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구독자님.
5 번째 혼잘여 메일이 도착했습니다. 바쁘게 살다보니 또다른 일주일이 쏜살같이 지나가버렸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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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혼잘여 저출생편은 어땠나요? 데이터로 이야기하다보니 3편보다 훨씬 까다롭고 거부감이 들었으리라고 추측하고 있습니다. 3 번째 주체적 여성성편마저 데이터 드리븐(data-driven, 데이터와 분석 기반)으로 이야기하면 너무 까탈스러워질까봐, 3편까진 쉬운 예시들로 접근했거든요. 현실의 한국엔 힘없고 말라빠진 프로아나가 이상적인 목표던데, 데이터로 이야기하면 이걸 받아들일 사람이 얼마나 될까 싶기도 하고요.
제가 데이터에 능숙한 사람은 아니지만, 혼잘여를 시간 내서 읽어주시는 분들을 객관적으로 설득하고 싶습니다. 여러 리포트와 통계자료, 기사들이 조금 딱딱할 순 있지만, 그만큼 정확한 자료도 없으니까요. 저는 이 자료들을 이해하기 쉽게 풀어서 가부장제의 상황변화를 정리해보려고 합니다. 제가 조금 더 쉽고 공감될 수 있게 노력해보겠습니다.
오늘의 혼잘여 주제는 '여성의 커리어 유지'입니다. 쉽게 말해 직장에서 일하면서 자기가 돈벌어 스스로 먹고사는 여성입니다. 지난 뉴스레터에서 '일 잘하는 여성'이라고 말하기도 했죠. 전 단순히 스스로를 먹여살릴 결심을 했을 뿐인데, '너는 주장이 강하고 기가 센 여성이다'라는 앞담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 두가지가 상관관계가 있다는 사실을 최근에서야 알게 됐습니다. 어쩐지 자꾸 '왜 남성과 연애하지 않느냐, 남성과 결혼하지 않느냐'는 질문이 반복되더라고요. 역시 어둠의 가부장제 단체는 무시무시합니다. 이렇게까지 '개인' 뒤에 숨어 조종하면서, 사적으론 관계라곤 없는 여성의 연애결혼에 관심을 두고 웃으면서 압박합니다. 지난해 10월 이야기입니다.
지난주쯤 들었는데, 고릿적엔 비혼비출산하며 커리어를 유지한 여성을 일컬어 커리어우먼과 골드미스라는 단어를 썼다고 하더라고요. 그리고 그들은 결혼출산육아하며 체념을 내재화한 시간이 적어 '철이 없고 타인을 (과하게) 배려할 줄 모른다'는 이야기를 들었대요.
듣고 있자니 전래동화 같았습니다. 가부장제가 그 시대 그대로 유지됐다면, 저는 몇 년 뒤쯤 그런 이야기를 하루에 1번씩 듣고도 비웃을 수 있었을까요?
5 번째 혼잘여 뉴스레터 요약
- 40대 사무직 여성의 증발, 정말 능력부족이 그 이유일까요?
- 이사회 내 여성 비율 4%, 아시아권에서도 최하위래요.
- 여성 대표자 기업, 전체 40.2%로 역대최대 기록을 축하합니다.
- 가부장제는 여성에게 재미 없고 매력도 없습니다. 쉽게 웃어주지 마세요.
40대 사무직 여성의 증발, 정말 능력부족이 그 이유일까요?
혼잘여를 쓰게 된 이유 중 하나는, 20년 연차 또는 그 이상의 사무직 여성을 찾기 힘들었기 때문입니다. 여러 사람을 만나면서 두세명 정도 발견했지만, 비혼비출산 여성은 단 한 명도 없었고요.
20년 연차면 최소 40대 초중반에 팀장급, (여러) 능력 인정받으면 스타트업에선 C레벨도 달겠죠. 사무실에다 블라인드와 리멤버 커뮤니티에는 남성들이 널렸잖아요. 남팀장, 남부장들이 괴로워하는 글이 자주 올라오는 걸 매일 보죠. 별다른 이유없이 그저 남성입니다. 남성들도 별 생각없이 남성으로 태어났겠죠. 사무실에도 작업현장에도 남성만 가득합니다. 성별 비중이 반전된 세상으로 이세계 회귀물이나 차원이동하면 어색할 지경입니다.
그래서 현장직도 찾아봤습니다. 건설현장엔 여성이 없습니다. 드물게 30대 후반인 여성들이 있더군요. 비혼비출산 여성은 20대 중후반~30대 초반인 제 또래 연령대 뿐이고요. 여성 비중이 타 산업군에 비해 높은 편이던 대면 서비스업도 코로나19로 타격을 입어 규모가 대폭 축소됐습니다.
제조업은 산업에 따라 다르겠지만, 제가 방문해본 제조업 업계에선 여성을 본 적이 없습니다. 전기 전자와 식품 제조에선 여성 비중이 그나마 높다고 합니다. 제조업의 ‘젠더 페널티’…“짐 싸서 타 도시로 나가 봤지만 제자리”라는 기사에서는 '자동차·조선·기계 생산 등 중공업이 발달한 울산·창원 등에 생산 일자리가 많다지만, 임금·고용안정 등 모든 면에서 여성 일자리 수준이 남성보다 떨어진다'고 분석합니다. 같은 생산직이어도 여성에게는 주로 불량검사직 같은 부차적 업무가 주어진다고 하죠.
전문직도 찾아봤습니다. 변호사, 의사 같은 대표적인 전문직 포함입니다. 알게 된 분들은 30대 중후반이라고 하시더라고요. 오히려 기혼유자녀 50대는 보이는데, 이상하게 40대는 찾기 어렵습니다. 그나마도 제가 알게 된 비혼비출산 전문직 여성을 따지면 손에 꼽습니다.
하필 30대 초반에 출산해 육아한 아이가 초등학교 입학할 시기가 겹치네요. 우연일까요? 직장에 다니느라, 육아에 전념하지 않는 '엄마'가 돼버린 80년대 초반생 여성은 그 죄책감을 혼자 버텨내기 쉬웠을까요? 제가 어린시절 겪은 한국은 그렇지 않았던 걸로 기억합니다.
아직 사회초년생에 속하는 제 인맥과 경험이 얕은 이유도 있겠죠. $name%님이 비혼비출산 40대 초중반 사무직 여성이시라면 알려주세요. 현실이 궁금합니다.
"여성 고위공무원 사표비율 남성의 4배…유리천정위 '유리절벽'"이라는 기사에서는 한 고위공무원이 이렇게 말합니다.
기사에 따르면, 중앙정부 1∼3급 고위공무원은 모두 1천568명으로 이 중 여성은 7.7%(121명)에 그쳤습니다. 나머지 92.3%(1천447명)는 남성이 차지했고요. 2016년부터 지난해까지 5년 동안 여성 고위공무원은 매년 평균 6.3%의 비율을 나타냅니다. 고위공무원 10명 중 여성은 1명이 채 안 되는 실정으로, 고위직에서 여성은 여전히 대표성이 낮고 희소합니다.
퇴직한 여성 고위공무원 수는 2016년부터 지난해까지 매년 평균 189.6명이 퇴직한 것으로 집계됐다고 하네요. 이 중 임기가 끝나기 전에 스스로 사표를 쓰고 그만둔 의원면직이 연평균 169.0명으로 가장 많았습니다. 단순히 지금까지 가부장제가 말한대로 여성의 능력부족으로 몰고 가기에는, 너무나도 명확하게 그것만큼은 아니라는 게 드러납니다.
또다른 인터뷰어는 이렇게 말합니다.
'성별로 구분한 통계'를 공개하지 않는다는 문장은 아주 익숙합니다. 개인적으로는 2020년에 여성주의 담론을 위해 수많은 데이터를 찾아나섰는데, 가장 절망적이었던 현실은 대부분의 성별 통계가 90년대를 마지막으로 업데이트되지 않았다는 부분이었습니다. 비혼비출산 여성들은 일상에서 여성이 불리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데도, 최소 10년 전 통계도 찾기 힘든 상황이었습니다. 2000년대를 생생하게 살아봤을 80년대생 여성들 몇몇에게 당시 '데이터를 찾기 힘들다'고 말했으나, '현실적인 한계'라며 말을 마무리하곤 하더군요. 그들을 탓하는 게 아닙니다.
2022년의 혼잘여는 '현실적인 한계란 여성이 주체적으로 지우고 새로 그어나갈 수 있다'는 근거가 됐으면 합니다. 구독자님과 저는 2010년대 후반에서 2022년 상반기까지의 데이터로 비혼비출산을 이야기하고 있으니까요. 우리에게 비혼비출산을 포기해야 할 한계란 없습니다. 우리는 속도가 더딜 뿐, 분명히 앞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이사회 내 여성 비율 4%, 아시아권에서도 최하위래요.
임원급으로 올라가면 상황은 한층 더 황폐합니다. 여성 부사장, 여성 전무, 여성 상무. 한 기업에 임원급이 모두 여성이라면 분명히 낯설겠죠. 창업주가 여성이 아니면서, 여성 전용 상품을 팔지 않는 기업이 '여성이 유달리 일 잘한다'는 이유로 여성 채용에 적극적이란 이야기는 못 들어봤습니다.
위에서 언급했던, 여성 비중이 그나마 높다는 생산업인 식품업도 임원급 중 여성을 보긴 드뭅니다. 식품 대기업, 여성 등기임원 사실상 '제로'..CJ제일제당·오리온·해태 등 시대 역행이라는 기사도 있습니다. 여성 임원은 많아야 1~2명으로, ‘구색 맞추기’와 '들러리'라는 지적도 많다고 하네요. 2020년 6월에 발행된 기사로 비교적 최근 기사입니다. 식품업만 이런 상황인 게 아닙니다. 2022년 하반기엔 조금 달라졌을까요?
2018년 여성가족부는 2017년 500대 기업 여성임원 비율이 3.0%라고 발표했습니다. 전자공시에 공개된 제출의무 기업으로 범위를 한정했다고 하네요. 500대 기업 중 여성 임원이 1명 이상 있는 기업의 수는 172개로 전년보다 증가했지만, 여전히 65.6%(328개)의 기업은 여성임원이 단 한명도 없었다고 합니다.
투자하시는 분이라면 들어봤을 다우존스의 모회사 S&P 글로벌에서 발표한 자료에서도 2017년 이사회 내 여성 비율은 2~3%를 기록했습니다. 지난해엔 약 4%를 기록했네요. 2020년 아시아권 평균은 14% 수준입니다. 그리고, 한국은 표기된 아시아권 국가 중 그 비중이 가장 낮습니다. 2020년 유럽권 평균 이사회 내 여성 비율은 약 34%입니다.
한국어로 된 정보를 보고 싶다면, UN 젠더 이퀄리티 한국에서 번역한 자료를 읽으실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임원이 아닌 일반 직원 비중을 들여다볼까요? 민간연구소인 한국경제연구원이 2019년 발표한 600대 기업 종업원 100명 중 24명이 여성이라는 보도자료에서는 매출액 600대 기업 중 비금융 상장기업을 기준으로, 2014년에 비해 2018년 여성 고용 비율이 0.8%p 올랐다고 합니다. OECD 33개국 중 27위입니다.
데이터의 전체 흐름을 보면, 여성 승진은 고사하고 여성이 직장에 머무르기도 쉽지 않은 상황입니다. 유리천장이라는 단어가 무색한 수준이네요. 5중방탄유리라도 설치해뒀나 싶습니다. 그래도 잘 버텨봅시다. 비혼비출산 여성으로 직장 다니고 커리어 쌓는 일이요.
만족하기엔 멀었지만, 모든 지표들이 '올랐다'는데 의의를 두겠습니다. 이미 시작된 커다란 흐름을 거스르기란 쉽지 않으니까요. 이미 수많은 여성들은 가부장제에 의문을 품고, 잘 살아가려면 가부장제와 본인을 분리해봐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여성이 자기 힘으로 돈 벌어 스스로를 먹여살리려면, 끊임없이 은근슬쩍 끼어들고 보려는 결혼과 출산을 단호하게 가로막아야 한다는 사실 말이죠.
여성 대표자 기업, 전체 40.2%로 역대최대 기록
어린 시절 '여성은 출산육아하느라,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을 쓰는 바람에 공백이 생기고, 육아휴직 이후에는 회사를 그만둔다. 그걸 다른 팀원이 감당해야 하는데, 당연히 회사로서는 손해며 여성을 처음부터 채용하지 않는 게 이득'이란 말을 자주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2000년대 후반~2010년대 초반 정도에 자주 들었던 말 같네요. 아마 여성이 사무직에 진출하기 시작했던 시기가 아닐까 추측합니다.
2018년쯤에 들어서는 '여성은 자꾸 분란을 일으키고, 정당한 걸 요구한다는 명분으로 쓸데없는 걸 주장한다. 요즘 여성들은 기가 세서 함께 일하기 힘들고, 이러다 보니 새로 채용하기도 곤란하다'는 말이 유행했던 걸로 기억합니다. 남성 군대와 여성 출산을 동일시하려는 페이스북 글들과 함께 말이죠.
2020년대에는 '여성은 업무시간에 쇼핑하고, 사내 여적여 분위기를 만들어 질서를 어지럽힌다'는 말이 돌았던 것 같습니다. 예전에 비해 정말 힘을 잃은, 비실비실한 말이군요. 참고로 저는 어제 '상근파견 나온 남직원이 커다란 모니터로 쇼핑하고 있으니 자제시켜달라'는 제보를 받은 참입니다.
적고보니, 여성을 사무실로부터 떨어트려 놓는 말들에도 유행이 있군요. 이러한 여성 탓은 과연 여성 개인이나 성별에 국한할 수 있는 문제일까요? 과연 여성 개인 당사자만의 문제였을까요?
이 시기의 저는 뭣도 모르던 사람이었는데, 교수가 강의 중 "여러분 중 여성은 사회에 나가면, 대학교 생활이 그나마 성평등이 지켜지던 시기라고 기억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사회는 여러분이 생각하는 것보다도 훨씬, 여성에게 더욱 가혹합니다"라고 말하더군요. 전 "성별에 상관없이 나쁜 건(?) 나쁜 거야(?)!"라고 생각하던 갓 고등학생을 벗어났던 갓 성인이었죠. 참고로 그 분은 남교수였습니다.
어쨌든 현재는 여성이 대표자인 기업이 전체 기업의 40.2%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아직도 과반수는 멀었지만, 2019년 기준 역대 최대라는 중소벤처기업부 발표가 있네요. 일단 기뻐합시다. 특히 기술기반 업종에서 여성 CEO 창업기업 수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고 하네요. 힘내봐요, 우리!
가부장제는 여성에게 재미 없고 매력도 없습니다. 쉽게 웃어주지 마세요.
도입부에서 말한 '역시 어둠의 가부장제 단체는 무시무시합니다'라는 문장 기억하시나요? 혼잘여를 쓰면서도 조심스러운 이유는, 가부장제는 생각보다 굳건하고 오랜시간 기를 쓰고 버텨온 구질구질하고 강력한 시스템이기 때문입니다. 지겨울 정도로 여성에게 '남성과 결혼, 출산, 육아해라'는 말을 반복해, 이 행위들이 여성에게 일리 있는 인생과정처럼 느끼게 만듭니다. 페미니즘을 양산해내는 어둠의 페미 단체는 존재하지 않지만, 가부장제는 꾸준히 가부장제를 학습한 사람들을 양산해내는데 성공했습니다. 이미 저조차도, 구독자님조차도 일상에서 가부장제 조각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습니다. 아무리 본인은 아니라고 해도요.
자기검열하고, 타 페미니스트의 무결함을 검증하자는 뜻이 아닙니다. 여차하면 가부장제가 일상을 침범해버리니, 주의를 집중해야 합니다. 처음에는 조금 피곤하더라도, 끊임없이 여성의 일상에 끼어들려고 하는 가부장제를 단호하게 막아내세요. 그리고, 웃어주지 마세요. 여성에게 불편한 가부장제 상황은 웃어넘길 일이 아닙니다. 가부장제가 우는 소리에도 귀기울이지 마세요. 이미 잘 아시겠지만, 가부장제는 여성에게 재미 없고, 매력적이지도 않습니다.
가부장제가 지겹고 구질구질하기에, 비혼비출산 담론과 데이터도 참신할 수 없습니다. 비혼비출산은 이런 지겨운 가부장제의 침투를 매순간 이겨내야하는 일상의 연속이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비혼비출산해야하는 근거를 뒷받침하는 데이터를 모아 뉴스레터로 발행하는 이유는, 구독자님만 외롭고 힘든 전투를 씩씩하게 이겨나가고 있지 않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었기 때문이고요.
우리는 다수가 돼, 비혼비출산 디폴트 시스템을 만들 수 있습니다. 직장 내 성별 비중이 정반대가 돼더라도 어색하지 않은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지금 눈앞에 보이는 것들을 나열해볼게요. 여성 전용 상품이 아닌, 평범한 과자를 판매하고, 시계를 연구하고, 스마트폰을 기획개발하는 일에서도 마찬가지로요. 여성 대표, 여성 부대표, 여성 상무, 여성 전무가 전혀 어색하지 않는 날이 오겠죠. 지금은 임원급 전원이 남성인 기업이 어색하지 않듯이요.
구독자님, 우리는 비혼비출산으로 스스로의 삶을 보호해낼 수 있습니다. 여성이라는 이름이 가부장제만큼 강력해지기에는, 4편과 오늘 뉴스레터의 데이터에서 보신 것처럼 갈 길이 아주 멉니다. 가부장제와 가부장제의 가호를 받는 남성들이 '여성'을 경계하면서, 여성이 남성의 권리를 침범한다는 주장은 기만에 가깝습니다. 우리는 가부장제더러 우리의 밥그릇을 빼앗지 말라는 걸 행동으로 보여줄 겁니다. 비혼비출산하며 커리어를 쌓는 것으로요.
여기서 5편을 마무리하고, 전 이만 일상으로 돌아갑니다.
또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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