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가 죽었다고 생각했습니다>의 저자 질 볼트 테일러Jill Bolte Taylor는 미국의 유명한 뇌신경해부학자입니다. 37세 나이에 좌반구 기능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는 뇌졸중을 경험했고 8년간의 노력 끝에 다시 제자리로 복귀한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입니다. 이러한 자신의 경험을 TED 강연과 책으로 소개함으로써 세계적인 명성을 얻기도 한 테일러 박사.
오늘 루핀의 첫 레터에서는 갑작스런 뇌출혈로 좌뇌 기능이 마비되면서 겪었던 테일러 박사의 놀라운 경험담을 소개해 드림으로써, 뇌기능이 보통사람의 삶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을 가져보고자 합니다.
신경세포, 뇌출혈로 인해 기능을 상실하다
1996년 12월 어느날 아침, 그녀 나이 37세, 테일러 박사 뇌에서 갑작스런 좌반구 뇌출혈이 발생합니다. 당시 하버드 의과대학에서 인간의 뇌에 대한 연구와 강의를 진행하던 그녀는 뇌출혈로 쓰러진지 4시간 만에 병원응급실로 이송하게 되는데요.
고작 4시간만에 그녀는 걸을 수도, 말을 할 수도, 읽고 쓰는 것도 완전히 불가능한 상태가 되어버립니다. 뇌혈관이 터져 쏟아져 나온 피가 신경세포들을 덮침으로써 세포들이 피의 홍수에 잠겨 제기능을 상실했기 때문입니다.
뇌에서 첫 출혈이 있던 순간을 그녀는 이렇게 묘사합니다.
이후 그녀는 몸이 자신과 분리되는 것 같은 이상함 감각을 느꼈고, 몸이 제대로 말을 듣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알아챕니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저절로 손과 팔이 앞뒤로 흔들리고 있었으니까요. 거실에서 욕실로 가는 동안에 몸의 움직임이 너무나 부자연스러웠고 계속해서 경련이 일어난 것처럼 팔다리가 실룩거렸습니다. 뇌의 균형감각이 고장나기 시작하면서 똑바로 서 있는 것초차 힘든 상황이 되었습니다.
그녀는 뭔가 자신의 뇌에 문제가 발생했음을 직감합니다.
뇌기능 손상으로 인한 감각 왜곡 현상
욕실로 들어가 수도꼭지를 틀자, 테일러 박사의 귀에는 물소리가 너무도 크고 강하게 들렸다고도 합니다. 마치 폭포 앞에 서있는 것처럼.
감각을 처리하는 뇌기능에 문제가 생기면 흔하게 발생하는 현상입니다. 즉 감각이 왜곡되어서 전달되는 것이죠. 감각이상을 겪고 있는 자폐스펙트럼에서 자주 볼 수 있는 현상이기도 하고요.
테일러 박사의 경우, 뇌혈관에서 터져나온 혈액들이 신경세포들을 집어삼키면서 뉴런의 기능들이 망가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우리가 너무도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일상의 기능들도 하나둘 꺼지기 시작합니다. 마치 거대한 아파트에 정전이 찾아오듯이, 차례차례, 순식간에.
이후 뇌의 출혈 범위는 더욱 넓어져 좌뇌 여 러곳을 강타했고, 계속해서 신경세포들의 손상이 이어졌습니다. 병원에 도움을 요청하는 전화를 하려고 가까스로 전화기를 들었지만 전화 사용법이 머릿속에서 사라집니다. 정신을 차리려고 무진장 애를 쓰며 다이얼을 돌렸지만 이번엔 전화번호가 떠오르지 않았죠. 다행히 손가락이 익숙한 동료의 전화번호를 기억하고 있어 전화는 연결되었지만, 테일러박사는 자신이 말을 할 수 없는 상태임을 깨닫습니다. 성대에 명령해서 말을 하도록 하는 언어기능마저 사라지고 있었으니까요.
이어 그녀는 몸의 경계를 인식하는 기능이 사라지면서 자신이 그저 하나의 덩어리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어느 순간, 끊임없이 울려오던 뇌의 '재잘거림'이 뚝 끊어지고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기이한 침묵, 고립감이 찾아왔습니다. 언어를 통해 만들어진 자아인식 기능마저 오프OFF 상태가 되어버린 것.
자아의 목소리가 꺼져 버린 기이한 침묵의 세계
처음 뇌출혈이 시작된 아침 이후 4시간 만에 병원으로 이송된 그녀는 성공적으로 응급수술을 마쳤지만 수술 직후 제대로 움직이지도, 시각이나 청각 자극 처리도, 기본적인 의사소통도 할 수 없는 어린 아기의 상태가 되었습니다.
4시간 동안 피의 홍수에 잠긴 신경세포들이 기능을 상실한 결과였고, 이러한 뇌세포의 기능상실은 하버드 의과대학 교수의 뇌에서 운동, 기억, 언어 등 앗아갑니다.
이후 8년이라는 회복 과정을 거쳐 테일러 교수는 각고의 노력 끝에 다시 자신의 일터로 돌아오게 됩니다. 영영 가망 없을 줄 알았던 이전 삶으로 다시 복귀하게 된 것입니다. 뇌의 놀라운 회복력과 마주하게 되는 순간이지요! (그녀가 행한 재활의 비밀은 다음에 들려드리릴게요!)
질 볼트 테일러 박사의 경험은 우리가 잊고 있었던 뇌의 중요성을 실감나게 느끼게 합니다. 언어기능이나 운동기능 같은 것 외에도 의자에 바르게 앉거나 탁자 위에 놓인 컵을 바로 집어드는 능력부터 내 손과 발이 나의 일부라는 인식(!)과 함께 지금 내가 보고 듣고 있는 모든 것들이 다 뇌의 정보처리 기능 덕분이라는 것을.
또 우리가 일관된 나의 성격을 유지하는 것도 뇌기능 덕분입니다. 뇌에 종양이 생기면서 자신의 성격이 변화해가는 과정을 기록한 조현병 전문가 바버라 립스카의 책 <나는 정신병에 걸린 뇌과학자입니다>을 보면 뇌가 망가지면서 나의 인식과 감정, 성격도 얼마나 달라질 수 있는지를 생생하게 경험할 수 있습니다.
'나'는 뇌가 만들어낸 유일무이한 작품
결국 우리는 860억개의 신경세포가 만들어낸 헤아릴 수 없이 복잡하고도 섬세한 기능들의 '합'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우리의 개성은, 내가 살아온 환경, 경험, 상호작용했던 사람들과의 모든 기억과 정보들을 엮어 만들어낸 '뇌의 작품'일지도 모릅니다.
저는 6년간 뇌파피드백 분야에 몸담고 있으면서 사람들의 뇌가 어떻게 활동하고 있는지 실시간 관찰할 기회를 얻었습니다. 이 기간 동안 약 1200여 회의 뇌파 피드백 세션을 통해 사람들의 뇌파가 활동하는 모습을 지켜보았습니다.
특히 저마다의 사연과 상황 속에 처한 클라이언트들의 뇌활동을 비교 관찰하면서, 뇌의 활동 즉 뇌의 기능이 한 사람의 삶에 미치는 영향력을 매일 목격하였습니다.
제가 경험한 뇌는, 다양한 악기가 모여 아름다운 선율을 만들어내는 오케스트라 같았습니다. 뇌가 균형과 조화를 유지하며 건강하게 기능할 때, 우리는 최상의 컨디션으로 이 세상을 맘껏 탐험할 수 있습니다. 긍정과 감사, 공감과 이해, 최고의 수행능력과 퍼포먼스, 지혜로움과 창의적 사고, 자신을 새롭게 계발하고 발전시켜 나가는 것, 삶을 소중히 여기고 주도적으로 살아가는 것! 이 모두가 뇌의 기능과 관련 있습니다.
뇌를 통한 자기이해 그리고 건강한 삶
때로 뇌는 좌충우돌 하며 우리 삶에 그늘을 드리우기도 합니다. 잠을 잘 자지 못하는 뇌, 불안한 뇌, 예민한 뇌, 집중력이 낮고 충동적인 뇌. 하지만 우리가 뇌에 관심을 가지고 우리 일상을 건강하게 유지하고 지탱할 수 있다면, 뇌는 얼마든지 자신의 기능을 회복하고 우리 인생의 성장과 변화를 뒷바침해주는 든든한 파트너로 돌아오기도 합니다. 마치 질 볼트 테일러 박사의 사례처럼.
저는 <루핀의 브레인 스토리>를 통해 뇌가 우리 일상에 미치는 영향들을 소개해 보고자 합니다. 또 뇌를 건강하게 유지시키는 방법들을 소개하고, 자기 이해와 자기 발견을 돕기 위한 다양한 브레인 인사이트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자신을 이해하는 첫번째 방법은 뇌를 이해하는 것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작은 레터 안에 나를 이해하고 알아가는 과정을 충실히 채워보겠습니다.
첫 항해에 나선 <루핀의 브레인 스토리>에 함께 해준 모든 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전하며, 우리의 여정을 통해 보다 건강한 삶, 건강한 자신을 가꾸어나가는 통찰과 아이디어를 얻길 바라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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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ren
"자신을 이해하는 첫번째 방법은 뇌를 이해하는 것"이라는 말이 와닿습니다! 좋은 글 감사해요 😊
루핀의 브레인 스토리
첫 댓글 달아주셨네요! 감사합니다..^^ 피렌님의 뉴스레터도 기대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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