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을지로에 있는 사진관에 들렀습니다. 서랍을 정리하다가 나온 오래된 필름 몇 통을 맡기기 위해서였습니다. 사진이 나올까 반신반의하며 투명한 비닐봉지에 넣어 가져가는데 갈색 필름통들이 달그락거렸습니다. 그 소리에 오히려 더 설렜던 것 같습니다.
며칠 뒤 사진을 찾으러 갔습니다.
지금보다 어린 시절의 제가 있었습니다. 커다란 흰 셔츠에 찢어진 청바지를 입고, 지금이라면 절대로 하지 않을 만큼 긴 머리를 하고 있었습니다. 어느 바닷가였는지 뒤로는 파란색 파라솔이 보였고, 저는 고개를 뒤로 젖힌 채 호탕하게 웃고 있었습니다.
사진을 한참 들여다보며 생각했죠.
‘내가 정말 저랬나.’
그때의 저는 지금의 저와 꽤 다른 사람이더군요.
싫으면 싫다고 말했고,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 마음을 숨기지도 못했던 때였습니다. 돈이 생기면 모으기보다 하고 싶던 일에 썼고, 그러면서도 내일을 오늘보다 걱정하고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그런 제가 나이가 들면서 많이 달라졌습니다.
한동안은 달라진 모습을 발견할 때마다 ‘원래 나는 이런 사람이 아닌데’라는 생각을 자주 했습니다.
누군가에게 오래 미련을 두고 있을 때도 그랬고, 별것 아닌 일에 겁을 먹었을 때도 그랬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하고 싶은 말을 삼키고 돌아온 밤에도 혼자 생각했습니다.
나는 원래 이렇지 않은데….
그런데 오래된 사진을 보고 있으니 문득 아련해졌습니다.
그렇다면 어느 쪽이 진짜 나였을까요.
겁 없이 웃고 있는 어린 나인지, 작은 일에도 여러 번 생각하게 된 지금의 나인지.
사진관을 나와 을지로3가역까지 걸었습니다. 오래된 인쇄소 앞에는 종이 상자가 쌓여 있었고, 점심을 먹으러 나온 사람들이 좁은 골목을 줄지어 스쳐 갔습니다. 제 손에는 조금 전 찾아온 사진 봉투가 들려 있었습니다.
신호를 기다리며 사진을 다시 한 장 꺼내봤습니다.
가만히 보니 그때의 저와 지금의 저에게 똑같은 것이 하나 있었습니다. 웃을 때 오른쪽 눈이 조금 더 작아지는 버릇이었습니다.
그걸 발견하고 혼자 웃었습니다.
우리는 살면서 꽤 여러 사람이 되는 것 같습니다.
겁이 없던 사람이었다가 겁이 많은 사람이 되기도 합니다. 누군가를 붙잡아보기도 하고 먼저 돌아서기도 합니다. 어떤 날에는 내가 꽤 괜찮은 사람 같다가도, 어떤 날에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나조차 혼란스러워집니다.
그중 마음에 드는 모습만 골라 나라고 할 수는 없겠지요.
지금 생각하면 ‘나답지 않았다’고 말했던 순간에도 분명 제가 있었습니다. 웃을 때 한쪽 눈이 조금 작아지는 같은 얼굴을 한 채로요. 그때의 형편과 마음으로 할 수 있는 만큼 살아내고 있던 사람이었습니다.
사진을 다시 봉투에 넣었습니다.
예전의 저는 사진 속에 남았고 저는 지하철역으로 걸어 들어갔습니다. 그 사이에도 수많은 제가 있었을 겁니다. 좋았던 나도, 미웠던 나도, 다시는 되고 싶지 않은 나도 있었겠죠.
그렇게 생각하니 오래 나를 괴롭혔던 나의 몇몇 순간이 조금 덜 미워졌습니다.
내가 아닌 나라는 건 없었습니다.
아직 내가 잘 알지 못하는 내가 있었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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