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력이 꼭 필요한가?

[박도수기] 05.11 tue 노력'경시'대회

2021.05.12 | 조회 59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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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도수기

이상하고 흥미로운 이메일 <박도수기>

 
 

LETTER 뉴욕에서 쓰는 편지  — 

안녕하세요. 박도입니다. 오랜만에 편지를 써요. 박도수기를 휴재한지 두 달 만이에요. 1년간 연재하며 회원님들이 저를 아는 만큼 저도 회원님들을 조금은, 꽤, 잘(?) 알게 되었기 때문에 안부가 궁금했어요. 댓글이든 디엠이든 반갑게 인사해주실 때마다 잘 지내냐고 묻기도 했죠. 거기다 대고, 나 잘 못 지내요. 이렇고 저런 일이 있었는데 어쩌고 저쩌고, 하시는 분은 없더라고요.

오히려 제가 좀 그랬던 것 같습니다..! 책이 안 써져서 큰일이라는 둥, 이제 어떻게 먹고 살아야 하냐는 둥. 아니 무슨 작가(?)라는 사람이 독자(?)에게 징징거리나요. 그건 아마도 내가 베스트셀러가 아니기에 가능한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작가와 독자라는 말도 어색하고요. 뭔가 역할극 놀이를 하는 것 같기도 하고. 판매 부수에 따라 작가라는 직업에 당당함(?)이 부여되는 걸까요. 아니면 그냥 늘 뭔가를 부끄러워하다가 이상한 것에만 큰 소리치는 성격 때문인건지 모르겠네요. 작가라고 말하기는 꺼리면서(도 하지만) 강아지에 대해서는 우리 온도가 최고라고, 고양이 따위 전혀 귀엽지 않다고 고양이 앞에서 말하거든요.

그동안 어떻게 지냈느냐면 카톡에 대고 주절주절 길게 내 이야기를 늘어놓지 않게 되다 보니 틈 날 때마다 일기 쓰는 시간이 늘었어요. 비교적 자세하고 솔직하게 기록해요. 어디서 누구를 만났는데 이런 생각이 들었고, 마지막엔 늘 그렇듯 반성으로 끝이 나고요. 어른이 돼서도 그 정도 생각밖에 못하는 게 한심하지만 글로 쓰면서 그 한심함이 좀 떨어져나가는 느낌이에요. 그리고 자세한 기억을 위한 차원도 있죠. 일기의 존재의 이유인. 정말로 안 까먹을 거라고 자신하는 일들도 놀랄 정도로 쉽게 잊어버리고 마니까요. 그간 쓴 기록들을 살펴보다가, 에세이 소재로 쓸만한 건 에세이화(?) 하고 있는 중에 다시 박도수기를 보내고 싶어지더라고요.

5월호는 무료로 보내드려요. (생색) 무료니까 편하게, 마음대로 할 속셈입니다. (음흉) 편지 하나, 글 하나가 담겨요. 정보나 지식은 1도 없고요. 카톡왔네! 같은 느낌을 주는 친구와의 대화같은 뉴스레터로 봐주세요. 아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1년간 유료로 진행해왔고 이번에도 당연히 돈을 벌어야 하는 거 아닌가 생각했는데, 제가 뭐 이슬아 작가님도 아니고… 우선은 제가 어떤 글을 쓰는 사람인지 진입장벽(만원)을 확 낮춰서 많은 분들에게 퍼져나가고 싶습니다.

그러니 읽는 여러분도 부끄러워하지 마시고 많이 공유하고 퍼다날라주세요,라고 직접적으로 부탁하는 건 갈취나 협박 또는 뇌물죄로 기소될 수 있으니,는 농담이고요. 아무쪼록 심심한 시간에 잘 파고들어 보겠습니다.

그럼 좋은 밤 보내세요. 뉴욕은 아침 10시라서, 저와 같은 시간대인 분들은 좋은 하루 보내시고. 곧 또 뵙겠습니다!


대화를 나누었던 날의 나
대화를 나누었던 날의 나

Essay 노력경시대회 —    

방송국 피디를 꿈꾸면서 공채에 좌절해왔지만 요즘 시대에는 방구석에서도 잘만 하면 피디가 될 수 있으니 전에 없이 기세가 하늘로 솟구치고 있다. 나도 유튜브 제대로 하기만 하면 피디다 이 말이야! 작가가 판매 부수에 따라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느냐 없느냐가 결정되듯이 피디 또한 구독자가 몇 명인지, 조회수가 얼마나 나왔는지로 진짜와 가짜를 구분할 수 있다. (물론 내 주관적인 기준이다) 구독자 10명에 조회수 50인데, 유튜브 채널이 있으니 ‘나도 피디다!’ 하기엔 영 모양이 안 서지 않은가. 어쨌든 10명인지 100명인지 만 명인지는 시작을 해야 알 수 있는 것. 시작과 실행이 중요하지! 암요! 야심차게 준군에게 말했다.

“나 앞으로 뉴욕 인터뷰나 다큐 찍어보려고! 도전해보는 거지 뭐 (눈치를 살핀다)”

응원은 바라지도 않지만 준군은 주특기인 초를 쳤다.

“그게 될까? 그걸 누가 봐? 재미없을 것 같은데”

나는 장황하게 어떤 다큐를 어떻게 찍을 건지 설명했다. 저스틴 비버, 킴카다시안 같은 유명인사를 찍는 게 아니니까 유쾌하고 병맛스러운 뉴욕인간극장을 만들어보겠다고 했다. 그러자 준군이 관찰형으로 카메라를 설치할 것인지, 직접 6mm 비디오 카메라를 들고 따라다닐 건지, 누구의 시점으로 카메라를 찍는 건지 이것 저것 질문을 퍼부었다.

“시발.. 이거 무슨 tvN 면접이냐? 그냥 닥쳐 쫌!”

나는 슬슬 몸이 근질거렸다. 카메라 하나는 설치하고 하나는 들고 따라다니고 융통성 있게 상황에 맞게 하면 될 일이라고 생각했다. 준군은 일관성있고 디테일한 기획이 중요하다고 했다. 촬영감독이 괜히 있는 게 아니라고도 덧붙였다. 맞는 말이긴 한데, 요즘 잘 되는 콘텐츠를 보면 카메라가 흔들리고 불안정하고 앵글이 엉성해도 주인공의 행동이 웃기거나 등장인물들의 대화가 볼만하면 누구도 카메라나 방송 이론을 들어 트집잡지 않는다.

“영상기법으로, 와~ 대단한 연출이네! 라는 반응으로 잘되는 콘텐츠는 극소수고 대부분은 재미있으면 돼. 카메라는 핵심 콘텐츠만 잘 담으면 된다니까? 내용, 스토리, 구성이 중요한 거야. 알아? 내가 방송 경력이 인마 #!%$^$@^! (생략)”

말로는 큰 소리쳤지만 속으로는 점점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뭐가 맞는지는 나도 잘 모르기 때문이다. 정작 제대로 해본 적이 없다. 학교 수업 과제로 단편영화를 찍은 적이 있지만 그땐 6명이서 함께 상의하면서 해서 완전한 내 역량은 아니었다. 온도 유튜브를 촬영하고 편집하기도 했지만 그것 역시 애니멀봐 팀원들과 함께한 것이기 때문에 내 역량은 아니었다. 그런 사람이 된 것 같았다. 해보지도 않고 큰 소리만 치는 병신같은 사람. 찌질이.

내가 조용히 있자 준군은 이때다 싶어 계속 발언했다.

“자도르랑 그 피아노 친다는 동네친구 봐봐. 그 사람들은 왜 그럼 매일 연습을 해?”

준군의 말이 오래 남는 법은 좀처럼 없지만 이번 그의 말은 심하게 나를 후벼팠다. 그걸 눈치챘는지 그는 기세등등했다.

“아니 그 사람들이 베이킹을 못해서, 피아노를 못 쳐서 매일 그렇게 하겠어? 연습이라는 게 왜 필요한데. 그럼 자기는 왜 연습을 안해? 영상을 찍는다면서 그거에 대한 무슨 연습을 했는데?”

“…… 그!건! 그건 어려운 거고! 난… 솔직히 영상은 쉽잖아… 카메라 들고 플레이만 누르면 되는….”

“아 듣기 싫어ㅋㅋㅋ”

“아 그래! 인정!!! 웬일로 바른 소리 했네!!! 아니 그래서 나도 학교 다니려고 하잖아. 근데 돈이 없으니까 일단은…. (빠르게 태세 전환하는 편)”

“학교 가기 전에 영상에 대한 연습을 하고 공부를 해야지 무턱대고 하지 말고. 그렇게 하다가 맨날 3일 하고 안 하잖아.”

준군은 365일 팩트폭격기다. 나는 3초 망상추격기다. 망상도, 실행도 잘하지만 끝까지 하는 건 잘 없다. 아마도 왜 이혼하지 못하냐는 질문에는 우리가 이렇게나 다르기 때문이라고 답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렇다고 항상 인생에 도움이 되는 귀인은 아니지만..

나는 내가 아는 분야에 대해서, 내가 일하는 포지션에 대해서 쉽다고, 진입장벽이 낮다고 생각한다. 글쓰기도 마찬가지고, 책 쓰기도 마찬가지고, 마케팅팀에 있을 때도 그랬고, 영상도 보다시피 그렇다. 내가 잘 알기 때문에, 내가 해봤기 때문에 그런다. 오만한 일이다. 단순히 경험이 아니라 그 분야에서 일인자(ㅋ)가 되려면 10년을 했어도 그 일이 결코 쉽지 않음을 알아야 하는데 글도 그냥 빨리 쓰고, 영상도 후딱 찍어 대충 편집하고, 해봤으니 연습은 안한다. 누구나 자기가 해낸 일을, 다른 사람도 자기처럼 하면 될 수 있다고 생각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누워서 떡 먹기라고 여기진 않는다.

나의 어설픈 자신감과 비대한 희망이 나를 망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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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5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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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보금

    0
    almost 3 years 전

    생각하고 계획을 짜는 일보다 일단 아닥하고 연습을 시작하고 봐야하는 피아노 연습하는 애도 옆에서 이렇게 연습해도 되겠어? 더 해야되는거 아니야? 그게 다 한거야? 라는 남편의 팩폭을 받곤 한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작가님의 뉴욕인터뷰, 다큐, 학교(공부) 전부 몽땅 다 응원해요!!!!! ❤️❤️

    ㄴ 답글 (1)
  • 레나킴

    0
    almost 3 years 전

    앉아서 매일 요행을 바라는 이로써 공감가는 글입니다. 그런데 그 연습이라는 것이 꼭 자리 펴고 앉아서 똑같은 일을 한다고 연습이 아니지 싶습니다. 매일 경험하고 다시 생각하고 성찰하고 하는 것도 연습 아닌가요? ㅋㅋㅋㅋ(절대적으로 게으른자의 항변) 하다보니 여기까지 왔네라는 생각이 들만큼...한가지에 대한 꾸준한 열정, 생각, 고민도 다 연습이지요. 물론 기술적인 면에서의 발전은 책임 못 집니다.

    ㄴ 답글 (1)
  • 이고운

    0
    almost 3 years 전

    언제나 그렇듯 준군님의 팩폭 잔소리ㅋㅋㅋ

    ㄴ 답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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