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구독자님.
세 번째 혼잘여 휴회 메일입니다. 어쩌다보니 세번째 휴회 메일을 작성하게 됐네요. 사회초년생 직장인은 우당탕탕 와장창창 직장생활을 보내느라 체력을 모두 소진했습니다. 구독자님의 양해를 구합니다.
처음 기획했던, 마지막 혼잘여인 8편을 앞두고, 외전 형식으로 휴회 메일 하나 작성해보려고 합니다. 한 구독자의 요청에 '성평등을 위한 여성 징병'이 타당하지 않은 이유를 요약 번역한 적 있는데, 그 글을 외전 형식으로 풀어나가보려고 해요.
제 기억이 맞다면, 2010년경 페이스북에서 '여성은 군대 가지 않는 대신, 임신하면 된다'는 맥락의 글들이 가득했습니다. 당시에는 여성의 임신은 출산, 육아로 이어진다는 인식이 팽배했으니, '임신'이라는 한 단어가 남성 징병제와 맞먹는 요구조건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네요.
*밑줄 그은 텍스트를 누르면 원문으로 이동합니다.
지난해 한 국회의원이 '임신·출산한 여성은 병역의무를 면제한다'고 발언했고, '여성이 애 낳는 기계냐'며 심한 반발이 있었습니다. 오늘 한 여성 커뮤니티에서 동일한 발언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전해들었습니다. 참고로, 당시 그 국회의원께서는 '여혐이라는 주장이 어처구니 없다'고 답했습니다. 해당 발언이 여성 커뮤니티에서 나왔다는 사실이 조금은 흥미롭습니다. 국회의원 발언을 앵무새처럼 되풀이한 거라, 그다지 눈길을 끌진 않네요.
사실 이 논쟁은 케케묵어 소각처리가 끝난 이야기입니다. 그래도 다시 한 번 꺼내는 이유는, 한 번쯤 정리하면 좋겠더라고요. 저는 징병 경험이 없고, 군대를 다녀와도 군필로 인정받을 수 없는 여성이라서, 그런 여성의 입장에서 간단히 해설해보려고 합니다.
*오늘의 영단어: Conscription
징병제입니다. 군인을 강제로 선발해 일정 기간 복무하도록 하는 제도입니다.
징병제는 유독 한국에서 따끈한 주제입니다. 구글에 Conscription을 검색하면 상단에 위키피디아 '한국의 징병제' 검색결과가 뜰 정도로 민감합니다.
위키피디아 '징병제'를 클릭하면, 다음과 같은 문장이 보입니다.
"2022년, 수많은 국가들은 더이상 군인을 징병하지 않으며, 지원자를 받아 전문성을 갖춘 군대로 대신한다."
그렇지만 대한민국은 여전히 징병제를 유지합니다. 국제 정세와는 다른 흐름임에도 오랜 제도를 유지한다는 뜻은, 특별한 국가 사정(事情)이 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오늘 혼잘여 뉴스레터는 그런 사유를 들여다보는 자리가 아니라서,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면 왜, 비혼비출산 사회초년생 직장인 여성은 여성 징병 제도와 임신을 비교할 수 없다고 생각할까요? 왜 여성 징병 제도에 거부감을 느낄까요?
뚜렷하고 명쾌한 답이 떠오르시나요? 아마도 아닐 겁니다. 아래 글에서 설명하겠지만, 실제로도 자잘하고 복잡합니다.
제 개인적인 대답은 '알 바 아니기 때문'입니다. 조금 더 자세히 말씀드리면, '징병제는 여성을 받아들일 준비를 시도하지도 않았다'입니다.
노르웨이 여성 징병 사례: "기획의도는 분명 성평등이었습니다"
노르웨이 사례를 소개해드리는 이유는
이른 시기인 2000년대 여성 징병제 도입을 결정했으며, 노르웨이는 성평등을 시도하기로 유명한 국가 중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재미있는 사실은, 당시 2007년 노르웨이 페미니즘 단체는 '여성 징병'을 반대했다는 거죠.
어쨌든 우여곡절 끝에 노르웨이는 안보와 성평등을 동일선상에 놓고, 2017년부터 여성 징병을 시작합니다.
조선일보 기사에 따르면 학업을 이유로 여성 징병을 피할 수 있다고는 하나, 실질적으로 '징병제'기 때문에 모든 노르웨이 여성은 기본적으로 성인이 되면 군대에 가야 합니다. 국가가 강제로 복무시키는 거라, '자유로운 선택'이라고 보긴 어렵습니다.
그런데 '노르웨이는 2017년 여성 징병제 실행 이후, 군대 내 성평등은 5년간 이뤄지지 않았다'는 분석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어떻게 된 일일까요? 우리는 뭘 놓친 걸까요? 자세한 내막을 살펴봅시다.
오늘 해설해드릴 글은
"노르웨이의 성-중립 징병 사례 들여다보기"
"A Look at Norway’s Approach to Gender-Neutral Conscription"
입니다.
위 글에서 노르웨이가 여성 징병제를 시행한 뒤 일어나는 현상을 소개합니다. 간단히 번역하고 정리해 여성 관점에서 여성 징병제가 갖는 현실적인 문제를 알려드립니다.
노르웨이 여성 징병 사례는 성평등이 없는 곳에 무작정 '양적으로' 여성을 투입하는 정책으로는 성평등 문제가 해결되지 않음을 선명하게 보여줍니다.
1. 명칭: 양성징병
군대에서는 남성이 기본성별이라, 여성 징병을 양성 징병으로 부르는 편입니다.
2. 사라져가는 '전통적' 징병
노르웨이에서는 '군대는 남성의 전유물이 아니다'란 주장에 여성 징병을 시행했지만, 실제 국제사회에서 '전통적' 징병은 대부분 사라졌습니다.
3. 이미 여성이 남성보다 맡는 일의 범위가 더 넓음
여성은 (기본 커리어 외에) 이미 출산육아를 담당하고 있는데, 사회 복무까지 추가로 맡는 건 실정에 맞지 않다는 거센 주장에 부딪친 바 있습니다.
4. 여성 징병제에도 여성 군인 비중 현저히 낮음
2017년부터 여성 징병 제도를 시작해 6년째지만, 아직도 제대한 여성은 전체 군복무를 마친 군인의 33%에 불과합니다.
5. 극단적 남성 중심 문화 속 만연한 여성비하와 성희롱
남성 중심 문화가 바뀌지 않았으며, 여성비하적이고 성희롱적인 작전명이 많습니다.
(예) 작전명: 엉덩이 속 보지 (여성 성기)
(예) 작전명: 팬티 안으로 들어가-보지로 올라가라
(예) 지도에서 컴파스를 돌리며, "네가 여자만큼 취했을 때는 그녀를 클럽에서 네 집으로 데려갈 때 뿐이다"라고 말함
6. 성희롱 당한 여성이 이미 너무 많음
육군과 해군, 공군 전체의 17~20% 여성이 군대 내 성희롱을 경험했습니다.
(2020년 노르웨이 30세 이하 여성의 63%가 성희롱을 경험했다는 데이터도 이를 뒷받침합니다.)
7. 리더가 될 수 없는 여성 군인
5+6의 이유로 노르웨이 군대는 여성을 리더 자리에 추천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전체 제대 군인 중 33%에 해당하는 여성 군인 중에서, 단 18~9% 여성만이 직업군인으로 남아있기를 원합니다.
8. '전통 남성마초문화'는 성평등 군대에 적합하지 않음
감정 억제를 선호하는 '전통 남성마초문화'는 대다수 여성 군인에게 받아들여지지 못하고 있습니다. 현대사회와 '전통 남성마초문화' 사이에는 괴리감이 존재합니다.
9. 성희롱과 여성 비하가 난무하는 혼성숙소
근접국가 핀란드(모병제)는 같은 성별끼리 숙소를 쓰지만, 노르웨이는 혼성 숙소를 씁니다.
그러나 모병제인 핀란드조차도 여성 군인들이 성희롱과 여성비하를 경험하고 있습니다. 혼성숙소를 쓰는 노르웨이는 더욱 심각한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핀란드 군인의 5%(2020년 기준)만이 여성 군인임에도, 2017년 여성 군인의 27%가 성희롱을 경험했습니다. 남성 군인은 단지 7%만 성희롱을 경험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여성 핀란드 군인 인터뷰
10. 제재받지 않는 직원(관리자) 성차별 발언
핀란드는 군인 간 성차별은 존재하지만, 법적으로 직원이 성차별 발언을 하면 안됩니다.
그러나 노르웨이에서는 직원도 성차별하지 않는다고 '표방'하지만, 실제로는 성차별 상황을 제재할 가이드가 없는 수준입니다. 관리자가 5번과 같은 심한 여성비하적 암기법(작전명)을 제시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11. 노르웨이 군대=성평등 국가 노르웨이에서 가장 성차별적인 직장
현재 노르웨이 군대 내 여성 비율은 (여성 징병제 시행으로) 매년 높아지지만, 노르웨이 군대는 노르웨이에서 가장 성차별적인 직장으로 꼽힙니다.
12. 현실적인 성평등 군대가 되게끔 개선 필요
노르웨이 정부는 성평등 정책을 표방하며 여성징병제를 시작했습니다. 군대 내 성차별은 여성 징병 시행 이전과 같아, 여성 군인은 성희롱과 여성비하 문화 속에서 군복무를 마쳐야 하니, 노르웨이 정부는 군대를 계속 개선해나가야 합니다.
군대 내 성범죄, 대한민국 여군은 이미 겪고 있습니다.
모병제(지원) 형태인 대한민국 여성 군인의 현주소 또한 노르웨이 사례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오히려 더 심각한 상황입니다.
"공군, 성추행 여군 사망이 스트레스성 자살로 둔갑"이라는 기사에서는 공군이 성추행 사망 사건을 업무 스트레스에 의한 자살로 처리하려는 시도가 있었다는 주장이 제기됐습니다. 이 때 공군은 이미 한 차례 성추행 당한 여군이 사망한 사건을 허술하게 처리해 비판 받은 뒤였습니다.
작전명이 성희롱적이고, 여성은 리더로 추천하지 않는 수준을 넘어, 여성 군인의 사망이 강제추행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것으로 드러나도 군대 내 여성 군인의 지위는 과거와 비슷합니다.
농담으로라도 여성의 임신출산육아와 여성 징병제를 교환하자고 하는 건, 세상과 담 쌓고 산지 오래됐다는 뜻으로 들립니다. 앞으로 누군가 '성평등하려면 여성 징병해야 하고, 여성이 임신하면 봐주자'고 주장한다면, 노르웨이 여성 징병 사례를 소개해주세요.
여성의 존재 의의는 임신과 출산, 육아에 있지 않습니다. 여성의 임신과 출산, 육아는 국가를 위한, 또는 국가를 위하지 않는 행위가 아닙니다. 별개의 주제입니다.
여성이 직장에서 '어쩔 수 없는 여성'이 아닌 '사람'으로 존재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라겠습니다.
읽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또 만나요!
추신: 메일과 댓글...오늘도 기다립니다. 잊지 마요, byecoconut@naver.com 😉
댓글 6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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톳
이번화도 잘 읽었습니다. 징병제와 임.출산을 동일선에 두는 것이 분명 이상한데 마땅한 사례가 없어 생각이 꼬이던 참이었습니다. 이번화를 '군대에 가지 않는 여자는 출산을 해라' 라는 소리에 반박으로 인용하자면 과정은 길겠지요. 하지만 흐릿하던 직관이 점점 뚜렷한 근거를 가진 진실로 변하는데 있어 횃불의 첫 장작이 될겁니다. 웃기지요. 여성밖에 할 수 없는 임신과 출산에 군대를 비교하는 것 자체가요. 그 비교 자체가 이미 군대는 남성들만의 전위물이란 뜻을 내비치는 건 아닐까요
혼자서도 잘 사는 여성들 (661)
이번 뉴스레터가 톳님께 흐리고 모호했던 생각이 정리되는 계기가 됐다면 영광입니다.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혼자서도 잘 사는 여성들 (6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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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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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서도 잘 사는 여성들 (6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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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서도 잘 사는 여성들 (661)
어떤 의견이든 진지한 내용이라면 환영합니다...! 자유롭게 주시는 의견들은 제가 혼잘여를 써나가는데 큰 힘이 됩니다. 사실 꿋꿋하게 써나갔지만, 의견이 적어 잘 써나가고 있는지, 계속 써나가는 게 맞는지 고민했거든요. 함께해주셔서 즐거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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