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siness Insight

SKB에 패소한 넷플릭스, 왜 여유로웠나?

법정에서는 패배했지만 협상장에서는 승리한 넷플릭스의 소송 전략

2026.09.15 | 조회 1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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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4월,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넷플릭스가 SK브로드밴드를 상대로 소송을 걸었다.

보통은 돈을 받아야 할 쪽이 소송을 건다. 그런데 넷플릭스는 SK브로드밴드(SKB)가 청구서를 내밀기도 전에 법원의 문을 두드렸다.

"우리는 망 이용대가를 협상하거나 지급할 의무가 없다." 채무부존재 확인소송이었다.

2021년 6월, 1심 법원은 넷플릭스 패소를 선고했다.

그리고 2023년 9월, 두 회사는 소송을 접고 손을 잡았다. 지금은 B tv 요금제 안에 넷플릭스가 들어가 있고, 통합청구서 한 장으로 정산된다.

여기서 이상한 지점이 하나 생긴다.

소송에서 진 쪽이 왜 그렇게 여유로워 보이는가.

이 질문에 답하려면 넷플릭스가 뭘 위해 싸웠는지부터 다시 봐야 한다.


아니, 쟤가 돈을 안냈어요

먼저 이 싸움의 배경부터 짚어야 한다.

넷플릭스가 한국에서 서비스를 제공하려면 SK브로드밴드(SKB) 같은 통신사의 망을 타야 한다. 넷플릭스 서버에서 출발한 영상 데이터가 인터넷을 거쳐 한국 이용자의 TV와 스마트폰에 도달하려면, SKB가 깔아놓은 통신 인프라를 반드시 지나가야 한다는 뜻이다.

문제는 이 통신 인프라 이용에 대한 대가, 즉 망 이용대가를 누가 내느냐다.

망 중립성이란 모든 인터넷 트래픽을 차별 없이 동등하게 취급해야 한다는 원칙이다. 망 중립성이 없을 때는 통신사가 트래픽(넷플릭스, 유튜브 등에서 발생하는)을 차별적으로 취급할 수 있다.
망 중립성이란 모든 인터넷 트래픽을 차별 없이 동등하게 취급해야 한다는 원칙이다. 망 중립성이 없을 때는 통신사가 트래픽(넷플릭스, 유튜브 등에서 발생하는)을 차별적으로 취급할 수 있다.

SKB 입장은 단순하다. 넷플릭스 때문에 망 트래픽이 폭발적으로 늘었다. 망을 증설하고 유지하는 데 비용이 든다. 그 비용을 망을 가장 많이 쓰는 넷플릭스가 내야 한다.

넷플릭스 입장도 단순하다. 한국 이용자들은 이미 SKB에 인터넷 요금을 내고 있다. 그 돈으로 망을 유지하면 된다. 넷플릭스는 콘텐츠를 만들어 제공하는 회사지, 통신 인프라를 쓰는 대가를 추가로 낼 이유가 없다.

이 논쟁은 한국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전 세계 통신사들이 넷플릭스·유튜브·메타 같은 대형 콘텐츠 사업자에게 망 이용료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고, 콘텐츠 사업자들은 그 논리를 거부하고 있다. 누가 이기느냐에 따라 인터넷 비즈니스의 비용 구조 전체가 달라진다.

그 전쟁의 첫 번째 법정 무대가 한국이었다.


왜 청구서를 기다리지 않았는가

넷플릭스는 SKB가 실제 금액을 정해 청구할 때까지 기다리지 않았다. 넷플릭스 본사와 한국 법인이 함께, SKB의 국내망·국제망을 통한 전송과 관련해 협상하거나 대가를 지급할 채무가 없다는 판단을 먼저 법원에 요구했다.

  쟁점은 망 이용료가 아니었다. 넷플릭스 같은 콘텐츠 기업이 인터넷 인프라 비용까지 부담해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답해야되는 순간이었다.
  쟁점은 망 이용료가 아니었다. 넷플릭스 같은 콘텐츠 기업이 인터넷 인프라 비용까지 부담해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답해야되는 순간이었다.

방어가 아니라 선제공격이었다. 이 선택에는 세 가지 계산이 깔려 있었다.

첫째, 프레임을 먼저 잡는다. 청구서를 받고 나서 방어하면 이미 '돈을 내야 할 수도 있는 쪽'이라는 프레임에 갇힌다. 먼저 소송을 걸면 '지급 의무가 있는지 없는지가 불확실한 쪽'으로 프레임이 바뀐다.

둘째, 선례를 막는다. 한국 법원이 "콘텐츠 사업자가 ISP에 망 이용료를 내야 한다"고 판결하면, 이 판단이 다른 국가의 ISP와의 협상에서 넷플릭스에 불리한 근거로 쓰일 수 있다. 한국에서의 결론이 전 세계로 퍼지는 걸 막을 필요가 있었다.

셋째, 쟁점을 확장한다. '망 사용료를 낼지 말지'가 아니라 '인터넷은 원래 어떤 구조로 작동해야 하는가, 망중립성이란 무엇인가'라는 더 큰 질문으로 옮겨가려 했다. 비용 문제를 원칙의 문제로 확장하면, 넷플릭스가 이겼을 때 얻는 것도 커진다.

이 소송은 비용 지급을 늦추는 수단이 아니었다. 향후 글로벌 협상에 영향을 줄 법적 선례를 선점하려는 수단이었다.


'접속'과 '전송'을 갈라치기 — 그러나 법원은 넘어가지 않았다

넷플릭스의 핵심 논리는 단순하고 힘이 셌다.

넷플릭스는 콘텐츠를 연결 지점까지 가져다 놓을 뿐이다. 최종 이용자에게 콘텐츠를 전달하는 건 ISP의 역할이다. 소비자는 이미 ISP에 인터넷 접속료를 내고 있다. 그런데 넷플릭스가 ISP에 또 전송대가를 내면, 같은 전송에 대해 두 번 돈을 내는 셈 아닌가.

넷플릭스 ISP 속도 지수에서 LG U+와 SK브로드밴드가 3.2Mbps로 공동 1위, D LIVE와 KT가 3.0Mbps로 공동 2위를 기록했다.
넷플릭스 ISP 속도 지수에서 LG U+와 SK브로드밴드가 3.2Mbps로 공동 1위, D LIVE와 KT가 3.0Mbps로 공동 2위를 기록했다.

넷플릭스는 'OCA에서 ISP 망으로 콘텐츠를 넘기는 행위'와 'ISP가 자사 가입자에게 콘텐츠를 전달하는 행위'를 분리하려 했다. 이렇게 나누면 "콘텐츠 사업자가 이용자의 인터넷 접속료를 대신 낼 이유는 없다"는 논리가 자연스럽게 완성된다.

법원은 이 프레임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넷플릭스가 단순히 콘텐츠를 던져두는 데 그치지 않고, SKB와 직접 연결해 SKB 가입자에게 콘텐츠를 전달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봤다. 그 연결과 연결 상태 유지에 경제적 가치가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망중립성이나 '인터넷 전송은 원칙적으로 무상'이라는 논리는, 이 직접 연결이 유상인지 무상인지의 문제와는 별개라고 선을 그었다.

넷플릭스-SKB 소송 1심 판결문. 법원은 해당 모델이 신용카드 회사가 연회비를 얻는 것과 같은 논리라고 말했다.
넷플릭스-SKB 소송 1심 판결문. 법원은 해당 모델이 신용카드 회사가 연회비를 얻는 것과 같은 논리라고 말했다.

넷플릭스는 '인터넷 전체를 이용한다'는 큰 프레임을 만들려 했지만, 법원은 이걸 '특정 ISP와 직접 연결된 기업 간 서비스'라는 좁은 프레임으로 되돌렸다.

프레임의 크기를 두고 벌인 싸움에서, 법원은 작은 프레임의 손을 들어줬다.


OCA는 방패이자 협상 카드였다

넷플릭스는 "돈을 낼 수 없다"는 주장에서 멈추지 않았다.

동시에 자체 CDN인 OCA(Open Connect Appliance)를 SKB 망에 설치하겠다고 제안했다. 인기 콘텐츠를 캐시서버에 미리 저장해, 먼 해외 서버 대신 가까운 곳에서 콘텐츠를 전달하는 장비다.

논리는 이렇게 이어진다. 넷플릭스가 OCA 장비와 콘텐츠 저장 기능을 제공하면 콘텐츠가 이용자 가까이 배치된다. SKB의 국제망·트랜짓·증설 부담이 줄어든다. 그러니 별도의 현금 망 이용료를 낼 필요가 없거나, OCA 제공 자체를 대가로 인정해줘야 한다는 것이다.

법원은 이 주장을 완전히 내치지 않았다. 판결문은 망 연결의 대가가 반드시 현금일 필요는 없고, OCA 설치·트래픽 경감·설비 업그레이드 비용 분담·독점 콘텐츠 제공 같은 것도 경제적 이익으로서 대가가 될 수 있다고 봤다.

넷플릭스 시스템은 AWS와 Open Connect의 인하우스 CDN을 기반으로 한다. 이 두 가지 시스템은 끊임없는 고화질 스트리밍 서비스를 전달하는데 필수적이다.
넷플릭스 시스템은 AWS와 Open Connect의 인하우스 CDN을 기반으로 한다. 이 두 가지 시스템은 끊임없는 고화질 스트리밍 서비스를 전달하는데 필수적이다.

여기서 넷플릭스 소송 전략의 가장 흥미로운 층위가 드러난다.

넷플릭스는 '대가를 지급하지 않겠다'는 전략과 '현금이 아닌 기술·인프라로 기여하겠다'는 전략을 동시에 구사했다. 하나가 실패해도 다른 하나로 넘어갈 수 있게, 처음부터 두 개의 판을 깔아둔 셈이다.

"넷플릭스가 망 사용료를 무조건 거부했다"로만 정리하면, 이 이중 전략의 절반을 놓치게 된다. 넷플릭스는 비용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려 했다기보다, 그 비용을 누가, 무엇으로 부담할지를 다시 정의하려 했다.


법원에서는 졌는데, 협상 공간은 넘겼다

2021년 1심 결과만 보면 넷플릭스의 완패다. 법원은 넷플릭스가 SKB로부터 연결 및 연결 상태 유지라는 유상 역무를 제공받고 있으므로, 대가를 지급할 의무가 있다고 판단했다.

그런데 법원은 구체적인 금액·기준·시기·지급 방식은 정하지 않았다. 이 부분은 통째로 양사의 협상 영역으로 남겨졌다.

쟁점넷플릭스의 목표결과
대가 지급 의무 자체부정실패
망중립성·전송 무상성 논리법적 면책실패
실제 지급액최소화·불확정 상태 유지협상 여지 확보
지급 방식현금 대신 OCA·비용절감·제휴인정 가능성 확보
서비스 지속차단·품질 악화 방지유지
글로벌 선례불리한 판결 확산 차단한국 판결 리스크는 남았지만 최종 합의로 봉합

법적 원칙에서는 졌지만, 경제적 조건이라는 실전에서는 판을 다시 짤 여지를 남긴 것이다.

"넷플릭스가 소송에서 졌다"는 사실과 "SKB가 원하는 금액을 다 받아냈다"는 사실은 다른 이야기다.


2023년 합의는 화해가 아니라 소송의 연장선

2023년 두 회사는 서로에 대한 소송을 취하하고 전략적 파트너십을 체결했다. 공개된 내용에는 OCA를 SKT·SKB 망에 배치하고, B tv 및 SKT 상품과 넷플릭스를 결합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하지만 망 이용대가의 구체적 금액과 정산 조건은 여전히 공개되지 않았다.

이 합의는 화해라기보다, 소송에서 다투던 쟁점들을 하나의 사업 패키지로 묶은 것에 가깝다.

넷플릭스는 OCA로 트래픽 비용과 품질 문제에 대응했다. SKB는 넷플릭스를 B tv의 콘텐츠 경쟁력으로 활용했다.

SKT·SKB는 IPTV·모바일·구독상품의 가입자 접점을 넓혔다. 양사는 장기간의 소송과 규제 불확실성을 끝냈다. 현금 망 사용료의 구체적 액수는 비공개로 남았다.

2026년 8월 현재 SKB에서 제공하고 있는 B tv All 넷플릭스 프리미엄 상품
2026년 8월 현재 SKB에서 제공하고 있는 B tv All 넷플릭스 프리미엄 상품

넷플릭스는 법원에서 "지급 의무가 아예 없다"는 결론은 얻지 못했다. 하지만 최종적으로는 '현금 망 사용료 하나를 놓고 싸우는 구조'를 'OCA·상품·유통·기술 협력이 뒤섞인 교환 구조'로 바꾸는 데는 성공했다고 볼 여지가 있다.


넷플릭스는 망값을 거부한 게 아니라, 망값의 정의를 바꾸려 했다

넷플릭스의 소송 전략은 망 이용대가를 단순히 거부하는 것이 아니었다.

먼저 채무부존재 확인소송으로 지불의무 자체를 부정하고, 접속과 전송을 분리해 법적 책임을 제한하려 했다. 동시에 OCA를 제시해 망 비용을 현금이 아닌 기술·트래픽 절감·인프라 협력으로 재정의하려 했다.

법원은 연결에 대한 대가 지급의무는 인정했다. 하지만 금액과 방식은 끝내 확정하지 않았다. 결국 넷플릭스는 법적 면책에는 실패했지만, 비용 지급의 형태와 협상 구조를 바꾸는 데는 일정 부분 성공했다.

가장 정확한 문장은 이거다.

넷플릭스는 법적 의무 부정에는 실패했지만, 실제 지급액·지급 방식·기술적 대가를 둘러싼 협상력은 끝까지 유지했고, 이를 결합상품과 인프라 협력으로 전환하는 데 성공했다.

소송에서 지는 것과 협상에서 지는 것은 다른 이야기다.

넷플릭스는 법정에서 원칙을 잃었지만, 그 자리에서 새로운 협상 테이블을 만들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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