감성』의 위태롭게 발랄한 메리앤을 찾기는 어렵지 않습니다. 당돌하고 짓궂은 엘리자베스 베넷은 또 어떻고요. 분명 그들은 제인이 살아보지 못한 삶을 대신 살아내는 분신입니다.
비혼을 선택하고 소설가가 된 제인은 지칠 줄 모르고 상상했습니다. 정말로 결혼을 해야 한다면 어떤 남자와 어떤 방식으로 어떤 결혼을 해야만 인간의 품격을 지킬 수 있을까. 결혼하고 나서는 어떤 태도로 어떤 삶의 목표를 지니고 살아가야 할까. 그리하여 소소한 일상의 결에 흔히 은폐되고 이따금 드러나는 개인적 폭력과 사회적 부조리를 매섭게 포착하고, 우아하고 기품있게 맞설 방도를 진지하게 모색했지요. 그리하여 제인 오스틴은 더 나은 세상을 꿈꾸는 동지의 연대라는, 전례없는 결혼의 이상을 상상해내고야 맙니다. 현실보다 더 현실같은 허구의 인물과 세계를 창조하고 어떤 판타지보다 완벽한 해피엔딩에 다다르는 쾌거를 이루어낸 것이지요. 그 이전에도, 그 이후에도, 사랑과 결혼을 통해 여자가 지속가능한 행복을 쟁취하는 결말을 제인 오스틴만큼 설득력있게 상상한 작가는 아무도 없고, 이 서사적 원형은 여전히 건재합니다.
오스틴의 주인공들이 도달하는 이 마땅한 결말, 모자람 없는 시적 정의의 짙은 여운은, 환상도 절망도 없이 현실을 바라보며 대안을 꿈꾼 청년 오스틴의 절실한 마음을 헤아림으로써 비로소 완성됩니다. 스티븐 그린블라트는 문학의 힘은 살아보지 못한 인생의 가능성을 그리는 절실한 바람에 걸려 있다고 했습니다. 아킬레스가 트로이전쟁에 출정하지 않았다면 어떨까요? 이 가정은 에서 처연한 절정에 오릅니다. 저승에서 오디세우스를 만난 아킬레스가 직접 차라리 미천한 노예로 살아도 지상의 삶이 낫다고 서글프게 고백하기 때문입니다. 미학적으로 완벽하게 산화한 불멸의 영웅은 그가 살지 못한 평범하고 무탈한 삶의 가치가 서사 속에서 인정받는 순간 비로소 찬란한 비극의 정점에 오릅니다. 제인 오스틴의 행복한 소설을 읽는 건 끝내 주어지지 않은 다른 삶을 날카롭게 의식하는 일입니다. 해피엔딩이 내포하는 다른 가능성들, 박탈당한 기회, 부자유한 처지, 닿지 못한 인연, 잃어버린 사랑, 깊디깊은 상실감을 숨막히게 헤아리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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