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중캉의 생태주의로 영화읽기
<블랙팬서:와칸다 포에버> (2022)
<블랙팬서>(2018) 이후 4년 9개월만의 속편으로 찾아온 <블랙팬서:와칸다 포에버>(2022)(이하 <와칸다 포에버>)는 그동안 블랙팬서를 기다려온 팬들의 뜨거운 관심을 받으며 2022년 연말을 장식했습니다. 특히, 오리지널 블랙팬서로서 대체불가능한 존재감을 지녔던 배우 채드윅 보즈먼의 때 이른 사망 이후 나온 속편이기에 과연 마블이 이 이야기를 어떻게 계승시켜 갈지가 세간의 관심이 되었지요. <와칸다 포에버>는 이러한 현실의 상황을 영화의 세계관에 유려하게 녹여냈을 뿐 아니라, 고인이 된 채드윅 보즈먼에 대한 장엄한 추모를 헌사함으로써 수많은 관객의 마음을 뭉클하게 했습니다.
<블랙팬서>와 <와칸다 포에버>에 연이어 흐르는 주제의식은 ‘용서와 평화'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오리지널 블랙팬서인 티찰라가 분노와 폭력으로 가득찬 킬몽거를 극복했다면, 이를 계승하는 새로운 블랙팬서(슈리) 또한 그의 내면에 흐르는 복수심을 극복하며 선대의 고결함을 계승한다는 점에서 두 영화는 동일한 메시지를 담고 있지요. <블랙팬서>와 <와칸다 포에버>를 모두 연출한 라이언 쿠글러 감독은 그동안 충실히 쌓아온 블랙시네마* 필모그래피를 통해 아프리카계 미국인으로서 말할 수 있는 주제의식을 영화 속에 담아 왔습니다. 그렇기에 <와칸다 포에버>속에는 역사적 아픔을 겪은 이들만이 가 닿을 수 있는 어떤 숭고함이 엿보입니다.
*블랙시네마 : 흑인 문화의 다양한 지형을 흑인의 시선으로 보여주는 작품을 뜻한다. 아프리카계 미국인이 주요 캐릭터로 등장하며 그들의 역사와 사회, 문화를 반영한 영화를 대개 블랙시네마의 범주에 넣는다.
[ 와칸다와 탈로칸이 공유한 슬픈 역사 ]
새로운 블랙팬서를 탄생시키기 위해 영화는 와칸다에 견주는 강력한 안티히어로를 등장시킵니다. 수중 세계 탈로칸의 국왕 네이머는 발목에 달린 날개로 하늘을 날고 물 속에서는 피부로 호흡하며 그 누구도 대적할 수 없는 막강한 파워를 자랑합니다. 특히 탈로칸은 그동안 오직 와칸다 내부에만 존재한다고 알려졌던 강력한 무기, 비브라늄을 바다속에 쌓아두고서 은밀히 세력을 확장해 왔지요. 와칸다와 탈로칸은 데칼코마니처럼 대조되는 세계입니다. 비브라늄이라는 천혜의 광물을 소유했다는 것, 세계에 자신들의 존재가 드러나는 것을 극도로 꺼린다는 것, 그리고 각자의 전통을 철저히 계승해왔다는 것은 모두 이 두 세계가 지닌 공통점들이지요.
이러한 유사성은 한편 와칸다와 탈로칸이 동일한 수탈의 상처를 지녔다는 것을 나타내기도 합니다. 마야문명을 모티브로 삼고 있는 탈로칸 왕국은 개척기 시절 스페인 침략자들의 대량학살을 피해 바다속으로 도망쳐 살아남은 민족이지요. 또한 와칸다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아프리카 대륙의 고통스러운 역사를 가슴 깊이 새기고 있는 나라입니다. 이들이 서방의 강대국들을 피해 철저한 고립주의를 고수하면서도 자신들의 고유한 문화와 전통을 소중하게 간직해 왔다는 것은 뼈아픈 침탈의 역사를 겪으면서 동일하게 형성된 관성이라고 여겨집니다. 와칸다와 탈로칸은 그동안 세계로부터 당해왔던 폭력에 대항해 서로 힘을 합쳐 더 큰 폭력으로 되갚을 것인지, 혹은 또 다른 길을 도모할지를 선택해야 하는 기로에 놓이게 되지요.
폭력이냐 상생이냐를 결정해야하는 순간, 슈리가 과거를 거슬러 회상하는 장면이 인상깊습니다. 침략과 수탈의 역사를 되감은 기억 속에는 이전에 와칸다와 탈로칸의 민중이 만끽했던 평화와 번영이 존재합니다. ‘스페인의 침략이 없었더라면, 서방국가들의 끝없는 야욕이 아니었더라면..’ 슈리는 그 뿌리 깊고 끝나지 않는 폭력을 극복하는 방법은 자신이 그 폭력에 잠식당하지 않는 것임을 인정합니다. 그리고 언젠가 폭력이 사라질 세상을 고대하며 고결한 선조들의 정신을 따르는 선택을 하게 되지요.
[ 생태계를 향한 자본의 식민주의적 폭력 ]
오늘날 우리 세계를 잠식하고 있는 폭력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다보면 결국 닿게 되는 지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초기 자본주의자들이 의도적으로 고안했던 식민주의적 사고입니다. 그렇게 시작된 폭력의 뿌리는 이제 대륙과 대륙을 넘어 온 땅과 바다의 자연세계까지 철저히 빨아들이기에 이르렀지요.
‘자연과 노동으로부터 빼앗아 더 많이 가져간다’는 식민자본주의의 공격성은 결국 우리의 세계를 생태적 대멸절에 이르게 하고야 말았습니다. 모든 것을 식민화하며 오직 확장과 성장만이 유일한 법칙인 듯 자연세계를 잠식해 온 근대 이후의 인류는 스스로 자멸의 위기에 이르러서야 이제껏 스러져간 존재들의 처지를 되돌아보고 있는 듯 합니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는 그 관성을 멈추지 못한 채 파멸을 향해 달려가고 있지요.
하루에 수백 종의 생물종이 멸종하고, 기후위기가 가속화하는 우리 시대의 풍경은 결국 다른 존재로부터 빼앗는 것을 정당화하는 식민자본주의의 정언명령을 극복하지 못하고서는 계속해서 나쁜 방향으로 흘러갈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얼마나 더 나은 선택들을 하고 있을까요?
[ ’식민개척자’의 회심 ]
FBI 요원 ‘로스’는 와칸다 시리즈에 등장하는 주요인물 중 유일한 백인입니다. 한 때는 그도 미국의 이익에 충실히 기여하며 제국적인 약탈을 묵인하는 편에 서있던 존재였지만, 슈리의 연구실에서 생명을 회복하고 와칸다의 실상을 눈으로 직접 보게 되면서 그동안의 행보를 뉘우칩니다. 슈리는 그에게 ‘식민개척자’라는 짓궂은 별명을 지어주지요.
회심(?)한 로스요원의 눈은 와칸다를 서로 상생하고 보호해야 할 파트너로서 바라보게 됩니다. 이전까지는 그저 수탈과 침략의 대상으로 여기던 와칸다의 자연과 문화를 이제 마땅히 존중해야 할 소중한 인격체로서 바라보기 시작한 것이죠. 로스 요원의 변화를 보며 오늘날 우리에게 요구되는 생태적 회심에 대해 생각해보게 됩니다. 자연을 정복의 도구로, 인류가 성장하고 번영하기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쓰고 버릴 수 있는 대상으로 여기며 식민화 해왔다면, 이제부터는 그들의 숨결을 느끼고 그 고결함과 위대함을 경험하는 마음이 더 많이 필요해진 시기가 아닐까 하고 말이지요.
<블랙팬서:와칸다 포에버>는 현재 디즈니플러스와 유튜브 영화에서 구매하여 시청할 수 있습니다. 생태주의적인 시선으로 다시 한 번 감상해보시는 것은 어떨까요?
[ 모기영 NEWS! ]
📍 2023년 첫 이사회를 가졌습니다.
언제나 모기영을 응원해주시고 든든히 지지해주시는 이사님들과 2023년의 그림을 새롭게 그려가는 이사회를 진행했습니다. 4회 영화제의 성과 및 정산 보고, 조직 개편, 모금 방안 등에 대해 논의하며 모기영을 향한 이사님들의 진심이 얼마나 뜨거운지를 느끼게 되었습니다. 어느덧 5회째 영화제를 준비하는 모기영! 더 분명하고 자신있게 나아갈 든든한 토대가 있음을 이사회를 통해 확인하게 되어 감사합니다.
📍 신임 사무국장 선출 및 보직이동
4회 영화제부터 모기영과 함께한 강원중 전 운영팀장이 신임 사무국장으로 세워지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스탭들이 각자의 생업과 영화제 준비를 동시에 진행하며 감내해야 했던 갖은 고초를 기억하면 다행스럽고 든든한 변화라고 여겨지네요! 모기영의 탄생부터 지금까지 열과 성을 다해 사무국장으로 헌신해오신 강도영 전임 사무국장은 실행이사라는 새로운 역할로 모기영과 계속 함께하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더욱 단단해질 모기영을 기대해주세요 :)
故 임보라 목사님을 기억하며
이사회를 시작하기 전, 일평생 소수자를 향한 차별과 맞서며 고통받는 이들의 벗이 되어오신 고 임보라 목사님을 추모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모기영이 오늘날의 혐오와 배제를 말하면서도 현장의 일선에 계신 분들과 더 긴밀히 유대하지 못한 것에 대한 부끄러움과 죄송함, 더 없이 소중한 시대의 선각자를 외로이 떠나보낸 슬픔과 허망함이 눈물어린 나눔들 속에 흘러나왔습니다. 고 임보라 목사님의 삶과 걸음을 기억하며 앞으로 모기영이 벼리며 나아가야 할 바가 무엇인지를 마음에 새기고 또 새깁니다.
축제 현장에서의 즐거움과 기쁨 뿐 아니라
아픔과 슬픔을 나누는 일에도 힘쓰는 모기영이 되겠습니다.
함께해주셔서 고맙습니다.
2023년 2월 11일 토요일
모두를위한기독교영화제 주간모기영
주간모기영에 바라는 점이나 아쉬운 점 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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