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에게 좋은 사람이 되고 싶은가요?

구독자님 스스로에겐 좋은 사람인가요?

2025.07.09 | 조회 17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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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의 편지

대학원생들을 위한 마음챙김의 공간, 작지만 따뜻한 쉼표

 

안녕하세요 구독자님,

7월의 첫 한주는 잘 보내셨나요? 구독자님이 계신 곳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서울은 제게는 너무너무 더운 날씨예요. 더운 곳에 계시다면, 더위먹지 않게 건강 유의하시길 바라요!

유월 달 말까지 제출해야하는 논문을 마무리하고 이번 주는 사람들을 많이 만났어요. 오랜만에 보는 분들도, 학계 선배님들도, 처음 뵙는 분들도 있었어요. 그래서 그럴까요? 유난히 이번 주에는 제가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보이는지 돌아보게 되는 대화들도 많았어요. 대체로 결이 비슷했는데, 제가 주장이 확실하다는 뉘앙스였어요.

“누나는 확실한 사람이죠.”

“박사님, 굉장히 명확하시네요.”

“요즘 소위 말하는 MZ같은 면이 있으시네요.” (나이로는 MZ인 것이 사실인걸요..)

이런 코멘트들이 조금 낯설었어요. 그래서 생각이 복잡했어요. 이게 좋은 걸까? 아닌걸까?

 대화를 곱씹다보니 버스를 타고 이동하는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더라구요.

모두에게 좋은 사람이면서 나 스스로에게도 좋은 사람일 수 있을까?


Yesman (Yes-woman?)

저는 늘 좋은 사람이고 싶었어요. 착한 딸이고, 공부잘하는 모범생이고 싶었어요. 선생님들과 교수님들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고, 친구들에게도 좋은 사람이고 싶었어요. 친구들이랑 메뉴를 정할 때도 상대방이 뭘 먹고 싶은지 먼저 물어봤고, 누군가 부탁을 하면 제 시간에 조금 무리가 되더라도 그걸 먼저 했었어요.

언제부터 그랬나 생각해보면. 저희 부모님은 제게 ‘네’라고 대답하기를 원하시며 키우셨어요. “어른들이 말하면 ‘네’라고 대답하고 해야지”라는 말을 종종 들었어요. 그 때마다 ‘어른들도 틀릴 수 있지. 도대체 왜?’라고 생각했지만요.

그 시절의 유교문화가 강했던 사회적인 분위기를 반영하는 것기도 했을 거예요. 어쩌면 제가 그런 말을 들었던 세대의 끝자락에 있을 것 같고, 구독자님은 그런 세대가 아닐지도 모르겠어요.

여튼 그러한 사회적, 양육환경과 제 성향이 맞물려 저는 착한아이 컴플렉스를 갖게 됐어요.

모두에게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보니, 누군가에게 부탁을 받았을 때 거절하기 쉽지 않았어요. 거절했다가는 밉보일 것 같은 그런 기분이 들었어요. 누군가에게 미움 받는 게 얼마나 무서웠는지 몰라요. 그래서 자꾸 다른 사람들의 감정을 과도하게 읽으려고 노력하고, 나의 니즈보다 다른 사람의 니즈를 더 우선순위에 놓기도 했던 것 같아요.

그런 패턴은 대학원 때도 당연히 이어졌구요.

예를 들어, 지도교수님이 논문을 혼자 쓰고 싶은지 교수님을 2저자로 같이 공저로 하고 싶은지 고민해보라고 했을 때도 혼자 오만가지 생각을 했던 거 같아요.

‘교수님 뜻이 뭐지?’ ‘교수님이 원하는 게 뭘까?’

교수님이 정말 상관없다고 하셨는데도 정말 고민을 많이했어요. 괜히 교수님이 원하는 것과 반대를 선택했다가 미움을 받을까봐 온갖 조건들을 다 고민했던 거 같아요.

그러면서도 그렇게 걱정을 사서 하는 스스로에게 현타가 오기도 했어요.

‘내가 왜 이렇게까지 고민을 하는 걸까? 교수님이 상관 없다는 데 내가 이렇게까지 고민해야할 일인가.’

결국 그 논문은 어디에도 투고하지 않고 제 드라이브에 여전히 앉아있지만 (반성합니다..) 그 때를 계기로 내가 다른 사람들을 만족시키려는 성향이 강하다는 것과 그러한 행동이 과연 좋은 것인가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게 됐어요.


착한아이 콤플렉스 탈피하기

다행히 지도교수님과 저의 커미티 교수님들은 제가 계속 yesman으로 살게 두지 않으셨어요. 늘 거절을 해도 된다고 말씀을 해주셨고, 제 생각과 제 의견을 존중해주셨어요.

끊임없이 ‘왜’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하도록 훈련시켜주셨던 것 같아요. 단순히 연구 내용에 국한한 것이 아니라, 그 바깥의 문제를 대할 때도 그런 생각을 많이 하도록 도와주셨어요. 그리고 ‘나를 챙기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계-속 들었고, 듣는 걸 넘어 교수님들이 그 모습을 스스로 보여주셨어요.

그 시간과 경험들이 쌓이니 저도 조금씩 바뀌더라구요.

조금씩 더 내게 중요한 것, 내게 의미가 있는 것, 내가 이해가 되고 납득이 되는 것에 가치를 부여하고 존중하게 되었어요. 말 그대로 스스로를 조금 더 존중하기 시작했어요.

한 번은 협업을 하다 한 부분의 ‘왜’가 이해가 되지 않아서 질문을 하다가 좀 난감한 상황에 처하게 된 적이 있어요. 저는 대학원 때 하던 것처럼 한 건데, 아무래도 제가 그냥 조용히 시키는 일을 하기를 원하셨나봐요. 상황이 어려워져서 커미티 교수님 중 한 분께 상의를 했는데, 그 때 교수님이 해주신 말씀이 참 위로가 됐어요.

지혜야, 박사과정을 통해서 배워야하는 것은 스스로 생각하는 법이야.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 결정하는 법을 배우는 과정이 박사과정이라고 생각해. 그래서 네가 왜 이걸 해야하는지 묻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것이고, 나는 그게 바로 우리 교육의 산물이라고 생각해.

내가 잘못한걸까, 흔들리던 마음을 다시 잡아주었던 말이었어요.


‘적을 만들지 말아요’라는 조언에 대한 생각

비슷한 시기에, 학계의 선배 교수님에게 들었던 말이 있어요.

적을 만들지 말아요. 그게 제일 중요해요.

무슨 의미인지 알아요. 누군가 나를 좋게 본다고 끌어올리지는 못해도, 나를 나쁘게 보는 한 사람이 나를 끌어내릴 수는 있다는 말씀이죠. 그렇다보니 모두가 그 적을 만들지 않기 위해, 모두에게 좋은 사람이 되고자 하는 마음을 갖게 되는 것인 것 같구요.

일견 맞는 말 같지만, 실제로는 위계가 강한 환경에서는 더 취약한 위치에 있는 사람이 어려움을 겪기 쉬운 구조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가진 게 많은 사람은 좋은 사람이 되기 쉽지만, 이제 시작하는 사람들은 기회 하나하나가 소중하니 더욱 더 거절은 힘들어지는 구조가 아닐까 싶어요. 그래서 참 어려운 상황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내가 이번에 안 도와드리면, 안 해드리면 다음 번에는 나에게 기회가 없을까봐’라는 그 마음이 너무나도 당연한데, 그 마음이 쉽게 이용당하는 것 같아 안타깝고 속상해요. 한 박사님이 거절하시기가 어려워 강의를 받다보니, 다음학기 강의가 20학점이 넘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많이 놀랐어요. 수업을 한 두개만 하기에도 품이 많이 드는데, 일곱 여덟과목을 한 학기에 가르치면 정말 바쁘고 다른 일은 거의 하기 힘든 상황이 아닐까 싶어요.

어쩌다 우리는 이렇게 ‘거절하면 그 사람이 나에게 나쁜 감정을 품을거야’라는 걱정이 당연해진 세상에서 살고 있는걸까요?


작은 반항들

제가 하는 작은 반항들이야 호수에 던져진 돌 하나만큼의 의미만큼도 안될지 모르지만, 저는 종종 제가 생각했을 때 제 우선순위가 아니거나 납득이 되지 않는 일은 거절을 해요. 저는 제가 대학원 때 배운 레슨을 잊고, 다시 그 전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거든요.

회복에 집중해야 하는 시기라 중요한 국제 저널 논문 공저 제안을 고사하기도 했고, 제 전문성을 충분히 발휘하기 어렵다고 판단해 제 인사권에 영향력이 있는 분의 요청을 정중히 거절한 적도 있어요. (한 교수님에게 이야기 했더니 말이 끝나기도 전에 ‘왜 그러셨어요’라는 말씀이 나오시더라구요.)

저도 이렇게 거절을 하기까지 정말 많은 고민을 하고, 여러 선배님들과 지인들의 조언을 구하기도 해요. 그러고 결국 어렵지만 제 결정을 내리고 노력하려는 과정에 있어요. 그런데 이런 부분들이 학계에 계시는 몇몇 분들에게는 제가 “MZ처럼” 보이는 부분인가봐요. (개인적으로 그렇게 좋아하는 표현은 아니지만 그대로 인용해보았어요.)

거절을 몇 번 해보면서 드는 생각은 두 가지예요. 첫째, 내가 걱정했던 것에 비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때가 많다는 것, 둘째, 그럼에도 내가 일을 잘해서 내가 또 필요하면 다시 부를 거라는 믿음이에요. 그리고 그렇게 제가 시키는 대로 일을 할 사람이라고 기대하는 사람이라면 저도 같이 일하기 어렵다는 생각도 있어요. (조금 맹랑한가요?)

어쩌면 제가 아직 경험이 부족해서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부분이 있을 수도 있고, 앞으로 더 많은 상황을 겪으면서 생각이 달라질 수도 있을 거예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저는 제 생각, 제 감정, 제 우선순위를 존중하고 싶어요.

당연히 저만 생각하겠다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다른 사람들을 우선순위에 두느라 저 스스로를 존중하는 것을 놓치고 싶지 않아요. '내가 존중하지 않는 나를, 누가 존중해줄까?' 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편안하게 부탁하고 편안하게 거절하는 사회

그리고, 조금씩 거절을 너무 개인적인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그 사람의 상황이 안됐겠거니’라고 생각할 수 있는 서로 편안하게 부탁하고 편안하게 거절할 수 있는 그런 사회가 되기를 소망해봐요.

모두가 자신보다 남을 우선순위에 두어야하는 사회보다는, 스스로에게도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는 그런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구독자님도, 스스로를 미뤄두고 다른 사람만 우선순위에 놓고 있지는 않은지. 다른 사람에게 좋은 사람이 되고자 스스로에게는 잘 해주지 못한 건 아닐지, 한 번 생각해보시는 한 주가 되셨으면 해요.

 💡 오늘의 작은 실천                    

이번 주는 이런 생각을 함께 해보면 어떨까요? 

  1. "나는 지금 나 자신을 어떻게 대하고 있을까?" 다른 사람을 위해 나를 희생하고 있지는 않나요?
  2. 이번 주에 거절하고 싶었지만 하지 못한 일이 있다면, ”나는 왜 거절하지 못했을까?" 상대방이 실망할까 봐서? 기회를 놓칠까 봐서? 나쁜 사람으로 보일까 봐서?
  3. "내가 정말 걱정하는 일이 실제로 일어날 확률은 얼마나 될까?" 생각해보면 우리 걱정의 대부분은 현실화되지 않아요.

P.S. 물론 이런 생각들도 제 개인적인 경험에서 나온 것이고, 상황이나 환경에 따라 다를 수 있다는 점도 충분히 이해해요. 다만 저에게는 이런 과정이 필요했고, 혹시 비슷한 고민을 하시는 분들께 작은 위로가 될 수 있다면 좋겠어요.

다음 주에 다시 만날 때까지, 당신의 하루가 조금 더 가벼워지길 바랄게요.

당신을 응원하며,

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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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졍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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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months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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