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주간모기영 138호

[최은의 책과 영화] 예술, 쓸모없을 때 가장 빛이 나는 아름다움 - 오스카 와일드의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1890)과 <도리안 그레이>(2009)

2024.07.01 | 조회 231 |
0
|

주간모기영

모두를위한기독교영화제|Christian Film Festival For Everyone|혐오 대신 도모, 배제 대신 축제

[최은의 책과 영화]

예술, 쓸모없을 때 가장 빛이 나는 아름다움

오스카 와일드의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1890)과 <도리안 그레이>(2009)

 

도리언 그레이는 자신의 초상화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얼마나 슬픈 일인가! 나는 점점 늙어서 끔찍하고 흉측해지는데 이 그림은 늘 이렇게 젊은 모습 그대로일 테니.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6월, 바로 오늘 모습 그대로겠지...... 반대로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는 항상 젊은 채로 있고 이 그림이 나 대신 늙어 가면 좋을텐데. 그럴 수만 있다면 뭐든 다 바칠 수 있는데! 그래, 그럴 수만 있다면 내 영혼이라도 줄 수 있는데!”

오스카 와일드,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더클래식, 2012)에서

 

 자기 초상화를 보고 자기가 그렇게 아름다운 사람이라는 것을 처음 알게 된 청년이 있었어요. 그의 이름은 도리언 그레이입니다. 화가인 바질 홀워드는 도리언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그를 그려놓고 단번에 그 작품이 걸작이라는 것을 알아보았어요. 하지만 그는 도리언의 초상화를 전시에 내놓지 않겠다고 말합니다. 그 초상화에는 화가 자신이 너무 많이 투영되어 있다면서요. 절친인 헨리 워튼 경은 그를 비웃었어요. “헐. 당신은 이 잘생긴 청년이랑 전혀 안 닮았거든?!” 이런 반응이었죠. 바질의 생각은 단호했습니다. 모든 화가들이 감정을 담아 그린 그림은 어떤 모델을 그리든지 화가 자신의 초상화일 수밖에 없고 그 그림은 화가의 영혼을 담고 있다고 주장했어요. 

바질만큼이나 자기 초상화에 한 눈에 반한 도리언은 그 앞에서 이 젊음이 영원할 수 있다면 영혼이라도 팔겠다고 빌었어요. 신기하게도 그의 바람은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도리언 대신 초상화가 늙어가게 되는 건데요, 문제는 단지 노화가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초상화의 얼굴이 점점 흉측하게 일그러져간다는 거였어요. 초상화는 도리언이 욕망에 충실하게 되면서 급격히 추하게 변합니다. 반면 중년의 나이에도 미성년 시절의 젊음과 순결한 아름다움을 그대로 지니고 있는 실물 도리언은 세상의 온갖 아름다움에 탐닉하면서 매혹적이면서도 위험한 신사가 되어갑니다.   

헨리 워튼은 도리언이 욕망의 화신으로 성장하도록 부추긴 인물입니다. 특히 그가 도리언에게 전해준 책 한 권이 큰 영향을 미쳤죠. 헨리는 그에게 시대착오적인 청교도주의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가르쳤어요. 경험의 열매가 아니라 열광적인 경험 자체가 목표가 되는 새로운 쾌락주의가 필요하다고 했지요. 그의 가르침에 따라 도리언이 욕망에 눈을 뜨게 되자, 헨리는 자기가 그를 새롭게 창조했다고 느낍니다. 

결국 도리언의 이야기는 파국으로 끝이 나죠. 영혼의 바로미터이며 최후의 ‘양심’이 되어 자신을 괴롭히는 초상화에 대한 증오심과 그것이 담고 있는 진짜 자기 모습에 대한 환멸, 그리고 이 모든 일의 원흉이 된 그림을 그린 예술가에 대한 원망으로 광포해진 도리언은 자신이 바질을 찔러 죽였던 그 칼로 초상화를 찢습니다. 이후 사람들은 도리언의 집 다락에서 흉측한 몰골로 얼굴조차 알아볼 수 없게 된 시신을 발견했어요. 그 자리에는 집주인이 너무나 아름다웠던 시절을 그대로 담고 있는 눈부신 초상화도 있었지요. 청년 도리언이 그렇게도 바랐던 영원한 젊음과 아름다움은 그렇게 한 점 예술로 남았습니다. 

오스카 와일드,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베스트트랜스 옮김, 더클래식, 2012.
오스카 와일드,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베스트트랜스 옮김, 더클래식, 2012.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은 오스카 와일드의 유일한 장편소설이면서 그를 유미주의자와 탐미주의자의 선봉으로 문학사에 기록하게 한 결정적인 작품입니다. 19세기 말엽, 오스카 와일드는 작가로서의 탁월한 재능 뿐 아니라 유려한 외모와 눈에 띄는 복장으로 시대를 풍미했으며 나이 마흔에 동성 연인의 부친으로부터 고소당해 징역형을 살고 나와 타국에서 생을 마감했어요. 그의 삶이 너무도 유명한지라, 세상 모든 아름다음과 쾌락을 추구했던 도리언에게서 작가의 이미지를 찾지 않기란 오히려 어려워 보입니다. 하지만 도리언의 스승 헨리 워튼 경과 예술가인 바질 홀워드 또한 작가의 모습을 닮은 것도 사실이겠지요. 과연 오스카 와일드는 도리언 그레이가 자신이 되고 싶어 하던 존재이며, 헨리 워튼 경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자신의 모습이고, 바질 홀워드는 실제 자신의 모습이라고 말했다고 하네요.  

오스카 와일드(1854-1900)[이미지출처: pixabay]
오스카 와일드(1854-1900)[이미지출처: pixabay]

“어떤 사람이 유용한 무엇인가를 만들었어도 자신이 만든 것을 스스로 칭찬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를 용서할 수 있다. 쓸모없는 것을 만들었을 때 그것에 대해 유일하게 변명하는 방법은, 자기 자신이 그것을 열렬히 좋아하는 것이다. 모든 예술은 진정 쓸모가 없다.”

책의 서문에서 오스카 와일드는 위와 같이 말했습니다. 도리언의 퇴폐적이고 향락적인 삶과 동성애 관련 묘사가 문제되어 시달린 것을 의식하며, 예술가로서 자신은 자기가 좋아하는 것들과 자신처럼 열렬히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인물을 그려냈을 뿐이라고 항변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니 예술이 쓸모 있어야(즉, 도덕적이거나 교훈적이어야) 한다며 혼내거나 다그치지 말라고 말이지요. 

그런데 진실한 예술이 지닌 신비한 힘이 여기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오스카 와일드가 자신의 작품에 대해 무엇이라 말하든 우리는 이 작품에서 끝없는 욕망과 쾌락, 외적인 아름다움만을 추구하는 사람의 출발과 그 말로를 지켜보며 나름의 판단과 교훈을 얻게 되지 않던가요. 실상 그는 예술이 진정으로 보여주고 싶은 것은 관객이지 삶 자체가 아니라고 말하기도 했는데요, 여기서 우리는 작품의 의미는 관객에게서 완성된다는 현대 비평과 해석학의 주장을 19세기 작가로부터 듣습니다. 물론 관객 편에서 발굴된 예술의 의미 또는 ‘쓸모’가 도덕적 교훈이어야 하는지의 문제는 별개라고 생각합니다만, 작가가 스스로 앞세우거나 강요하지 않아도 예술가가 아름다움을 만들어내는 본연의 역할, 즉 예술 자체에 가장 충실할 때 최고의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다는 점만은 분명해 보입니다.  

<도리안 그레이>(올리버 파커, 2009) [이미지출처: 씨네21]
<도리안 그레이>(올리버 파커, 2009) [이미지출처: 씨네21]

오스카 와일드의 작품을 원작으로 한 올리버 파커의 영화 <도리안 그레이>는 보자마자 매력에 빠져들게 되는 이 유명한 초상화의 주인공을 눈으로 볼 수 있는 기회입니다. <나니아 연대기> 시리즈에서 캐스피언의 왕자를 연기한 벤 반스가 도리언 그레이를 맡았고, 콜린 퍼스가 헨리 워튼 경을 연기했어요. 도리언의 욕망이 과열되는 과정과 초상화의 흉측한 변화를 시각적으로 재현하면서 19금 판타지 호러 장르로 만들기 좋은 작품이라 그만큼 기대도 컸겠지요. 

[이미지출처: 씨네21]
[이미지출처: 씨네21]

하지만 파커의 영화는 도리언의 파멸만으로는 모자란 듯, 애초에 그를 부추긴 헨리에게도 처벌을 가하는 과욕을 숨기지 않습니다. 실은 그가 가장 큰 벌을 받은 것처럼 보이는데요, 자신의 딸 에밀리(레베카 홀)가 도리언과 사랑에 빠지게 되기 때문이죠. 뭐가 문제냐고요? 순수하고 지적이고 열정적인 에밀리의 사랑을 받기에는, 도리언은 여전히 도리언이거든요. 

[이미지출처: 씨네21]
[이미지출처: 씨네21]
▲ 필자의 다른 글 보기 [이미지 클릭]
▲ 필자의 다른 글 보기 [이미지 클릭]

 


[모기영 × IVF 미디어 스토리보드 워크샵] 성료하였습니다!

인물의 얼굴과 동작을 포착하는 간단한 드로잉에서 시작해서 스토리보드의 목적과 활용, 시나리오를 시각화하는 작업 실습까지, 영화 영상 제작과 관련한 광범위한 영역을 단기간에 체험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습니다.

4주 동안 진중한 호응으로 함께해주신 수강생 여러분과 풍부한 현장경험과 잘 준비된 강의로 좋은 안내자가 되어주신 강사 류현 작가님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본 사업은 서울시문화정책과의 후원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소중한 정기후원 감사드립니다 ❤️

* 2024년 6월 1-30일 기준

강나루 강도영 강원중 강종철 구귀남 길섶교회 김대현 김동석 김명관 김미지 김소혜 김영준 김재균 김지향 김진선 김현주 김혜영 김희라 대지교회 류현 문형욱 박성민 박일아 박재우 박준형 박진숙 박현선 박현홍 배재우 서경희 송정훈 신동주 신원균 심에스더 엄태미 윤선정 이강희 이동은 이범진 이신석 이유리 이유혁 이정식 이호정 장다나 정민호 지은실 채송희 최규창 최은 최재용 최현 한송희 한유정 님

💛 신규후원 - 채두리, 장준호, 권명희 💛

보내주신 소중한 후원금에 감사드립니다.

모기영 후원안내 ( ▲ 이미지를 클릭하세요)
모기영 후원안내 ( ▲ 이미지를 클릭하세요)

▲ 신청링크 - 이미지 클릭
▲ 신청링크 - 이미지 클릭

다문화 영화 상영&강연회, 두 번째 시간은 7월 13일(토) 오후 4시, 최은 영화평론가의 다문화 영화강연으로 진행됩니다.

영화 <컬러풀 웨딩즈>와 <나의 그리스식 웨딩> 등에서 결혼식을 둘러싼 여러 문화의 충돌과 타협의 과정을 보며 다양성과 포용의 문제를 생각합니다.  

가족은 가장 원초적이고 친밀한 ‘다문화’ 공동체입니다. 

*본 사업은 서울시문화정책과의 후원으로 진행됩니다.


 

일 년의 절반이 지나가버렸다는 사실에 깜짝 놀라는 사이, 서늘함과 무더위가 오락가락인 장마철이 다시 돌아왔네요. 마음까지 눅눅해지지 않으시기를 바라며 멀리서 또 가까이서 안부를 전합니다. 

모기영은 이 시대 예술이 예술 하도록 지지하고 아름다움에 대한 감각을 지켜나가기 위해 애쓰겠습니다. 

늘 고맙습니다. 

 

최은
편집디자인 강원중

 

2024년 7월 1일 월요일

모두를위한기독교영화제 주간모기영

 


주간모기영에 바라는 점이나 아쉬운 점이 있다면
아래 버튼을 눌러 소중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

 

Copyright © 2023 모두를위한기독교영화제, All rights reserved

 

다가올 뉴스레터가 궁금하신가요?

지금 구독해서 새로운 레터를 받아보세요

✉️

이번 뉴스레터 어떠셨나요?

주간모기영 님에게 ☕️ 커피와 ✉️ 쪽지를 보내보세요!

댓글

의견을 남겨주세요

확인
의견이 있으신가요? 제일 먼저 댓글을 달아보세요 !
© 2024 주간모기영

모두를위한기독교영화제|Christian Film Festival For Everyone|혐오 대신 도모, 배제 대신 축제

자주 묻는 질문 서비스 소개서 오류 및 기능 관련 제보

서비스 이용 문의admin@team.maily.so

메일리 사업자 정보

메일리 (대표자: 이한결) | 사업자번호: 717-47-00705 | 서울 서초구 강남대로53길 8, 8층 11-7호

이용약관 | 개인정보처리방침 | 정기결제 이용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