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중캉의 생태주의로 영화읽기
<애니멀 킹덤>(2023)
사람이 동물로 변하는 상상을 담은 영화는 많이 있습니다. 늑대인간이 등장하는 고전적인 호러물(런던의 늑대인간,1981)부터, 아빠가 반려 강아지로 변하면서 생기는 이야기를 그린 가족 코메디(쉐기 독, 2006)도 있고, 연애 못하는 인간이 되기보다 차라리 랍스터가 되기를 선택한다거나(더 랍스터, 2015), 심지어 사람이 외계생명체로 변하는 이야기까지(디스트릭트9, 2009) 다양하네요. 여러분은 어떤 영화들이 떠오르시나요?
제76회 칸 영화제에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으로 선정되고 제22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야외상영으로도 소개되었던 토마스 카일리 감독의 <애니멀 킹덤>(2023)도 사람이 동물로 변하는 상상을 담은 영화입니다. 다만 이 영화가 특별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동물들의 ‘약자 됨’에 주목하고 있다는 점이지요. 동물로 변화한다는 것은 강인한 발톱과 놀라운 청각, 장엄한 날개를 갖게 되는 것이기도 하지만 이 영화가 반복적으로 주목하는 것은 동물로 변해버린 ‘수인’들이 겪는 것이 곧 추방과 억압, 배제와 혐오라는 점입니다. 그런 점에서 <애니멀 킹덤>은 인간 사회 안에서 이루어지는 약자를 향한 혐오와 학대가 곧 생태계를 향한 폭력과 같은 종류의 것임을 시사하고 있기도 합니다.
영화가 약자성에 주목하고 있음을 발견하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주인공 에밀의 고통에 공감하고 도움을 주는 이들은 모두 여성이고 장애인이며 가족 구성원이 같은 고통을 겪고 있는 이들이기 때문이지요. 에밀이 학교에서 사귀게 되는 여자친구 니나는 주의력 장애를 겪고 있습니다. 에밀을 돕는 지역 경관 줄리아 또한, 여성이라서, 군인이 아닌 경찰이어서 그가 속한 사회로부터 차별을 당합니다. 다른 이들이 겪고 있는 고통과 외로움에 반응하고 공감할 줄 아는 약자들의 사려깊은 손길을 통해 에밀은 자신의 몸에서 일어나기 시작하는 당혹스러운 변화를 받아들이고 차츰 성장할 수 있게 됩니다.
이러한 약자들의 연대와 뚜렷이 대조되는 것은 ‘군대’로 대표되는 남성사회의 폭력성이지요. 수인들이 숨어든 숲에 최루탄을 쏟아 부으며 무자비한 제압을 감행하는 모습은 권력이 혐오하기로 결정하고 낙인찍은 존재들에게는 그 어떠한 서사의 실마리도 주려 하지 않는 맹목적인 폭력사회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에 적극적으로 가담하며 흥분에 찬 총질을 해대는 얼굴들은 공교롭게도 모두 남성이지요.
또한 영화는 이러한 폭력의 역사가 결코 짧은 것이 아니며 그 속에는 종교의 이름으로 반복된 합리화도 있음을 ‘성 요한 축제’라는 마을 전통행사를 통해 담아냅니다. 수인들을 ‘괴물’로, 에밀을 ‘짐승’으로 겨냥한 역사는 타오르는 불기둥 속에 살아있는 고양이를 집어넣고, 수많은 소녀들을 마녀로 둔갑시켜 불태웠던 역사와 겹쳐집니다. 기사도를 앞세워 학살을 일삼고, 횃불을 집어들고 두건을 쓴 얼굴들의 이미지는 종교와 폭력이 얼마나 깊이 그 전통을 공유해왔는지를 상기시키고 있지요. 현대를 배경으로 하는 SF 속에서조차 반복되는 이러한 풍경은 오늘날에도 활발히 펼쳐지고 있는 생태계를 향한 폭력의 발원지가 어디인지를 어렴풋이 겨냥하는 듯 보입니다.
언어처럼 음식도 인간을 규정해.
그 이상이지. 너의 존재방식이야.
너는 수동적이야. 뭐든 넙죽 받아먹잖아.
지금은 반항이 용기인 시대야. … 사회에 맞서라고.에밀의 아빠 프랑수아의 대사 중
'세상을 흔들지 못하는 자는 존중하지 마라’
르네 사르 (프랑수아가 반복해서 인용하는 말)
프랑수아가 에밀에게 영화 초반부터 뜬금없이 쏟아내는 진지한 가르침들은 감독이 영화를 통해 전하고자 하는 생각을 함축하고 있다고 여겨집니다. 특히 반복해서 인용한 르네 사르의 말은, 행동하지 않고 말과 지식에만 머물러 있는 권력자들을 존중할 필요 없다는 뜻이죠. 권력과 지식이 규정하고 강요하는 대로 살지 말고 자유를 따라 저항하라는 의미이겠습니다. 프랑수아는 그렇게 스스로 되뇌었듯 끝내 수인들의 세계와 인간의 세계 사이에 서서 폭력을 가로막는 존재가 됩니다. 그 용기있는 저항의 발원지는 종교적 신념도, 권력에 대한 충성도 아닌 가장 가까운 존재를 향한 치열한 사랑이라는 것을 영화는 극적인 클라이막스를 통해 전달하지요.
고장난 정권이 민중을 억압하고, 끝을 모르는 탐욕이 온 국토를 그야말로 불태우는 풍경을 우리는 보고 있습니다. 약자들의 고통에 공감하지 못하는 권력이 휘둘러 온 지난한 폭력들이, 지독한 관료주의 속에서 브레이크가 고장난 토건세력의 과욕이 온 국토와 창조세계를 훼손하는 풍경을 목격합니다. 그리고 슬프게도 우리는 그 속에서 길을 잃고 맛을 잃은 기독교를 마주합니다. 이 땅의 기독교는 사랑을 회복할 수 있을까요?
프랑수아가 습관처럼 되뇌던 르네 샤르의 말에 기대어, 생태계를 위해 연대하고 저항하는 이들을 기억합니다. 탐욕이 당연하게 여겨지는 이 세상을 향해 저항하고 행동하는 이들을 응원합니다. 사랑이 끝내 이기리라는 믿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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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편집디자인 강원중
2025년 3월 29일 토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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