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구독자님.
마지막 메일인 8 번째 혼잘여 메일이 도착했습니다. 걱정 마세요. 처음 기획해뒀던 본편을 마무리하는 중입니다. 본편이 끝나면, 현생과 조율하며 외전 4~5편을 연재할 계획입니다.
사소한 즐거움을 공유해드리자면, 2주간 약 80명에 달하는 신규 구독자가 생겼습니다. 한 구독자분께 '언젠가 조회수가 800이 넘는 혼잘여 레터가 생기면 좋겠다'고 말했는데, 구독자수 187명은 예상하지 못했어요. 비혼비출산 여성이 이만큼 많다는 뜻으로 받아들이려고요.
구독자님, 혼잘여를 구독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오늘의 혼잘여 주제는 조금 복잡하다고 느끼실 수도 있습니다. '여성인 나를 인정하고 긍정하기'입니다. 여성 권한 부여 또는 여성 지위 상승 정도로 말할 수 있겠네요. 혼잘여에서는 '여성 긍정'이라 칭하겠습니다. 영어로 'Female Empowerment'라는 용어를 사용하는데, 한국어 이름은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최상위 여성으로서의 나=가부장제 하의 남성'이라는 프레임을 부수는 작업입니다.
3년 전 고등래퍼에서 등장했던 싸이퍼 가사입니다.
해당 가사를 지은 래퍼를 비하하려는 의도가 아닙니다. 오히려 가사가 현실을 잘 요약하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똑부러진 가사입니다.
가부장제에서 남성은 여성보다 상위에 있는 그룹입니다. 여성 중에 최고라는 타이틀을 인정받으면, 남성 중 최하위와 겨룰 수 있을지도 모르는 시스템입니다. 실제 여성은 전혀 그렇지 않은 스탯을 보유하고 있지만요. 권력을 가진 가부장제가 그게 옳다고 하면 옳은 거죠. 어쩌겠어요.
그래서, 우리는 가부장제가 나눠둔 '여성으로서의 자아'를 제대로 바라보고, 긍정적인 부분을 찾아낼 겁니다. 가부장제에서 운이 좋지 않은 성별로 태어난 탓에, '여성'은 폄하되는 성별이었거든요. 태어나서 폐로 산소를 들이키고 이산화탄소를 내뱉었을 뿐인데, 성별에 따라 스탯이 다르다는 강력한 주장을 진실처럼 받아들이는 삶을 살았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여성은 남성보다 모든 사회적인 능력이 '부족하다'는 주장입니다. 일생에 걸쳐 남성의 보호를 받아야만 하는 역량을 가지고 태어났다는 시각입니다.
최근에는 '가부장제는 여성을 싫어하지 않는다'는 주장도 강력한 힘을 가졌습니다. 처음에는 '연애대상으로서의 여성을 누가 싫어하냐'로 시작했지만, 요즘에는 여성혐오 범죄를 두고 '피해자 성별의 문제가 아니다'라고 말합니다.
가부장제 속 여성은 참, 만만한 존재인가 봅니다. 면전에 대고 저렇게 말하다니. 말세입니다.
뭐...최근이라고 하기에는 체감상 10년 정도의 시간이 흐르긴 했네요. 주장이 강력한 힘을 가질만한 세월입니다.
이런 주장에 동의하시나요? 저는 동의해보지 않은 주장입니다. 뭐든 장담하기 힘들다지만, 앞으로도 그럴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굳건해보이는 가부장제지만, 여성인 저는 가부장제가 뭐라든 잘 살아갈 예정입니다. 여성으로서의 저를 인정하고 긍정하기로 마음먹은지 오래입니다. 구독자님도 멋진 여성의 삶을 이어나가시길 바라겠습니다.
여덟 번째 혼잘여 뉴스레터 요약
- '가부장제식 여성의 자신감'은 제 인생에 도움되지 않습니다
- 여성이 권력을 거머쥘 때 필요한 7가지 방법
- 여성만 지켜야하는 룰이라면, 어겨도 괜찮습니다
'가부장제식 여성의 자신감'은 제 인생에 도움되지 않습니다
*밑줄 그어진 문장을 클릭하면 원문으로 이동합니다.
위 인용의 원문인 기사의 첫 문단에는 이런 문장이 있습니다. "'자신감'은 현대 여성이 벗어날 수 없는 단어입니다." 서론에서 '여성인 자신을 긍정하라'는 내용을 이야기하지 않았냐고 되물어보실 지도 모르겠네요. 현대 여성이면 '자신감'을 가지는 게 당연한 거 아니냐고요.
위 기사에서는 여성에게 자신감이란, 가부장제가 부여한 또다른 틀이라고 설명합니다.
주체적 여성성을 다뤘던 혼잘여 3편에서, 사실 우리가 추구해야 한다는 '여성성'은 가부장제 입맛에 맞는 여성성일 뿐이라고 말한 적 있죠. 거기에 '여성의 주체성'을 부여해준 척했던 거고요. 정말 '주체적'이라면, 섹시, 귀여움, 우아함 같은 3가지 스타일로 요약될 리가 없겠죠. 어려보이는 여성만 '여성스러운 여성'으로 인정받을 일도 없고요.
혼잘여가 이야기하는 비혼비출산 여성의 '여성성', 즉 여성의 특성은 가부장제가 이야기하는 여성성과 다릅니다. 사회가 말하는 '여성스러움'은 조용하고 반박하지 않고 웃는 모습이 예쁘면 그만인 사람의 특성을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저는 그런 식으로만 '여성스럽지' 않습니다. 제가 제 돈 벌어서, 제 인생 즐겁게 살아갈 거고, 가부장제식 여성스러움은 이런 제 계획에 방해될 뿐입니다.
여성이 권력을 거머쥘 때 필요한 7가지 방법
유럽연합(EU)이 만든 성평등기관(EIGE)에서는 '여성 긍정'을 이루는 다섯가지 요소를 다음과 같이 정의합니다.
한국사회에서 듣던 '여성스러움'과는 전혀 다른 내용이죠? 여성에게 가부장제식 여성스러움은 오히려 여성을 옭아매는 수단으로 작용합니다. '주체성'을 부여해 스스로 옭아매는 똑똑함까지 지녔습니다.
재미있는 사실은, 우리는 위 인용 속 내용이 새롭지 않습니다. 너무 당연하게 주어지는 인권이라고 배웠습니다. '여성의 권리'라고 배우지 않았을 뿐이죠.
그렇다면, 여성이 '여성으로서의 권리와 권력을 거머쥐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미국에 본사를 둔 글로벌 은행그룹 산탄데르(Santander)는 여성이 리더십을 거머쥐는 7가지 방법을 소개합니다.
여성이 권력을 거머쥐는 7가지 방법
- 자신을 분석하고, 투명하게 객관화할 것. Know yourself.
- 큰 목표를 세우고, 작은 마일스톤(세부계획)으로 쪼갤 것.
터무니없이 큰 야망을 세운 뒤, 작은 실패로 주저앉지 말 것. Set short-term and long-term goals. - 기회가 있다면 더이상 도망치지 말고, 도전할 것.
두려움을 이겨내는 스스로를 똑바로 바라볼 것. Get out of your comfort zone. - 전문성을 가진 (동종업계) 여성들과 경험을 공유하며
관계를 넓혀나갈 것. Build a network of contacts. - 스스로가 진정으로 원하는 가치를 지켜나가는지 확인할 것. Be yourself.
- 스스로의 가능성을 믿고, 자주 확신할 것. Work on your self-confidence.
- 훈련은 자신의 강점을 강화하고 약점은 줄여나가며 자신감을 키우고,
새로운 스킬은 자신의 한계를 바꾸니, 일생에 걸쳐 스스로를 교육할 것. Educate yourself.
가부장제식 주체적 여성성은 하루빨리 갖다버리고, 여성인 자신을 챙겨주세요. 선택받지 말고, 선택하는 사람이 되세요. 내 권력은 나만이 찾을 수 있습니다. 구독자님, 우리 함께 힘내봐요.
여성만 지켜야하는 룰이라면, 어겨도 괜찮습니다
비혼비출산 여성 뉴스레터, 혼잘여를 쓰게 된 단 하나의 계기 같은 건 없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페미니즘에도 관심 없어요. 오히려 한국 가부장제가 저보다 페미니즘에 관심이 많은 모양이더군요.
저는 저로 존재하고, 제가 잘 살아가기 위한 방법을 치열하게 탐색하는 중입니다. 그리고 한국 사회는 이런 저에게, '결국은 결혼하고야 말' 비혼비출산 페미니스트 여성이라는 길고 긴 이름을 붙입니다.
저는 저고, 가부장제는 가부장제일 뿐인데요. 저는 그다지 복잡한 걸 좋아하지 않아서요. 가부장제가 한정된 여성성을 부여하려 들길래, 그게 제겐 도움이 되지 않는데 왜 자꾸 들이미냐며 거부했을 뿐입니다.
혼잘여를 쓰는 3개월간 혼자 심각하게 고민했던 게 있습니다. 똑똑한 여성들이, 동등하지 못한 수준의 남성을 남자친구라는 이름을 붙이고 덥썩 인생에 도입하는 이유입니다. 남자친구로 모자라 썸남이라는 이름도 붙여주더라고요. 좋은 사람이라며 데려오고, 또 데려온 뒤에 울적해합니다.
"왜 일터에서 똑똑한 여성들은 일상에서는 만만해보일 수밖에 없는 선택을 이어가며, 인생을 한층 더 어렵게 만들까?" 이게 제 첫번째 의문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답은 "그게 한국 여성의 사회안전망이라고 학습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또다른 의문은 "왜 일터에서 똑똑한 여성들은 자신이 남성으로 태어난 것처럼, 그러니까 여성을 비하해도 되는 종류의 사람인 것처럼 말할까?"였죠. 이 의문에 대한 답 또한, "그래야 일터에서 살아남아, 개인의 커리어라도 지켜낼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더욱 강한 수위의 남성성을 뒤집어쓰고, (가부장제가 폄하하는) 여성성을 부정해야 살아남을 수 있었던 거죠. 그렇지만 우리가 '여성'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여성입니다.
여성은 끊임없이 '안전하지 않다'는 메시지를 받았습니다. 한국사회의 현 제도도, 문화도 여성인 당신을 보호하지 않는다는 현실도 알고 있고요. 말 그대로 학습력이 좋아 똑똑한 여성들이었던 겁니다.
분명히 학교에서는 '성평등'한 사회라고 가르쳤는데, 이상하단 말이죠. 여성들은 어디서 이런 내용을 학습했을까요?
저는 이 현상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기로 했습니다. 곧 교육과정에서, 가부장제가 강력하게 적용된 현실을 다루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여성의 사회 진출이 저출생 원인'이라는 헛소리 대목은 논외로 두더라도요.
문화적으로는 어떨까요? 구독자님과 저는 관습이 강하게 유지되기로 알려진...한국에서 자랐고 지금도 살고 있습니다. 몇십년간 성별 간 다른 메시지를 공유했다면, 어떻게 달랐을지 궁금했어요.
제가 발견한 건 '공식 메시지는 같다, 비공식 메시지는 달랐다'였습니다. 예를 들면, '뒷담화를 하지 마라'는 규칙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룰을 '사회성' 또는 '예의'라고 부르기로 합니다. 어기면 금전적 손해로 직결될 확률이 높진 않지만, 상호신뢰가 무너져 결국 손해를 야기하는 특성의 규칙입니다.
그런데 만약 한쪽에게는 '룰을 어겨도 괜찮다'는 메시지를, 다른 한쪽에게는 '룰을 반드시 지켜라'는 메시지를 줬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요?
'룰을 반드시 지켜라'는 메시지를 받은 그룹은 자기 검열에 몰입하기 시작합니다. 룰을 어길 때마다 타인이 지적할 것이며, 그게 귀찮아서라도 룰을 지키는 '무해한' 사람으로 성장하겠죠. 그리고 저는, 그게 한국 가부장제 속 '여성성'이라는 결론에 다다랐습니다. 바로, '남성에게 무해한 존재'입니다.
조금 더 나아가, 가부장제에게 즐거움을 주기까지 한다면 더할나위없이 '완벽한 여성'이 될 겁니다. 지구 어딘가에 주체적 여성성을 온 몸에 휘감고서 완벽한 여성이라고 자부하시는 분이 계시다면, 우선 축하드립니다. 꾸미는 걸 좋아하는 개인일 뿐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하찮은 꾸미는 자유를 얻으셨습니다.
저와 구독자님은 가부장제 입맛에 좌우될 하찮은 자유가 아닌, 여성 권력을 거머쥘 겁니다. 스스로 돈을 벌고, 스스로 한계를 그려나가는 주도권을 거머쥘 겁니다.
가부장제가 마련한 룰은 어겨도 상관없습니다. 여성만 지켜야하는 룰이 있는 건 아무래도 억울하지 않겠습니까. 겁내지 마세요. 허울뿐인 것 같아 자주 어겨봤는데, 별 거 없더라고요.
길고 긴 혼잘여를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즐거운 일주일 보내시길 바랄게요.
또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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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서도 잘 사는 여성들 (6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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