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녕하세요. 평범한 사람들의 평범하지 않은 기록, 평범도 범이다입니다🐯
이달의 마지막 날에 인사드리네요. 꽃이 피고 지고, 해가 뜨거워진 이번 달도 무사히 보내셨나요?
4월의 공기는 유난히 변덕스럽죠. 따뜻한 햇살에 마음이 풀어졌다가도, 문득 스치는 바람에 다시 겉옷을 찾게 되는 것 같아요.
두 계절 사이에 서 있다 보면, 자연스레 지난 시간을 돌아보게 되는데요. 특히 4월의 상징이 되어 버린 세월호 참사를 비롯한 여러 기억들이 겹쳐 떠오르며 마음이 무겁고, 또 복잡하네요. 봄을 지나면서도 마냥 가벼울 수만은 없는 이유를, 우리는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얼마 전엔 오래도록 산책을 했는데요. 이렇게 오래 걸어 본 게 언제더라,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열심히 또 즐겁게 걸었어요. 햇볕에 따가워질 즈음 그늘을 만나면 괜히 반갑더라고요. 한참을 걷다 집에 다 와서 마주한 엘리베이터가 그 어느 때보다도 반짝인 것 같아요.
무척 좁아 사람 두 명이 서면 빈 공간보다 차 있는 곳이 더 많을 것 같은 철제 박스에 몸을 실으며, 여기엔 휠체어가 들어갈 수 있으려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누군가는 이 좁은 엘리베이터를 보며 곤란한 표정을 지으며 뒤돌지 않았을까.
우리는 얼마나 많은 어려움을 아무렇지 않게 여기고 지나쳐 왔을까요?
이달이면 떠오르는 몇몇 날처럼, 분명히 존재했지만 우리의 의식 속에서 점점 흐려지는 이야기들이 있는 것은 아닐지 생각하게 됩니다. 사회적 책임, 국가의 역할이라는 딱딱한 단어가 지닌 무수한 소분류들.
그것들 너머 여전히 제자리에 머물러 있는 피눈물 같은 질문들의 주체가 늘어가지 않도록, 이제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천천히 살펴보기 위해 그들을 조금 더 가까이에서 마주하고자 해요.
오늘의 범레터는 참사 그 이후에 남은 이들, 장애인을 비롯한 소수자에 대해 알차게 담아 보았어요. 해야 하는 일, 할 수 있는 일을 이야기하는 건 저희 전문이니 맡겨 주세요! 💪
레터의 마지막 장엔 읽다 보면 마음이 든든~해지는 이야기, 호랑이표 꿀떡까지 준비했으니 챙겨 가세요! ✨
오늘의 범레터가 건네는 이야기
✍️ 칼럼|안전사고에 공정함이란 없다
🎫 칼럼|슬픔을 전하는 일과 소비하는 일 사이
🎫 칼럼|참사를 기억하고 추모해야 하는 이유
🎫 칼럼|지하철이 멈춰야만 들리는 그들의 목소리
🔊 인터뷰|더 넓은 세계를 누빌 수 있도록
🔊 인터뷰|함께 세상을 살아가는 당신에게 전하는 연대의 다짐
🔔 오늘의 꿀떡|책으로 기억하고 애도하는 법
칼럼|안전사고에 공정함이란 없다
: 우리에게 ‘공감’이 필요한 이유
우리는 보통 세상이 공정하다고 믿고 싶어 합니다. “착하게 살면 복을 받고, 나쁜 짓을 하면 벌을 받는다”는 믿음은 우리 삶을 지탱하는 작은 공식이 되기도 하죠. 심리학에서는 이를 ‘공정한 세상 가설(Just-World Hypothesis)’이라고 부릅니다. “나는 열심히 살았고, 잘못을 저지르지 않았으니 그런 끔찍한 일은 내게 일어나지 않을 거야”라는 믿음으로 우리는 막연한 불안감을 떨쳐 내고 허구의 안전감을 얻습니다.
하지만 이 견고한 공식은 ‘안전사고’라는 냉혹한 현실 앞에서는 완전히 무력해집니다. 친구들과 설레는 마음으로 수학여행 길에 올랐던 단원고 학생들, 서양 문화를 즐기며 이태원의 밤을 만끽하려던 청년들이 자신들에게 그런 일이 닥칠 것이라 단 한 순간이라도 예견했을까요?

재난은 대상을 고르지 않습니다.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던 누구나, 그저 ‘그날 그곳에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살아남았다는 부채감과 돌이킬 수 없는 후유증을 평생 짊어지게 될 수 있습니다. 안전사고에 있어서만큼은, 우리가 믿는 공정함의 대가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더 가슴 아픈 것은 참사 이후 벌어지는 잔인한 풍경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슬픔이 채 가시기도 전에, 유가족들은 비수가 되어 꽂히는 2차 가해를 견뎌야 합니다. “네가 뭘 잘못해서 그렇게 됐겠지”, “언제까지 우려먹을 거냐”는 말들 말입니다.

사람들이 이토록 냉담하게 피해자를 비난(Victim Blaming)하는 이유는 역설적이게도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서입니다. 피해자에게서 어떻게든 ‘원인’을 찾아내야만, 그런 잘못을 하지 않는 ‘나는 안전하다’는 심리적 위안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런 비겁한 안도감이 유가족의 마음을 더 깊게 망가뜨리는 현장을 우리는 이미 목격해 왔습니다.

이제 우리는 “왜 거기 있었어?” 같은 질문을 멈춰야 합니다. 그저, “누구에게나 벌어질 수 있었던 일이다”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안전사고의 유가족들이 진심으로 바라는 것은 거창한 보상이 아닙니다. 그저 그들의 아픔에 공감 하나를 얹어 주는 것, 그것만으로도 다시 살아갈 큰 힘이 된다고 그들은 말합니다.
점점 냉랭해져 가는 사회에서 우리가 가져야 할 가장 비범한 능력은 바로 ‘공감’입니다. 앞으로 이런 비극이 반복되지 않도록 법안을 만들고 사회적 안전망을 구축하려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주세요. 누구에게나 생길 수 있는 일이라는 마음으로 곁을 지킬 때, 비로소 우리 사회의 차가운 마음은 다시 온기를 되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칼럼|슬픔을 전하는 일과 소비하는 일 사이
: 언론은 사회적 재난을 어떤 프레임으로 조명하는가
2014년 열여덟이었던 단원고 학생들이 서른이 되었을 2026년입니다. 세월호 참사를 상징하는 노란색 리본은 매년 4월이 되면 흩날리며 그날의 아픔을 떠올리게 합니다. 2022년 10월 이태원 참사를 상징하는 보라색 리본, 오송 지하 차도 참사의 초록색 리본을 거쳐 제주항공 참사의 파란색 리본까지.
늘어난 추모 리본은 기억해야 할 사회적 참사가 또 하나 생겼다는 사실을 의미합니다.

세월호 참사가 남긴 것 중 하나는 언론의 보도 행태에 대한 뼈아픈 비판입니다. 당시 언론은 제대로 된 확인 과정 없이 받아쓰기에 급급하다 ‘전원 구조’라는 최악의 오보를 냈습니다. 희생자 유가족이 오열하는 모습 등을 여과 없이 카메라에 담거나 무리한 인터뷰를 시도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문제들이 논란이 되면서, 언론이 참사 보도에서 본분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일었습니다. 그리고 재난보도준칙은 이에 대한 반성 위에서 마련됐습니다.
그러나 재난보도준칙이 만들어진 뒤에도 원칙은 반복해서 무너졌습니다. 이태원 참사 당시 언론은 마약 등 근거 없는 루머를 보도하며 재난보도준칙 제13조의 ‘유언비어 방지’ 원칙을 어겼습니다.
제주항공 참사에서도 비행기가 둔덕에 부딪히는 장면을 반복 재생하며, 재난보도준칙 제15조의 ‘선정적 보도 지양’ 원칙에 어긋나는 보도를 이어 갔습니다. 속보와 조회수 경쟁 앞에서 준칙은 힘을 잃고 말았습니다.

이런 시대에 타인의 불행은 TV와 휴대폰, 모니터 같은 매체를 통해 전달되며 마치 나와는 상관없는 일처럼 느껴지곤 합니다. 때로 비극은 아무렇게나 소비됩니다. 그 과정에서 피해자와 희생자, 그리고 그들 곁에 있는 사람들은 폭력에 가까운 억압을 겪습니다.
비극은 자극적인 프레임에 갇혀 사회적 갈등의 불씨가 되고, 정작 중요한 재난 재발 방지는 뒷전으로 밀리게 되죠. 그렇게 같은 비극은 반복됩니다.
세월호 참사, 이태원 참사, 제주항공 참사는 어쩌면 정말로 우리의 이야기가 될 수도 있었습니다. 세월호는 다른 학교 학생들도 수학여행을 오가며 타던 배였습니다. 이태원은 매년 또래 청년들이 할로윈을 즐기기 위해 찾던 공간이었고, 제주항공 참사는 가까운 이들과 한 해를 마무리하고 돌아오던 길 위에서 벌어졌습니다.
이 밖의 수많은 참사와 비극 역시 누군가의 일상 가운데 일어났습니다. 재난보도에서 언론의 역할이 중요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재난은 개인의 실수로 빚어진 소수의 비극이 아니라, 사회의 허점이 드러나는 지점이기 때문입니다.

언론은 타인의 불행이 또 하나의 콘텐츠가 되지 않도록, 그리고 그 비극이 다시 누군가의 사연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자극적인 장면과 루머를 앞세우는 대신, 이 사건이 왜 벌어졌는지, 같은 참사가 반복되지 않으려면 무엇이 필요한지를 끝까지 묻는 것. 그것이 지금 재난 보도에 필요한 태도일 것입니다.
칼럼|참사를 기억하고 추모해야 하는 이유
: 같은 이유로 반복되는 희생을 멈추기 위하여
2014년 4월 16일, 인천에서 제주도로 향하던 여객선 세월호가 진도 인근 해상에서 침몰하며 304명의 희생자가 발생하였습니다. 선체의 노후화, 이윤 최대화를 위한 화물의 과적, 불법 증축이 침몰의 주요 원인이었습니다. 탑승객들은 구조될 수 있었으나 정부 기관의 미흡한 대응으로 구조되지 못했고 결국 우리 사회에 잊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겼죠.
세월호 참사 이후에도 사회적 참사는 멈추지 않고 발생했습니다. 2022년 이태원에서, 2023년 청주 오송읍에서, 2024년 화성 전곡리에서, 2026년 대전 대덕구에서 많은 사람들이 억울하게 희생되었습니다. 2014년 이후 정부 기관의 재난 대응 매뉴얼이 구체화되었고, 산업 재해 측면에서도 중대 재해 처벌법이 시행되는 등 참사 재발 방지를 위한 여러 노력이 있었다. 그럼에도 참사는 재발했습니다.

국가 행정이 위기 상황에서 제대로 작동했다면 이태원 참사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며, 지하 차도의 안전 진단이 명확하게 이루어졌다면 침수를 예견했을 것입니다. 이윤 추구를 멈추고 안전이라는 가치에 투자했더라면 화재에 따른 인명 피해를 막을 수 있었습니다. 이는 세월호 참사를 발생시킨 구조적 원인이 해결되지 않아 유사한 원인의 참사가 반복해서 발생했음을 보여 줍니다.
우리가 안전한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국가와 사회의 역할은 필수적입니다. 그러나 반복되는 참사는 우리가 국가와 사회의 역할에 온전히 기댈 수만은 없음을 증명합니다. 안전을 위해서는 국가에 재발 방지를 위한 대책을 요구하고, 사회적으로 안전 인식이 확산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만 합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국가가 부재하여, 안전을 경시하여 시민이 희생된 순간이 있었음을 떠올려야 합니다.

누군가에게는 희생된 이들을 기억하고 추모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아 보일 수도 있습니다. 혹은 그 참사들이 계속 언급되는 것에 지겨움을 느끼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의 기억력은 한계가 있어 기억하려는 의지가 없다면 쉽게 망각하게 됩니다. 이어 자연스레 국가와 사회는 효율과 이윤을 위해 안전에 필요한 기본적인 역할에서 소홀해지고 말 것입니다. 이런 조건 아래서 사회적 참사는 반복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살 수 있었는데도 살지 못한 사람이 있었음을 기억하고 그들을 추모해야 합니다. 사회적 참사의 희생자에 대한 기억과 추모는 단편적인 슬픔의 공유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이는 다른 사람들이 같은 슬픔을 겪지 않길 바라는 희생자 유가족과의 연대이자, 안전한 일상을 살고 싶어 하는 시민과의 연결고리가 됩니다. 또한 그 추모는 국가와 사회에 안전한 삶과 일터를 요구하는 바람이며, 참사의 구조적 원인을 해결하는 시작점이기도 합니다.
칼럼|지하철이 멈춰야만 들리는 그들의 목소리
: 반복되는 출근길 전장연 시위의 이유

지하철이 멈추는 순간, 출근길은 곧바로 불편과 짜증으로 가득 찹니다.
왜 하필 가장 바쁜 시간, 가장 혼잡한 역을 대상 삼았는지에 대한 불만도 뒤따르곤 하죠.
그러나 이 질문은 한 번쯤 방향을 바꿀 필요가 있습니다.
왜 이들은 하필 그 시간과 장소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가.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이하 전장연)가 출근 시간대 지하철에 서는 이유는 단순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아무도 알고자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지하철에 탄 모두가 멈춰 선 후에야 그들의 목소리가 퍼졌습니다.

이들의 시위는 20년 넘게 해결되지 않은 장애인 이동권 현실에서 출발합니다.
장애인 이동권 문제가 본격적으로 공론화된 계기는 2001년 1월 22일 발생한 오이도역 리프트 추락 사고입니다. 당시 설 연휴 이동 중이던 장애인 부부가 탑승한 리프트가 추락해 1명이 사망하고 1명이 중상을 입었다. 이후 장애인 단체들은 지하철 선로 점거 등 직접 행동에 나섰고, 이를 계기로 이동권 보장 요구가 사회적 의제로 부상한 것입니다.
정책 대응은 이어졌지만 이행은 지연됐습니다. 서울시는 2002년 ‘서울시 장애인이동권 보장 종합대책’을 통해 2004년까지 모든 지하철 역사에 승강기를 설치하겠다고 밝혔고, 2015년 ‘장애인 이동권 증진을 위한 세부실천계획’에서는 2022년까지 ‘1역사 1동선’ 구축을 약속했습니다. 이후 2022년 서울교통공사는 ‘지하철 1~8호선 엘리베이터 100% 설치 계획’을 발표하며 2024년 완료를 공언했지만, 2026년 현재까지도 완전한 이동권 보장은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요점은 단순한 설비 설치 유무가 아니라 실제 이용 가능성입니다. 일부 역은 아직까지도 엘리베이터와 리프트를 여러 차례 갈아타야만 승강장에 접근할 수 있으며, 환승에만 20~30분이 소요되는 구조입니다. ‘1역사 1동선’ 원칙이 형식적으로만 이행되고 있음을 보여 주는 셈이죠. 국제적으로도 접근성 기준은 단순 설치가 아니라 ‘한 번에 이동 가능한 구조(one-level transfer)’를 요구하고 있어, 국내 인프라는 여전히 미흡하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리프트 의존 구조 역시 핵심 쟁점입니다. 2001년 사고 이후에도 리프트 관련 사고는 반복됐고, 2017년 신길역에서는 리프트 이용 과정에서 사망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전장연은 이러한 점을 들어 리프트를 구조적 위험 설비로 지목하고 있으며, 엘리베이터 중심의 전면적 대체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버스 부문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국토교통부의 ‘2023년 교통약자 이동편의 실태조사’에 따르면 전국 노선 버스의 저상 버스 보급률은 38.9%에 그쳤습니다. 같은 조사에서 서울은 66.7%로 절반을 넘겼지만, 여전히 완전한 보급에는 미치지 못하는 수준입니다. 저상 버스 도입은 ‘교통약자의 이동편의 증진법’에 따라 의무화돼 있음에도 불구하고 예외 노선 운영이 확대되면서 보편적 교통수단으로 자리 잡지 못했습니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윤종군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024년 10월 국토교통부와 서울시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전국 저상버스 예외 노선 비율은 11.5%인 반면 서울시는 22.8%로 두 배 수준에 달했습니다. 마을버스의 저상 버스 비율도 약 20%에 그쳤죠.
시외·고속버스는 상황이 더 열악한데요. 국토교통부의 2025년 자료 기준 휠체어 탑승이 가능한 시외·고속버스는 전국에 단 한 대도 없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장애인 콜택시 역시 공급 대상이 제한적이라는 것보다 운영 인력이 부족하다는 점이 문제로 지적되었습니다. 현장에서는 운전원 부족으로 대기 시간이 최대 3시간에 달하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으며, 이는 서비스의 실효성을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꼽힙니다. 결국 차량 도입뿐 아니라 인건비와 운영 예산 확보가 병행되지 않는 한 이동권 보장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동권 문제는 특정 집단의 편의를 넘어선 구조적 권리의 문제입니다. 국토교통부 ‘2023년 교통약자 이동편의 실태조사’에 따르면 교통 약자의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 집단은 65세 이상 고령자이며, 장애인뿐 아니라 임산부, 영유아 동반자 등 다양한 계층이 포함됩니다. 그렇기에 이동권 보장은 사회 전체의 접근성을 높이는 공공 인프라 문제로 접근할 필요가 있습니다.

장애인 이동권 시위의 논란은 그 방식에 집중돼 있지만, 정작 주목해야 할 핵심은 여전히 마련되지 않은 이동권입니다. 전장연이 집회와 문화제 등 다양한 방식의 문제 제기를 이어 왔음에도 정책 이행이 지연되면서, 가장 가시적인 방식인 지하철 시위가 반복되고 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헌법 제14조는 이동의 자유를 보장하고, ‘교통약자의 이동편의 증진법’ 제3조는 차별 없는 교통 이용 권리를 명시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현실에서 이동권이 온전히 보장되지 않는다면 이는 제도의 부재가 아니라 이행의 문제입니다.
이들에 의해 지하철이 멈출 때마다 반복되는 갈등은 결국 하나의 사실을 드러냅니다. 이동권은 선언이 아니라 실행의 영역이라는 점입니다. 2001년 이후 20년 넘게 이어진 요구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라는 점에서, 이제는 시위의 방식을 논하기보다 왜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는지에 대한 답을 내는 것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인터뷰|더 넓은 세계를 누빌 수 있도록
: 평범도감_8호 : <계단뿌셔클럽> 공동 대표 박수빈&이대호 님의 인터뷰
여유로운 주말, 삼삼오오 모인 사람들이 보입니다.
두 발, 전동 휠체어, 수동 휠체어… 모두가 각자의 이동 방식에 맞춰 길에 나섭니다.
장소의 접근성 정보를 확인할 수 있는 플랫폼인 ‘계단뿌셔클럽’.
이들은 ‘기술’과 ‘우정’으로 이동을 쉽게 만들 것이라 말합니다.
누구든 자유롭게 이동하고, 그 과정을 함께할 수 있도록 만들어 가는 ‘계단뿌셔클럽’과 그 든든한 지원군 ‘크러셔’. 그 여정의 시작을 만들어 낸 두 사람, 박수빈&이대호 님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Q1. 자기소개와 함께 ‘계뿌클’에 대해서도 소개해 주세요.
(박수빈) 안녕하세요, 계단뿌셔클럽 공동 대표 박수빈입니다. 휠체어를 사용하고 있고, 여전히 동네를 구석구석 다니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에요. 제품 기획, 브랜딩 업무를 주로 하고 있습니다.
(이대호) 함께 공동 대표로 일하고 있는 이대호입니다. 모빌리티 스타트업에서 수빈님과 동료로 만나 지금은 같이 계단뿌셔클럽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커뮤니티 업무를 주로 맡고 있어요.
(박수빈) 계뿌클은 “이동약자와 그 친구들이 막힘없이 이동할 수 있도록” 접근성 정보를 수집하고 공유하는 서비스이자 커뮤니티예요. 한마디로, 계단 정보를 시민들이 직접 모아 지도에 올리고, 휠체어 사용자나 유아차 이용자가 외출 전에 미리 확인할 수 있도록 돕는 앱 ‘계단뿌셔클럽’을 만들고 운영합니다. 서비스 이용자만 있는 게 아니라, ‘크러셔’라고 부르는 참여자들이 직접 동네를 돌며 접근성 정보, 콘텐츠를 등록하는 활동이 계뿌클의 가장 큰 축이에요.

Q2. ‘계뿌클’을 설립하게 된 계기가 무엇이었는지 궁금합니다.
(박수빈) 회사에서 점심 식사 장소를 찾는 일로부터 시작됐어요. 당시 같은 스타트업에서 일하던 대호님과 점심 먹을 식당을 찾는 일이 매번 숙제였거든요. 이 가게가 1층인지, 계단이 있는지, 경사로가 있는지, 2층이면 엘리베이터가 있는지, 어디서도 쉽게 알 수 없었어요. 전화를 걸어 보거나 직접 가 봐야 알 수 있었죠.
(이대호) 저도 수빈님과 함께 다니면서 자연스럽게 같은 문제를 경험했어요. 이동약자와 동행하면 비이동약자도 접근성 문제의 당사자가 되거든요. 같이 이동하다가 접근 안 되는 곳을 마주했을 때 갑자기 혼자 따로 가지는 않으니까요. 이 경험이 반복되다 보니 누군가는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게 우리가 된다면 꽤 보람 있겠다는 마음이 생겼던 것 같아요. 우리가 겪는 문제를 스스로 해결해 내면 뿌듯하지 않을까, 그런 정도의 시작이었죠.
(박수빈) 처음부터 이렇게 본격적으로 할 생각은 사실 없었어요. 2021년에 동료와 친구 5명이 모여 사이드 프로젝트로 시작했는데, 어쩌다 보니 여기까지 왔습니다. 2023년 4월 20일 장애인의 날에 앱을 공식 출시 했고, 2024년 말에 사단 법인으로 등록을 마치고 본격적인 비영리 단체로 운영하고 있어요.
Q3. ‘계뿌클’을 모르는 분들을 위해, 그동안 쌓아 온 활동 중 가장 자랑하고 싶은 성과(데이터 수치 등)를 마음껏 뽐내 주세요!
(이대호) 네! 한번 뽐내 보겠습니다. 직접 수집한 접근성 정보 약 107,000개. 자발적인 참여로 구축한 접근성 데이터베이스 중 최대 규모입니다. 이 과정에서 누적 4,800명 이상의 시민이 정보 수집 활동에 참여했어요. 이 가운데 시즌제로 운영하는 정예 크루만 450명 이상입니다. 덕분에 앱 누적 가입자가 약 10,000명이고, 월간 활성 사용자 수(한 달 동안 앱을 실제 사용한 사람의 수)는 최대 1,264명을 기록했습니다. 이 중 휠체어 사용자가 최대 400명 정도입니다. 누적 300회 이상의 정복 활동을 개최한 것도 자랑스러운 일이고요.
(박수빈) 숫자보다 더 자랑하고 싶은 건 “누가, 어떻게” 이걸 만들었냐는 거예요. 이 107,000개의 데이터를 전문 조사 기관이 아니라 평범한 시민들이, 이동약자와 비이동약자가 함께 직접 거리를 다니며 모은 거거든요. 이게 정말 멋지고 자랑스러운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Q4. ‘계뿌클’의 핵심 활동인 ‘크러셔 클럽’에 대한 간단한 소개와 ‘계뿌클’에게 이 활동은 어떤 의미인지에 대해 말씀 부탁드립니다.
(박수빈) 크러셔 클럽은 봄·가을 시즌제로 운영하는 문제 해결형 커뮤니티예요. 크루는 역할에 따라 정복크루와 에디터크루로 나뉩니다.
정복크루는 “바퀴로 구르고, 발로 뛰며 문제 부수기” 역할이에요. 주말 오전에 2인 1조로 모여 동네 골목골목을 돌며 식당·카페·상점의 출입구 사진과 접근성 정보를 앱에 등록합니다. 이 정보가 쌓여 이동약자들이 원하는 장소를 쉽게 찾을 수 있게 되는 거죠.
에디터크루는 “차분히 관찰하고 기록하며 문제 부수기” 역할입니다. 이동약자 당사자인 크루가 직접 접근성 좋은 장소를 방문하고, 그 이용 경험을 리뷰로 남겨요. 규격화된 데이터만으로는 전해지지 않는 생생한 경험이 담긴 ‘찐 리뷰’가 다른 이동약자의 ‘쉬운 이동 판단’을 돕습니다.
두 크루 모두 핵심은 이동약자, 비이동약자가 한 팀으로 묶인다는 거예요. 이동약자 크루는 당사자로서 “어떤 정보가 실제로 필요한지”를 판단하고, 비이동약자 크루는 기동력으로 현장을 빠르게 돌며 정보를 모읍니다. 서로의 강점이 맞물리는 구조예요.
(이대호) 계뿌클에게 크러셔 클럽은 “데이터를 모으는 도구” 이상의 의미예요. 누군가에게 은혜를 베푸는 봉사가 아니라, 친구가 되어 같이 겪는 불편을 함께 해결하는 관계. 그게 크러셔 클럽의 본질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크러셔 클럽에서는 장애인이 시혜의 대상이 아니라 문제 해결의 주체입니다. 이 구조 덕분에 활동이 지속 가능하고, 참여자들의 인식도 자연스럽게 바뀌는 것 같아요.
Q5. 21년도 설립 이후, 어느덧 6년 차를 맞이하셨는데, 활동 중 가장 큰 보람이 되었거나 잊지 못할 에피소드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박수빈) 얼마 전 휠체어를 이용하는 아이를 키우는 분으로부터 인스타 DM으로 응원의 메시지를 받은 적이 있어요. 저도 반가운 마음에 “저도 어렸을 때부터 휠체어를 타고 다녔고, 열심히 놀기 위해 이 서비스를 만들게 됐다”고, 아이와 더 많은 곳을 가 보시고 필요한 정보나 아이디어가 있으면 언제든 알려 달라는 말씀을 드렸던 기억이 나요. 휠체어를 쓰는 아이가 앞으로 더 넓은 세계를 누빌 수 있도록 저희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걸 확인한 순간이었습니다.
(이대호) 저는 익숙한 이름의 크루들이 새 시즌 등록자 명단에 뜨는 순간들이 가장 감동적이에요. 정복 활동은 3개월 이상 꾸준히 해야 하는 꽤 부담이 있는 활동이거든요. 주말에 모여서 동네를 돌아다니고, 다양한 행사에 참여해야 하는 일이라 체력적으로도, 시간적으로도 가볍지 않아요. 그런데도 50% 이상의 크루들이 다음 시즌에 재등록을 합니다. 이번 시즌을 함께한 익숙한 이름이 다음 시즌 명단에 또 올라올 때마다, 매번 놀랍고 가슴이 뭉클해요. 너무 반갑고 감사한 마음이 들어서요!

Q6. 앞으로 ‘계뿌클’이 나아갈 방향성과 최종 목표는 무엇인가요.
(박수빈) 계뿌클이 궁극적으로 만들고 싶은 건 “이동약자가 망설임 없이 이동을 선택하는 사회”예요. 가고 싶은 장소의 정보를 쉽게 확인할 수 있고, 도움이 필요할 때 자연스럽게 주고받을 수 있다는 확신이 있는 상태. 물리적 장벽을 짧은 시간 내에 모두 없애는 건 매우 필요한 일이지만, 아쉽게도 쉽지가 않아요. 하지만 더 많은 사람이 참여하고 연결되면, 그 빈틈을 사회적 우정으로 메워서 더 빠른 시일 내에 변화가 만들어질 수 있다고 믿습니다.
Q7. 접근성 개선을 위해 우리가 일상에서 실천할 수 있는 작은 습관이나 가져야 할 마음가짐이 있다면 추천해 주세요.
(박수빈) 정복 활동에 한번 참여해 주세요. 한 번만 참여하셔도 접근성에 대한 '렌즈'가 자연스럽게 장착돼요. 그 뒤로는 길을 걸을 때 턱과 계단이 먼저 눈에 들어오거든요. 게다가 정복 활동 자체가 꽤 재밌어요. 다정한 크루들의 환대를 받으면서 익숙한 동네를 새롭게 걸어 보는 경험은, 해 보신 분들이 “생각보다 훨씬 좋았다” 말씀을 해 주십니다.
Q8. 이동약자들의 자유로운 이동을 위해 우리 사회와 인프라가 궁극적으로 어떤 방향으로 변화해야 한다고 보시나요?
(박수빈) 이동약자를 기준으로 편리하게 인프라를 설계해 나가면 좋겠어요. 이동약자에는 휠체어를 사용하는 장애인만 있는 것이 아니에요. 고령의 어르신들, 임산부, 유아차 사용자, 부상을 입어서 보조 기기를 사용하고 있는 사람 등 수많은 유형이 있어요. 그리고 지금 비이동약자인 사람도 나이가 들면 모두 이동약자가 되죠. 고령화 사회인 점을 감안하면, 이동약자를 기준으로 도로, 건물, 교통 인프라를 만드는 것이 오히려 경제적이라고 생각해요. 미래를 대비하는 일이죠.
Q9. 오랜 시간 ‘계뿌클’과 함께 땀 흘리고 응원해 준 크루들에게 전하고 싶은 한마디가 있다면 부탁드립니다.
(이대호) 쑥스럽지만, 존경하고 사랑한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우정으로 세상을 바꿔 보자”는 말, 솔직히 소년 만화에나 나올 법한 이야기잖아요. 그런데 이 순진한 제안을 수락해 준 동료들이 어느샌가 하나둘 늘어났습니다. 덕분에 시작할 때는 상상조차 못 했던 문제 해결의 힘을 갖게 됐어요. 이젠 ‘어쩌면 정말로 우리가 이 문제를 풀어 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문제 해결이라는 일이 늘 가슴 뛰고 즐겁기만 한 건 아니에요. 크루로 활동하다보면 때로는 지치고, 막막하고,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은 순간이 많습니다. 그런데도 이 모험에 기꺼이 함께해 주시는 크루 여러분이 계셨기 때문에, 그 모든 일이 가능했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 있습니다. 그러니 여러분의 우정이 존경받아 마땅하다는 점을 꼭 기억해 주세요. 오래오래 함께 이 모험을 함께하고 싶습니다!
Q10. 마지막으로 못다 한 말씀이나 독자들에게 남기고 싶은 말씀 자유롭게 부탁드립니다.
(박수빈) 저희와 함께해 주세요! 몇 가지 방법이 있지만, 지금 진행되고 있는 봄시즌 정복 활동에 참여해 주시는 것이 가장 쉽고, 빠른 방법입니다. 화창한 봄날에 함께 걸으며 활동하면 꽤 재밌으니까요. 고민하지 마시고, 계단뿌셔클럽에 합류해 주세요!
인터뷰|함께 세상을 살아가는 당신에게 전하는 연대의 다짐
: 〈주희에게〉 감독 김성환, 부성필, 장주희 인터뷰
2026년 4월 15일, 영화 〈주희에게〉가 개봉했습니다.
영화는 와상장애인 ‘철규’의 이야기에서 시작해, 세월호 희생자인 故임경빈 님의 어머니 전인숙 님의 진상 규명 투쟁 과정, 그리고 감독이기도 한 ‘성필’의 가족과 제주 4·3, 마찬가지로 감독이기도 한 ‘주희’의 이야기를 담았는데요.
영화의 개봉을 맞아, 영화를 공동으로 연출한 김성환, 부성필, 장주희 감독과 서면 인터뷰를 진행해 보았습니다.

Q1.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장주희 감독) 안녕하세요, 김포여성의전화에서 활동하며 〈주희에게〉 공동 연출을 한 장주희입니다.
(부성필 감독) 안녕하세요. 안산 와동에 자리 잡은 ‘와동필름’에서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있는 부성필입니다. 이번 영화 〈주희에게〉에서 공동 연출과 촬영을 맡았습니다.
(김성환 감독) 안녕하세요. 저는 영화로 밥 벌어먹고 사는 게 꿈인 김성환입니다. 살면서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생기면 꼬박꼬박 기억해 두었다가 함께 만들 수 있는 사람들이 생기면 시도하고 완성해 가는 방식으로 지금까지 여러 편의 영화를 만들어 왔으며 지금도 만들고 있습니다.
Q2. 감독님 각자 영화를 소개한다면, 이 영화는 어떤 영화일까요?
(장주희 감독) 지우고 싶었던 이름 ‘주희’에게 다시 말을 걸며, 상처 입은 삶과 천천히 화해해 가는 이야기.
(부성필 감독) 서로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고 곁을 지키는 상처받은 사람들의 굳건한 연대기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김성환 감독) 나의 이야기, 당신의 이야기, 우리의 이야기. 결국 모든 아픔은 서로 연결되어 있고, 그 근원은 하나.

Q3. 작업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어떻게 되시는지 여쭙습니다.
(김성환 감독) 세월호 참사를 목격하면서 마음의 빚이 생겼습니다. 그 무렵 부성필 감독을 만났고 그가 목포에서 1년간 세월호 선체 기록단으로 활동했지만 완성된 결과물 없이 큰 짐을 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세월호를 직접적으로 다루기보다 그 참사와 직접적인 관계는 없지만 우리가 왜 빚을 지고 있는지, 왜 마음이 아픈지에 대한 이야기를 부성필 감독의 카메라를 통해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부성필 감독) 원래 저는 고향 제주에서 4·3을 다루려 했고, 이어서 세월호 선체 기록단으로 활동하며 다큐멘터리를 기획했지만 모두 완성하지 못했습니다. 특히 4·3 당시 경찰 집안이었던 아버지가 세월호 특조위 점거 뉴스를 보며 거친 욕설을 하시는 걸 곁에서 지켜보며, 창작자로서 기획 의도와 정체성을 완전히 상실했었거든요.
그 방황의 시기에 세월호 유가족이신 경빈 어머니 인숙 님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철규 형을 만났고, 제 전작인 <철규>를 보고 다큐멘터리 작업에 합류하게 된 주희가 이 과정에 동행하면서, 자연스럽게 세 인물의 삶이 하나의 작품으로 엮이게 되었습니다.
사실 자연스럽다는 말이 조금 어폐가 있긴한데, 저는 사실 철규 형과 경빈 어머님 사이에 연결 지점을 조명하겠다는 막연한 생각만 가지고 있었는데, 거기다 더해 장주희 감독의 서사까지 하나의 이야기로 연결시킨 것은 김성환 감독님의 기획입니다.
(장주희 감독) 부성필 감독의 2번째 영화에 조연출이 된 계기, 김성환 감독님의 공동 연출 제안… 일일이 말하면 참 긴 이야기가 되겠지만, 두 감독님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 대화 속에서 “당신은 왜 여기에 있나”라는 질문이 숨어 있다고 느꼈습니다.
그리고 제가 느낀 저의에서 저는 “내가 왜 여기까지 와 있는가”를 말하고 싶어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고, 그러다 보니 긴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 욕심이 생겼습니다.

Q4. 영화 제목이 ‘주희에게’ 인 이유가 있을까요? 감독님 한 분의 성함이기도 한데요.
(장주희, 김성환 감독) ‘주희’는 단순히 장주희 감독, 즉 영화의 화자가 아니라, 이 영화의 서사를 관통하는 용기 그 자체입니다. 과거 가정 폭력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려 녹음했던 떨리는 기록을 세상에 공개하고, 스스로의 상흔을 딛고 나아가 다른 아픈 이들에게 다정하게 곁을 내어주었으니까요.
참혹한 진실 앞에서도 도망치지 않은 그 정직한 시선에 바치는, 일종의 헌사이자 연대의 편지 같은 의미를 담아 〈주희에게〉라고 지었습니다.

Q5. ‘주제’로 이야기한다면 영화 속에 다양한 이야기들이 나오는 것 같습니다. 장애인 인권, 제주 4·3, 세월호 참사, 여성혐오……. 그리고 그 주제들에서 멈추는 게 아니라 그 안의 각각의 사람들 이야기로 들어가는 이야기들이었습니다. 가볍지 않은 주제들인데요, 어려움은 없으셨어요?
(부성필 감독) 주제들만 나열하면 너무 무겁고 거대해 보이지만, 저희는 그 거시적인 담론을 쫓아가려 하지 않았습니다.
와상장애인 철규의 번지 점프, 세월호 유가족 인숙 어머님의 법정 싸움, 주희가 마주한 일상 속 가정 폭력의 흔적, 그리고 제 아버지의 상처까지. 결국 이 모든 이야기는 ‘폭력과 상실 속에서 한 인간이 어떻게 존엄을 지키며 살아남는가’라는 하나의 질문으로 모입니다.
미디어에서 소비되는 자극적인 폭력이 아니라, 가장 가까운 곳에 존재하는 수천수만 가지의 폭력, 그리고 그것을 뚫고 나오는 일상적인 연대의 힘을 보여 주는 데 집중하려 했습니다
(김성환 감독) 많은 이야기가 흘러나오는 듯 보이지만, 결국 그 시작은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생명의 소중함보다 권력이나 자본의 논리가 더 앞서 있었던 근원적인 모순이 여전히 사회 시스템을 장악하고 있는 상황에서, 풀지 못한 역사는 결국 또 다른 아픔을 낳고 있습니다.
우리는 오히려 그 사건 하나하나를 별개의 일로 나누어 인식하는 데서 더 큰 문제가 생기는 것은 아닐까 생각합니다.
철규의 번지 점프가 더 이상 나아가지 못했던 이유도, 인숙이 요구해 온 책임자 처벌과 진상 규명이 여전히 빛을 보지 못하고 있는 이유도, 주희가 집을 나올 수밖에 없었던 이유도, 결국은 성필 감독이 영화를 완성하지 못했던 아픔과 맞닿아 있다고 생각합니다.

Q6. 영화 속에도 잠깐 나오지만요, 작품의 공개 시점을 생각해 보면 어느정도 마무리가 되어 갈 때쯤에 윤석열 탄핵 광장이 열렸을 것 같습니다. 어떤 느낌이셨어요? 또 1년이 지난 시점에서 소회도 궁금합니다.
(김성환 감독) ‘주희에게’에서 ‘세상의 모든 주희에게’로 확장되는 순간이었습니다. 시민들을 광장으로 이끈 것은 단순히 부패한 권력을 향한 분노가 아니라, 세상의 근본적인 모순을 바로잡고자 하는 열망에서 비롯되었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나아가 우리는 모두가 아픔을 지닌 피해자에 머무는 존재가 아니라, 서로를 보듬으며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당사자이자 이미 치유의 주체로 자리매김하고 있다는 점 또한 분명히 확인할 수 있었고, ‘연대’라는 구체적인 실천을 통해 그 가능성이 현실이 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Q7. 영화를 본 개인적 감상으로는요, 이 영화가 90년대생의 초상처럼 읽히기도 했습니다. 90년대생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이들의 삶에서 어떤 사건들이 벌어지고 있는지, 그리고 또 그것들을 부딪치며 살아가는 이야기처럼 느껴졌어요. 어떤 세상이 되면 좋겠다, 하는 바람도 있으실까요?
(부성필 감독) 저희 또래는 구조적인 재난과 참사를 생중계로 목격하며 자랐고, 각자도생을 강요받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내가 다치면 아무도 지켜 주지 않는다는 불안감이 만연하죠.
하지만 영화 속 주희처럼 내 상처를 들여다보는 데 그치지 않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타인의 고통을 예민하게 감각하고 연대하려는 청년들도 무수히 많습니다. 거창한 구호가 세상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절망 앞에 감히 다가서기를 주저하지 않는 다정함이 상식인 사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Q8. 질문을 이어 하자면, 또래에게 건네고 싶은 이야기, 혹은 기성세대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으실까요?
(장주희 감독) 지금의 내가 이곳에 존재하는 것은 오롯이 나의 힘 덕분이라기보다, 일상에서 마주친 평범한 사람들이 곁에 있었기에 가능한 것을 잊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드네요.
각자의 자리에서 나와 타인의 소중함을 잊지 않고 사는 마음들이 지금의 나를 있게 했다는 것. 그리고 그 평범한 이들 속에 ‘나’도 함께 있다, 라는 것을 잊지 않았으면 합니다.
(부성필 감독) 어른들께는 저희 세대가 겪는 불안을 그저 ‘나약함’으로 치부하지 않으셨으면 하는 부탁을 드리고 싶습니다. 저희 아버지처럼 소년 가장으로 살아온 지독한 가난의 트라우마가 편견을 만들었듯, 저희 세대에게도 참사와 무한 경쟁이 남긴 보이지 않는 상흔이 있거든요.
동시에 김성환 감독님처럼 30년 까마득한 후배에게도 기꺼이 수평적인 자리를 내어주시는 기성세대가 있다는 것에 큰 희망을 느낍니다. 또래 친구들에게는, 세상이 아무리 가혹하더라도 냉소와 혐오 뒤로 너무 쉽게 숨지 말자는 이야기를 건네고 싶습니다.

Q9. 지난 4월 15일 영화가 개봉했습니다. 그리고 이 영화는 개봉 전에 또 특별한 방법으로 관객을 만난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관객을 만나면서 특별히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으실까요?
(김성환 감독) 무엇보다 다가오는 4월 15일 개봉을 위해 현재 진행 중인 ‘100개 극장’ 프로젝트와, 이 기적을 만들어 가고 계신 ‘관객추진단’ 분들을 만나는 매 순간이 저에겐 가장 경이로운 에피소드입니다.
저희는 일반적인 상업 배급 방식을 거치지 않고, 관객분들이 직접 자기가 사는 지역의 상영관을 대관하고 사람들을 모아 영화를 상영하는 풀뿌리 방식을 택했습니다.
전국 각지에서 자발적으로 추진단이 되어 주시겠다는 연락을 받을 때마다 말로 다 할 수 없는 벅찬 감동을 느낍니다. 각자의 바쁜 일상 속에서도 기꺼이 시간을 내어 포스터를 붙이고, 주변 사람들에게 영화를 알리며 기꺼이 연대의 마음을 내어주시는 분들이거든요.
그분들과 소통하면서, 이 영화의 진짜 완성은 스크린 위에 재생되는 영상이 아니라, 관객분들이 직접 극장을 열고 사람들과 온기를 나누는 이 ‘과정’ 그 자체에 있다는 것을 매일 배우고 있습니다.
상업적인 수치로는 감히 환산할 수도 없는 엄청난 에너지와 지지를 보내 주고 계십니다. 이 자리를 빌려 기꺼이 〈주희에게〉의 손을 먼저 잡아 주시고 연대해 주신 전국의 모든 관객추진단 여러분께 깊은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Q10. 마지막으로, 극장에서 영화를 만날 관객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다면요.
(부성필, 김성환 감독) “당신의 곁에 기꺼이 서 있겠습니다.” 이 영화가 전하고 싶은 단 하나의 마음입니다. 외롭고 두려운 길을 걷고 계신 분들에게, 저희의 이야기가 아주 작은 손길이라도 될 수 있다면 창작자로서 더할 나위 없이 기쁠 것 같습니다.
전국 극장에서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주희에게〉와 함께, 다정하고 굳건하게 서로의 곁을 지키는 봄을 맞이하셨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장주희 감독) 우리 모두가 각자 자신의 이야기를 쓸 수 있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말하고 싶습니다.
타인의 언어에, 사회적 위협에 삶이 잠시 휘청이더라도 그것 또한 내가 스스로 쓰는 나의 이야기 중 한 부분이라고, 그래서 언젠가는 잘 살아 낸 나의 이야기로 마무리 지을 수 있다는 것을, 그 이야기를 나와 같은 세상의 모든 ○○에게 전할 수 있음을 마지막으로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영화 〈주희에게〉는 2026. 4. 15. 개봉해 ‘100개의 극장’ 이라는 프로젝트를 진행 중인데요. 이를 통해 각 지역에서 사람들을 모아 함께 관람할 수 있습니다.
숱한 사회적 참사를 겪으며, 책임지지 않고 외면하는 사회를 통과하며. 우리 사회는 더욱 불안과 불신이 만연해졌습니다. 이 시기를 잘 지나가는, 잘 살아가는 방법은 우리가 우리의 아픔을 돌아보고, 서로에게 기대며, 함께 손잡고 발 맞춰 걸어가는 게 아닐까요?
12년째 요원한 세월호 참사의 진상 규명을 보며 허탈한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작은 연대가 결국은 진실을 밝혀내고 세상을 바꿔 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 영화를 함께 보며 그 이야기를 나눠 보면 좋겠습니다.
더욱 상세한 내용은 아래 홈페이지에서 보아 주세요! 👇
오늘의 꿀떡|책으로 기억하고 애도하는 법
제주 4·3 사건부터 4·16 세월호 참사까지. 한국인에게 매년 4월은 깊은 상실감과 우울감을 느끼는 시기입니다. 제대로 기억하고 애도하기 위해, 함께 읽으면 좋을 책 7권을 선정했습니다.

📖월간 십육일
“무엇을 잊지 않고자 노력해야 하는지. 그건 아이들의 죽음이 아니라 아이들의 사랑이다. 살고자 했던 삶이다.”
2020년 6월부터 매월 16일, 4·16재단에서 연재해 온 동명의 에세이들을 모은 책

📖재난 이후, 사회
“애도가능성의 평등은 (…) 생명이 박탈되었을 때 언제든 애도받을 수 있다는 가능성 속에서 가늠되는 규범이다.”
근대 국가 통치, 인정 이론, 문화 정치학 등 사회과학적 시각을 바탕으로 재난 참사를 재구성한 책

📖금요일엔 돌아오렴
“이것은 남겨진 가족들이 가닿을 수 없는 수백개의 금요일에 관한 기록이다.” -출판사 서평 중
세월호 참사 직후부터 그해 12월까지 유가족들과 동고동락하며, 그중 부모 13명을 인터뷰하여 펴낸 책

📖애도 일기
“이 순수한 슬픔, 외롭다거나 삶을 새로 꾸미겠다거나 하는 따위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슬픔. 사랑의 관계가 끊어져 벌어지고 파인 고랑.”
프랑스 사상가인 롤랑 바르트가 어머니의 죽음을 애도하며 쓴 일기

📖세 개의 빛
“평화는 그냥 주어지지 않는다. 이렇게 문학에서 추구하고 성취되는 것이다.” -허희(문학평론가)
2007년 버지니아공대 총기 난사 사건을 배경으로 디아스포라의 죄책감과 애도를 다룬 책

📖당신의 상처는 사적이지 않다
“그들의 사연 속에는 밤하늘의 무수한 별만큼이나 많은 선한 이야기가 숨어 있었다.”
국가 폭력과 사회적 참사에 대한 공동체적 회복을 이야기하는 책

📖작별하지 않는다
“잊지 않을 거라고 나는 생각했다. 이 부드러움을 잊지 않겠다.”
역사적 트라우마를 정면으로 마주하고 인간 삶의 연약함을 드러내는 강렬하고 시적인 산문
잠깐, 꿀떡까지 잘 챙기셨나요? 😎
길고도 짧게 느껴지는 하루들 속에서, 우리는 여전히 각자의 속도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때로는 무심코 지나쳤던 것들이 문득 발걸음을 멈추게 하기도 하고, 사소한 장면 하나가 오래 마음에 남기도 하지요.
바쁜 일상 속에서도 서로를 향한 작은 여유와 시선을 잃지 않기를, 그리고 그 마음이 자연스럽게 이어지기를 기대합니다. 다음에 다시 인사를 건넬 때까지, 각자의 자리에서 무탈하고 따뜻한 시간 보내시길 바랍니다.
그럼 우리 다음 범레터에서 다시 만나요! 🐯
📧 5월 29일, 다음 범레터가 찾아옵니다.
의견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