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은 계절이 한 방향을 잡지 못해서 사람들의 옷차림이 다 다릅니다. 한여름부터 초가을까지의 옷들을 각자의 체온에 맞게, 느낌에 맞게 입고 있습니다.
그래도 계절은 스스로를 천천히 인식해 가나 봅니다. 바닥에는 어느새 갈색 낙엽이 구르는 곳이 있습니다. 며칠 전 정동길을 걷다가도 바닥에 떨어진 잎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아직 초록빛이 남은 것도 많고, 가장자리부터 갈색으로 마른 것도 있었습니다. 바람이 불 때마다 인도 위를 굴러갔습니다.
나무는 봄이면 잎을 내고, 여름에는 무성해지고, 가을이면 미련 없이 떨어뜨립니다. 겨울에는 앙상한 가지로 한 계절을 보냅니다. 우리는 그 일을 특별하다고 여기지 않습니다. 때가 되면 피고, 때가 되면 지는 일이라고 담담히 받아들이죠.
사람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겁니다.
태어나고, 한동안 살고, 늙고, 결국은 흙으로 가는 거죠. 생각해 보면 인간이 생긴 뒤로 셀 수 없이 많은 사람이 그렇게 살았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딘가에서는 태어나는 생명의 울음소리가 터져 나오고, 누군가는 마지막 숨을 내쉬고 있을 겁니다.
이보다 더 오래되고 보편적인 일이 있을까요.
그런데 내 삶이 되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오늘도, 내일도 매 시간을 잘 살아야 할 것 같고, 남들보다 늦으면 조바심이 나고, 무엇인가를 반드시 이루어야 세상을 살아가는 의미가 있는 것 같습니다. 시간이 빨리 가는 것 같아 조급해지고, 아직 하지 못한 것들을 돌아봅니다. 나이가 들수록 끝이라는 단어가 가까워지는 것 같아 마음 한쪽이 서늘하게 얼어붙기도 합니다.
삶에 너무 많은 의미를 실어놓으면 삶은 생각보다 금세 무거워집니다. 아침에 눈을 뜬 일에도 목적이 있어야 하고, 하루를 보낸 뒤에도 일기를 쓰며 아쉬움을 토로합니다. 별일 없이 지나간 하루의 소중함을 자꾸 잊습니다.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시고, 일을 하고, 누군가와 악의 없는 몇 마디를 나누고, 저녁이 되면 집에 돌아와 불을 켜는 것. 그 일들의 귀함을 별일 아닌 듯 생각하게 됩니다. 우리 인생의 대부분은 그런 시간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말입니다.
삶이 특별해지는 것은 대단한 일이 많이 일어나서가 아니라, 아주 평범한 날들이 오래 이어지기 때문은 아닐까요.
매스컴이나 책에서 워런 버핏 같은 사람의 삶을 접하면 그가 이룬 것들을 보며 부러워하기도 하고, 내 삶과 비교하게 되기도 합니다. 그의 성취는 분명 특별하지만 한 사람의 생이라는 점에서는 얼마나 다를까요. 그에게도 아침과 저녁이 있었고, 밥을 먹고 사람을 만나고, 나이를 먹어가는 평범한 시간이 있었을 겁니다. 어쩌면 특별한 삶이라는 것도 결국 수많은 평범한 날들로 이루어진 것인지 모릅니다.
떨어진 잎 하나를 보고 있으니 조금 마음이 놓였습니다. 나무는 올해의 잎을 모두 붙잡아두려고 하지 않습니다. 떨어질 것은 떨어지고, 빈 가지로 겨울을 지나고, 다시 피는 때를 맞을 겁니다.
우리에게도 그런 자연스러움이 조금은 필요할 겁니다.
태어나고, 살아가고, 늙고, 죽는 일은 누구에게나 오는 가장 보편적인 일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 보편적인 일을 내 삶에 가져오는 순간 너무 특별한 사건처럼 받아들이고, 남은 시간을 헤아리며 마음을 재촉하곤 합니다.
끝이 있다는 사실이 오늘을 서두르게 하는 이유가 되지 않았으면 합니다. 삶이 한정되어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밥 한 끼를 천천히 먹고, 아무 일 없었던 하루를 아깝지 않게 여기고, 아직 오지 않은 날을 미리 당겨 살지 않는 것.
인생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평범한 일인지 모릅니다. 모두가 한 번 태어나 자기 몫의 시간을 살다가 가는 일.
그렇게 생각하면 삶을 조금 덜 특별하게 생각해도 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어쩌면 그래야, 조금 덜 조급하고 조금 덜 두려운 마음으로 오늘을 살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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