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이번 주는 마케팅 예산 얘기를 하려고 합니다. 정확히는 "예산이 없다"는 말이 올해 왜 이렇게 자주 들리는지, 그 말이 정말 사실인지에 대한 얘기입니다. 조사 숫자를 하나씩 뜯어보다 보니 제 생각이 꽤 바뀌었습니다.
올해 상반기에 마케터들을 만나면 열에 아홉은 예산 얘기부터 꺼냈습니다. 없다, 줄었다, 내년엔 더 줄 것 같다. 저도 그런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가트너가 올해 봄에 CMO 401명을 조사한 결과를 보고 고개를 갸웃했습니다.
마케팅 예산은 매출 대비 7.8%였습니다. 작년은 7.7%. 오히려 조금 늘었습니다. 듀크대 CMO 서베이는 9.0%로 잡았고요. 어느 조사를 봐도 삭감이라고 부를 만한 숫자는 없었습니다.
그런데 같은 조사에서 CMO의 56%가 "올해 전략을 실행할 예산이 없다"고 답했습니다. 예산은 그대로인데 돈이 없다고 합니다. 이 모순이 이번 주 뉴스레터의 출발점입니다.
제가 내린 잠정 결론은 이렇습니다. 예산이 부족한 게 아니라, 예산이 이동했습니다. 그것도 회수 경로가 없는 곳으로요.
같은 조사에서 CMO들은 마케팅 예산의 15.3%를 AI에 쓰고 있다고 답했습니다. 100억 예산이면 15억입니다. 작지 않은 돈이죠. 그런데 AI 역량이 성숙 단계 이상이라고 답한 조직은 30%뿐이었습니다. 나머지 70%는 개발 중이거나 초기 단계이거나, 아예 시작을 안 했습니다.
준비 안 된 70%가 예산의 15%를 AI에 붓고 있다는 뜻입니다. 저는 이게 "돈이 없다"는 말의 진짜 출처라고 봅니다. 돈이 없는 게 아니라 돈이 묶여 있는 겁니다. 언제 돌아올지 모르는 곳에요.
여기서 한 가지 흥미로운 대조가 있습니다. 준비된 30%는 AI에 더 많이 씁니다. 15.3%가 아니라 21.3%입니다. 그런데 이들은 회사로부터 예산을 더 받습니다. 매출의 8.9%, 평균보다 1.1%포인트 많습니다.
저는 이 순서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돈을 많이 받아서 AI에 많이 쓴 게 아닙니다. AI에 쓴 돈이 언제 어떻게 돌아오는지 CFO에게 설명할 수 있으니까 예산을 더 받은 겁니다. 반대로 "돈이 없다"는 56%는 그 설명을 못 하고 있는 것이고요.
결국 예산 문제는 또 측정 문제로 돌아옵니다. 다만 올해는 양상이 좀 다릅니다. 예전엔 광고비 ROI를 못 재서 문제였다면, 올해는 AI 투자 ROI를 못 재는 바람에 광고비까지 흔들리는 구조입니다.
얼마 전 한 스타트업 마케팅 팀장과 얘기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올해 AI 툴에 쓴 돈을 다 합쳐 보니 팀 예산의 18%였다고 하더군요. 본인도 놀랐답니다. 구독료 몇 개, 파일럿 두어 개, 외부 교육 한 번. 하나하나는 작았는데 합치니까 컸습니다. 그리고 그 18%가 뭘 만들어냈냐고 물으니 대답이 한참 늦었습니다. 저는 이 팀이 특별히 잘못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올해 대부분의 팀이 이렇습니다. 조사 결과가 그걸 증명하고 있고요.
두 번째로 제가 주목한 숫자는 예산을 옮기는 속도입니다.
가트너는 CMO들에게 예산을 얼마나 자주 재배분하는지 물었습니다. 분기에 한 번이 38%로 가장 많았고, 실시간으로 옮기는 곳은 14%뿐이었습니다. 월간으로 5% 이상 움직이는 곳은 20%였고요.
왜 이게 중요하냐면, 예산이 정체된 상황에서 성과를 올리는 방법은 사실상 하나뿐이기 때문입니다. 더 싸게 사는 건 한계가 있습니다. 광고 단가는 제가 정하는 게 아니니까요. 남는 건 잘 되는 곳으로 빨리 옮기는 것뿐입니다.
분기별로 옮기는 조직은 1년에 네 번 판단합니다. 안 되는 캠페인에 3개월 동안 돈이 흘러갑니다. 월간이면 열두 번입니다. 같은 7.8%라도 열두 번 판단하는 팀과 네 번 판단하는 팀의 연말 성적표는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한 가지가 더 겹칩니다. 마테크 예산이 5년 만에 최저인 19.4%로 떨어졌습니다. 2021년엔 26.6%였습니다. 그 돈은 페이드 미디어로 갔습니다. 페이드 미디어는 31.4%로 5년 만에 최고입니다.
빨리 옮기려면 어디가 되고 안 되는지 보여야 합니다. 그 눈이 마테크입니다. 그런데 눈을 팔아서 광고비를 샀습니다. 저는 이 결정이 지금은 합리적으로 보여도 내년에 청구서로 돌아올 거라고 봅니다.
잠깐 다른 조사를 하나 더 볼게요. 듀크대 CMO 서베이에서는 마케터의 70% 이상이 단기 성과에 집중하고 있다고 답했습니다. 마케팅 효과가 지속되는 기간은 중앙값이 6개월이었고요. 경기 전망은 2020년 이후 가장 비관적입니다.
이 숫자들이 위의 얘기와 어떻게 연결되냐면요. 예산이 정체되면 CFO는 빨리 회수되는 것부터 승인합니다. 마케터는 6개월 안에 숫자가 찍히는 광고에 돈을 몰아넣습니다. 페이드 미디어가 5년 최고로 올라간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단기 성과는 나옵니다. 그런데 브랜드 인지도 목표를 넘긴 CMO는 작년 57%에서 올해 49%로 줄었습니다. 6개월짜리 성과를 사느라 1년짜리 자산을 파는 거래가 업계 전체에서 동시에 일어나고 있는 겁니다.
한 가지 더 눈에 띈 게 있습니다. 줄어든 마테크 예산 안에서도 구조가 바뀌고 있습니다. 쓴 만큼 내는 종량제 툴에 예산을 늘린 CMO가 56%, 줄인 곳은 9%뿐이었습니다. 저는 이 방향 자체는 좋다고 봅니다. 고정비가 변동비로 바뀌면 ROI 안 나오는 툴은 저절로 정리되니까요. 다만 실시간으로 사용량을 통제하는 장치를 갖춘 곳은 41%였습니다. 나머지는 월말 청구서를 보고서야 얼마 썼는지 압니다. 변동비는 눈이 있을 때만 무기가 됩니다. 눈이 없으면 그냥 새는 구멍이고요.
세 번째 얘기는 회사 규모와 측정의 관계입니다. 올해 5월에 나온 조사를 보면 마케팅 믹스 모델링, 그러니까 MMM 도입률이 회사 규모별로 극단적으로 갈립니다. 연간 마케팅 지출 1억 달러 이상은 89%가 돌리고, 200만 달러 미만은 11%만 돌립니다.
보통 이걸 "돈이 있어야 측정한다"로 읽습니다. 저는 반대로 읽습니다. 측정하니까 예산을 지켰습니다. 1억 달러를 매년 승인받으려면 근거가 있어야 하니까요. 작은 회사는 측정을 안 하니까 예산이 안 늘고, 예산이 안 느니까 측정에 못 씁니다. 악순환입니다. 다만 이 순환을 끊는 데 꼭 수억짜리 MMM이 필요한 건 아닙니다. 채널별로 쓴 돈과 돌아온 숫자를 매달 한 장에 정리하는 것부터가 측정입니다. 작은 회사가 예산을 못 지키는 건 모델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 한 장이 없어서인 경우가 훨씬 많습니다. 그 한 장이 있어야 CFO 앞에서 "이 채널은 늘리고 저 채널은 줄이겠다"는 말을 할 수 있습니다.
이 순환을 끊는 방법에 대해 원문에서 세 가지 원칙을 정리했습니다. AI 예산에 회수 기한을 붙이는 법, 재배분 주기를 얼마나 당겨야 하는지, 그리고 마테크를 왜 절대 깎으면 안 되는지에 대한 얘기입니다. 특히 MMM을 돌리는 회사조차 AI 검색을 변수로 넣은 곳이 4곳 중 1곳도 안 된다는 대목은, 지금 예산 모델이 이미 틀린 지도일 수 있다는 걸 보여줍니다.
뉴스레터니까 이번 주에 바로 해볼 수 있는 것 하나만 드리겠습니다. 올해 팀 예산에서 AI라고 이름 붙일 수 있는 항목을 전부 한 줄로 적어 보세요. 툴 구독, 파일럿, 컨설팅, 교육, 데이터 정비까지요. 그리고 각 줄 옆에 두 칸을 만듭니다. "언제 돌아오는가"와 "어떤 지표로 돌아오는가". 두 칸을 채울 수 있는 항목이 절반이 안 되면, 여러분 팀도 56% 쪽입니다. 예산이 부족한 게 아니라 예산이 묶여 있는 겁니다.
그 다음엔 예산을 마지막으로 옮긴 날짜를 확인해 보세요. 3개월 전이면 분기형입니다. 그게 나쁘다는 게 아닙니다. 다만 같은 돈으로 열두 번 판단하는 경쟁사가 있다는 걸 알고 있어야 합니다.
"예산이 없다"는 56%의 말은 사실이 아니라 증상입니다. 병명은 원문 마지막에 있습니다. 여기까지만 읽으면 반쪽입니다.
원문 보기: https://medium.com/@hoon_16083/cmo-56-%EA%B0%80-%EC%98%88%EC%82%B0%EC%9D%B4-%EC%97%86%EB%8B%A4%EB%8A%94%EB%8D%B0-15-3-%EB%8A%94-ai%EB%A1%9C-%EC%83%9C%EB%8B%A4-7b47f08f4e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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