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의 틈

참는 사람

2026.08.31 | 조회 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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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서서히 미쳐가는 사람들도 있는 거 아닐까요? 서서히 병들어가다가 폭발하는 사람 말예요. 줄기가 뻗어나가다가, 한없이 뻗어나갈 듯하다가, 그 끝에서 거짓말처럼 꽃이 터져나오듯이•••••• 글쎄, … 그런 식으로 터져버리는 거죠. 그래요, 오래 잘 참은 사람일수록 더 갑자기.— 한강, 『검은 사슴』, p.346

 

화분에 물을 주다 보면 가끔 이상한 식물을 봅니다.

잎은 멀쩡한데 어느 날 갑자기 줄기 하나가 길게 올라옵니다. 어제까지 없었던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그전부터 자라고 있었을 겁니다. 흙 아래에서 뿌리를 늘리고, 보이지 않는 마디를 하나씩 만들면서요.

사람의 마음도 그렇게 자라는 것이 있는 것 같습니다.

괜찮다고 넘긴 일, 굳이 말하지 않은 서운함, 설명하기 귀찮아 삼킨 말들이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조금씩 자리를 차지합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의 무너짐은 갑작스러워 보입니다.

늘 웃던 사람이 연락을 끊고, 좀처럼 화내지 않던 사람이 소리를 지르고, 오래 견디던 사람이 어느 날 모든 것을 내려놓습니다.

주변에서는 그날을 기억합니다.

그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 누가 무슨 말을 했는지, 무엇 때문에 그렇게까지 되었는지를 찾습니다.

하지만 꽃이 피는 날이 꽃의 시작은 아닙니다.

꽃은 줄기가 뻗기 전부터 시작되었을 것이고, 어쩌면 흙 속에 뿌리가 내릴 때부터 준비되고 있었을 겁니다.

사람이 무너지는 순간도 그런 것인지 모릅니다.

마지막 한마디가 사람을 무너뜨린 것이 아니라 그 말이 닿을 때까지 너무 많은 것이 이미 자라 있었던 것.

그래서 나는 가끔 잘 참는 사람을 보면 오히려 마음이 쓰입니다.

아무 일도 없는 사람처럼 살아가는 일이 정말 아무 일도 없는 것과 같지는 않다는 것을 이제는 조금 알기 때문입니다.

오래 참은 사람에게 찾아오는 어떤 순간은 폭발이라기보다 개화에 가까울지도 모르겠습니다.

다만 꽃과 달리 아름답지 않은 개화.

너무 오래 안쪽으로 자라온 것이 마침내 밖으로 터져 나온 것.

"늘 함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편안한 글로 함께 하겠습니다. 문의나 피드백은 언제든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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