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주간모기영 166호

[원중캉의 생태주의로 영화읽기] 기후, 전통, 여성 - <바넬과 아다마>가 그려낸 비극

2025.06.28 | 조회 3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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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중캉의 생태주의로 영화읽기

기후, 전통, 여성 - <바넬과 아다마>가 그려낸 비극

<바넬과 아다마>는 세네갈 국적의 영화로서는 처음으로 한국에 개봉한 영화입니다. 영화를 연출한 라마타 툴라예 사이 감독은 세네갈 혈통이지만 프랑스에서 나고 자라며 전문적인 예술 교육을 받았지요. 이 영화는 그녀의 장편 데뷔작임에도 불구하고 높은 예술성을 인정받아 칸느와 아카데미에 연이어 초대되며 주목을 받았습니다. 한국에서는 제25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서 소개되며 잔잔한 반향을 일으켰지요. 툴라예 감독의 깊은 예술적 조예는 영화속에 그대로 녹아드는데, 미술사로 하자면 뭉크와 고흐, 문학적으로는 토니 모리슨, 영화적으로는 테런스 맬릭의 작품들로부터 영감을 받았다고 밝혔습니다. 그래서인지 영화를 보는 내내 아름다운 화면과 대비되는 비극적 구조, 몽환적이면서도 으스스한 분위기가 관객을 압도합니다.

바넬과 아다마 포스터 (출처 : Cannes Film Festival)
바넬과 아다마 포스터 (출처 : Cannes Film Festival)

영화의 주인공 바넬과 아다마는 세네갈의 외딴 마을에 살고 있는 젊은 부부입니다. 두 사람은 오직 서로만 바라보며 깊이 사랑하지만 남편 아다마가 촌장직을 물려받을 운명에 놓이게 되자 마을 밖 버려진 집으로 사랑의 도피를 꿈꾸게 되지요. 하지만 극심한 가뭄이 마을을 뒤덮고, 이웃들은 그것이 아다마가 신의 뜻을 거부해서 생긴 재앙이라 여기며 전통을 따를 것을 강요합니다. 가축들이 모두 굶어 죽고, 급기야 사람들마저 하나 둘 갈증 속에 목숨을 잃게 되자 아다마는 중압감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 마을의 촌장직을 받아들이게 되지요. 아마다와 함께 그린 꿈을 송두리째 빼앗긴 바넬은 홀로 관습의 굴레를 거부하다가 결국 비참한 결말을 맞습니다. 영화는 가부장과 근본주의적 전통에 저항하다 끝내 질식당하고 마는 여성(들)의 비극을 텍스트로 삼고 있습니다.

자유와 저항을 꿋꿋이 이루어내는 바넬의 노랑색과 관습의 굴레를 짊어진 아다마의 푸른색이 미술적인 대비를 이룬다. (출처 : The New York Times)
자유와 저항을 꿋꿋이 이루어내는 바넬의 노랑색과 관습의 굴레를 짊어진 아다마의 푸른색이 미술적인 대비를 이룬다. (출처 : The New York Times)

영화를 보는 내내 안타까운 마음을 자아내는 것은 그 비극의 배경으로 깔린 기후위기라는 재앙입니다. 마을에 더 이상 비가 오지 않는 것도, 소들이 죽어나가는 것도, 사람들이 쓰러지고 공동체가 붕괴되는 것도 바넬과 아다마의 책임이 아니라는 것을 영화의 바깥에 있는 이들은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영화속에서 그러한 진실에 관해 눈을 뜨고 저항하는 이는 오직 바넬 뿐이지요. 그녀는 재앙의 이유를 과학적으로 설명해 낼 능력은 없지만, 가뭄이 찾아온 이유가 전통과 도덕에 관한 것은 결코 아니라는 사실을 직관적으로 느끼며 최선을 다해 항변합니다. 약한 존재들을 향해 새총을 쏘아대는 바넬의 소심한 폭력은 아무리 저항해도 벗어날 수 없는 현실에 대한 깊은 절망을 드러내지요. 툴라예 감독은 기후위기에 대한 자신의 깊은 우려가 영화에 반영되어있다고 설명합니다. 점점 말라붙는 바넬의 마음은 심각해지는 가뭄과 나란히 놓입니다. 영화는 우리가 데이터와 뉴스로만 듣던 남반구 국가의 기후 현실이 구체적인 공동체 속에서 펼쳐질 때 어떤 얼굴을 갖게 되는지를 보여줍니다. 자연에 절대적으로 의존하여 살아가는 세네갈 북부의 사람들에게 기후위기는 단순한 굶주림을 넘어 정신적 고통과 갈등, 심지어 가부장의 폭력성을 강화시켜 여성들의 자유를 억압하는 결과를 가져다주는 재앙이 될 수 있다는 것이지요.

(출처 : Cannes Film Festival)
(출처 : Cannes Film Festival)

아다마 : “왜 갑자기 날씨가 변했죠
마을 원로 : “사람들이 변했으니까”

(출처 : mostradecinemasafricanos)
(출처 : mostradecinemasafricanos)

마을 사람들의 속절없는 죽음 앞에서 고통스러워하며 질문을 던지는 아다마에게 어느 원로가 전한 이 짧은 대답은 본질적으로 깊은 진실을 담고 있습니다. 전례없는 가뭄이라는 재앙은 마을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 같이 한 개인이 전통을 거부해서 생긴 일은 결코 아니겠지요. 그러나 그것은 사람에 의해 생긴 재앙이라는 것은 분명합니다. 과학적으로 이야기하자면 북반구 부유국들이 산업화시대 이후 축적한 대기 중의 탄소농도 때문일 것이요, 윤리/사회적으로 말하자면 탐욕 앞에 통제를 잃은 권력자들이 형성한 불평등의 구조 때문일테니까요.

‘땅이 메마르며 시든다. 세상이 생기가 없고 시든다. … 땅이 사람 때문에 더럽혀진다. 사람이 율법을 어기고 법령을 거슬러서, 영원한 언약을 깨뜨렸기 때문이다’

(이사야 24:4-5)

성서의 예언자도 오늘날 우리가 맞닥드린 기후재앙이 어디에서 비롯 되는지를 정확히 겨냥하고 있습니다. 재앙은 신의 형벌이 아니라, 인간 편에서 먼저 언약을 깨뜨린 결과로 주어진다는 것이지요. 신과의 바른 관계가 깨어진 인간은 땅과의 관계에서도 실패합니다. 바넬이 꿋꿋이 외친 목소리를 빌리자면, 가뭄과 기후위기라는 재앙은 신의 뜻이 아니라 인간의 탐욕이 만든 고통인 것입니다.

(출처 : BAMPFA)
(출처 : BAMPFA)

바넬은 한 때 쿠란에 진심이었던 독실한 무슬림이었습니다. 그러나 전통과 도덕 안에서 그 해석을 제한해버리는 마을사람들의 근본주의적 신앙 앞에 방황하다 결국 마녀가 되기를 자처하며 투사로 변모하지요. 누군가 그녀에게 신의 뜻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더라면, 그녀의 내면에서 피어오르는 진실의 목소리와 알라의 목소리가 실은 상충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도와주었더라면, 바넬과 아데마의 결말이 어쩌면 좀 더 행복했을지도 모를 일이겠습니다. 오늘날 우리 교회의 모습 앞에서 기시감이 들지 않을 수 없는 풍경이군요.

기후위기로 인해 절규하는 남반구 민중들의 고통으로 이 영화를 읽을 때, 신의 자비를 구하는 기도가 마음 속에서 절로 터져나옵니다. 우리 모두의 마음을 돌이켜 땅을 회복하기 원하시는 창조주의 마음과 연결되게 해 달라고 말입니다.

(출처 : picturehous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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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학년2학기>시사회 성황리에 마무리!!

6월 마지막주 목요일, 홍대 상상마당 시네마에서 올해 첫 시사회가 열렸습니다. 자리를 가득채워주신 모기영 후원자, 주간모기영 구독자분들과 함께 이란희 감독의 <3학년2학기>를 보고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어보는 뜻 깊은 시간을 가졌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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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모영 2탄이 업로드 되었습니다! 

모기영이 추천하는, 모기영스러운 영화 2탄!

장다나 프로그래머가 추천하는 <내 사랑>(2017) 보고 가실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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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무리

<3학년2학기> 상영을 마친 후, 관객과의 대화시간에서 이란희 감독은 영화를 만드는 사람으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에 다음과 같이 이야기 했습니다. 비극을 겪은 당사자가 극장에서 보더라도 괜찮은 영화를 만드는 것, 그들의 상처를 직접적으로 표현하지 않더라도 지금 사회가 공기처럼 입고 있는 부조리와 편견의 시선이 무엇인지 생각해보게 하는 영화를 만드는 것이라고 말이죠. 

보이지 않던 것을 깨닫게 하고, 멀게 느껴졌던 것들을 내 눈앞의 것들로 바꿔놓는 것, 그리하여 변화의 흐름을 만드는 것, 이것이 이 시대 예술가들의 역할이 아닐까요. 

 

 / 강원중

편집디자인 /  모기영 편집부

2025년 6월 28일 토요일

모두를위한기독교영화제 주간모기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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