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녕하세요. 평범한 사람들의 평범하지 않은 기록, 평범도 범이다입니다🐯
벌써 시월이 얼마 남지 않았네요. 가을을 폴짝 건너뛰고 겨울에 성큼 다가간 날씨가 원망스럽기도 해요.
여러분들은 시월 하면 무엇이 떠오르시나요? 전 어릴 적부터 들었던 ‘잊혀진 계절’이라는 곡이 특히 자주 생각나요.
옛날 노래들은 가사가 시 같다는 말을 많이 들었는데, 이 노래가 제게 특히 시처럼 다가오곤 하거든요. 직업병처럼 이중 피동을 삼가는 제게도요. (이 경우엔 시적 허용이겠지요? 😊)
그런데 2022년부터는 첫 소절을 곱씹을 때마다, 이맘때마다, 다른 이유로 더없이 먹먹해요. 우리의 마음을 무겁게 하는 10·29 이태원 참사가 일어난 시기이기도 하니까요.
[어디야?]
[너는 별일 없지?]
가슴 철렁하는 소식을 전해 듣고 서로를 걱정하며 문자를 주고받던 그날 밤. 여가 시간을 즐기러 한데 모였다는 이유로 돌이킬 수 없는 일이 생겼고, 많은 수의 인원이 대비하지 못한 참사를 맞닥뜨려야 했어요. 아직 진상 규명이 마무리되지 못한 가운데 10·29 이태원 참사가 ‘잊혀지면’ 안 되기에 오늘은 그날을 돌아보고자 해요.
우리가 참사를 돌이키며 할 수 있는 일이 무언지 영상으로 짚어 보고 유가족분들의 인터뷰을 살피는, 시월의 마지막 주 뉴스레터의 문을 열어 보겠습니다!
오늘의 범레터가 건네는 이야기
✍️ 영상|참사 그 이후, 우리는 안녕한가요?
🔊 인터뷰|계속 기억해야 하지 않나 진상을 규명할 때까지
영상|참사 그 이후, 우리는 안녕한가요?
: 재난 참사 후속 과제
하루 앞으로 다가온 10월 29일은 10·29 이태원 참사의 3주기입니다. 10·29 이태원 참사 이후, 우리 사회는 힘 합쳐 해결해야 할 후속 과제들을 마주했습니다.
이번 영상에서는 시민과 언론, 그리고 국가는 ‘참사’를 어떻게 바라보았으며 또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를 짚어 보고자 합니다.
[트라우마, 외면해선 안 되는 상처]
세월호 참사, 이태원 참사 등 잇따른 참사로 인해 우리는 PTSD와 트라우마를 사회적 문제로 깊게 인식하기 시작했습니다. 참사로 인한 신체적 외상도 신경 써야 하지만 피해자에게 더 크고 깊게 남은 것은 심리적 외상입니다. 실제로 참사 유가족들은 또 다른 참사 유가족을 마주할 때 큰 아픔을 느낄 수밖에 없었습니다.
트라우마는 참사를 간접적으로 접한 시민들에게도 영향을 주었습니다. 한국 보건 사회 연구원이 2020년에 발표한 ‘세월호 참사 전후 한국 성인의 우울 궤적 분석’에 따르면, 성인 9393명의 우울 수준은 2012년 평균 6.31점에서 2018년 6.67점으로 대체로 일정하게 유지됐으나,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2014년에만 8.76점이었습니다. 응답자들의 우울 수준이 참사 발생 시기에 일시적으로 크게 증가한 것입니다.
이러한 사회 집단적 트라우마는 미디어 속 2차 가해로 인해 더욱 심화되곤 합니다.
이태원 참사 발생일인 29일 밤부터 30일 새벽, 소셜미디어에서는 사고 현장을 담은 여러 영상과 사진이 여과 없이 실시간으로 공유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피해자에 관한 허위 사실과 혐오 발언이 무분별하게 유포되기도 했습니다. 대한 신경 정신 의학회는 성명을 통해 해당 민감 콘텐츠의 유포가 “고인과 피해자의 명예를 훼손하고 2차, 3차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며 공유 행위 중단을 촉구했습니다.
[무너진 약속, 책임을 잊은 언론]
‘언론은 재난이 발생했을 때 정확하고 신속한 재난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 재난을 방지하고, 피해를 복구하며, 일상이 빠르게 회복될 수 있도록 기능해야 한다. 사회적 혼란이나 불안을 야기하지 않도록 해야 하며, 그 과정에서 수습에 지장을 주거나 피해자의 인권을 침해하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
2014년 세월호 참사는 언론에 깊은 충격과 반성을 남겼습니다. 언론이 다시는 ‘그때의 보도 행태’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만든 약속이 바로 재난 보도 준칙입니다.
세월호 참사로부터 8년 뒤, 그 약속은 무너졌습니다. 재난 보도 준칙 제15조는 “자극적인 장면의 단순 반복 보도는 지양한다.”고 명시합니다. 제16조는 “자극적이거나 선정적인 용어, 공포심이나 불쾌감을 줄 수 있는 표현은 사용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참사 당시 언론은 검증보다 속도와 자극 유발을 택했습니다. 여러 방송사들은 참사 영상을 반복적으로 내보내며, 확인되지 않은 정보까지 함께 전한 것입니다.
보건 복지부 국립 정신 건강 센터는 지난 2월 ‘트라우마 예방 관점의 재난 보도 현황 조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이번 조사는 2022년 이태원 참사, 2023년 오송 지하 차도 참사, 그리고 2024년 화성 공장 화재 사고 관련 총 1087건의 보도를 대상으로 진행되었는데요.
그 결과, 이태원 참사 관련 보도의 12.4%, 오송 사고 보도의 5.4%, 화성 사고 보도의 6.6%가 재난 당사자나 시청자에게 트라우마 반응을 유발하는 문제적 보도였다고 조사되었습니다.
이러한 보도 행태는 피해자와 가족의 고통을 다시 드러낼 뿐 아니라, 이를 지켜보는 시민들에게도 상처를 남깁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재난 상황에서 속도보다 책임과 검증이 우선시되어야 할 것입니다.
[끝나지 않은 상처]
참사가 발생한 지 3년이 지난 지금도 참사 현장에 투입됐던 소방관들이 잇따라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등 트라우마로 인한 2차 피해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현행 특별법상 ‘피해자’에는 직무상 구조 활동을 한 소방관과 경찰이 포함되지 않습니다. 참사 당시 현장을 직접 경험했음에도 법적으로는 지원 대상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이에 유가족 측은 “직무로 구조 활동을 했더라도 재난을 경험한 피해자임에는 다르지 않다”며 피해자 범위를 넓혀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소방청 자료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위험 직무로 순직한 소방 공무원은 35명입니다. 반면, 자살로 숨진 인원은 134명으로, 약 3.8배 많았습니다. 전문가들은 단기적 상담과 일시적 위로로는 이 같은 상처를 회복하기 어렵다고 지적합니다. 피해자뿐 아니라 대응 인력까지 포괄하는 장기적이고 체계적인 국가 심리 지원 시스템이 시급한 현실입니다.
참사는 끝났지만, 마음의 상처는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구조자와 유가족, 목격자 모두 여전히 그날의 기억 속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기억과 돌봄, 그것이 참사 이후의 진짜 과제임을 마주하고 실제로 행동해야 합니다.
더 자세한 내용은 아래 링크에서 영상으로 만나 주세요! 🔊
인터뷰|계속 기억해야 하지 않나 진상을 규명할 때까지
: 이태원 참사 유가족 인터뷰
이번에는 희생자 유가족분들이 시민들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를 영상으로 담아 보았습니다.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되레 그들의 아픔을 건드는 것이 아닐까 조심스러웠지만, 그들의 목소리를 청년의 시각에서 전하고, 또 그들이 청년들에게 바라는 점들을 진솔하게 들을 수 있어 의미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인터뷰어로 참여한 유가족들은 본인을 ‘문호균 엄마 이기자’, ‘추인영 엄마 황명자’, ‘이지현 엄마 정미라’로 소개했습니다. 10.29 이태원 유가족 협의회 운영위 소속으로 참사가 일어난 후부터 지금까지, 그 진상 규명을 위해서 계속해서 쫓고 또 다니고 있다 전했습니다.
전체 인터뷰는 단락 맨 아래 링크에서 보실 수 있으며, 몇 질문과 답변을 글로써 짧게 옮겨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Q. 이태원 참사를 상징하는 보라색 리본의 의미는 무엇인가요?
A. 보라색은 겹치는 상징적인 의미도 있어요. 생명, 안전, 기억. 그리고 이태원 참사는 아무래도 핼러윈 축제하고 많이 연관되어 있잖아요. 사람들 기억 속에서 연상될 만한 색깔을 입혀서, 잊지 말고 이 사회적 참사를 기억하자는 의미로 상징적인 보라색 리본을 만들지 않았나 생각해요.
Q. 사회가 보라색 리본을 보고 어떤 메시지를 기억했으면 좋겠나요?
A. 3주기가 된 지금까지도 진상 규명이 이어지고 있는데 아직도 해결이 안 되었다는 걸 모르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아요. 이제 특조위 조사 시작한 지 3개월이 좀 지났고, 그럼에도 지금 어느 정도 뭘 밝혀 냈고 무슨 조사가 이루어졌는지 아직 우리 유가족들이 알지 못해요.
우리 유가족 입장에서는 계속 진상 규명 중인데 사회는 잊어 가고 있죠. 그렇기 때문에 계속 기억해야 하지 않나, 진상을 규명할 때까지.
참사를 당해 보고 아이를 잃어 보니까, 그 부모의 마음을 이제 너무 잘 알잖아요. 세월호 참사가 일어났을 때도 너무 아프다 생각했는데 근데 저희가 우리 아이를 골목에서 잃어 보니까 그 부모님의 마음이 너무 공감이 되는 것 같아요. 그분들이 처음에 우리를 맞이하면서, 얼굴을 잘 쳐다보지 못하셨어요. 너무 미안하다고, 저희보고.
그때는 왜 저희에게 미안하다고 하시는지 그걸 잘 몰랐는데 또 다른 참사가 일어나니까, 진상이 규명되어야 구조적인 원인을 잘 파악해서 또 다른 사회적 참사가 안 일어나는데. 계속 일어나고 있잖아요.
그런데 그 부모님들을 마주했을 때 우리도 미안함이 똑같이 공감되더라구요. 그래서 세월호 유가족분들이 우리 유가족들에게 미안하다고 하셨구나.
Q. 책임자들의 재판이 진행 중입니다. 그들의 주장을 들었을 때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A. 우리 애 같은 경우에는 해마다 갔어요. 이태원을 근데 뭐 죽을 줄 알고 가지는 않잖아요. 즐기러 가고 젊으니까 놀러 가고. 그런 일이 일어날 줄 알고 가진 않았을 거잖아요, 22년도에도. 근데 책임자들은 아무 죄책감도 없이 살고 있다는 게, 너무 웃으면서 뻔뻔하게 그러고 있다는 게 저희는 화가 나죠.
(중략)
그러니까 특조위 조사가 정말 중요해요. 특조위 조사가 끝난 다음에 재판이 시작되는 거잖아요. 사회적 관심이 굉장히 커요. 더구나 그날은 그 이태원 골목에 젊은 청년들이 10만 인파가 모였다고 하잖아요. 그곳에 간 그 아이들이 다 여러분 세대잖아요. 사회가 이걸 밝혀 내지 않고, 이대로 묵인해 버린다면 이 청년들이 뭘 보고 크겠어요. 특조위가 조사를 잘하고 그다음에 진실을 잘 찾을 수 있도록, 우리 청년들이 관심을 많이 가져야 한다고 말하고 싶어요.
Q. 다른 재난 참사 유가족들과의 연대 과정에서 얻은 힘이나 함께 이루고 싶은 변화가 있을까요?
A. 재작년에 한 사흘 동안 세월호 가족분들하고 같이 일정을 하게 됐는데, 유가족이 유가족을 만나서 인사를 한다라는 게 너무 너무 힘들었어요. 그래서 첫날은 말 한마디도 안 했어요. 그분들 앞에서 무슨 말을 할 수가 없더라고요.
눈물만 줄줄줄 흘렸는데 두 번째 날, 이제 다른 분하고 만나면서 ‘10년을 어떻게 견디셨습니까’라는 말을 해 봤고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냐’고 한번 여쭤봤던 것 같아요.
그랬더니 그분이 그러시더라고요. ‘어머니, 그냥 잘 먹고 잘 자고 꼴리는 대로 살아.’ 딱 그 얘기를 하시더라고요.
(중략)
이런 사회적 재난이나 참사가 다시는 삶에 없으리라고는 보장 못 해요. 다만 다시 일어난다면, 재난 시스템이 잘 갖춰져서 빨리 회복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을 가지고 열심히 하는 거죠.
Q. 마지막으로 남기고 싶은 말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A. 이태원 참사는 20대 아이들이 기념하는 날에 큰 참사가 일어난 거잖아요. 계속 기억해 주라고 우리 부모님 입장에서는 자꾸 얘기를 하는데요. 우리 젊은 층들이 ‘왜 저 사람들은 자꾸 우리에게 기억하라고 하지?’ 그런 생각을 가질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근데 왜 이 참사를 기억해야 하냐면, 또 다른 재난 참사를 만들지 않기 위해서라고 말해 주고 싶어요.
SNS, 페이스북이나 인스타에서라도 부모들이 왜 이렇게 움직이는지, 진상은 왜 규명돼야 하는지, 또 이 사회는 왜 재발 방지를 해야 하는지. 하루에 한 1~2분이라도, 잠깐이라도 관심을 가지고 봐 주시면 너무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3주기가 다가오니까 이번 달만은, 이번 주만은 좀 더 기억해 주고 이 아픔을 같이해 줬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이번 인터뷰를 통해 유가족분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수 있었습니다. 범레터를 보시는 분들도 같은 마음으로 보아 주시기를 바라며, 그리고 더 안전한 사회를 위해 함께 기억하고 함께 행동하는 연대의 힘을 보여 주길 바라며. 영상으로는 더 긴 인터뷰를 담았는데요.
전체 인터뷰 영상은 아래 링크에서 만나 보실 수 있습니다! 🔊
오늘의 두 영상 모두 보아 주셨나요? 🤗
무언갈 잊는 건 너무 쉽고 과거를 되새기는 건 때때로 아프지만,
그다음을 위해서 힘겹더라도 꼭 기억해야 하는 일이 있는 것 같아요.
오늘 범레터에서 담은 두 영상이 여러분의 기억에 오래도록 남기를 기원하며, 이번 범레터는 여기서 인사드리겠습니다. 두툼한 겉옷, 목도리, 장갑, 차례로 챙기시고 너무 춥지 않은 날을 보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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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월 7일 입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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