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규창의 따옴표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2023)
"풍요롭고 평화롭고 아름다운 세계를 만들어라. 악의로부터 자유로운 왕국을"
미야자키 하야오의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2023)는 그의 일관적인 주제와 세계관을 유지하면서도, 마지막 작품 답게, 지금까지 그의 작업을 총정리하는 오마쥬의 성격을 안고 있다. 또한 스필버그의 <파벨만스>처럼, 자신의 이야기를 담고 있어서, 보는 내내 그에 대해 생각하지 않기가 힘든 영화다. 하지만 다큐와 혼동되는 너무나 디테일한 일상의 묘사, 지나치게 많은 상징과 꿈을 꾸는 듯한 초현실주의 기법을 두 시간이 넘게 집중하며 소화해야 한다는 점에서 지브리 어떤 작품보다 난해하고 불친절하게 느껴진다. 그럼에도 감독이 강제로 떠 먹여주는 강한 주제의식 또한 분명히 나타난다.
주인공 소년 마히토는 어릴 때 화재로 어머니를 잃고 어머니의 고향집으로 내려와 새엄마와 살고 있다. 전쟁이 한창이던 1930년대 후반, 그의 아버지는 군수공장을 운영하며 많은 돈을 번다(하야오는 반전주의자였지만 그의 아버지는 실제 그런 일을 했다고 한다). 마히토는 어느날 자기를 불러내는 왜가리의 인도로 갑자기 새엄마 마츠코를 찾아 나서다가 숨겨진 탑을 발견하고 그 속에서 다양한 모험을 경험한다. 그 탑은 오래전 하늘에서 떨어졌는데, 큰 할아버지가 발견한 후 그 안에서 자기만의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 살고 있었던 것이다.
영화를 보는 내내 탑 안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이 감독 하야오의 내면 여행이라는 생각을 내려놓을 수 없었다. 우리는 마히토라는 하야오의 어린 자아가 조우하는 다양한 원형(archetype)과 그림자들을 만난다. 상징 하나하나를 모두 해석하는 것은 매우 지루한 일이겠으나, 중요한 것은 여기서 감독은 자신의 작품에 모두 녹아 있는 주제를 다시 드러낸다는 것이다. 결국 이 세상은 다 연결되어 있고, 모두 하나의 생명체라는 것. 문제는 삶의 본질이 고통이라는 것인데, 여기서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를 묻고 있는 것이다.
"여기는 저주 받은 바다야..." 인간으로 환생하는 영혼의 원형인 와라와라들을 잡아 먹다가 불의 소녀 히미(마히토의 엄마의 소녀시절)에게 타죽는 펠리칸이 죽으며 한 말이다. <원령공주>에서 재앙신으로 변한 멧돼지가 죽으면서 던지는 저주의 말과 같다. 삶은 고통인 것이다.
마지막에 등장하는 최종 보스인 큰할아버지는 마히토를 자기 세계를 지키는 후계자로 삼으려고 한다.
"나의 후계자가 되라... 아름다운 세계가 될지 추악한 세계가 될지는 모두 네 손에 달려 있다.... 풍요롭고 평화롭고 아름다운 세계를 만들어라. 악의로부터 자유로운 왕국을"
"이 상처는 제가 만들었어요. 제 악의의 증거에요... 저는 여기에 어울리지 않아요. 저는 저의 세계로 돌아가겠습니다"
"서로 죽이고 빼앗는 어리석은 세계로 돌아가겠다고? 그 세계는 곧 불바다가 돼"
"네... 저는 친구를 만들 거에요"
마히토는 빨간 알약을 먹기로 결정한다. 비록 완전하지 않고 고통과 악의로 가득차 있더라도 그는 자신이 살아온 세계를 선택한다. 블럭으로 탑을 쌓으며 만드는 완벽한 세상의 모습을 보여주는 큰할아버지의 제안은, 성서 마태복음에 등장하는 사탄의 유혹을 연상시킨다. "만약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천하만국과 그 영광)을 네게 주리라"(마태복음4:9) 예수는 이를 거부하고 인류를 위한 죽음의 길을 선택한다.
나는 하야오의 거의 모든 작품이 그가 두 세계론자였음을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주인공은 마지막엔 반드시 자신의 세계로 돌아온다. 그러나 어린 시절 그의 무의식을 형성했던 초현실적인 세계는 여전히 너무 강한 매력으로 그의 삶을 이끌었을 것이다. 은퇴 후 여전히 후계자가 없는 자신의 상황에 대한 비유겠지만, 그래서 지브리가 자신과 함께 막을 내릴지도 모르지만, 이 작품은 그래도 사람은 각자 자기의 세계에서 자기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 옳다는 신념을 버릴 수 없는 자기 모순을 보여주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마지막으로, 시종일관 바람과 물의 질감이 그대로 느껴지는 일본인들의 결벽증적인 그림 디테일을 감상하는 것이 큰 즐거움이었음을 덧붙이고 싶다.
굿바이~ 하야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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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때는 비오는 날 맨발을 물 웅덩이에 담가보는 귀여운 시기도 있었는데, 이젠 장마가 걱정으로 다가오네요. 모두들 무탈하시고, 즐겁고 평안한 주말 보내세요.
글 : 최규창
편집 디자인 : 모기영 편집부
2025년 6월 21일 토요일
모두를위한기독교영화제 주간모기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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