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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경에 막힌 방송국, 국경을 넘는 IP

할리우드 메이저 스튜디오에서 스튜디오 드래곤까지, 방송이 없어야 팔린다

2026.07.29 | 조회 7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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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9월, 소니는 코카콜라로부터 컬럼비아 픽처스를 34억 달러에 사들였다.

코카콜라는 1982년 사업 다각화를 위해 컬럼비아를 인수했다가 7년 만에 손을 들었다. 이유는 단순했다. 1987년 제작비 5,500만 달러를 투입한 영화 《이슈타르》가 처참하게 폭망했다.

일리언 메이(Elaine May) 감독, 워런 비티(Warren Beatty), 더스틴 호프먼(Dustin Hoffman) 출연의 이슈타르. 약 5,000만 달러의 제작비를 들여 막대한 적자를 기록한 대표적인 흥행 실패작 중 하나이다.
일리언 메이(Elaine May) 감독, 워런 비티(Warren Beatty), 더스틴 호프먼(Dustin Hoffman) 출연의 이슈타르. 약 5,000만 달러의 제작비를 들여 막대한 적자를 기록한 대표적인 흥행 실패작 중 하나이다.

1988~1989년 컬럼비아의 북미 시장 점유율은 3~4%대까지 떨어졌다. 경영진은 계속 바뀌었고, 코카콜라 주주들의 불만은 폭발했다.

결론은 간단했다. 콜라나 팔자.

소니는 그 타이밍에 들어왔다.

미국 언론은 경악했다. 할리우드 메이저 스튜디오가 처음으로 외국 자본에 넘어간 순간이었다.

그런데 이 사건을 뒤집어 읽어야 한다. 질문은 "왜 소니가 컬럼비아를 살 수 있었는가"가 아니다.

진짜 질문은 이거다. 왜 다른 메이저 스튜디오들은 외국 자본에 팔리지 않았는가.


1989년의 할리우드, 소니가 들어온 자리

미국영화협회(MPA, 구 MPAA)는 할리우드 메이저 스튜디오들의 연합체다. 1989년 당시 MPAA 7대 메이저 스튜디오는 디즈니, 워너브라더스, 파라마운트, 20세기폭스, 유니버설, MGM/UA, 컬럼비아 픽처스였다.

할리우드 타 메이저 스튜디오들과 컬럼비아 픽처스의 가장 주요한 차이점은 무엇일까? 바로 대부분의 스튜디오들이 방송 인프라를 끼고 있었다는 것이다.

워너브라더스는 CNN, HBO를 가진 타임워너 산하였다(현재는 디스커버리와 합병해 WBD).

유니버설은 NBC와 연결된 구조였다(현재는 컴캐스트 자회사).

파라마운트는 CBS를 가진 바이어컴 계열이었다(현재도 CBS 보유).

20세기폭스는 폭스 방송 네트워크를 소유한 뉴스코프 산하였다(이후 디즈니가 인수, 현재 디즈니는 ABC와 ESPN 보유).

반면 컬럼비아 픽처스는 달랐다. 방송 네트워크 면허를 보유하지 않은 순수 영화 제작·배급 스튜디오였다. (MGM/UA도 당시 방송사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 이유일까, MGM은 할리우드 역사상 주인과 소유 구조가 가장 많이 바뀐 '비운의 스튜디오'이다. 후에 단독으로 다뤄보도록 하겠다.)

당시 일본기업이 미국 메이저 스튜디오를 인수했다는 사실만으로도 헐리우드 전체가 충격을 받을 정도였다.
당시 일본기업이 미국 메이저 스튜디오를 인수했다는 사실만으로도 헐리우드 전체가 충격을 받을 정도였다.

소니는 그 자리로 들어왔다. 1989년 컬럼비아를 인수한 이후 지금까지, 순수하게 영화 제작과 배급, TV 콘텐츠 제작만 한다. (당시 국내 C사 또한 컬럼비아 픽처스 인수에 관심이 있었으나 무산되었다.)


방송국이 있으면 외국 자본이 못 들어온다 — 왜, 그리고 지금도

미국 통신법(Communications Act) 제310조가 핵심이다.

외국인은 방송국 면허 지분을 직접 20% 초과해서 가질 수 없다. 지주회사를 통한 간접 구조라도 외국 자본의 지분이 25%를 넘어가면 방송 면허 취득이 원칙적으로 불가능하다.

미국의 전통의 3대 방송사 (Big Three): CBS, NBC, ABC이며, 1986년 FOX 등장 이후 현재는 4대 방송사 (Big Four)로 구분되고 있다.
미국의 전통의 3대 방송사 (Big Three): CBS, NBC, ABC이며, 1986년 FOX 등장 이후 현재는 4대 방송사 (Big Four)로 구분되고 있다.

이 규제가 생긴 이유는 세 가지다.

첫째, 전파는 공공재다. 방송은 국가 통신 인프라를 사용하기 때문에 미국 정부는 이를 사기업이 자유롭게 거래할 수 있는 자산으로 보지 않는다.

둘째, 여론 조작 방지다. 해외 자본이나 해외 정부가 방송국을 소유하면 미국 내 여론을 의도적으로 조작하거나 선전 도구로 활용할 위험이 생긴다.

셋째, 국가 안보다. 전쟁이나 비상사태 시 방송망은 국가가 국민에게 직접 정보를 전달하는 핵심 인프라다. 이게 외국 자본의 손 안에 있으면 안보 위협이 된다.

이 법은 2026년 현재도 변함없이 살아있다. 소니가 2024년 파라마운트 인수를 시도했을 때, CBS를 포함한 방송 자산은 인수 완료 후 매각하겠다고 먼저 선언해야 했다. 방송국이 걸림돌이라는 걸 소니 스스로 인정한 것이다. 딜은 결국 성사되지 않았다.

반대로 1989년 컬럼비아 인수는 가능했다. 방송 면허가 없었기 때문이다.


한국도 같은 구조다

한국 방송법도 동일한 원칙을 적용한다.

지상파 방송사는 외국인 지분 취득이 사실상 0%다. JTBC 같은 종합편성채널은 외국 자본 지분이 20% 이내로 제한된다. 일반 방송채널사용사업자(PP)는 최대 49%까지만 허용된다.

방송을 가진 순간, 외국 자본이 경영권을 가질 수 있는 수준의 투자를 받는 것은 법적으로 불가능해진다.


분리하자마자 글로벌 자본이 들어왔다 — 두 개의 한국 사례

이 논리를 가장 명확하게 실행한 한국 회사가 두 곳 있다.

먼저, CJ ENM과 스튜디오드래곤. CJ ENM은 tvN이라는 방송 채널을 가지고 있다. 방송법상 외국 자본이 경영권 수준으로 들어올 수 없는 구조다. CJ ENM이 한 것은 콘텐츠 제작 자산을 tvN에서 분리해서 스튜디오드래곤이라는 별도 법인으로 만들고 상장시킨 것이다.

스튜디오드래곤은 방송 면허가 없는 순수 제작사다. 외국 자본이 자유롭게 들어올 수 있는 구조다. 넷플릭스가 스튜디오드래곤 지분을 취득할 권리를 가질 수 있었던 것은 이 구조 덕분이다. CJ ENM 전체를 사려면 tvN이 걸리지만, 스튜디오드래곤은 달랐다.

  2019년 11월, CJ ENM은 금번 파트너십의 일환으로 스튜디오드래곤 주식 중 최대 4.99%를 넷플릭스에 매도할 권리를 갖는다. 2022년 하반기 재계약을 진행했다. 
  2019년 11월, CJ ENM은 금번 파트너십의 일환으로 스튜디오드래곤 주식 중 최대 4.99%를 넷플릭스에 매도할 권리를 갖는다. 2022년 하반기 재계약을 진행했다. 

그리고 JTBC과 SLL(구 JTBC스튜디오). JTBC도 같은 논리로 제작 자산을 분리했다. 2021년 SLL은 프랙시스캐피탈로부터 3,000억 원, 텐센트로부터 1,000억 원, 총 4,000억 원 규모의 투자를 유치했다.

텐센트 같은 중국 자본이 한국 방송사에 직접 투자할 수는 없다. JTBC는 종편이라 외국 자본이 20% 이내로만 들어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순수 제작사인 SLL에는 제약 없이 들어올 수 있었다.

분리하자마자 글로벌 자본이 들어왔다. 두 경우 모두 결과는 같았다.


참고로, 소니가 산 것은 무엇인가 — 쉽게 설명하는 수익권과 사업권

소니가 컬럼비아를 인수한 건 단순히 영화사를 갖고 싶어서가 아니었다. 소니는 1970~80년대 자사의 비디오 테이프 규격 베타맥스가 VHS에 패배하는 걸 지켜봤다. 패인은 하나였다. 콘텐츠가 없었다. 기기가 아무리 좋아도 볼 게 없으면 팔리지 않는다. 워크맨이 팔리려면 음악이 있어야 하고, TV가 팔리려면 볼 게 있어야 한다. 컬럼비아 인수는 그 패배에서 나온 결론이었다.

당시 소니의 오가 노리오(大賀典雄) 회장은 제품(하드웨어)만 만드는 제조사에 머무르지 않고, 그 안에 담길 문화 콘텐츠(소프트웨어)가 결합되어야만 기업이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다는 지론을 토대로 소니를 세계적인 엔터테인먼트 기업으로 확장시키는 기반을 닦았다.
당시 소니의 오가 노리오(大賀典雄) 회장은 제품(하드웨어)만 만드는 제조사에 머무르지 않고, 그 안에 담길 문화 콘텐츠(소프트웨어)가 결합되어야만 기업이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다는 지론을 토대로 소니를 세계적인 엔터테인먼트 기업으로 확장시키는 기반을 닦았다.

소니가 실제로 사들인 것은 두 가지 층위로 나뉜다.

수익권(Revenue Rights)은 콘텐츠에서 나오는 돈을 받을 권리다. 소니는 컬럼비아가 수십 년간 축적한 영화 2,700여 편과 TV 에피소드 23,000여 편의 판권을 한 번에 가져갔다. 《고스트버스터즈》, 《카라테 키드》, 《Wheel of Fortune》, 《Jeopardy!》까지. 이후 스파이더맨 IP까지 확보하면서 수익권의 가치는 더 커졌다.

사업권(Operational Rights)은 직접 콘텐츠를 만들고 배급하는 권리다. 컬럼비아 픽처스 레이블로 영화를 제작하고, 전 세계 극장에 배급하고, 새로운 IP를 개발하는 사업 자체다.

소니는 이 두 가지를 동시에 가져갔다. 단순히 수익을 받는 투자자가 아니라 스튜디오를 직접 운영하는 플레이어가 된 것이다.

수익권만 가져가면 투자자다. 사업권까지 가져가면 플레이어다. 콘텐츠 산업에서 IP의 가치는 장기적으로 사업권을 가진 플레이어에게 누적된다.


방송은 국경 안에 묶여 있고, IP는 국경을 넘는다

소니-컬럼비아, 스튜디오드래곤, SLL. 세 사례가 같은 결론을 가리킨다.

방송 인프라에 묶인 자산은 국경을 넘지 못한다. 방송에서 분리된 순수 IP 자산은 글로벌 자본이 들어온다.

IP를 자산으로 만들려면 구조가 먼저다. 어떤 법인에 담느냐가 그 IP에 누가 투자할 수 있는지를 결정한다. 글로벌 밸류에이션은 콘텐츠 품질이 아니라 법인 구조에서 시작된다.

그런데 분리가 항상 답인 건 아니다. SLL은 분리에 성공해서 4,000억 원의 글로벌 자본을 유치했다. 그리고 2026년, JTBC 그룹은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SLL은 회생 명단에서 빠졌다.

같은 그룹에서 방송국은 망하고 제작사는 살아남은 건 단순히 분리 때문이 아니다. 분리의 구조가 어떻게 설계됐느냐, 그리고 분리 이후 IP가 어느 방향으로 흘렀느냐가 결과를 갈랐다.

 

그 이야기를 다음 편에 이어서 하려고 한다.


다음 편 예고: IP를 분리했는데 왜 망했나 — JTBC가 SLL에 IP를 팔고 나서 벌어진 일

이번 뉴스레터에서 다룬 IP 자산화에 대해 더 깊이 다룬 리포트를 bizkit.ai.kr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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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략기획의 프로필 이미지

    전략기획

    0
    약 16시간 전

    좋은 글 감사합니다. 매번 나름의 느끼는 바가 있어서 챙겨보는 재미가 있습니다.

    ㄴ 답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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