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사람은 자기만의 집을 추구한다. 집에 있을 때 우리는 깊이 생각할 것 없이 눈을 감고도 움직일 수 있다. 우리 몸이 길을 알기 때문이다. 어두운 밤이 와도 불을 켜지 않고 지낼 수 있다. 어둠 속에서도 부딪히지 않는 안전한 곳, 잠과 비밀을 지켜 주는 친숙한 곳, 조금 유치하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우리는 집을 이러한 곳으로 여긴다. 우리는 우리를 둘러싸고 하나로 묶어 주는 거의 모성적인 장소를 찾고자 한다.
-클레르 마랭
책을 읽다가 멈칫 놀랄 때가 있습니다. 가령 ‘모성적인 장소’처럼, 오래 생각했지만 이름 붙이지 못했던 마음에 꼭 맞는 단어를 발견할 때입니다. 저는 집이라는 것에 꽤 많은 의미를 담는 편이었습니다. 투자나 소유의 의미로 집착한 것은 아닙니다. 언제나 내 역사가 모일 수 있는 장소를 원했습니다.
생각해 보면 이사를 하면서 어린 시절의 물건과 추억을 참 많이 잃었습니다. 부모님에게서 스무 살 중반에 독립했으니, 그때 두고 나온 것들이 살아오는 내내 그리웠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나이는 계속 먹었지만 마음 한구석은 아직 십 대의 어느 방에 머물러 있었는지도 모르고요.
사는 중간에는 해외 생활도 꽤 오래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필요 없는 물건과 필요한 물건을 늘 가려내야 했습니다. 쓸모는 없지만 추억이 있는 작은 물건들은 챙긴다고 챙겼습니다. 그래도 옆집으로 이사만 해도 버리는 것과 분실물이 생기는데, 먼 나라를 오가는 동안에는 오죽했을까요. 삶은 자꾸 앞으로 가는데 이상하게도 저를 달래고 안정시키는 것은 뒤에 남겨진 것들이었습니다. 오래 쓴 컵이나 책, 누군가에게 받은 작은 물건처럼 제 시간이 묻어 있는 것들 말입니다.
그러니 집이 필요했던 거겠지요. 누구와 부딪치지 않고 걸어 다닐 수 있고, 내 물건을 한 번 진열해 두면 다음 날에도 그 자리에 있어 언제든 바라볼 수 있는 곳. 내가 없는 동안에도 내 역사를 대신 지켜주는 곳. 어쩌면 어린 시절 엄마의 자궁이 해주었던 일을 성인이 된 뒤에는 집에게 바랐던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건 집을 사고 싶다는 욕망과는 조금 다릅니다. 저는 지금도 꼭 내 명의의 집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으니까요. 그래서 가끔 궁금해집니다. 이 아이러니한 삶 속에서 내가 원하는 집은 대체 어떤 형태로 존재해야 하는 걸까.
해외 생활을 다시 해보고 싶은 욕심도 있습니다. 그러니 지금의 제게 많은 물건과 집은 오히려 짐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도 늘 그리운 것은 집입니다. 어쩌면 다시 해외에서 살게 되면 오히려 집이 더 필요해질지도 모르겠습니다. 손때 묻은 물건들을 버리거나 창고에 처박아 두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것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고, 내가 몇 달 혹은 몇 년을 떠나 있어도 그대로인 곳. 문을 열고 돌아오면 아무것도 묻지 않고 나를 알아보는 곳. 그런 집 하나가 있으면 좋겠습니다.
생각해 보면 제가 갖고 싶었던 것은 부동산으로서의 집이 아니라, 내가 사라져 있는 동안에도 나의 자리를 지워버리지 않는 장소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직 실질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그 집에서 저는 오래전부터 제 자리를 찾고 있습니다. 떠나고 싶으면서 돌아올 곳을 갖고 싶은 이 마음이 언젠가는 한곳에 가만히 내려앉을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의견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