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구독자님.
혼잘여입니다. 오랜만입니다. 그간 잘 지내셨나요?
약속드린대로 11월의 첫번째 날에 돌아왔습니다. 약속을 지킬 수 있어 정말 다행입니다.
저는 휴식을 마치고 돌아왔습니다!
일상에서 온전히 벗어난 2주를 보냈습니다. 가장 저다운 저는 역시, 완전한 휴식을 곁들여, 일상을 유지하면서 새로움을 향해 나아가는 저라는 생각이 드네요. 휴식 덕분에 복잡하게 꼬였던 일들이 깔끔하게 풀렸습니다.
회사로 복귀하고 만나는 사람마다 반갑게 인사를 나눈 뒤에, 조용히 업무를 시작하자마자 대표께서 '이제 (나도 제대로) 일할 시간이군'하고 나지막히 혼잣말하시길래 잠깐 웃었습니다. 저를 반기는 사람이 이렇게 많다니, 열심히 즐겁게 산 보람이 있네요.
아직 시차적응 중이라 졸린 정신을 부여잡고, 15분 정도 자고 일어나 혼잘여를 쓰는 중입니다.
다음 회차는 주체적 여성성-외전 버전입니다.
- 결혼 속으로 사라진 커리어 (비혼의 이유)
- 성매매 (여성의 소유권)
- 주체적 여성성 (코르셋 비유)
- 남성과의 연애 (인셀: 비자발적 독신)
- 여성 커리어 (여성 임직원과 대표 비율)
*...인터뷰에 지원해주신 분들께 답변을 드린다는 게 여러가지를 동시에 진행하다보니 너무 늦어졌습니다. 다시 한 번 사과 드립니다. 빠른 시일내로 질문지를 작성해 전달드리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이번 편은 티저-주체적여성성-외전 정도로 가볍게 봐주세요.
'주체적 여성성-본편'을 발송드린 뒤, 여전히 자신은 '주체적으로 꾸미고 싶은 욕구'가 자연스럽다고 느낀다는 질문을 여러 개(!) 받았습니다.
가부장제식 관점으로는, '주체적으로 소비 당하고 싶은 욕구'입니다. 그러니까 '권리 없는 객체가 되고싶은 욕구'입니다. '주체적'이라는 말은 사실상 어불성설인 거죠. 외전 방식으로 조금 더 쉽게 풀어쓸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제게는 너무나 명확하게 보이는 기이함인데, 그걸 자연스럽다고 받아들이는 분들께 다른 관점으로 보라고 말씀드리려니...이런저런 궁리를 해봐야할 것 같습니다.
우선 지금은,
가부장제에서 '사람'으로 인정받으려면 '남성'이 돼야하지만,
가부장제 하에서는 '여성'이라는 '태생적 결함'을 가지고 있기에,
가부장제가 '인정'하는 '여성'이 됐음에 자부심을 느끼려고 애쓰지 마시길 바란다
는 말밖엔 안 떠오릅니다.
비혼비출산 여성은, '가부장제가 인정해주는' 여성이 되기를 바라는 여성이 아닙니다.
가부장제 따위의 인정은 필요없고, 내 앞길을 막는 걸림돌인 가부장제를 치워버리겠다는 거죠. 내 안전은 내가 만든다는 거고요.
교과서에서는 한국의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를 그렇게 대단하다고 말하고선, 실제론 가부장제가 가장 중요한 국가라니. 민주주의나 자본주의조차 가부장제 아래의 다양한 시스템 중 하나인 걸까요.
저는 제가 사는 곳이 그렇게 유지되도록 내버려두지 않으려고요. 이 정도면 충분합니다. 비혼비출산 여성은, 그럴만한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는 제가 사는 이 곳이, 여성에게 유리한 곳이 되길 바랍니다. 적어도, 여성이라는 이유가 '불리함'으로 작용하지 않아야겠죠. '소비 당할 자유' 따위를 부여하며 낄낄대는 수많은 남성들의 가부장제는 필요 없습니다.
그래요, 간단하게 말하면 이렇습니다.
커리어 계속 쌓으시려면, 남자친구와 결혼하지 마세요.
'너와 여건만 맞으면' 결혼하고 싶다는 남자친구는 빨리 갖다버리세요. 전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A여행지 가고 싶은데 아무나 괜찮으니 나랑 가자', 'B체험하고 싶은데 아무나 괜찮으니 나랑 함께 해줄 사람'을 구하는 행태와 다를 바가 없다는 생각을 합니다.
가부장제에서 남성은 어느 여성이든 좋으니 결혼만 하면 유리해집니다. 기분도 좋고, 지위도 높아지고, 승진과 연봉 상승이라는 실익도 챙기겠죠. 여성은, 직장 다니는 내내 남편과 좋은 사이를 유지하는지나 캐묻는 대상이 되다가, 임신기간 내내 출산을 두려워하고, 출산 이후에는 아이를 전적으로 돌보지 못함에 죄책감을 가지다가 퇴사하고 결국 집에 틀어박힙니다.
다시 직장에 되돌아와서 일에 전문성을 보이는 기혼 여성 사례는 유니콘에 가깝습니다. 워킹맘을 쉽게 도전해보라는 말도, 자금줄이 탄탄한 창업가나 겨우 가능한 이야기죠. 애초에 결혼임신출산육아는 제 버킷리스트에 존재했던 적도 없고요.
남성들이 '우리 남성들은 여성을 위해 바뀌어야 해요' 같은 영상을 보면, 멋진 말씀 감사하다는 반응이 가득합니다. n분 내내 권력자가 '베푼다'는 표현을 쓰는 게 보이지 않는 모양이더라고요. 또는 '베푼다'는 사실이 멋있어보이는 걸지도요. 아쉽게도, 이 권력자 성별은, 이들만이 '인간으로 살아갈 권리'를 갖습니다. 태어난 것만으로요. 그러니까, 인간이 인간보다 못한 자에게 '베푸는 게 멋있다'고 설교하는 내용인데 말이죠.
가부장제에서 여성은, '동등한 인간으로 살아갈 권리'가 없다는 '주장'에 평생 시달립니다.
제가 그 주장에 동의하며, 제발 인정해주십사 기우제나 지내야 할 이유가 있을까요? 헛소리 그만하라며, 제 앞길 제가 챙기는 게 빠르고 안전합니다. 가부장제 인정을 받으면 안전하다고 생각하셨나요? 다시 되돌아봅시다.
사실, 혼잘여를 구독하시는 대부분의 구독자는, (여러가지 이유로) 이미 비혼비출산을 결심하셨을 겁니다. 그렇지만 여전히 현실은, 비혼비출산을 눈엣가시처럼 거슬린다고 생각하며 '호통치면 결혼할 것(=항복하고 가부장제에 편입될 것)'이라 여깁니다. 호시탐탐 남성과 결혼시킬 망상에 절어 있습니다. '자신의 아이를 갖는다는 것의 행복'을 이야기하면서요.
온전한 자신의 소유가 필요하다면, 커리어와 돈부터 자신의 것으로 만드세요. 옆사람이 가부장제식 사고를 주절거려도, 저와 구독자님만은 정신 차리고 있으려면, 자주 상기시키는 수밖에 없습니다. 혼잘여가 그 수단이 되기를 바라요.
조금만 내버려두면, 어느새 여성은 잘못한 성별이 돼있고, 비난의 화살이 돌아옵니다. 도대체 뭘 잘못했길래? 뭐가 그렇게 만만해보였길래? 구독자님이 잘못한 건 없습니다. 가부장제가 '어쨌든 잘못했으니 남성보다 못한 성별'로 취급하려는 것 뿐입니다.
우리는 강합니다. 그리고 더욱 강해질 겁니다.
강해야 이길 수 있는 게 가부장제 공식이라면, 기꺼이 강해져서 이겨보려고요. 될 때까지 하면 되겠죠, 뭐. 하하
비혼비출산 여성이 '어리다'고 무시하는 사람들이 많던데, 젊음의 장점은 '시도할 기회가 많다'는 것 아니겠어요. 가부장제가 반발하는 이유가 권력을 잃을 것 같으니 느끼는 두려움인지, 이미 빼앗길 미래를 예측한 시기질투인지 모르겠지만, 제가 알 바는 아닙니다. 전 아직 그 미래를 얻지 못했거든요.
휴가기간동안 정리한 생각들을, 보편적인 생각들로 다져봤는데 조금 길어졌네요. 제가 할 말이 많았나봅니다.
*tmi: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 나는 반대한다'는 2018년 다큐멘터리 영화를 봤습니다. 가볍게 볼만합니다. 국내에선 애플 TV 또는 구글 플레이 무비(유튜브)에서 볼 수 있다고 합니다!
멋진 비혼비출산 여성의 하루가 되길 바랍니다.
힘내봐요!
주체적 여성성-외전으로 다시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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