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I가 창업의 문턱을 낮췄다는 말은 이제 상식이 됐습니다. 코드를 몰라도 제품을 만들고, 디자이너 없이 상세페이지를 뽑고, 혼자서 열 사람 몫을 한다는 이야기가 매일 나옵니다. 그런데 같은 기간 세계 M&A 시장은 사상 최대를 기록했습니다. 실리콘밸리에서 가장 빠른 자본은 새 회사를 만드는 대신 이미 굴러가는 회사를 사들이는 쪽으로 움직였습니다. 창업이 쉬워졌다면 인수는 줄어드는 게 자연스러운데, 정반대가 벌어진 것입니다.
이 어긋남을 설명하는 열쇠는 'AI를 쓴다'와 'AI로 앞서간다' 사이의 거리에 있습니다. AI 시대에 M&A가 뜨는 이유는 무엇이며, 그것이 한국의 이커머스 매도자와 인수자에게는 어떤 뜻일까요?
안녕하세요 숲메님! 이숲 뉴스레터 에디터 남채연입니다 👋
〽️ THIS WEEK 비즈레터 목차
• 🔍 "누구나 창업하는 시대"라는 말의 진짜 의미
• 📊 앞서가는 팀에게 없는 것은 아이디어가 아니라 데이터입니다
• 💎 돈은 이미 움직이고 있습니다

#1. 🔍 "누구나 창업하는 시대" 라는 말의 진짜 의미
도구가 모두에게 열렸다는 말과, 그 도구로 모두가 같은 성과를 낸다는 말은 다릅니다. 한국 데이터부터 보겠습니다.
대한상공회의소 경제연구원이 전국 만 20세 이상 임금근로자 3,000명을 조사해 2026년 6월 발표한 「생성형 AI 활용의 대-중소기업 격차: 역량과 조직환경의 역할」 보고서에 따르면, 생성형 AI 활용률은 대기업 66.5%, 중소기업 52.7%로 13.8%포인트 차이가 났습니다.
그런데 이 보고서에서 정작 중요한 숫자는 따로 있습니다. 회사의 지원 체계와 근로자의 프롬프트 엔지니어링 역량 같은 요인을 함께 놓고 분석하자, 기업 규모 자체에서 오는 활용률 격차는 4%포인트 수준으로 줄었습니다. 격차를 만드는 것은 회사의 덩치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실제로 회사가 AI 사용을 적극 권장하는 것만으로 근로자의 활용 확률은 15.5%포인트 올라갔고, 구독료를 지원하면 8.1%포인트 더 올랐습니다. 반면 중소기업의 70.4%는 AI 도입 로드맵 자체가 없었습니다(대기업 54.4%).
아낀 시간을 어디에 쓰는지에서도 갈렸습니다. 1순위는 양쪽 다 '기존 업무 품질 향상'이었지만(대기업 32.6%, 중소기업 29.5%), 2순위부터 방향이 달랐습니다. 대기업 근로자는 '새로운 프로젝트 및 업무 수행'(22.6%)을 꼽았고, 중소기업 근로자는 '업무 외 휴식 및 개인 시간 확보'(27.3%)를 꼽았습니다. 보고서는 이 차이가 장기적으로 생산성 격차로 누적될 수 있다고 짚습니다.

소상공인으로 좁히면 그림이 더 선명해집니다. 중소기업중앙회 조사에서 소상공인 10명 중 8명(80%)이 디지털·AI 기술을 활용한다고 답했습니다. 그런데 그중 83.3%는 기초·입문 단계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쓰는 비율과 쓰는 수준 사이가 이만큼 벌어져 있습니다.
해외도 다르지 않습니다. MIT NANDA 이니셔티브가 발표한 「The GenAI Divide: State of AI in Business 2025」는 기업 생성형 AI 파일럿의 95%가 손익에 측정 가능한 영향을 내지 못했다고 보고했습니다. 300억~400억 달러가 투입됐지만 실제 성과로 이어진 것은 약 5%였습니다. 보고서는 원인을 모델 성능이 아니라 '학습 격차'로 지목합니다. 범용 도구는 개인에게는 잘 맞지만, 조직의 업무 흐름을 기억하거나 거기에 맞춰 적응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AI는 모두에게 열렸지만, 성과는 아직 소수에게만 갔습니다. 그리고 그 소수는 갈수록 더 빨리 갑니다.

#2. 📊 앞서가는 팀에게 없는 것은 아이디어가 아니라 데이터입니다
그러면 성과를 낸 5%는 무엇이 달랐을까요. MIT 보고서의 답은 도구를 업무 흐름 깊숙이 붙이고, 기억하고 학습하는 구조를 갖춘 쪽이었습니다. 모델을 바꾼 게 아니라 모델이 쥘 재료를 바꾼 것입니다.
박스(Box)의 CEO 아론 레비는 「컨텍스트의 시대(The Era of Context)」라는 글에서 이 문제를 정면으로 던집니다. 그는 AI가 전문가 수준의 지식을 흔한 것으로 만들고 있다고 전제한 뒤 이렇게 묻습니다. "모두가 똑같은 전문가급 지능에 접근할 수 있는 세상에서, 회사는 무엇으로 차별화하는가?"
그의 답은 컨텍스트였습니다.
"물론 팀과 직원이 AI 에이전트를 얼마나 잘 쓰느냐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궁극의 배수 효과는 에이전트가 얻는 컨텍스트에서 나올 것입니다. 어떤 제품을 만들어야 하는지, 고객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어느 시장을 노려야 하는지, 고객 응대의 구체적인 세부사항, 조직 안에만 도는 암묵지, 그리고 시간을 들여 쌓았거나 라이선스했거나 인수한, 그 회사만의 무수한 정보들 말입니다."

마지막 단어를 눈여겨볼 만합니다. 쌓거나, 사 오거나, 인수하거나. 컨텍스트를 확보하는 방법으로 그는 '인수'를 나란히 놓았습니다.
여기서 문제가 생깁니다. 컨텍스트는 만들어낼 수 없고 쌓아야 합니다. 3년치 구매 데이터, 반품 사유, 어떤 소재에 어떤 클레임이 붙었는지, 어떤 키워드가 실제로 돈이 됐고 어떤 키워드가 광고비만 태웠는지 — 이건 아이디어가 좋다고 내일 생기지 않습니다. 시간이 지나야만 생깁니다.
그래서 앞서가는 팀의 선택지는 둘 중 하나입니다. 데이터가 쌓일 때까지 몇 년을 기다리거나, 이미 쌓인 곳을 사거나. EY가 2026년 7월 내놓은 미국 M&A 리포트는 이 선택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업종을 가리지 않고, 비(非)기술 기업들이 AI 도입을 앞당기고 운영을 현대화하기 위해 기술 자산을 사들이고 있다. 자체 개발로는 너무 오래 걸릴 역량을 확보하려는 것이다."
AI가 실행을 싸게 만들수록, 그 실행을 얹을 기반의 값은 오릅니다.
#3. 💎 돈은 이미 움직이고 있습니다
이것이 몇몇 사람의 주장이 아니라는 증거는 말이 아니라 자금 흐름에 있습니다.
미국 벤처캐피털 제너럴 캐탈리스트(General Catalyst)는 2025년 8월 「서비스업의 미래」라는 글에서 자신들이 3년 넘게 굴려온 모델을 공개했습니다. 이름은 'AI 기반 롤업(AI-enabled roll-up)'입니다. 특정 업종용 AI를 먼저 만들고, 고객 관계와 현금흐름은 있지만 기술은 없는 서비스 기업들을 사들여 그 자동화를 이식하는 방식입니다. 법률의 Eudia, 부동산의 Dwelly, 그리고 Long Lake·Titan·Crescendo가 이 포트폴리오에 들어 있고, 회사는 "수십억 달러를 투입했다"고 밝혔습니다. 목표도 구체적입니다. 한 자릿수로 성장하던 서비스 기업을 10~20% 성장으로 끌어올리고, 이익률은 두 배로 올려 30~40%대를 노린다는 것입니다.
스트라이프·코인베이스·퍼플렉시티의 초기 투자자로 알려진 일라드 길(Elad Gil)도 같은 쪽에 섰습니다. 그는 2025년 6월 테크크런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자산을 소유하면, 벤더로서 소프트웨어를 파는 것보다 훨씬 빠르게 바꿀 수 있습니다. 그리고 회사의 총이익률을 이를테면 10%에서 40%로 끌어올리면, 그건 엄청난 도약입니다. 갑자기 누구보다 비싼 값을 주고도 다른 회사들을 살 수 있게 됩니다. 사업당 현금흐름이 늘어났기 때문입니다."
같은 인터뷰에서 그는 예전의 '기술 기반 롤업'과의 차이도 짚었습니다. 10년 전 것들은 "기업 가치를 올리려고 기술을 얇게 덧칠한 수준"이었지만, AI는 실제로 비용 구조를 바꿀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시장 전체 숫자도 같은 방향입니다. 베인앤컴퍼니가 2026년 6월 내놓은 M&A 중간 보고에 따르면 2026년 1~5월 글로벌 M&A 거래액은 2조 4,000억 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41% 늘었고, 연간 기준 역대 두 번째 규모로 향하고 있습니다. 베인은 올해 AI가 만든 딜이 기술 섹터 바깥으로 번지고 있다는 점을 이번 국면의 특징으로 꼽았습니다.

다만 한 가지는 짚고 가야 합니다. LSEG 집계로 2026년 1~7월 거래액은 3조 1,900억 달러로 36% 늘었지만, 거래 건수는 2만 8,000여 건으로 오히려 10% 줄었습니다. 지금 시장은 '모두가 사고파는 시장'이 아니라 큰 거래에 쏠린 시장입니다.
개인 단위의 흐름은 조금 다릅니다. 스탠퍼드 경영대학원이 2026년 7월 발표한 서치펀드 연구에 따르면 새로 만들어지는 서치펀드는 여전히 역대 최고 수준이고, 1996년 이후 누적 인수 성공률은 58%, 인수까지 걸리는 기간은 평균 20개월가량입니다. 2024~25년에 실제로 사들인 회사의 중간 거래가는 1,600만 달러였습니다. 창업 대신 인수로 사업을 시작하는 경로가 제도로 굳어졌다는 뜻입니다. 다만 같은 연구를 두고 인수 경쟁이 예전보다 훨씬 치열해졌다는 분석도 함께 나옵니다.
여기까지는 해외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이 논리가 가장 잘 들어맞는 곳이 국내 이커머스입니다.
스마트스토어나 쿠팡에서 몇 년을 굴려온 사업체에는 아론 레비가 말한 컨텍스트가 이미 들어 있습니다. 실제 판매 이력, 반품과 클레임 기록, 어떤 상세페이지가 먹혔고 어떤 소재가 죽었는지, 어느 키워드가 진짜 전환됐는지. 그런데 정작 그 데이터를 쥔 대표는 소상공인의 83.3%처럼 활용 수준이 기초·입문에 머물러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반대로 AI를 능숙하게 다루는 팀에게는 그 데이터가 없습니다. 한쪽에는 재료가 있고 다른 쪽에는 조리법이 있는 상태입니다. 거래는 이런 데서 생깁니다.
다만 과장은 하지 않겠습니다. 데이터가 있다고 아무 매물이나 값이 오르는 것은 아닙니다. 매출이 특정 채널 하나에 묶여 있거나, 소싱과 고객 응대가 전부 대표 개인기에 의존하는 사업체는 인수자가 AI를 얹을 표면적이 좁습니다. 이 국면에서 값이 오르는 쪽은 기록이 남아 있고, 반복 가능한 업무가 눈에 보이고, 대표가 빠져도 굴러가는 구조입니다. 공교롭게도 그건 AI가 없던 시절에도 좋은 매물의 조건이었습니다.
"AI가 다 해준다"는 말과 "AI를 쓸 사람이 이미 굴러가는 사업을 원한다"는 말은 다른 이야기입니다. 지금 시장이 움직이는 쪽은 후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