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수중(水中)과 수중(手中)의 입._이상하

김인숙의 「물속의 입」을 읽고

2026.06.26 | 조회 24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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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유리병이에요.

당신의 해변에 편지가 도착했답니다.

  이번엔 어떤 소설에 대한 이야기가 실려 있을까요?

  같이 한번 읽어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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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 속으로 성큼 걸어 들어왔음을 실감하는 순간들이 있다. 여린 연두색 잎이 짙은 초록으로 물들 때, 정수리를 달구는 태양을 마주할 때. 그리고 서늘한 호러물이 유독 당길 때.

그럴 때 나는 호러 소설을 꺼내 든다. 영화나 드라마 같은 시각화된 공포보다, 텍스트가 자극하는 내 머릿속의 상상력이 훨씬 기괴하고 무섭기에. 누군가도 나와 비슷한 생각으로 호러 소설을 찾고 있으리라 생각하며, 김인숙 작가의 단편 물속의 입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소설은 사라진 딸의 전 애인이 전해주는 기묘한 전언에서 출발한다. 딸이 머리부터 빙판 아래 물속으로 빠졌다는, 그것이 꿈인지 기억인지 모를 섬뜩한 말. 화자는 타인의 입을 빌려 전달되는 딸의 이야기를 들으며, 자신의 믿음을 헤아려보기 시작한다. 그러다 딸이 교회에서 세례를 받았을 당시 성수에 아이의 머리를 깊숙이 밀어 넣기 위해 가냘픈 발목을 잡고 있었던 스스로를 떠올린다. 그 기억이 흘러가는 어느 순간, 허공과 어둠 속에서 어느 손이 화자의 목을 건드린다. 툭툭.

 

앞서 소설 속 아이가 세례받는 장면을 내가 공들여 묘사했지만, 내게 가장 오래 남은 잔상은 다름 아닌 '빙판'이었다.

빙판은 흐르지 않고 멈춰 있다. 표면을 반사하기만 하고 그 아래 무엇이 잠겨 있는지 철저히 숨긴다. 우리는 빙판 위에서 얼어버린 물만 응시할 뿐 그 아래 흐르는 물을 끝내 제대로 확인할 수 없다. 그래서일까. 갈라진 빙판 아래를 가늠할 수 없는 상황이 다른 것보다 더 큰 공포로 다가온다.

소설 속 빙판을 따라 미끄러지다 보니, 문득 두 개의 '수중'이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소설 속 화자는 존재의 문제행위의 문제[1]를​ 말하는데, 존재는 수중(水中)처럼 의식 아래 잠긴 것으로, 행위는 수중(手中)처럼 지금 손에 쥘 수 있는 것으로 읽힌다. 물 아래 끝을 들여다볼 수 없듯, 손안의 것도 영원히 쥐고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을 자연스레 상기하게 된다.

 

그리고 수중과 수중 사이에 빙판처럼 ''이 있다.

 

딸은 사라졌고, 화자가 딸에게 닿을 수 있는 유일한 통로는 타인의 입뿐이다. 하지만 이 소설에서 입은 진실을 전하는 기관이 아니라, 오히려 진실을 흐리고 덮어버리는 불투명한 막으로 작동한다. 누군가에게 닿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지만 끝내 온전히 믿을 수는 없는 좁은 통로.

물속의 입은 끝내 딸이 왜 머리부터 빠졌는지, 딸에 관한 이야기가 거짓말인지, 그리고 딸은 지금 어디에 있는지 설명해주지 않는다. 그저 물 아래로 머리를 담근 채 화자를 바라보는 아이만이 뇌리에 깊게 남도록 만든다.

그러나 이 소설을 덮고 난 뒤 찾아오는 한기는 기괴한 장면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내가 완벽하게 안다고 믿었던 사람, 굳게 쥐고 있던 기억, 심지어 ''라는 존재 모두 처음부터 전혀 다른 모습이었을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에서 찾아온다.

오래된 믿음이 갈라지는 순간, 우리는 비로소 그 아래 공포를 바라보게 된다.

 

겉으로 보면 이 소설은 미스터리·호러라는 이름 없이도 충분히 성립한다. 그런데 굳이 스스로를 그렇게 명명하고 있다. 물 아래 잠긴 것을 끝내 알 수 없고, 손안의 것도 계속 붙들어 둘 수 없다는 두려움. 나 자신을 향한 의심. 이 서사는 진짜 미스터리와 호러라면 응당 인간의 심연에서 피어나야 하는 것이 아니냐고 고요히 묻는다. 물속에서 뻐끔뻐끔.

소설은 그렇게 우리를 매끄러운 빙판 위에 홀로 남겨둔 채 끝마친다. 소설 속 빙판 위에서, 나는 아직도 하염없이 그 아래를 살피고만 있다.

 

 

 김인숙, 『물속의 입』, 문학동네, 2024.  
 김인숙, 『물속의 입』, 문학동네, 2024.  

 

from 이상하

 

이상하

2025년 문화일보 신춘문예에서 친칠라취급주의를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각주

  1. [1] 김인숙, 『물속의 입』, 「물속의 입」, 문학동네, 2024년, 12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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