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스타 실종사건과 자아소멸

@hem_allowing

2021.11.01 | 조회 5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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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도수기

이상하고 흥미로운 이메일 <박도수기>

 
 

@hem_allowed 인스타그램 계정을 잃어버린지 한 달이 지났다. 침대에서 빈둥거리며 인스타그램을 하다가 누군가를 언팔로우 한 순간 갑자기 계정이 사라진 것이다. 찌질한 행동을 하는 사람에게 찌질한 일이 발생하는 건 지극히 타당하다. 그 전날에도 언팔 앱을 깔아서 맞팔하지 않은 팔로워들을 정리했음을 고백한다. 아니 그렇다고 해서 계정이 정지당할 정도로 잘못한 건 아닌데 인스타그램에서 나를 광고계정으로 인식해 정지 조치를 내린 것 같다. 항의 메일을 보냈고 셀카로 본인인증을 했고 기다리고 있으나 그것이 어느 정도의 기다림일지는 기약이 없다. 몇 달이 걸리는 경우도 있단다. 이런 젠장.

1년 6개월 동안 꾸려온 인스타그램 실종사건은 과거를 떠올리게 했다. 때는 2020년 4월. 책이 나오고 잘 팔지도, 팔리지도 않았음에도 그건 출판사가 할 일이라고 콧대 높게 인스타그램을 하지 않고 있었다. 베스트셀러도 열심히 하는 판에 자존심을 세우고 있었던 것이다. 코로나로 집에 갇혀 지내면서야 할 일이 없어서 인스타그램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어떻게 계정을 키우는지 키워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처음엔 거의 무조건 선팔, 맞팔, 좋반, 댓반 지옥이다. 일상 소통도 안하는 판에 인스타그램 소통이라니. 나는 어찌보면 인스타그램과 거리가 먼 사람이다. (아무도 몰랐겠지만 그렇다) 3년 넘게 인스타그램을 사용하지 않은 걸 증거로 댈 수 있으나 그러거나 말거나 어쩌라고..

인스타그램은 주로 잘나가는 사람 염탐용으로만 사용하는 게 적당히 우울해지거나 적당히 자극받기 좋다고 생각한다. 그 판에 직접 뛰어들면 우울이 증폭하기 때문이다. 사람들 반응에 반응하는 노예가 되어 칭찬에 웃고 매질에 울게 된다. 그러한 인고의 시간들이 쌓여서 1,200명의 팔로워를 만든 것이다. (1만 명도 아닌데 되게 크게 의미 부여하는 편) 나중엔 맞팔하지 않아도 자발적으로 팔로우를 눌러주신 정상적인(?) 계정을 가진 분들까지 많이 생겨서 내심 안심하고 있던 차에 모든 것이 헛수고가 되었으니 집에 도둑이라도 맞은 듯 타격이 컸다.

 

“죄송합니다. 페이지를 사용할 수 없습니다”

자자, 고작 인스타그램이다. 나도 아니고 내 일부도 아니고 내 인생도 아니다.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몇 백장의 데이터일 뿐이다. 한심하게도 나는 인스타그램 계정의 실종과 함께 나란 인간의 존재가 소멸했음을 뼈가 시리도록 느꼈다. (솔직히 말하면 울었다) 나는 아무것도 없는 사람이 되었다. 친구도 없고 독자도 없고 글도 없고 경력도 없는 그런 사람이 된 것만 같았다.

 

내가 (내 계정이) 사라져서 애타게 나를 (내 아이디를) 찾는 사람이 있을까?

없었다. 내가 포스팅을 해야 들어오지 내 아이디를 검색해서 들어오는 사람이 몇 이나 되겠나? 그런데 나는 그 사람들이 나에게 연락하기를 기다렸다. 내 인스타그램 계정이 공개된 것만 3개 정도되고 비공개는 추가로 5개 더 있다. 어느 계정에라도 혹시 누군가에게 연락이 올까 내심 기대하며 다른 계정에 이메일 주소까지 친절하게 추가해놓았던 것이다. 결과적으로 어떤 수단으로도 어떠한 연락도 오지 않았다. 애초에 그런 걸 기대하는 것 자체가 민망하고 웃기다. 남자가 날 좋아하나 착각하는 걸 넘어서 온라인으로 내 아이디를 분명 누군가는 검색할 거라고 착각하는 건 확실히 비정상이다.

계정이 사라진 날, 감정은 여러 단계를 거쳤다. 곧 다시 활성화 될 거라고 희망을 가졌다가 난 무명이야, 우울해했다가 이내 현실을 부정하는 단계에 도달했다. '인스타그램 그딴 쓰레기앱은 인생에 일말 도움이 안되니 차라리 잘됐어, 그 시간에 글을 쓰고 생산적인 일을 해야지! 이건 하늘의 계시야' 라고 했다.

하지만 계정이 사라진 날, 나는 서른책방과 콜라보해서 만든 에코백을 팔아야만 하는 인스타팔이피플이 되었다. 서른책방 사장은 이 중요한 (판매) 시기에 무슨 일이냐며 우선 새로 계정을 만드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했다. 나는 인스타그램이 세계에서 사라져야한다고 생각한지 10분 만에 역시 현대인에겐 인스타그램이 명함이자 포트폴리오라며 잽싸게 (임시이길 바라는) 새 계정을 만들었다.

 

https://smartstore.naver.com/30books/products/5954164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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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m_allowing

여전히 희망을 버리지 않고 @hem_allo를 검색할 사람들이 나를 다시 잘 찾아오길 바라며 수동태에서 능통태형 아이디를 만들었다.

1,200명의 팔로워가 그대로 나를 팔로워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맞팔, 선팔, 좋반, 댓반, 소통을 해야한다는 생각에 힘이 빠졌다. 나는 내 글이 좋다고 했던 사람이나 몇 번 댓글이나 디엠을 주고 받았던 모든 사람들을 찾아서 (소름끼치게도 아이디를 다 기억하고 있었다) ‘선팔’ 했다. 굉장히 없어보이는 행위였고 놀란 사람도 있었다. 어떻게 먼저 찾아서 팔로우를 했냐는 것이었다. 심지어 이전 계정으로는 맞팔하지 않고 있었는데 말이다. (할말이 없었다)

그런 짓을 해서(?) 겨우 팔로워 100명이 되었다. 그때 팔로잉은 150명이었다. 팔로잉 숫자는 신경쓰지 않는 것이 요즘 트렌드라지만 내 유일한 허세는 팔로워>>>팔로잉 숫자에 집착하는 거다. 다음날까지 맞팔이 되어있지 않은 사람들은 팔로잉 숫자 보존을 위해 빛의 속도로 ‘언팔’ 했다.

나는 내 책이나 글이나 부캐 박도를 친구들이 아는 게 싫었다. 박도는 곧 박혜민이지만 어쩐지 박혜민만 아는 사람들은 박도인 나를 어색해할 것 같고, 어색해하는 건 별 문제가 아니지만, 깝친다고 생각할 것 같았다. 왜 깝쳐 박혜민주제에? 뭔가 이렇게 술자리에서 뒷담화하는 애들이 상상됐다. 실상 아예 나한테 관심이 없으며 내 얘기는 커녕 생각조차 안하겠지만 헐뜯든 좋아하든지 간에 왠지 세상에 있는 누군가는 나에게 관심이 있을 거라고 착각하면서 신경 쓰고 살아가는 게 인생이므로.

인스타그램에서 박도로 활개치면서 깨달은 것은 박도일 때 더 나다워진다는 사실이었다. 계정이 사라지면서 그 사실이 더 와 닿았다. 팔로워 숫자에 연연하며 박혜민인 나의 이전(?) 친구들을 팔로우하기 시작하면서다. 이전 친구들이라 하면, 절교하진 않았지만 만나지도 연락도 안하는데 만나면 기꺼이 반갑긴 한 사람들. 그럼에도 걔네들이 내 박도 계정을 보는 건 껄끄럽다. 그럼에도 나는 팔로워 1명이 소중하다. 후배들, 선배들, 동아리 친구들 중에 선별해서 10명을 선팔했다. 그런데 1명이 맞팔하지 않는 것이 아닌가. 못본 걸까? 그럴 리 없다. 인스타그램 계정이 있다면 포스팅이나 스토리를 올리진 않더라도 접속은 하게 되어있다(는 정설). 이렇게 절교하게 되는 건가? (극단적인 건 다들 아실 터..)

걔네가 알고 있던 나와 박도 계정에서의 나는 좀 다르다. 사람이 다르다기 보단 묘한 기분의 차이다. 기를 펴고 지내는 기분이 든다. 그 이유는 나를 아는 사람들이 갖고 있는 나에 대한 이미지나 편견, 판단이 없기 때문에 나는 모든 것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

예를 들어 뉴욕에서 돌아다닐 때 한국인들이 주변에 있으면 행동이 움츠러든다. 영어로 대화하다가도 뒤에서 희미하게 한국말이 들리면 긴장하게 된다. 뉴요커에게는 내 하찮은 영어가 부끄럽지 않은데 한국인이 그걸 듣는다고 생각하면 차라리 뉴요커와 대화를 안하는 걸 선택할 정도다. 그저 내 추측일 뿐이다. 그 한국인이 내 영어를 비웃겠지, 라는 생각. 불현듯 하게 되는 나의 생각이 나의 행동을 통제한다. 나는 곧바로 입을 닫아버린다.

과거의 나에서 조금 버그가 수정된 버전의 내가 마음껏 살아갈 수 있도록 다시 이전 친구들을 ‘언팔’해야 하나 고민 중이다. (일동: 제발 그만ㅠㅠ)

@hem_allowing
@hem_allowing

계정 실종으로 인해 내가 얼마나 불안정하고 외로워하며 타인의 시선에 연연하면서 보잘 것 없는 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는지, 개선되지 않은 채 살고 있던 적나라한 나의 현실을 본다. 한계를 뛰어넘지 못하고 거기까지가 끝인 듯 의미없이 허우적거리며 고군분투하고 있다.

그걸 알면서도 새로 사귄 뉴요커 친구들이 인스타그램 계정을 알려달라고 해서 이전 계정을 언급하며 팔로워가 원싸우전드였음을 알아달라고 했다. 템퍼러리 어카운트라서 팔로워가 원헌드레드임을 감안해달라고 말이다. 그들은 웃지 않았다. 걱정말라는 듯 눈을 크게 뜨면서 “오브 콜스”라고 했다. 속으로 찌질한 동양인 (그것이 영어로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이라고 했겠지.

하지만 뉴요커 7명과 맞팔하게 되면서부터는 이런 말이 다 무슨 소용이냐 보이는 건 숫자인데 라는 생각에 팔로워 100명이라는 숫자가 점점 더 많이 부끄러워지기 시작했다. (이때쯤 프로필을 허세있게 영어로 바꾸었다. 책 제목까지 영어로 바꾸려다가 영어로 된 책도, 제목도, 글도 존재하지 않으니 그것까진 참았다)

팔로워가 많다가 줄어드니까 부자가 부도나서 초가집에 살게된 기분인데다가 그 숫자로 내가 평가받는 거라는 망상에 사로잡혀서 헤어나오기 어렵더라. 특히 뉴요커 친구들은 나의 내면을 알기 힘들다. 인스타그램이 유일하게 내 내면을 그들이 자세히 볼 수 있는 나의 대변인이었다. (인스타의 변천사: 쓰레기 ~ 명함 ~ 대변인 ~ 분신)

대화의 한계와 간극을 인스타그램이 메꿔준다. 아메리칸은 ‘see in translation’ 버튼으로 대화에선 느끼지 못했던 진짜 나를 읽을 수 있다. 그러니 100명의 팔로워는 한국에서 책 100권 팔린 자칭 작가이자 친구 100명 이하라는 인식만 심어줄 뿐이었다.

결국 나는 돈을 주고 팔로워를 샀다. 1시간 만에 주문한 팔로워가 배달되었다. 그들은 다 아랍어 같은 걸 사용했다. 숫자가 채워지자 마음이 놓였다. ‘한국인 팔로워 100%’라는 광고문구 따위는 나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얼추 인스타그램 팔로워 숫자가 맞춰졌다. 끝난 줄 알았는데 또 다시 늪에 빠졌다. 좋아요와 댓글 숫자가 신경쓰이기 시작했다. likes, comments delivery 버튼 앞에서 마우스 휠을 이리저리 굴린다.

 

허세의 끝
허세의 끝

인스타그램 계정이 정지당해서 복구중입니다! @hem_allowing을 팔로우해주세요. #선팔ㅋ맞팔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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