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중캉의 생태주의로 영화읽기
<옥자>(2017) -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 사이에서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가 아직은 생소하게 느껴지던 2017년, 봉준호감독의 6번째 장편 영화 <옥자>가 넷플릭스와 소수 극장을 통해 관객들을 만났습니다. 가장 한국적인 미자의 이미지와 가장 세계적인(?) 뉴욕 자본 중심부의 이미지가 영화속에서 나란히 펼쳐지는 광경이 신기하기도 했지만, 이러한 대비가 식민자본주의의 세계적인 영향력을 뚜렷이 묘사하기에 더할나위 없는 구도라고 여겨지기도 했습니다.
<옥자>는 공장식 축산과 자본의 악한 속성에 관해 직접적으로 다루고 있는 영화이기에 공개 당시에 동물권 운동가들로부터 열렬한 지지를 받았지요. 물론 감독 본인은 뻔뻔하게도 이 영화가 결코 자본주의를 비판하는 영화가 아니라는 유머섞인 코멘트를 남기기도 했지만 영화가 향하고 있는 메시지는 봉준호의 다른 영화들에 비해서도 무척 쉽고 분명해 보입니다.
미자의 유토피아
옥자와 미자가 평화롭게 노니는 강원도 산골마을은 그 자체로 완벽한 순환의 생태계를 이루는 유토피아로 그려집니다. 미자는 자연에서 필요한 것 이상을 취하지 않고, 옥자의 풍성한 배설물은 생태계 이웃들에게 소중한 자원이 되지요. 무엇보다 그 공간 속에서 보여지는 옥자와 미자의 관계가 동물과 인간의 상생과 돌봄이라는 유토피아적 조건을 완성합니다.
미란도의 디스토피아
옥자와 미자의 자매애와 완전히 대비되는 것은 미란도 자매들이 지닌 자본주의적 속성입니다. 쌍둥이 자매인 루시 미란도와 낸시 미란도는 같은 얼굴을 가졌지만 정반대의 성격을 보여주지요. 한쪽은 인도주의와 친환경을 내세우며 슈퍼돼지 프로젝트를 포장하는데 여념이 없는 한편, 다른 한쪽은 무관용적이고 철두철미한 전략가의 모습을 노골적으로 드러냅니다. 그러나 결국 이들은 사이코패스 성향을 지닌 부친의 폭력성을 그대로 이어받아 자연세계를 물질화하여 소유하는 데에 혈안되어있다는 점에서 쌍둥이처럼 닮았지요. 겉으로는 기후위기를 걱정하는듯 하면서도 결국은 가장 앞장서서 생태계파괴를 일삼는 다국적 대기업들이 지닌것과 같은 모습의 모순을 영화가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라 여겨집니다.
모순을 디디어 한걸음 나아가는 사람들
영화는 미란도기업이라는 분명한 악당이 지닌 모순 뿐 아니라 동물해방전선(ALF)이라는 이름의 선량한 활동가들이 지닌 딜레마에 대해서도 빠짐없이 보여줍니다. 이들은 생명존중이라는 절대적 가치를 표방하면서도 때로는 단체의 목적을 위해 타협을 피하지 못하는 이중성을 지녔지요. 그러나 감독 스스로도 밝힌바 있듯 영화는 생태운동가들의 취지에 한걸음 더 공감하며 영화속에서나마 그들이 유리할 수 있도록 기울어진 운동장을 제공합니다. 그 이유는 현실세계가 그 반대방향으로 훨씬 많이 기울여져있기 때문겠지요. 이들 운동가들의 일관성 없는 좌충우돌은 선한 양심에 이끌린 이들이 겪을수 밖에 없는 열악함 혹은 연약함이라 여겨집니다. 이 대목에서는 오늘날 자본의 논리를 거부하며 생명의 가치를 외치는 무리들이 겪게 되는 혼란과 분열의 이야기들이 떠올라 괜시리 찡해지기도 합니다.
감독은 이들에게 보내는 응원의 결말을 쑥쓰러운듯 엔딩크래딧 뒤에 숨겨두었지요. 쿠키영상처럼 연출된 짧은 결말에서 동물해방전선은 다시 의지를 다지고 동료들을 모읍니다. 검은 복면 뒤에 감추어진 이들의 순박한 얼굴에는 민주사회의 다양성과 연약함, 그리고 생동감이 깃들어 있지요. 이들은 대중교통을 타고 시위장으로 항하며 변하지 않을 것 같은 현실에 맞섭니다.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 그 사이 어딘가에서 바장이는 우리의 혼란스러운 투쟁을 이입하게 되는 장면이지요.
옥자와 미자는 결국 바뀌지 않는 현실을 뒤로한채 자신들의 유토피아로 돌아옵니다. 속절없이 죽음을 맞이할 수 밖에 없는 수많은 옥자들의 울부짖음이 이들의 가슴 속에서 ‘살아남은 자의 슬픔’으로 고동치겠지요. 영화는 어쩌면 그 슬픔을 우리에게 남기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옥자의 눈망울을 만난 우리의 슬픔이 생명들을 향한 연민으로, 식탁과 산업의 변화로, 조화로운 세상을 향한 열망으로 흘러가가게 되기를 바래봅니다.
글 / 편집디자인 강원중
2024년 1월 13일 토요일
모두를위한기독교영화제 주간모기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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