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매일메일의 마지막 글쓴이 창아입니다. 앞서 멋진 글을 발행해 준 두 친구 덕분에 구독자가 하나둘 늘어나고 있습니다. 감사한 마음이 들면서도 한편으로는 가벼운 부담감이 느껴집니다. 제 글을 낯선 이들에게 선보이는 것은 처음이라 많이 떨리네요. 오늘 보내드리는 이야기가 여러분의 겨울을 조금이나마 따스하게 열어주길 바랍니다.
여러분은 감당할 수 없는 사랑 때문에 벅차오른 적 있으신가요? 저는 고전 로맨스 영화를 정말 좋아해서 겨울에는 꼭 <이프 온리>와 <이터널 선샤인>을 돌려보는데요,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 눈물 콧물 범벅이 된 제 모습을 보면 웃음이 나기도 합니다. 끝을 알면서도 다시 시작하는 사랑을 어리석다 여기지만 그럼에도 몰래 꺼내보는 이유는 아마도 저의 결핍 때문이겠지요. 따듯하고 온건한 가족과 함께였으나 스스로에게 각박한 성정 탓에 늘 한쪽 모서리가 구겨진 마음을 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곁을 내어주는 것이 어려웠습니다. 이별이 정해진 관계를 시작하는 게 두려웠거든요. 마음은 '쓰인다'고 하지요. 몽땅 연필 같은 작은 마음으로 나와 그의 첫 장을 써 내리면, 언젠가 제멋대로 동나버릴 마음을 원망할 것만 같았습니다.
아이러니하지만 그런 저를 키워낸 것도 이별이었습니다. 한때 나에 대한 불신이 극에 달한 시절이 있었습니다. 확신 없인 한 발자국도 내딛지 못하는 저에게 손 내밀어준 아이도 있었고요. 고등학교 3학년 여름, 기숙사 룸메이트로 처음 만난 K가 바로 그 친구입니다.
K는 밤마다 까만 정적에 묻히고 싶었던 저만의 불안을 알고 있었을 겁니다. '모른 척'이라는 위로를 건넸을 뿐이에요. 수능을 2주 앞두고 마지막으로 방을 정리하던 날, K는 저보다 훨씬 작은 체구로 저를 함뿍 안아주었습니다. K와 함께한 시간은 고작 넉 달 남짓이었으나, 사랑의 단위는 농도이므로 그때의 나는 그를 무척 사랑했던 것 같아요. K뿐만 아니라 그때의 나를 보살펴준 모든 친구들은 내면을 향한 사랑을 알려주었어요. 그들과의 이별은 제 마음을 도려가는 것이 아니라, 각기 다른 모양의 마음을 이어붙이는 과정이었기 때문에 더이상 앞으로의 이별이 겁나지 않았습니다.
가수 권진아의 <운이 좋았지>에는 '아주 자잘한 후회나 여운도 내게 남겨주지 않았으니'라는 구절이 등장합니다. 이 노래를 처음 알게 된 열아홉 살 때는 그런 이별이 궁금했고, 스무 살 때는 그런 사랑이 궁금했습니다. 둘의 사랑이 재도 남기지 못할 만큼 타오른 건지, 너무 얕은 사랑이라 돌아볼 순간도 없는 건지 말이에요. 지금의 저는 어떤 애인이 아니라 K가 떠오릅니다. 저에게 후회 없는 이별은 K가 유일하니까요.
여러분에게도 K를 닮은 사람이 있나요?
당신의 이별에도 가름끈이 놓였길 바라며,
창아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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