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구독자님.
혼잘여입니다. 지난주 성매매 편은 쉽고 재밌었나요? 제 능력껏 팩트에서 벗어나지 않으면서, 부담스럽지 않게 써보려고 했는데 도움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본론부터 말씀드리면, 남은 10월간 혼잘여를 쉬어가려고 합니다. '사필귀정'이라는 말처럼, 지금까지 복잡했던 현생이 순식간에 정리됐습니다. 저도 남은 일들을 정리하는데 시간이 필요할 것 같아, 잠시 혼잘여 발송을 멈추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며 재충전하려고 합니다. 2주 정도면 충분하길 바라봅니다.
혼잘여를 아껴주시는 구독자님께는 언제나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아주 가끔씩 들려주시는 피드백에 힘을 얻으며 혼잘여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그런 구독자님께 혼잘여가 비혼비출산으로 살아가는 데에 힘을 보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실, 비혼비출산 별 거 아니야"라고 생각하실 수 있도록 명쾌하고 객관적인 답을 드리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간혹 '데이터란 얼마든지 주관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며 비아냥거리는 사람들이 있지만, 실제로 데이터를 만드는 작업에 참가해보신 분이라면 데이터로 작업하는 게그렇게 간단하지 않다는 사실을 아실 겁니다. '활용할 수 있는' 데이터를 가공하는 작업은 정말, 쉽지 않거든요. 그리고 한 쪽에서 제시하는 데이터를 방어하기 위해 또다른 데이터를 정리하는 일도 쉬운 작업은 아닙니다.
매주 혼잘여를 쓰는 일이 어렵다고 생색내는 것처럼 들릴 수도 있겠네요. (ㅋㅋㅋ)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은, 방어적인 데이터로 비혼비출산을 뒷받침하는 논리를 갖출 수 있게 돼 기쁘고, 그런 혼잘여를 구독해주시는 분들이 매주 300명이 넘는다는 사실에 보람을 느낀다는 겁니다. 아무리 가부장제가 비혼비출산 여성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으려고 발버둥쳐도, 현실에는 분명히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비혼비출산을 자신의 정체성으로 인정했다는 뜻입니다.
처음 혼잘여를 쓰겠다고 주위에 이야기했을 때, 반응이 좀 낯설었습니다. 일부러 비혼비출산에 발 담그지 않은 친구들에게 말했거든요(ㅋㅋㅋ). (예) 한남 싫어
이들은 비혼비출산 여성 전용 뉴스레터는 '이미 존재한다'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굳이 쓸 필요가 있으며, 쓴다고 차별성이 있느냐는 거였죠.
제가 찾아볼만큼 찾아본 뒤였기에 사실일까 궁금했습니다. 비혼비출산의 정의를 내리는 뉴스레터가 있다고? 저도 출근길에 흥미롭게 뉴스레터를 받아보고 싶은 직장인이기에, 제발 알려달라고 했지만 얻을 수 있는 건 없었습니다. 이 시점에선 있다고 한들, 어차피 써나갈 계획이었지만요.
가부장제는 평범한 여성들의 마음 속에도 이미 존재했던 거죠. 감히 비혼비출산 여성을 주제로 제시한다는 게 어색하고 거부감을 느꼈음은 확실했습니다. 가부장제는 결혼하고 출산한 여성들이 집에 머무르는 조건에서만 페미니즘을 허락한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비혼비출산 여성? 그게 뭐야? 존재가 성립하기나 해?'
두 편의 혼잘여 뉴스레터가 발송된 뒤, 주위의 반응은 두 가지로 극명하게 나뉘었습니다. 너무 어렵고 딱딱하다 vs. 어렵다는 사람은, 실은 페미니즘에 부담을 느끼는 거 아니냐.
솔직히 말하면, 저는 당황스러웠습니다. 데이터를 거르고 또 거른 뒤에 한 번 더 걸러서, 아주 쉽게 가공했기 때문입니다. 데이터 분석 수준의 문제가 아니라, 비혼비출산 여성으로 살아가면서도 자신이 여성이라는 사실에 거부감을 느끼는 여성이 의외로 많을 수도 있겠다고 추측하게 됐습니다. 그러니까, 자신이 여성이라는 현실을 인정하는데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여성이 많았던 거죠.
세번째 혼잘여부터는 조금 더 명쾌하고 빠르게, 동시에 부담을 줄여가는 방향으로 전개하기 시작했습니다. 조금 더 희망적으로, 조금 더 가부장제가 하찮게 느껴지도록 작성하려고 애썼습니다. 다행히 그런 의도가 잘 드러났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데이터 드리븐(data driven), 즉 데이터 기반으로 펼쳐나가는 짜임새 있는 논리는 흔들리기 쉽지 않습니다. 처음 기획했던 본편은, 그렇기에 주제를 8개로 한정했습니다. 세상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흔들리지 않을 비혼비출산 여성의 논리 8개를 정립하려는 목적이 있었습니다.
제가 앞으로 커리어를 쌓아가며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 최소한 이 정도는 정리해봐야겠다는 주제를 뽑았습니다. 어렴풋이 알고 있는 사람과, 데이터를 머릿속에 넣어두며 현실을 명확히 분리해낼 수 있는 사람은, 전혀 다른 수준에서 세상을 보고 있습니다. 저는 앞으로의 저를 위해서 혼잘여를 쓰기로 마음먹었죠.
그렇기에 기획단계의 혼잘여는 제 스스로를 설득하고 확신하기 위한 자기만족용 뉴스레터에 가까웠습니다. 14명 정도 구독해주시면, 소소하게 유료로 운영해봐야겠다는 터무니없는 (ㅋㅋㅋ) 구상과 함께 시작했습니다. 비혼비출산이 트렌드지만, 뉴스레터까지 구독해주실 분이 얼마나 되겠냐고 생각하면서요. 제 마음은 한마디로 요약하면 이랬습니다: '재밌겠다!'
그러나 점차 많은 분들이 혼잘여의 공익성을 말씀하셨고, 혼잘여를 읽고 용기내 코르셋을 벗게 됐다는 소중한 이야기들을 듣게 됩니다. 사실 혼잘여는 모든 여성의제를 이야기하기에 한정적인 장소입니다.
그렇지만, 저는 혼잘여가 다루는 여러 주제에서 영감을 얻으신 구독자님께서 더욱 확장된 시야로 세상을 바라보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구독자님이 가부장제 속 여성이 아닌, 사람 취급을 받으실 수 있기를 바라고, 언젠가는 더 나아가 또다른 비혼비출산 여성을 도우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저 또한 수많은 비혼비출산 여성의 도움으로 혼잘여를 쓰는 일상을 확보하게 됐으니까요. 저를 하나의 인격체로 존중해주는, 제게 신중한 애정을 쏟는 사람들이 있기에 저도 비혼비출산 여성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언젠가는 저와 구독자님을 '연애대상'이 아닌, 한 명의 인격체로 살아숨쉬고 있음을 인정해주는 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기를 바라겠습니다. 직접 만들어가야겠죠.
*가부장제에 찌든 그 남자친구는 당장 버리세요. 하하
제가 가끔 믿음직한 사람에게만 하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 정상에서 만나자."
혼잘여를 구독해주시는 비혼비출산 여성분들께도 드릴 수 있지 않을까요? 즐거운 일상을 즐기면서, 정상에서 만나볼까요?
11월에 또 봐요!
즐겁고 안전한 비혼비출산 여성으로 살아가실 수 있기를!
가부장제식 연애와 결혼의 습격시도를 운좋게 요리조리 피하실 수 있기를!
댓글
의견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