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상담을 받았다

2021.08.13 | 조회 55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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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도수기

이상하고 흥미로운 이메일 <박도수기>

 
 

 

망설이고 의심만 하다가 처음으로 긴급 상담을 받았다. 친구들과 대화 중에 몇 번 눈물이 났고 내 친한 친구는 이야기를 쭉 듣더니 마치 개인은 답을 내리고 해결할 수가 없다는 듯이 자기가 잘 아는 선생님에게 바로 전화를 했다. 애초에 어떻게 해야할지, 방법이 있긴 한건지 그런 것에 대해서는 잘 생각하지 않고 외면하고 있었다. 내가 가끔 친구들에게 꺼내보이는 상처가 (그것도 여러 질문에 의해서 가까스로) 정말 치유될 수 있다고? 병원은 9월 말까지 예약이 다 차있거나 당장 갈 수 있는 곳이 없었다. 그 사실이 조금 위로가 됐다. 다들 나 같은 걸까? 친구가 상담을 받고 깨닫고 알게된 것들은 - 그로 인해 많이 달라지는 건 아니라고 해도 - 친구를 더 명료하고 선명하게 만든 것 같았다. 자기를 잘 아는 사람만이 지닐 수 있는 모습이다. 매일 만나던 것에 비하면 아주 오랜만인 친구의 변화를 보니 나도 조바심이 났다. 한국에 있는 동안 한 번 받아봐야지 생각만 했다.  

아침에 일어나서 사온 파리바게트 아이스 아메리카노에 얼음을 더 추가해서 먹으면서 친구와 이야기를 하다가 또 눈물이 났다. 친구 이야기도 슬펐고 거기에 뭐 대단한 경험이라고 비슷한 나의 이야기도 덧붙여 말하면서 너무 슬퍼진 탓이다. 친구가 차 시동을 걸었다. 우리끼리는 계속 맴돌기만 하니까 이걸 빨리 해결해줘야겠다는 의지였다. 약간, 빨리 환자를 정신병원에 이송시키는 것 같았다. 

예약없이 내과처럼 바로 갈 수 있는 정신과의원이란 알만 하다. 그럼에도 지푸라기라도 간절했다. 정말로 간절한 건지는 사실 모르겠다. 체념이 너무 강해서였는지 뾰족한 수가 없어서였는지 “뭘 어쩌겠어, 일단은 그냥..”이라는 말을 달고 살았다.

문방구 들어가듯 쉽게 상담실에 들어갔다. 의사는 60대 여자였다. 그 나이대의 평범한 짧은 파마에 작은 눈, 그 위에 금색 안경테까지. 아무 특색이 없는 얼굴이라 돌아서면 잘 기억에 남지 않을 것 같았다. 보고 있는 와중에도 어떻게 생긴지 잊어버릴 판이었다. 만약 누군가의 시어머니라면 일하는 여자인데다가 의사라서 훈계도 많이 하고 격식도 깨나 차릴 것 같았다. 그렇게 생각한 이유는 그 무색의 입으로 뱉은 첫 마디 말 때문이었다. 

“무슨 일로 왔어?”

?? 뭐지? 

잘못 들었나 싶어서 일단 대답은 했다. 그러자 다시 반말을 했다.

“아 그랬구나. 어떤 게 그렇게 힘들었어?”

롸?

시발. 왜 반말하고 지랄이야.

그래서 나도 소심하게 반말을 했다.

 

“어디 살다 온거야?”

“뉴욕”

“왜 전주에 왔어?”

“친구집”

 

나중에는 오히려 내가 의사를 진단하게 되었다. 그녀가 한 말 때문이었는데 “막내들은 원래 그래. 언니들 때문에 더 어리지”라고 했다. 나는 장녀다. 언니들도 없고 동생만 한 명이다. 의사는 그저 내 행색과 내가 하는 말로 나를 ‘막내딸’로 짐작하고 판단을 내렸다. 환자의 진지한 말들이 그저 막내의 어리광으로 보였던 거다. 시발. 점집도 이것보단 잘 맞추겠다.

급기야 의사는 우울증 진단 검사를 해보자고 했다. 저 우울증은 아닌데요. 나는 자가진단했다. 의욕도 성욕도 넘친다고 덧붙였다. 그랬더니 그건 그냥 성향이라 그런 거라고 우울증은 별개로 진행되고 있을 수 있다고 했다. 1분만에 검사를 마치고 나니 우울증은 아니라는 결론이 나왔다. 아니라니까.

돌팔이 의사였지만 그래도 내 이야기를 온전히 털어놓는다는 행위만으로도 마스크 안으로 콧물이 흐를 정도로 눈물이 났다. 그녀는 자신이 환자를 울게 할 정도로 좋은 진료를 했다는 자부심을 느끼는 것 같았다.

그녀는 전라도 어딘가에서 태어나 그곳에 있는 대학을 졸업하고 대학이 있는 동네에서 병원을 운영한다. 아주 좁은 세상에서 작고 평범한 경험으로 너무나 버거운 마음들을 어루만져야 한다. 그런 한계로도 당당하게 의료행위를 이어나간다는 용기에 묘하게 힘이 났다. 실력이 없으면 친절하기라도 해야하는데 환자에게 반말을 하는 패기까지. 이상한 교훈을 얻었다.

나는 답답함에 마지막으로 의사에게 질문했다.

“저 괜찮아 보여요?”

의사는 말했다.

“아니!! 안 괜찮아보여! 하나도 안 괜찮아!”

그 말에 웃음이 났다. 정말로 괜찮지 않구나 난. 이거 내 책 <괜찮지 못한 인간> 홍보할 때 사용해야겠어. 하나 건졌네. 젠장.

진료가 끝나니 친구가 차를 끌고 데리러 왔다. (엄마냐..)

“그 의사에게 언니는 너무 능력 밖의 버거운 환자였던 거지. 난제?”

친구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나의 인생이 비범하게 거지같다는 것이 자랑스러웠다. 그래. 역시 난 보통은 아니야.

 

 

(다음 화에 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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