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평범한 사람들의 평범하지 않은 기록, 평범도 범이다입니다🐯
이어진 휴일이 끝나고 바쁜 일상이 돌아왔습니다. 누군가는 휴일이라고 규정된 그날 더 벅찬 하루를 견디며 지쳤을 테고 다른 누구는 지나가 버린 쉬는 날을 그리워하겠죠. 😢
늘 그랬듯 범레터는 자신의 자리에서 힘껏 살아가는 이들의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5월 1일 노동절이 지나고 6월 대선을 위한 현수막이 붙기 시작한 요즘은 그 평범함이 조금 더 의미 있게 다가오네요.
어디를 향해 걸음을 옮겨야 할지 🤔 갈팡질팡한 시기. 범레터가 힌트를 살짝 드릴 수 있다면 솔깃하실까요? 🔍
레터의 마지막 장엔 읽다 보면 마음이 든든~해지는 이야기, 호랑이표 꿀떡까지 준비했으니 챙겨 가세요! ✨
오늘의 범레터가 건네는 이야기
⛑ 칼럼|진정한 의미의 노동에 관하여
🎇 인터뷰|바람 불어도 꺼지지 않는 불꽃
🎈 인터뷰|응원봉 불빛만큼 다채롭고 아름다운 세계가 기다릴 거예요
🔔 오늘의 꿀떡|청년들이 6.3 조기 대선에 바라는 점
칼럼|진정한 의미의 노동에 관하여
: 4월 28일, 그리고 5월 1일
어김없이 근로자의 날이 돌아왔습니다.
올해 근로자의 날은 유난히 특별하게 느껴집니다. 대한민국이 올해부터 세계 산재 노동자의 날(4월 28일)을 법정 기념일로 지정했기 때문입니다. 세계 산재 노동자의 날은 전 세계에서 작업 중 목숨을 잃거나 다친 노동자들을 기리는 날인데요. 사고를 당한 노동자들을 추모하고, 안전한 노동 환경의 중요성을 되새기는 이날이 이제야 법정 기념일로 자리 잡은 것입니다.
[반복되는 산재 피해 노동자]
그러나 4월 28일을 앞두고 또 한 명의 노동자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메탄올 실명’ 사건으로 알려진 이진희 씨가 긴 투병 끝에 지난 17일 세상을 떠난 것입니다. 이 씨는 아버지의 건강 악화로 생활고에 시달리다 대학을 중퇴했고, 2016년 2월 인천 남동 공단의 스마트폰 부품 하청업체에 취직했습니다. 이 씨는 스마트폰 몸체를 절삭하는 작업을 맡았고, 이 과정에서 고농도 메탄올에 무방비로 노출되고 말았습니다.
근무를 시작한 지 불과 나흘 만에 쓰러진 이 씨는 이후 시각 장애 1급과 뇌경색 장애 4급 판정을 받았습니다. 다른 20대, 30대 노동자 6명도 유사한 피해를 입었습니다.
이 씨와 피해자들은 노동 건강 연대와 민주 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의 도움을 받아 2016년 서울 중앙 지법에 파견업체와 국가 등을 상대로 손해 배상 소송을 제기했고, 2021년 하청 및 파견업체에 대해 승소했습니다.
고용 노동부 통계에 따르면, 2024년 한 해 동안 산재로 사망한 노동자는 589명에 이릅니다. 하루 평균 1.6명의 노동자가 일터에서 목숨을 잃은 셈입니다.
먹고살기 위한 일이 죽음으로 귀결되는 현실을 우리는 언제까지 외면할까요. 세계 산재 노동자의 날을 맞아 이제는 진정으로 안전한 노동 환경에 대해 고민해야 할 때입니다.
[근로자의 날이란 이름 속 불편한 진실]
5월 1일을 맞아 많은 이들이 근로자의 날을 휴일로 여기며 기뻐하지만, 모든 노동자가 이 날을 온전히 누릴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근로자의 날 제정에 관한 법률」은 적용 대상을 「근로 기준법」에 따라 한정하고 있습니다.
즉, 근로 기준법의 보호를 받는 임금 노동자만이 법정 휴일의 혜택을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특수 고용 노동자, 배달 종사자 등은 법적으로 근로자에 해당하지 않아 근로자의 날을 보장받지 못합니다.
그러나, 이들은 과연 진정한 노동자가 아닐까요? 법은 변화하는 노동의 현실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다양한 노동 형태를 아우를 수 있도록 ‘근로’가 아닌 ‘노동’이라는 더 포괄적인 개념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낯설게만 느껴지는 ‘노동절’이라는 단어가 자연스러운 일상어가 되는 날이 오기를 소망해 봅니다.
인터뷰|바람 불어도 꺼지지 않는 불꽃
평범도감_2호: <LED 불꽃남자 정대만> 기수 ‘이영걸’ 님의 이야기
평범도감은 가만히 있지 않은 청년들을 기록하는 인터뷰 시리즈입니다.
탄핵 집회에서 강렬한 불빛으로 늘 우리의 눈을 사로잡은 깃발 하나가 있었습니다.
<불꽃남자 정대만>
집회에 참석할 때마다 펄럭이던 깃발을 보며 ‘저렇게 매일 와서 깃발을 흔드는데 나도 더 열심히 와야지.’ 다짐도 했고, 바람이 불어도 절대 꺼지지 않는 LED 불빛을 보며 혼자가 아니라는 용기를 얻기도 했습니다. 어느 날은 주변 사람들 모두 ‘불꽃 남자 정대만!’을 연호했습니다.
우리는 그 깃발의 주인을 자연스레 ‘정대만 씨’라고 불렀지만, 정작 깃발의 주인은 본인을 ‘이영걸’이라고 칭했습니다. 슬램덩크에서 자신은 ‘정대만’을 응원하는 깃발을 만든 친구 ‘이영걸’이고, 사실 정대만의 역할은 깃발을 바라보는 여러분이라고요.
그러니 결국 우리는 깃발을 흔드는 이영걸 씨를 응원했고, 이영걸 씨 역시 우리를 응원하는 깃발을 흔들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추운 광장에서 보이지 않는 따뜻함을 함께 나눠 왔습니다.
광장을 밝힌 불꽃, 이영걸 씨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Q.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A. <LED 불꽃남자 정대만> 깃발 기수 이영걸입니다.
Q. LED 불꽃남자 정대만 깃발을 제작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A. 계엄 직후, 여의도 광장에서 제가 좋아하는 깃발을 찾아가기도 어렵고, 인터넷이 잘 터지지 않는 상태라 친구들 위치를 찾기도 어려워서, 제가 깃발을 갖고 싶다는 생각을 하던 차에, 12월 7일 내란의 힘이 단체 노쇼 하는 걸 보고 화가 나서 제작했습니다.
Q. 경이로운 탄핵 집회 출석률을 보여 주셨는데, 매번 깃발을 들고나갈 때의 심정이 어떠셨는지 공유해 주세요.
A. 보통 퇴근 직후라, 이미 지친 상태라 욕하면서 갔습니다. 부채감 때문에 안 갈 수는 없었기에…….
Q. 탄핵 집회 기간 동안, 인상 깊었던 기억이 있으신가요?
A. 12월 14일, 마포 대교를 건너던 수많은 사람들. 그리고 3월 1일, 제가 깃발을 들고 나가지 않아서 앞을 잘 볼 수 있었는데요. 그때 봤던 응원봉들이 기억에 남아요.
Q. 대만이 깃발과 함께하며 응원했던 동지들에게 한마디 부탁드려요.
A. 저를 정대만 씨라고 불러 주시는데, 제 깃발은 작중 정대만을 응원하기 위해 친구인 이영걸이 만든 깃발입니다. 당신들이 정대만 롤~
Q. 집회 참석과 탄핵 이후 생긴 개인적인 변화가 있으신가요?
A. 사회 문제에 관심을 안 가질 수가 없어졌습니다. 특히 요즘은 ‘검수완박’, ‘내란의 힘 해체’, ‘동덕 여대’, ‘전장연’, ‘여성 폭력’ 같은 주제들에 더 관심이 가서 연대하고 있어요.
*동덕여대 공학전환 반대 투쟁
24년 11월, 학생들과 논의 없이 시작된 학교 측의 독단적인 공학 전환 강행에, 학생들이 ‘공학 전환 논의 전면 철폐’를 요구하며 시작된 투쟁. 하지만 학교 측은 학생들의 정당한 시위를 불법으로 규정하고 학생들을 형사고소 등으로 대응하며 학생 탄압에 나섰습니다. 이러한 비민주적인 행정 절차에 맞서 학내 민주주의를 회복하고, 안전한 학습권을 보장하기 위한 투쟁으로 이어졌습니다.
*전국 장애인 차별 철폐 연대(전장연) 투쟁
2001년 오이도역 리프트 추락 참사를 계기로, 장애인 이동권과 생존권 보장을 위해 시작된 투쟁입니다. 현재는 단지 이동권뿐만 아니라, 장애인도 한 명의 시민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평범하게 일하고, 이동하고, 생활할 수 있도록 하는 기본적인 권리’를 온전히 누릴 수 있도록 하는 법적·사회적 변화를 외치고 있습니다.
Q. 마지막으로, 이 인터뷰를 보는 청년들에게 하고 싶은 한마디 부탁드려요.
A. 긴 시간 수고 많으셨습니다. 탄핵이 이미 되었으니 충분히 만족한 사람들도 있을 거구요.
그렇지만 내란 세력 척결은 한참 남았습니다. 다들 조금 더 힘내 주시길.
인터뷰|응원봉 불빛만큼 다채롭고 아름다운 세계가 기다릴 거예요
평범도감_3호: <외향인>, <기적의 궁전 한국지부> 기수 ‘조나기’ 님의 이야기
화려한 디자인과 유쾌한 문구, 외향인 깃발 기수 ‘조나기’ 씨를 광장으로 이끈 건 ‘부끄러움’이었습니다. 박근혜 탄핵 집회 당시, 입시 준비로 광화문으로 가지 못했던 마음의 짐이 윤석열 탄핵 집회로 이끌었다고 전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광장에서 평화는 누군가의 피와 땀으로 일궈졌다는 것을 배우셨다고 합니다. 더 나은 세상은 사람들의 목소리가 모여야 비로소 만들어진다는 것을.
조나기 씨가 든 깃발엔 ‘외향인’만 적혀 있지만, 조나기 씨가 전하고 싶은 말은 단순한 분류가 아니었습니다.
이번 인터뷰 통해, 그간 우리가 얼마나 서로를 쉽게 나누고 단정지어 왔는지를 떠올리며 부끄러움을 느꼈습니다. 광장에서 조나기 씨가 흔들었던 ‘외향인’ 깃발은 우리가 서로의 색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세상으로 향하는 첫걸음이었습니다.
다채로운 세상을 만들어 가는, 조나기 씨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Q.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A. 안녕하세요. <외향인>, <기적의 궁전 한국지부> 깃발을 들고 집회에 나섰던 조나기라고 합니다. 이렇게 인터뷰를 할 수 있게 되어 영광입니다.
Q. 외향인 깃발을 제작하시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A. <내향인> 깃발을 집회 현장에서 보고, 저보다 더 외향인인 친구가 “왜 외향인 깃발은 안 보여? 우리가 외향인 깃발 만들자!”라고 말했습니다. 저도 좋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해 제작하게 되었습니다.
참고로 깃발 배경색은 간단한 그라데이션이었는데, 인쇄 오류로 그라데이션 줄무늬가 되었습니다. 그 덕에 외양이 더 화려해져 관심을 많이 주셨던 것 같아요.
Q. 외향인 깃발이 내향인 깃발과 붙어 있는 모습을 재밌게 봤어요. 심지어 내향인 깃발 기수님께서 먼저 다가오셨다고 하는데, 당시 상황이나 심정을 공유해 주실 수 있나요?
A. 당시 한강진에서 이루어졌던 시위로 기억합니다. 친구들과 함께 깃발을 들고 나가 자리에 앉아 있었습니다. 친구 한 명이 “어! 내향인이다!”라고 외쳤을 때에야 <내향인> 깃발 기수님께서 다가와 주신 것을 알았습니다. 저와 제 친구들은 모두 “와, 내향인이다! 내향인!”이라고 외치며 사진을 찍었어요. <내향인> 기수님께는 통로에 잠시 서서 기수인 제가 사진 찍을 수 있는 시간을 내 주신 뒤에 홀연히 사라지셨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저와 제 친구들이 너무 아우성쳐서 부끄러우셨을 것 같기도 하네요, 죄송합니다. 그만큼 <내향인> 기수님을 만나 정말 반가웠어요! 무엇보다 (저희를 먼저) 찾아와 주신 점이 매우 감사했습니다. <내향인> 깃발이 없었다면 <외향인> 깃발도 없었을 테니까요.
Q. 탄핵 집회에 나가기로 결심한 이유가 있나요?
A. 박근혜 탄핵 집회가 광화문 광장에서 벌어졌던 당시 고등학생이라, 입시 준비에 한창이었기에 광화문으로 가지 못한 것이 큰 아쉬움으로 남아 있었습니다. 그 시기에 쌓인 마음의 짐이 저를 집회 현장으로 이끈 것 같습니다.
Q. 언제부터 사회 이슈에 관심을 갖게 되셨나요?
A. 고등학교 때, 여성 혐오와 페미니즘에 대한 이야기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그때부터 저의 인지가 사회에 의해 구성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구조와 체제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된 것 같습니다. 물론 박근혜와 최순실의 국정 농단 사건도 큰 몫을 했고요.
Q. 탄핵 집회 동안, 특히 인상 깊었던 날이나 인상 깊었던 기억이 있으신가요?
A. 가장 기억나는 날은 역시 탄핵 소추안이 가결된 날입니다. 그때 친구들과 함께 뒤쪽에 앉아 있었는데요. 몰린 인파에 인터넷이 터지지 않아 국회 내부의 상황이 어떤지 몰라 발을 동동 굴렀습니다. 그러다 앞에서 DMB로 뉴스를 보고 계시던 분께서 “가결됐대요!”라고 외치셨고 사람들의 환호성과 동시에 ‘다시 만난 세계’가 터져 나왔습니다. ‘다시 만난 세계’를 목 터져라 완창하자마자 곧장 브라질리언 퍼커션 앙상블 팀인 호레이의 공연도 볼 수 있었습니다.
음악과 웃음소리 속에서 행복에 겨웠던 기억이 납니다. 다른 날은 한강진 시위에 나갔던 시기인데요. 당시 매일같이 현장에 나갔었는데 날이 몹시 추웠습니다. 그럼에도 이어진 시민들의 발언이 인상 깊게 남았습니다. <외향인> 깃발을 처음으로 들고 나섰던 때라 더 인상 깊은 것 같습니다. 그리고 시민분께서 주신 미숫가루가 아주 맛있었어요.
Q. 집회 참석과 탄핵 이후 생긴 개인적인 변화가 있으신가요?
A. 집회 참석 이전에는 견고한 시스템이 존재하여 그 시스템에 따라 정치사회적인 안건들이 처리된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현장에 가 보니 아니었습니다. 시스템은 존재했지만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소리치고, 몸부림친 뒤에야 세상은 조금이나마 옳은 방향으로 발을 내디뎠습니다.
이 사실이 저에게 큰 충격을 주었어요. 제가 누려 온 평화가 누군가의 피와 땀으로 매 순간 일궈 낸 것임을, 부끄럽게도 그때가 되어서야 깨달았습니다. 이후 체력이 허락하는 한 현장에서 연대하여 힘을 보태고자 하게 되었습니다.
Q. 드디어 윤석열은 탄핵되었지만, 탄핵이 끝이 아니잖아요. 지금 가장 중요하게 다뤄져야 하는 문제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A. 세상에는 수많은 시급한 문제가 있고 이 모든 일들의 경중을 따질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가장 시급한 문제를 뽑자면 역시 생명에 관한 일이지 않을까요?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원만히 해결되어 더 이상 응급실을 전전하다 생을 다하는 분들이 생기지 않기를 바랍니다.
또한 열악한 환경 속 노동자들이 산재로 인해 다치거나 목숨을 잃는 일도 되풀이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Q. 특별히 요즘 관심이 가는 주제나, 더 연대하고 계신 활동이 있으시면 공유해 주세요.
A. 최근에는 팔레스타인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에 반대하고자 팔레스타인 평화 연대 집회에 참여했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듯 저는 사람의 생명이 달린 일이 가장 시급하다고 생각합니다. 전쟁이 직접적으로 누군가의 목숨을 해하는 일인 만큼, 이스라엘이 가자 지구에서 벌이는 학살을 멈출 수 있도록 많은 분들께서 관심을 가져 주시면 좋겠습니다.
Q.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으신가요?
A. <외향인> 깃발 기수로서 외향과 내향에 대한 이야기를 짧게 하려고 합니다. 사실 두 성향은 스펙트럼입니다. 저도 스펙트럼에서 외향 쪽으로 살짝 치우친 사람 정도이고요. 성향에 대한 개념은 이해를 위해 존재하지, 분류를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이 세상에 이분법으로 구분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어요. 삶과 죽음 외에는 모든 것이 연속체 안에 놓여 있습니다. 어쩌면 삶과 죽음까지도요.
자신을, 우리를 함부로 분류하지 맙시다. 서로의 스펙트럼과 겹을 존중한다면 응원봉 불빛만큼 다채롭고 아름다운 세계가 우리를 기다릴 것입니다.
Q. 이 인터뷰를 보는 청년들에게 하고 싶은 한마디 부탁드려요.
함께 서로를 존중하며 나아갑시다!
오늘의 꿀떡|청년들이 6.3 조기 대선에 바라는 점
대한민국의 혼란을 일으킨 12.3 계엄령 선포. 그럼에도 많은 시민들의 철야 집회 끝에 민주주의를 지켜 낼 수 있었습니다.
그 중심에 있던 청년들은 이번 6.3 대선에서 어떤 점을 바라고 있을까요? 그들을 불안하게 하는 사회의 문제 지점은 무엇일까요?
🔥 갈수록 줄어드는 일자리와 보장되지 않는 노동 기본권
올해 1분기, 20대 후반 취업자 수가 전년 대비 약 10만 명 줄었습니다. 채용 자체가 줄어든 것 등이 그 이유였습니다. 그런 와중, 노동을 하더라도 노동 기본권을 제대로 보호받지 못해 불안전한 노동 환경에서 생명을 잃는 사건도 발생했습니다.
🔥 아직까지 일상에서 위협 및 차별을 받는 여성 인권의 현실
전 정부의 여성 가족부 폐지 공략 이후 2023년 국가 성 평등 지수가 전년 대비 하락했는데, 이는 국가 최초의 하락세였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4월에 발생한 미아역 흉기 난동 사건을 포함하여 일상 속 여성을 향한 위협은 지속되고 있습니다.
🔥 생명 위협으로 이어지는 기후 위기
최근 초대형 산불로 기후 위기의 심각성과 예방 시스템의 부족을 체감할 수 있었습니다. 폭염 등의 기후 위기로 인해 야외 노동 청년층의 피해에 주목한 이들도 있었습니다.
🔥 득표율을 위한 청년 정치 도구화
지난 대선 후보들은 MZ 세대를 타깃팅한 선거 운동이 더러 펼쳤는데요. 전 정부 또한 관련한 사회 문제 해결을 언급했지만, 도리어 지역 청년 일자리 사업 등 청년을 위한 예산을 대폭 삭감하며 단순히 MZ 세대, 청년층을 정치의 도구로 사용했음이 드러났습니다.
그렇다면 이를 어떤 정책으로 보완할 수 있다고 보았을까요?
💊 기업 채용 전형 간소화 및 기업 인턴 기회 확대! 노동 기본권 보장 요구안!
💊 성 평등 정책 추진 체계 확립! 정치인들의 성별 갈등 왜곡 및 방치 적극 반대!
💊 지속 가능한 기후 위기 해결 방안 논의!
💊 청년들의 삶을 지키기 위한 실질적 정책 마련!
우리는 과거에서부터 정부의 안일함과 이기심으로 인해 소중한 생명을 잃을 수 있음을 경험했습니다. 안전한 미래를 살아갈 수 있도록 차기 정부는 책임 있는 모습을 보여야 할 것입니다.
잠깐, 꿀떡까지 잘 챙기셨지요? 😎
‘제자리’라는 단어엔 여러 의미가 있습니다. 본래 내가 있던 곳, 변함없이 그 자리에 있는 것, 내가 마땅히 있어야 할 자리.
대체 어디가 나의 자리인지 쉬이 방향 잡기 어려운 사회기에 제자리걸음을 한다는 생각도 들겠지만, 지금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걸 조금씩 해 보는 것만으로도 괜찮지 않을까요?
범레터가 항상 응원하겠습니다. 🐯
다시 만나요!
📧 5월 27일, 다음 범레터가 찾아옵니다.
: 5월 18일 광주 민주화 운동 / 탄핵과 조기 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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뚱새
이번 뉴스레터도 내용이 참 좋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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