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나짱의 ‘틈새라면’
<미안해요, 리키>(2019)
** 이 글은 [빛과 소금] 2026년 8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올해로 N잡러 인생 25년 차가 되었다. 과외를 하면서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서빙을 했고, 주중엔 중고생들과 영화 제작 수업을, 주말에는 하루에 두 건씩 웨딩 촬영을 했다. 지금도 영화제에서 일하고 있지만 대출금을 갚기에는 아직 한참이나 남았다. 그래서 여전히 수업을 하고, 틈틈이 칼럼을 기고하고, 기관의 용역으로 참여하며 밥을 먹고 또 이자를 낸다. 방학마다 영화과 입시를 준비하는 친구들을 봐 주며 여전히 부족한 생활비를 충당하는 나는, 한 번도 N잡이 아닌 적이 없는, 앞으로도 쭉 그러할 노동자이다.
생각하기 나름이겠지만, N잡을 ‘전혀 다른 분야의 일을 즐기는 자유로운 재주꾼’으로 부르는 요즘 젊은 친구들의 여유로운 해석이 참 다행스럽게 느껴진다. 몇 년 전만 해도 N잡러는, 돌직구로 표현하자면 정규직에 실패한 사람들이었다. 요즘 나는 전자 쪽 해석으로 위안을 삼고 있지만, 실상은 하루가 멀다 하고 잡서칭(Job searching)을 하는, 고용 불안정의 정점에 놓인 프리랜서이기도 한 것이다.
일과 취미생활이 균형을 이루는 이른바 ‘워라밸’이란 단어가 한창 유행할 무렵이 아마 N잡에 대한 관심이 가장 증폭된 시기가 아닌가 싶다. 본인만이 즐겼던 소소한 취미생활이 어느 순간 큰 주목을 받게 되면서 대성공을 이룬 사람들의 이야기는 하루가 멀다 하고 소셜미디어에 등장했다. 기존의 일을 그만두고 ‘내가 좋아하는 것만 해도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이들의 이야기는, 돈을 벌기 위해 하기 싫은 일도 어쩔 수 없이 해야만 했던 수많은 이들에게 큰 자극이 되었을 것이다. 너도나도 ‘진정한 나를 찾기 위해’ 혹은 ‘좋아하는 것을 업으로 삼기 위해’ 본업을 그만두기 시작했을 무렵, 어느 순간부터 누군가의 성공 신화는 아무도 모르는 사이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지고, 한때 N잡으로 성공했다는 이가 다시 예전 직장으로 들어갔다는 김빠지는 소문만 들려올 뿐이었다.
최근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영화를 보고 돈을 버는 거야?”라는 부러움 섞인 질문이다. 하지만 모두가 알 것이다. 아무리 좋아하는 것도 일이 되는 순간, 내 발목을 잡는 늪이 된다는 것을 말이다. 한 주 내내 밀려드는 영화들을 골머리 앓으며 검증하다가, 주말이 되면 정작 쉼을 위해 넷플릭스 드라마를 미친 듯이 정주행하는 나를 발견하곤 한다. 재미있는 건 몇 달 전 OTT 어워즈 심사 제안이 들어왔을 때만 해도 무척 설렜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세계 각국의 그 재미있는 드라마들도 평가와 마감이 존재하는 ‘일’이 되는 순간, 설렘과 기쁨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참 아이러니한 일이다.
직업이 즐거울 수 있을까? 그렇다면 과연 N잡은 즐거울 수 있을까? 일을 하면서 순수하게 즐거울 수 있다는 것, 어쩌면 피로시대의 한가운데 있는 우리의 꿈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다른 의미로, 즐거움이나 개인의 취향과는 전혀 상관없이 진짜로 ‘잡’(Job) 그 자체가 필요해서 N잡러가 된 이들이 있다. 일의 즐거움과 보람 같은 것은 사치이고, 매달 통장을 두둑이 채워 줄 돈이 필요한 사람들. 이들은 선택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이들이다.

〈미안해요, 리키〉는 켄 로치 감독의 2019년 영화이다. 켄 로치는 본인의 작품을 통해 노동자와 노동계급의 권리를 대변하는 감독으로 유명하다. 특히 그는 자본가가 아닌 노동자의 시선으로 세상을 보려 하고, 자본주의 구조 안에서 인간의 존엄성이 어떤 방식으로 훼손되는지 고발한다.
영화가 시작되면 주인공 리키의 하소연 같은 자기소개가 등장한다. 리키는 수많은 N잡의 삶을 살아오다 지금 또 새로운 일에 뛰어든 상황이다. 바로 택배기사. 리키는 지금까지 안 해 본 일이 없다며 담당자에게 어필 중이다. 기반 공사, 배수 공사, 도면 뜨기, 지붕 작업, 도로 포장까지. 공사와 관련된 이 업계 안에서도 각자의 전문 역할이 있기 마련인데, 이 모든 영역을 전부 커버할 정도라니. 그런데 또 새로운 일을 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실업수당도 받은 적 없다는 말을 어필하는 리키는, 말 그대로 쉼 없이 삶을 갈아 넣으며 여기까지 달려온 인물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여기서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영화 오프닝 방식이 매우 익숙하다는 점이다. 화면은 계속 암전인 상태로 인물들의 대화만을 엿듣게 하는 방식이다. 이는 켄 로치의 또 다른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의 오프닝과도 같다. 이런 표현 방식, 즉 이미지가 부재한 상태에서 목소리만 들린다는 것은 80% 이상 이미지에 의존하는 영화의 기존 관습을 뒤집는 것으로, 그 목소리가 들려주는 정보 너머, 그 내면에 귀 기울이게 한다는 재미있는 특징이 있다. 지금껏 리키가 경험해 온 다양한 직업을 쭉 나열하는 표면적인 의미를 너머, ‘왜 그렇게까지 많은 일을 해야만 했을까?’라는 물음도 함께 떠올리게 하는 묘한 힘이 생긴다는 것이다. 이미 충분한데도 일을 더 해야만 하는 이유가 있었던 것일까? 리키에게 N잡은 그저 하고 싶어서, 혹은 다음 인생을 준비하기 위함이 아닌, 생존 그 자체를 위한 선택이었음을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영화에서 명확하게 알려 주지는 않지만, 이전까지 리키는 분명 성실한 노동자였고 집을 장만하려고 어느 정도 자금도 모아둔 듯하다. 아내 애비는 투철한 직업정신을 가진 요양보호사로 리키와 함께 가정을 책임지고 있다. 하지만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열심히 살아보려 해도 벼랑 끝으로 내몰리는 계층일 수밖에 없었음을 이야기하는 애비의 목소리에는 힘겨움이 묻어 있다. 근면, 개근 같은 성실함의 의미와 보상이 달라진 세상이 된 지 한참이나 되었지만, 리키와 애비가 선택할 수 있는 건 다른 게 없다. 그저 성실함뿐이다. 가진 것은 그뿐이니 말이다. 대신 그 성실함의 양적 확대가 필수 조건이 되었다는 것만이 그들을 더 힘겹게 하는 현실이 되었다.

‘많이 일하면 일할수록 너의 삶은 괜찮아지는 거야’라고 말하던 이들은 어느덧 N잡을 당연시하는 사회를 만들었다. 쉬운 논리다. 많이 일하고 많이 벌자. 하지만 어쩐지 그 형태는 매우 교묘하고 비상식적으로 변모했다. 수많은 직업을 거쳐 택배 일에 뛰어든 리키가 처음 듣게 되는 말은 황당하게도 ‘당신은 우리 택배회사에 고용된 것이 아니다’라는 말이다. 자세히 말하면 이런 내용이다.
“당신은 개인 사업자이고 우리와 협업을 하는 것이므로, 우리는 당신에게 고용 계약도 해 줄 수 없고 임금 또한 주지 않을 것입니다. 당신이 받게 되는 것은 오로지 수수료입니다.”
일을 격려하는 사회는 한 사람이 질 수 있는 최대치 이상의 노동을 요구하지만, 그 안에 노동자의 권리와 삶에 대한 조항은 삭제한다. 매일 14시간씩 주 6일 일해야 하는 컨디션은 기본이요, 배달용 차량도 사비로 렌트하도록 하고, 배송 실수 시 생기는 모든 상황 또한 개인이 책임져야 한다. 내 일처럼 애정을 갖고 해 달라며 애사심을 요청하지만, 불공정에 항의하는 노동자에게 ‘모든 것은 너의 선택으로부터 출발한 것이다’라는 말도 잊지 않는다. 이쯤 되면 의문이 생긴다. 과연 N잡의 붐을 만들었던 건 개인이었을까, 아니면 개인의 욕망을 빌미로 건 이 사회의 어두운 이면일까. 리키가 아내에게 계속하던 말이 있다.
“내 집을 갖고 싶어. 이곳에서 살아도 된다,
안 된다는 말을 더 이상 남에게 듣고 싶지 않아.”
편히 쉴 집 한 칸이 필요한 간절한 노동자의 목소리는 아마도 N잡을 할 수밖에 없게끔 만든 이익사회의 좋은 빌미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면서 리키에게 외친다. “이 세상 아무도 널 위로하지 않아. 너는 이곳을 쓰레기장으로 여기겠지만, 유일하게 이 스캐너(택배 바코드용)만 널 먹여 살린다고!”

이 영화의 인상적인 부분 중 하나는 노동의 풍경이다. 바코드를 찍고, 물건을 싣고, 순서에 따라 발차하고, 물건을 배달하고. 리키를 중심으로 그와 함께 일하는 이들의 모습이 이 영화만의 정경이 되어 다가온다. 때론 바지런한 노동의 풍경은 고통의 풍경으로 변모한다. 배달 중 괴한의 습격으로 크게 다친 리키는 애비와 함께 병원을 찾는다. 피로 얼룩진 리키의 모습과 겹쳐진 수많은 사람이 이번엔 이 영화의 또 다른 풍경을 만든다. 이들 또한 어디서 많이 본 얼굴이다. 아픈 노숙자, 노인과 어린이, 상처로 가득한 여성. 그렇다. 그들 모두가 리키인 것이다. 익숙하고도 슬픈 풍경이다.
지금 시대 돈의 가치는 어느 순간 인간의 가치 너머를 바라본다. 가정에 중요한 일이 있어도, 몸이 아파도, 심지어 업무 중 폭행을 당하더라도 그 안에 인간의 존엄은 없다. 일을 하고 있을 때만이 그 사람의 존재를 인정한다. 인간의 가치가 추락한 시대를 살고 있는 청년들은 어떨까? 정당한 경쟁과 성실한 노동이 과연 지금 시대의 그들에게 안정된 미래를 꿈꿀 수 있게 해 주는가? 요즘 내가 만난 청년들은 대부분 우울감에 잠식된 느낌이다. 청년 세대가 보는 노동의 가치는 리키의 아들 세브를 통해 여실히 보여 준다. 성적도 우수하고 가족에게도 다정한 세브는 어느 순간 방황을 시작한다. 학교에도 가지 않고 친구들과 그래피티 작업에만 열중하고 있다. 리키와 애비는 이런 세브의 변화를 받아들이기 힘들다. 리키가 세브에게 매일 던지는 레퍼토리는 한국의 여느 부모와 같다.
“열심히 해서 좋은 대학을 가면 좋은 직업을 갖게 될 거야. 그러면 아빠처럼 남 눈치 보면서 종놈처럼 안 살아도 돼.”
“그건 종놈이 아니고 아빠의 선택이에요. 그리고 옆집 형처럼 대학 가봤자 어차피 콜센터에서 일하겠죠. 난 못 하겠어요.”
여전히 노동의 가치를 믿는 아버지 세대와 모든 희망이 무너진 지금 세대의 생각의 거리는 결코 좁혀지지 않을 것이다.
〈미안해요, 리키〉는 국내 개봉용 제목이다. 주인공 리키의 노동 현장을 따라가며 인물의 내면 자체에 주목하려 한 제목으로 보인다. 영문 제목은 ‘Sorry, We Missed You’, 즉 영국에서 택배기사들이 주로 쓰는 용어를 가져왔다. 영화에서도 리키가 배달 업무 시 항상 들고 다니던 카드로, 영국에서 택배기사가 집을 방문했을 때 사람이 없으면 문틈으로 꽂아 두고 가는 부재중 카드의 문구이다. 우리말로 번역하면 ‘부재중이라 돌아갑니다’ 혹은 ‘안 계셔서 경비실에 맡겼습니다’ 정도가 될 것이다. 왜 이 문구가 제목이 되어야만 했을까?
생각하면 할수록 여전히 가슴 아픈 부분이다. 폭행으로 온몸이 엉망이 되었지만 어마어마한 위약금을 물어야 하는 리키는 결국 이른 아침, 부재중 카드를 한 장 꺼내 그 위에 편지를 쓰고 조용히 집을 나선다.
“화내지 마, 애비. 나 괜찮을 거야. 사랑해. 선택의 여지가 없어.”
꾹꾹 눌러 쓴 그의 글은 “Sorry, We Missed You”라는 카드 위에 굵게 덧입혀진다.
유난히 마음 아픈 이유는, 어쩐지 ‘놓쳤다’(missed)라는 말에서 안타까운 노동자의 현실을, 퇴색된 노동의 가치가 지닌 심각성을 여전히 우리가 놓치고 또 외면하고 있음을 느끼기 때문이다.
어쩌면 영화가 우리에게 남긴 부재중 카드는, 더 이상 이들의 아픔, 더 나아가 과업에 놓인 우리가 우리 스스로를 놓치지 말아 달라는, 가장 간절한 부탁일지도 모른다.

글 / 장다나
편집디자인 / 모기영 편집부
2026년 8월 29일 토요일
모두를위한기독교영화제 주간모기영
주간모기영을 향한 응원을 남겨주세요.
✿˘◡˘✿
의견을 남겨주세요
hyunhong
비공개 댓글 입니다. (메일러와 댓글을 남긴이만 볼 수 있어요)
주간모기영
네 공감합니다. 이 시대에 노동이란 과연 뭘까, 혹은 나의 노동을 둘러싼 많은 이슈들도 생각해보게 되네요
의견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