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적인 이야기에 앞서 조금은 괴상하고 복잡한 질문을 드려 보겠습니다.
여러분들은 지금 여러분들이 보고 듣고 느끼고 있는 이 현실이 정말로 존재하는 <실재>라고 믿고 계신가요? 만약 정말로 실재하는 현실이라고 믿는다면 그것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을까요?
너무나 당연한 것을 묻는 저의 질문이 조금 황당하게 느껴지실 분들도 계실 것이고, 순간, 지금이 리얼한 실재라는 이 당연한 사실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을까 하고 잠시 당황하신 분들도 계실 겁니다.
하지만 뇌에 대해 연구하는 연구자들에게 이 질문을 한다면 얘기가 달라집니다. 뇌과학에서는 지금 내가 보고 듣고 느끼는 당연한 이 현실이 '진짜'인지 아닌지에 대한 방대한 연구 분야가 있습니다. 우리가 느끼는 이 현실이 실제가 아닐 수도 있거나 오류일 수도 있기 때문이겠죠.
오늘은 나의 뇌를 통해서 내가 느끼고 생각하고 옳다고 여겨지는 것들이 정말 그러할까 하는 의문을 가지고 뉴스레터를 시작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뇌가 만들어내는 현실이라는 정보
인지신경과학은 뇌활동이 어떻게 세상을 지각하고 인지를 발생시키는지 연구합니다. 즉 뇌가 이 세상을 어떻게 보고 듣고 느끼는가에 대한 연구인데요. 대다수의 연구 결과는 뇌가 객관적 사실이나 진실보다는, 편향되거나 주관적인 해석을 만들어내는 기관이라 말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는 같은 환경, 같은 상황에서 같은 경험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타인과 너무도 다른 내용으로 인식하곤 합니다. 우리가 살아오면서 차곡차곡 저장해 온 신념이나 믿음, 교육의 내용이나 경험에 따라 타인과 다르게 상황을 해석하기 때문인데요.
이러한 상황에서 객관적으로 실재하는 <리얼한 현실>이라는 것이 존재할까요? 그저 오직 나만이 경험한 주관적 현실만이 존재할 뿐이겠지요. 따라서 지금 우리가 경험하는 이 세계는 실재하는 객관적 현실이 아닌, 나의 뇌가 만들어낸 주관적 현실에 더 가깝다 하겠습니다.
만약 해석이 필요한 <경험>이 아닌 감각 경험은 어떠할까요? 우리 몸을 통해서 실시간 보고 듣고 느껴지는 이 감각 경험에도 뇌의 주관적 해석이 개입할까요?
그렇습니다. 내가 지금 보고 있는 것 또한 객관적 실제가 아닐 수도 있습니다. 뇌는 객관적 실제는커녕 다양하게 많은 감각왜곡 오류, 즉 착시현상 들을 통해 우리의 지각을 이끕니다.
몇 년 전 인터넷에서 회자되었던 이른바 <드레스 색깔 문제>가 그 예입니다. 같은 원피스를 놓고 누구는 흰색-골드 원피스로, 누구는 파랑-검정 원피스로 보여 논란을 일으켰던 이 에피소드는, 빛의 파장과 관련해 어느 시각 세포가 활성화되느냐에 따라 같은 원피스도 다르게 보일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알려주었습니다.
논란이 되었던 사진은 왼쪽의 사진입니다. 오른쪽 사진은 논란을 잠재우기 위해 공개한 실제 원피스 사진인데요. 여러분들은 왼쪽 사진의 드레스가 어떤 색으로 보이시나요?
흰-금 원피스로 보는 사람은 사진을 '(역광에 의해서) 그늘진 드레스'라고 뇌가 판단을 해서 자체적으로 보정을 한 색이며, 파-검 원피스는 뇌가 사진을 '밝은 빛을 비춘 드레스'라고 판단한 결과라는 것입니다.
같은 색을 보더라도 사람마다 뇌가 보정해주는 값이 다르면 다르게 볼 수 있다라는 것이죠. 그렇다면, 지금 내가 보고 있는 <현실>도 진짜 리얼한 현실이 아닌 뇌가 <보정>해 낸 결과가 아닌지 의심해 보지 않을 수 없지요.
결국 우리가 지금 경험하는 이 세계는 뇌가 해석하고 편집, 보정해서 만들어낸 세상입니다. 문제는 뇌가 세상을 만드는 시스템에 많은 헛점이 존재한다는 것이지요. 사고로 절단되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다리의 아픔을 여전히 느끼기도 하고 조현병 환자들은 존재하지 않는 사물을 보기도 하고, 자신에게만 들리는 소리를 듣기도 합니다. 우리가 듣기에는 너무도 이상한 조현병 환자들의 주장이, 그들 입장에서는 리얼한 현실인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실제로 이들은 자신의 감각기관을 통해 무언가를 보고 듣고 경험하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우리를 통째로 속여서 한순간 우리를 혼란과 위험 속으로 밀어 넣기도 하는 뇌의 위험한? 능력. 조현병보다 더 이해할 수 없는 뇌의 오류를 소개해 봅니다. 바로 안톤증후군(Anton's syndrome)이라는 증상입니다.
안톤증후군 : 시력기능을 상실했음에도 앞을 볼 수 있다고 믿는 현상
어느날 50대 남성이 화가 잔뜩 난 채 가족들의 손에 이끌려 의사를 찾아왔습니다. 그의 주장은, 자신은 멀쩡한데 가족들이 자신을 '장님' 취급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얼마 전 큰 교통사고를 당해서, 일상생활 중에 사소한 문제가 조금 있었다고 합니다. 계단을 제대로 보지 못해서 굴러 넘어지거나 부주의로 물컵을 깨뜨리거나 가구에 걸려 넘어지는 등등. 하지만 그건 아직 컨디션이 모두 회복되지 않은 탓일 뿐인데 가족 모두가 자신을 장님 취급한다며 분노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사람은 현재 앞을 보지 못하는 상태가 분명했습니다.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후두엽의 시각처리 신경에 문제가 생겨 더이상 앞을 볼 수 없는 상황이었지요. 하지만 환자는 여전히 자신의 시각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강하게 항변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어찌된 일일까요?
안톤증후군은 뇌가 오랜시간 저산소증 상태에 놓여있거나, 뇌졸중, 뇌손상 같은 문제로 갑자기 후두엽의 기능이 상실되어 더이상 앞을 보지 못하는 상태를 말합니다.
문제는 뇌가 갑작스럽게 시각정보를 처리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이러한 혼란을 보상하기 위해 뇌 스스로가 시각적 환각을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익숙한 가족의 목소리가 들리면, 뇌는 기억 정보를 통해 가족의 모습을 만들어냄으로써 환자가 실제로 가족을 보고 있다고 믿게 만드는 것입니다.
환자는 지금 이 순간의 현실을 자신의 눈을 통해 보고 있다고 믿고 있지만, 그가 보는 건 뇌가 지금 이 순간 입력되고 있는 청각이나 후각, 촉각 등의 감각 정보에다 과거의 시각 정보를 합성해 마치 지금 이 순간의 시각 정보인 양 만들어낸 뇌의 환상입니다. 하지만 그가 보고 있는 건 과거의 이미지를 토대로 합성한 이미지이기에 지금의 현실과는 차이가 납니다.
이 차이 때문에 많은 환자들이 다치거나 위험에 처하기도 하는데요.
예를 들어, 안톤증후군 환자를 익숙한 길거리로 인도하면 그의 뇌는 과거의 길거리 기억 정보에 현재 들려오는 청각, 촉각 등등을 결합해 현실을 창조해 냅니다.
그리하여 환자 스스로가 자신이 익숙한 길거리를 보면서 걷고 있다는 착각을 만들어내지만 그가 보고 있는 길거리는 뇌가 만들어낸 이미지여서, 자신의 옆을 지나치는 사람을 보지 못해서 부딪치거나 사물에 걸려 넘어지거나 합니다.
하지만 뇌는 그러한 사실조차 사물을 보지 못해 생긴 사고가 아니라 자신이 잠깐 한눈을 팔아서라고 확신하게 함으로써 그가 보고 있는 세상이 진짜 세상이 아님을 믿을 수 없도록 방해합니다.
만약 여러분이 안톤증후군 환자라면 어떠한 심정일까요?
나는 지금 분명히 두 눈을 통해 익숙한 내 공간, 내 가족들의 모습을 보면서 대화를 하고 있는데, 가족과 의사는 내가 지금 보고 있는 현실이 진짜 현실이 아니라고 말한다면, 그 말을 그대로 믿을 수 있을까요?
실제로 안톤증후군 환자들은 자신의 증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데 많은 혼란과 갈등을 겪는다고 합니다.
그들에게 명백한 시각 장애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뇌는 가짜 시각적 정보를 생성하거나, 볼 수 있다고 확신 시켜서(우리는 눈을 감고 잠을 자는 상황에서도 리얼한 현실 같은 꿈을 꾸지요!) 자신의 증상을 받아들이기까지 심각한 심리적, 정서적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고 합니다.
뇌가 만들어낸 믿을 수 없는 나?
이러한 뇌의 감각 왜곡은 조현병 환자나 안톤증후군 환자 같은 특별한 케이스에서만 생겨나는 것이 아닙니다. 보통의 삶을 살아가는 평범한 우리의 삶 또한 뇌가 만들어낸 세상 안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뇌의 기능이 얼마나 건강하게 작동하는지에 따라 많은 영향을 받게 됩니다.
우리 뇌는 한 개인이 살아오면서 경험하고 느낀 것, 배운 것, 적응한 것 등 모든 것을 패턴화 해서 개성적인 하나의 존재를 만들어냅니다. 즉 내가 몸담고 경험하고 있는 이 세계는 나의 뇌가 지금까지의 내 삶을 반영해서 만들어낸 주관적인 세계인데요. 대부분 이 세계는 자기중심적인 관점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즉 우리의 세계는 대체로 편견과 편향이 가득하며 편협하고 자기중심적이며 자만하고 부도덕하기까지 합니다!
<뇌 마음대로>의 저자 코델리아 파인은 말합니다. 과연 우리의 뇌를 믿어도 될까? 노우! 우리가 안다고 생각하는 것들 중 대부분은 사실과 다르다고.
물론 코델리아의 주장이 우리 뇌를 절대 믿어서는 안된다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뇌가 만들어내는 고정관념이나 편향적 생각, 치우친 결정을 있는 그대로 수용해서는 안된다는 의미입니다. 특히 나를 괴롭히는 고질적인 이슈들은 더더욱 말이죠.
예를 들어 이런 것입니다. 모든 문제의 잘못을 자신에게서 찾는 사람들은 이러한 생각이 뇌가 만들어낸 패턴임을 인지해야 합니다. 그래서 왜 내가 이러한 생각을 갖기 시작했는지 돌아보고 좀더 균형감 있는 생각으로 바꾸어야 합니다.
모든 잘못을 타인의 탓으로 돌리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왜 내 주변에는 나에게 나쁜 영향을 미치는 사람만 있는지 한번쯤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때로 내게 나쁜 영향을 준 사람들의 긴 목록을 적어보는 것도 방법입니다.
어느순간 내가 얼마나 황당한 이유로 남들을 탓하고 타인에게 책임을 전가하는지 눈치챌 수 있습니다. 이 모두가 오랫동안 나의 뇌가 구사해온 사고패턴의 결과일 수 있습니다.
'나'와 '뇌' 분리하기
좀더 적극적으로 나의 뇌패턴을 알아보고자 한다면, 뇌파를 이용한 뇌기능 분석을 하는 것도 도움이 됩니다. 뇌의 정보를 처리하고 의사결정하는 뇌의 패턴에 따라 우리는 부정적인 사람이 되기도 하고 불안이 높은 사람이 되기도 하고 예민한 사람, 고집불통인 사람이 되기도 합니다.
우리의 뇌가 어떻게 행동하는지 알고 싶다면, 머릿속에서 재잘대는 생각을 관찰해 보는 것도 도움이 됩니다. 나의 머릿속에서 울려오는 목소리를 '나'의 목소리가 아닌 '뇌'의 목소리로 생각하면서, 이 목소리가 주로 하는 이야기를 들어보는 것도 방법입니다.
또 나의 뇌가 주로 생각하는 내용의 주제가 무엇인지 관찰해 보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너무 자주 목표달성과 성과에 매달려 있다면 왜 나의 뇌가 이 주제에 관심을 기울이는지 생각해 봄으로써 조금은 균형 잡힌 시각에서 내 삶을 바라볼수 있게 됩니다.
만약 어떠한 결정을 앞두고 있다면, 그 결정에 치우친 점은 없는지 왜 그러한 결정을 하려고 하는지 한걸음 떨어져 생각해 보는 것도 방법입니다.
내 생각을 '나'와 분리해 '뇌'의 생각으로 관찰할 수 있게 되면 과거의 습관적인 행동 패턴에 휩쓸리는 것을 제어할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거기서부터 새로운 사고패턴, 문제해결 패턴을 학습해 나갈 수 있게 됩니다.
이것이 우리가 뇌에 대해 좀더 관심을 가져야 할 이유입니다.
오늘 레터에서는 우리의 생각과 느낌, 행동, 삶의 모든 것을 만들어내는 뇌에 대해 이야기해 보았습니다. 이 뉴스레터를 통해 우리의 사고패턴, 행동양식 등에 대해 좀더 균형 잡힌 시선으로 관찰해 보시길 권합니다.
우리가 옳다고 느끼고 최선이라 느끼는 것이 '진짜'가 아닐 수도 있으니까요!
그럼 힘찬 새해 한 주 보내시길 바라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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