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구독자님
지난 한 주 한국은 정말로 비가 많이 오는 한 주였어요. 계시는 곳에 부디 침수피해가 없으셨길 바라요. 이번주부터는 또 다시 무더위라고 하니, 열사병 냉방병 조심하시구요!
저는 꾸역꾸역 논문을 쓰고 있어요. 이제 열흘도 남지 않았어요. 그 와중에 컨디션이 안좋아서 어제 신생아처럼 하루종일 잤어요. 과연 이 논문 끝낼 수 있을것인가..?
다음엔 절-대 7월 말에 마감인 논문은 쓰지 않을래요. 저는 여름이 너무너무 힘들거든요.
(그렇다고 일 하기 좋은 계절은? 존재하지 않음)
부자가 된다면 뭐 할거야?
얼마 전에 읽었던 책의 한 구절에서 시작해볼까해요.
누군가는 내일 죽는다면 오늘 뭐 할 거야?, 다음 달 에 죽는다면 지금 뭐 할 거야? 라는 질문을 하는데, 사실 그건 너무 극단적이고 상상이 잘 안돼서.
얼마 못 산다는데 너 뭐 하고 싶냐고 물으면 다 필요 없고, 그냥 사랑하는 가족들이랑 있어야겠다고 생각할 거잖아요.
반면 돈이 진짜 많으면 뭐 할거야?라고 하면 되게 곰곰이 생각해보게 되거든요.-조수용, 《일의 감각》
읽으면서 끄덕끄덕하게 되더라구요. 작가님이 하시는 말씀처럼 ‘내일 죽는다’는 전제는 너무나도 강력해서 어느 정도 정답 아닌 정답이 정해져있는 것 같아요. 가족들과 시간을 보낸다던가, 뭐 하고 싶었던 일탈을 해본다던가. 포기하는 마음도 좀 들고, 하루라는 시간은 너무 짧은 것 같기도 하구요.
하지만, 돈이 많아진다라. 그건 좀 흥미가 당기는 질문이에요.
구독자님은 돈 걱정할 필요 없이 돈이 많다면 뭘 하고 싶으신가요?
로또가 된다면, 지금 일을 계속할거야?
이 질문하고 비슷하게 제가 친구들한테 종종 묻는 질문이 있어요.
로또가 된다면, 지금 하는 일을 계속할거야?
하겠다는 친구들도 있고, 당장 그만둔다는 친구들도 있어요. (물론, 요새 로또 1등 당첨금액이 얼마 안된다는 ST스러운 답을 주는 친구들도 있구요...)
구독자님은 어느 쪽이신가요?
한 친구는 ‘교수’라는 직업이 본인의 정체성의 큰 부분이라 자기는 로또가 되더라도 교수를 계속 하겠다고 하더라구요. 치과의사인 친한 언니도 일을 하지 않으면 너무 무료하지 않겠냐며 일을 계속 하겠다고 하더라구요.
반명 다른 언니는 “세상에 재밌는 게 얼마나 많은데, 일을 왜 해?”라고 말하구요. 저는… 굳이 말하자면 후자예요.
사실 '지금 하는 일'이라는 게 모호해서 대답이 좀 어려운데, 저는 돈이 아주 많아진다면 연구는 취미로 하고 싶어요. 저는 연구가 싫지는 않아요. 좋아하는 부분이 더 많아요.
물론 최근 몇 주는 논문을 쓰기 싫어하는 중이긴 하지만, 이렇게 급하게 써야하는 것이 아니라 충분히 시간을 들여서 생각해볼 수 있다면 글의 논리와 짜임을 바라보는 일을 좋아해요. 수집한 인터뷰 데이터에서 테마를 찾는 일도 좋아하는 편이구요. 그리고 연구들 사이에 갭을 찾아내고, 도움이나 변화가 필요한 부분에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것도 이 일의 매력적인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곁에서 지켜본 교수님의 삶은… 연구가 차지하는 부분은 너무나도 작아보였어요. 행정일, 수업, 지역사회 일, 각종 회의 등등.. 하시는 일들이 엄청 엄청 많죠.
어떤 교수님은 제게 work-life-balance라는 말이 싫다며, work-life-”equivalence”라고 하셨어요. 허허… 워라밸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저는 그저 웃었습니다…
그 때, 지도교수님이 언젠가 제게 해주신 말씀이 생각났어요.
지혜야, 나는 네가 교수가 됐을 때 네가 일을 잘 못 할 거라는 걱정은 하나도 없어. 다만, 일이 너의 전부가 될까 그게 걱정이야. 절대 일이 너의 전부가 되게 두지 마.
개개인의 가치관이기에 두 교수님의 상반된 의견 중에 정답은 없어요.
다만, 오랜시간 저를 본 지도교수님은 제가 그렇게 일에 잡아먹히기 쉬운 사람이라는 것도, 그리고 그렇게 지낼 때 제가 행복할 사람이 아니라는 것도 아셨을 거예요. 그래서 이런 조언을 해주셨다고 생각해요. 물론, 교수님께도 중요한 가치관이시기도 하구요. 자꾸 일 생각만 하려는 저를 계속 꺼내주신 게 지도교수님이셨으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수'라는 직업이 본인의 삶에 큰 부분 혹은 전부가 된 교수님들을 많이 보다보니, 그리고 환경을 자꾸 알게되다보니, 제가 교수가 된다면 제 삶의 다른 부분들을 놓치고 살게 되지 않을까 싶어요. 그리고 그게 후회로 남을 것 같아요.
(물론, '교수가 된다면 "일=삶"이 되지 않게 살아야지'라고 매일 다짐하지만 그게 쉬운 일은 아닐테니까.)
앞으로 어떻게 바뀔지 모르지만 지금 제게는 뉴스레터를 통해 누군가에게 위로를 전하는 일이 논문을 쓰는 일만큼 혹은 그보다 더 보람있게 느껴지는 일이기도 해서 이 일을 놓치고 싶지 않구요. (지금도 논문 기한 때문에 레터를 조금 초조한 마음으로 쓰게 되어 마음이 좋지 않아요🥺)
그 외에도 저는 하고 싶은 일들이 많아요. 재밌는 것도, 궁금한 것도 너무나도 많아요. 작년에 쉰다고 해놓고서 브런치에 글을 쓰기 시작하고 스레드도 시작하고 세미나와 커피챗도하고, 올해는 뉴스레터를 시작하고, 연구비를 쓰고, 여행을 다녀온 것 처럼 저는 아마 일을 그만둔다고 가만히 아무것도 안하고 있을 사람은 아니에요. 끊임없이 일을 벌릴 사람일 거예요. 다만, 돈에 대한 걱정이 없다면 그 일을 벌리는 데 더 자유로움이 있겠죠? 지금도 해보고 싶은 일들이 있지만, 부자가 아니라 새로운 일보다는 해야하는 본업의 일이 우선 순위거든요…
로또가 된다면 지금 하는 일을 하냐 마냐의 질문에 당연히 정답은 없어요. 사람마다 만족감을 어디서 얻는지, 무엇이 중요한 가치인지는 모두 다르니까요. 다만, 만약 로또가 되었을 때 내가 지금 하는 일을 그만두고 싶다는 답이 나왔다면 그 이유가 무엇인지는 한 번 들여다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그렇다면 정말 자유로워진다면?
저는 여행을 다닐래요. 지난 봄에 그랬듯, 한 두 달쯤, 낯선 곳에 가서 지내면서 그 지역 구경을 하고 사람들 관찰을 하며 지내고 싶어요. 그 지역의 음식을 먹어보고, 사람들이 사는 환경에 잠깐 들어갔다가 나오고 싶어요. 천천히 여행을 다니며 예쁜 영상들을 찍어 나누고, 여러분들에게 쓰는 이 레터와 글을 계속 쓸래요.
지난 여행에서도 쓰고 싶은 글들이 많았는데, 거기서도 막판에 일정이 바빠졌고 한국에 돌아와서는 더 바빠지다보니 완성하지 못하고 흘려보낸 글들이 많아요. 제목만 써두었는데, 이제 다시보니 '무슨 생각으로 이 제목을 써두었지?'하는 글들도 있어 아쉬워요. 그런 글들을 천천히 기록해나가면서 쫓기지 않는 그런 여행을 하고 싶어요.
글쓰기가 어느 새 저한테 중요한 일이 되었더라구요. 지금도 논문 마감 열흘 남았는데, 이 레터를 먼저 쓰고 있는 걸 보면요… 물론 논문도 글을 쓰는 일이긴 하지만, 이렇게 형식과 말투에 구애받지 않고 제 생각을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이 공간이 정말 소중해요. 누군가에게 아주 잠깐의 순간이라도 위로가 되었다는 그 말들이 제게 너무나 소중하거든요. 그래서 사실 제게 지금 가장 우선순위 중 하나는 사실 이 레터예요. (50일동안 유럽여행하면서도 한 번도 안 빠트렸어요🫡)
그렇게 여행을 다니다가 한국에 들어와서 소중한 사람들과 시간도 보내고, 작업실을 하나 마련해 글도 쓰고 큰 캔버스에 그림도 그리고 싶어요. 그렇게 한 두 달 한국에서 정비하고 또 떠나고. 그런 삶이 지금 제가 돈이 많다면 살고 싶은 삶인 것 같아요.
딱, 지난 봄의 제가 살았던 삶이에요. 그 봄에 정말 행복하다는 이야기를 달고 살았고, ‘어떻게 하면 이 삶을 계속 유지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진지하게 해보기도 했어요. 안타깝게도 아직은 방법을 찾지 못했지만요.
지금 당장 시도할 수 있는 것들
조수용 작가님은 이 질문 끝에 하고 싶은 것이 매거진을 운영하시는 것이었고, ‘그렇다면 내가 그걸 왜 지금 못 해?’라는 마음으로 남들이 모두 매거진이 돈이 안된다고 해도 시작하셨다고 해요.
구독자님은 어떠신가요?
구독자님이 부자가 되었을 때 원하는 삶의 부분 중에 지금 당장 시도 할 수 있는 부분이 있으신가요?
생각해보니 저도 불가능한 상황은 아니더라구요. 저도 연구비로 있는 자유로운 포지션이라 어쩌면 다음학기가 이런 삶을 다시 한 번 시도해 볼 기회가 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경제적으로 자유로운 것은 아니지만 틈틈히 여행다닐 수 있고, 원하는 대로 레터도 매주 쓸 수 있는 환경에 지금 있다는 것에 감사해야겠죠? 그 가운데서 또 새로운 길을 만날지도 모른다는 기대도 품어보고 있어요.
어쩌면 우리가 진짜 필요한 건 무한한 돈이 아니라 내가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 아는 것 그리고 그걸 시도해볼 용기인지도 모르겠어요. 그리고 그 선택권의 일부는 지금도 우리가 가지고 있는 건 아닐까요?
💡 오늘의 작은 실천
1. 돈에 구애받지 않는다면, 나는 무엇을 하고 싶을까?
2. 그 중에서 지금 당장, 또는 올해 안에 시도해볼 수 있는 작은 부분이 있을까?
3. 그걸 시작하려면 내가 첫 번째로 해야 할 일은 뭐지?
다음 주에 다시 만날 때 까지, 당신의 하루가 조금 더 가벼워지길 바랄게요.
당신을 응원하며,
지혜
😊 함께 나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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