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 기업의 가치 체계를 정립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변화’라는 키워드에 대해 깊이 생각하는 계기를 가졌습니다.
이 기업이 가진 가치가 과연 무엇인지를 찾는 일도 쉽지 않았지만, 어느 정도의 수준에서 얼마나 변화해야 할까를 결정하는 데도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과연 기업의 가치는 진화해야 하는 걸까요? 혁신되어야 하는 대상일까요? 그 사이에서 많은 생각이 오갔습니다. 쉽지 않은 질문이었습니다. 더구나 이 기업이 가진 가치 중에 하나가 ‘혁신’이다 보니 더욱 어려운 문제가 됐습니다. 시장에서 살아 남기 위해 가죽을 벗겨 낼만큼의 각오를 다지는 상황에서 과연 이 기업의 가치는 어떤 변화를 선택해야할지를 결정해야 했습니다.
갈수록 생각이 꼬이다가 제가 새롭게 내린 일차적 해법은 기업이 가진 ‘철학적 가치’와 ‘사업적 가치’를 분리해서 생각하자는 것이었습니다. 기업이 지금까지 수십년간 지켜오고 이어 온 정신의 근본인 철학적 가치는 훼손하지 않고 잘 보존하고 이어가야합니다. 그와는 별개로 새롭게 만들어낸 사업적 가치는 기업의 생존과 자립을 위해 계속해서 발전시켜 가야할 것입니다.
이러한 가치 체계의 변화의 정도는 브랜드 리뉴얼과도 연관지어 생각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브랜드 시각적인 부분 또한 가치 자산에 해당하니까요. 저는 이 부분도 시각적인 변화이지만 앞 서 말했던 철학적 가치의 수준에서 논의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만큼 굉장히 신중한 고려가 있어야 합니다. 고객들을 놀래킬만한 신선한 변화가 무조건 좋지는 않는거죠. 광고로는 얼마든지 놀래켜도 좋지만, 브랜딩으로 고객들을 놀래키는 행위는 브랜드의 격을 떨어지게 하는 활동일 수 있습니다. 더구나 그게 스타트업이 아니라, 몇 십년 혹은 몇 백년된 회사라고 한다면 더욱 그렇죠.
만일 나의 오랜 연인이나 지인이 어느 날 뜻밖의 새로운 변화를 주고 내 앞에 나타났다고 생각해봅시다. 여러분들은 어떤 생각이 드나요? 처음엔 완전히 새롭고 파격적인 모습이 좋아 보일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그게 오래갈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건 원래 내가 그 사람을 좋아했던 포인트가 아니었으니까요. 어색하고 억지스런 변화라면 얼마가지 못해 금새 역효과가 나타날 것입니다. 변화를 대하는 상대도 혼란스럽고 불안해할 것입니다.
130년이 넘는 코카콜라, 50년이 넘는 스타벅스의 로고의 변화를 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가까이에서 보면 언뜻 다 비슷해 보이지만 멀리서 그 전체의 타임라인을 조망해 보면 아주 조금씩 진화하고 있는 모습을 한눈에 볼 수 있습니다. 오리지널리티를 훼손하지 않으면서 시대감각에 맞게 변화해 온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오랜 역사의 대부분의 위대한 브랜드들은 이렇게 비주얼에 있어서도 혁신적 변화보다는 점진적인 변화를 채택해왔습니다.
그만큼 이들은 사업을 장기적인 관점에서 1,2년이 아니라 10년 후를 바라보고 계획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싶습니다. 눈 앞에 이익을 위해 당장 써야할 자원을 계획없이 쓰는 게 아니라, 장기적인 플랜을 세우고 우리의 자원을 어떻게 써야할까를 정말 신중하게 고민하고 있다는 것이 로고의 변천사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물론 당장 하루 앞의 생존도 보장받기 힘든 많은 스타트업들에게는 이런 생각이 사치일 것 같기도 합니다. 하지만 어떤 기업이나 꿈꾸는 지속 가능적인 성장과 영속적인 발전을 위한다면 이런 변하지 않는 기업의 철학적 가치에 대해서도 깊이 있게 생각해 봐야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러한 정신의 바탕은 구성원들에 변화가 생겨도 아무리 외부 환경이 바뀌어도 기업을 든든히 지탱해 줄 근간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글. 우현수 @woohyunsoo
브랜드 컨셉 빌더 [브릭] BRIK.co.kr을 설립해 브랜드 스토리와 스타일 구축을 돕고 있습니다. 저서 <일인 회사의 일일 생존 습관>을 실천하며 더 나은 미래를 차곡 차곡 쌓아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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