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고 싶은 날 말리지 말락ㅗ

(오타아님)

2021.05.21 | 조회 4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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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도수기

이상하고 흥미로운 이메일 <박도수기>

  
  
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주지
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주지

 

 
 

ESSAY 

 

 

‘와 놀고싶다! 아무 생각없이 공원에 앉아서 헛소리 하면서 사람들 구경하고 싶다. 간절히!’

 

오늘 워싱턴 스퀘어 파크에 다녀왔다.

2년 전 뉴욕에 처음 왔을 땐 - 아, 그러고 보니 오늘이 뉴욕에 온지 딱 2주년 되는 날이다. 5월 21일. 한국 날짜로 그때 출발해서, 뉴욕 날짜로 5월 20일 밤에 도착했다. 그런 것 같다. 사실 그러거나 말거나 누가 관심이나 있겠는가 - 아무튼 처음엔 하루도 빠짐없이 다운타운에 가서 네이버 블로그 맛집을 찾아다녔다. 관광객 인듯 아닌 듯 호텔 대신 1년 렌트한 집에 묵는, 그러면서 공과금을 내고 카드를 만들고 민증을 만드는, 그렇다고 시민도 아닌 것이, 여행을 하는 것도, 익숙하게 사는 것도 아니다. 완전히 새로운 유형의 일상이었다.

시간이 흐르면 모든 것이 익숙해져서, 영영 그럴 거라 생각지도 못했던 뉴욕조차도 지겨워버리는 일이 생긴다. 지겹다고 하는 건 뉴욕을 덜 사랑하는 척하는 츤데레에 허세다. 어찌 뉴욕이 지겨울 수 있겠는가? 그저 예전보다 너무 잘 알게 되었을 뿐. 알게 되면 좋은 게 많지만 시시하기도 하다.

이제는 예전처럼 매일 다운타운에 나가지 않는다. 약속도, 아는 사람 하나 없어도 뻔질나게 14번가 부근을 돌아다니던 나는 서울에서처럼 거리와 시간을 재기 시작한다. 집에서 먼 곳에서 약속이 생기면 귀찮다하고 조금이라도 가까운 곳을 찾는다. 2시간이 걸리더라도 걸어서 맨해튼을 곳곳을 활보하던 사랑에 빠진 자의 마음은 어디로 가버린 걸까.

그땐 하물며 한국서 보낸 내 신발컬렉션 박스가 분실돼서 밑창이 양말 수준인 고무신 같던 Keds 운동화 하나로 하루 8시간씩 걸었다. 토론토에서 놀러온 갑수의 남편이 내 케즈운동화를 보고는 "It's like a trash"라고 했다. 시ㄴ발. 자손은 나이키 운동화 수집가이자 나테크를 하는데, 정작 내가 뉴욕 올 때 신발 하나 가져다 달라니까 캔버스를 가지고 왔다. 나이키 내놔.

그후 도저히 못참겠어서 아울렛에서 30달러짜리 나이키 운동화를 샀다. 그 한 켤레 나이키를 사시사철 신은지도 2년이 되어간다는 뜻이다. (아, 글에서 발냄새나) 오해하진 마시라. 엄마가 1년 전에 뉴욕에 왔을 때 빨아주고 갔다. (이게 더)

돌이켜보면 비싸지도 않은데 초기엔 10달러라도 허투루 쓰면 노숙자로 살아야 한다고 생각해서 5달러 햄버거와 2달러 피자도 겨우 사먹었다. 지금은 여기서 번 (준군) 돈은 여기서 다 쓴다는 생각으로 살고 있다. 그래봐야 얼마 되지도 않고 그마저도 식비로 다 쓰지만 저축의 개념이 없는 문화 만큼은 빠르게 습득하고 있다. 동네 할아버지는 뉴욕의 복지제도 덕분에 20년 전 렌트비만 내고 브로드웨이 쓰리룸 아파트에 산다고 나한테 자랑했다. 늙어서도 월세 살면 인생이 망하는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고쳤다. 수입의 30%는 월세로 쓰기로. 그렇게 마음 먹으면 조금 더 자유롭고 행복해진다. 실제로 달라지는 건 거의 없지만 내 수입이 렌트와 생활비를 감당할 정도로 많아지면 30% 뚝 떼어서 하와이에서 (하루키처럼) 바다가 보이는 작업실에 앉아 글을 쓰고 해 지기 전에 쪼리 신고 해변에서 수영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상상이 현실에 가까워지는 느낌이다.

“니가 애가 없어서 그래.”

아, 애. 그것도 맞는 말이다. 그 상상에 애가 끼어들면 시작부터 다 엉망이 될 것만 같다. 작업실에 앉을 수나 있을까. 수영은 또 어떻고. 단촐하게 수영복 하나 쫙 입고 바다에 ‘쌉’ 들어가는 게 아니라 모래놀이할 삽, 꽃게모양 틀, 물주전자, 수건, 간식, 물 챙겨 바다를 코앞에 두고 노심초사만 해야하겠지. 아니면 반드시 어른 두 명이 함께 바다에 가서 교대로 수영을 해야 한다거나. 아아. 이런 비자유로움에 대한 상상과 친구들의 육아헬 리얼리티가 머릿속에서 결합하면 결단코 딩크족으로 살리라 다짐하게 된다.

다른 사람이 노는 걸 지켜보는 게 아니라 나는 아직도 내가 노는 것의 주체가 되고 싶다. 즐겁게 놀고 탱자탱자 놀고 하하호호 낄낄거리고 싶다. 누가 잘생겼네, 저 사람은 어떠네 저떠네, 마치 선택권이 있는 사람마냥 아무렇게나 말하면서 술을 먹지 않았어도 취한듯 흐느적거리고 싶다.

돈 못 버는 프리랜서 작가에겐 지나친 사치이다. 뉴욕에 온지 2년인데 뉴욕에 대한 제대로 된 글 하나 못 써냈다. 그럴수록 다운타운에 나가서 코로나와 인종차별을 무릅쓰고 맞서 싸워야 하는데 앞 건물 벽만 한가득 보이는 172번가 방구석에 앉아있다.

2년 전과 달라진 게 또 있다면 다운타운에 나가는 것에 큰 의미를 부여하면서 죄책감을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한심하게 또 다운타운에 가서 글은 안 쓰고 돈만 쓰겠다는 거냐? 일 안해? 성공(풉) 안할거야? 어? 그러면서 괴로워한다. 그러니 낮에 나가서 펑펑 노는 날이 너무 없다. 집에서 찌질거리며 소심하게 노는 날은 많지만서도.

오늘은 나가서 놀았다. 놀았으니 밤에는 논 것에 대해서 글을 쓴다. 이 정도면 생산적인 하루였다고 마무리할 수 있겠지.

워싱턴 스퀘어 파크는 뉴욕에선 작디 작은 공원으로 취급받으며 센트럴파크나 브라이언트파크보다 못하다고 여겨지지만, 한 눈에 파리 개선문같은 것, 프렌즈 오프닝에 나오는 분수 같은 것, 그리고 센트럴파크스러운 잔디밭과 선이 있는 곳엔 모두 벤치를 놓은 듯하게 넘쳐나는 앉을 곳을 볼 수 있어 좋다.

센트럴파크보다 워싱턴 스퀘어 파크를 좋아하는 이유는 (물론 센트럴파크에 갈 때마다 센트럴파크는 역시 최고라고 말하지만) 그곳에는 이상하고 특이한 사람들 반, 이상하고 특이하고 돈이 많은 사람들 반의 반, 이상하고 특이하고 집도 절도 없는 사람들 반의 반의 반, 이상하고 특이하고 옷 벗은 사람들 반의 반의 반의 반, 나머지 적당히 이상한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센트럴파크는 그렇지 않다)

내일이면 반쯤 기억 못할 이야기들을 쉬지 않고 말하면서 해가 지기 전에 아이스 가득 넣은 레모네이드를 마시고 A 트레인에 탔다. 분명 집에서 출발할 때는 페퍼 스프레이를 손에 꼭 쥐고 있었는데 나중엔 그저 발뒤꿈치에 데일밴드나 붙이고 있었을 뿐이었다.

 
 

PIC 

노는 게 제일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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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단지로 가방만들어서 비싸게 파신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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