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주간모기영 171호

[다나짱의 신발 속 모래알] <어 퍼펙트 데이>(2017)

2025.08.02 | 조회 25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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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나짱의 신발 속 모래알

<어 퍼펙트 데이>(2017)

 

뒤죽박죽 일상에 보내는 완벽한 찬사

때는 1995년, 발칸반도 부근 한적한 시골 마을. 보스니아 내전이 끝난 직후이지만, 종전 소식과 이곳의 현실은 여전히 상당한 거리가 있는 듯하다. 오늘도 맘브루와 활동가들은 우물 속 시체를 꺼내는 데 여념이 없다. 국경 없는 원조회 ‘Aid across borders’ 소속 구호가들은 이 마을에 하나뿐인 우물에 시체가 빠졌다는 소식을 듣고 이곳으로 달려왔다. 지금 이곳 주민들에게 이 우물은 유일하게 남은 그들의 생명수이다. 사실 마을에 두 개의 우물이 더 있지만, 전쟁 기간 중 누군가 지뢰를 설치했다는 이야기가 퍼지면서 두 곳은 폐쇄되었다. 한시라도 빠르게 우물을 정화하기 위해 식수 담당자인 소피와 또 다른 활동가 B도 지금 이곳으로 달려오고 있다. 그때까지 맘브루가 처리해야 할 일은 빠르게 시체를 끌어올리는 일이다. 그러나 시체를 꽁꽁 감싼 낡은 로프는 중간에 힘없이 끊어지고, 이제 모든 것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바로 로프를 다시 가져오는 일. 하지만 이 로프를 구하는 이들의 미션은 지금 이 세상에서 가장 힘들고 난해한 일이 되어버렸다. 영화는 맘브루와 B, 그리고 NGO 임원들이 함께 이 시체를 꺼내는 과정에서 만난 어느 하나 쉽게 되는 일 없는, 그야말로 ‘완벽하지 않은’ 24시간의 이야기이다.

<어 퍼펙트 데이>(2017) 네이버 영화 포스터 이미지
<어 퍼펙트 데이>(2017) 네이버 영화 포스터 이미지

〈어 퍼펙트 데이〉는 파울로 파리아스의 소설 『Dejarse Llover』를 고스란히 스크린 위에 재현한다. 원제를 직역하면 ‘비가 내리게 하다’, ‘비를 맞게 놔두다’ 정도로 해석할 수 있겠으나, 의미적 접근 방식을 고려해 본다면 ‘어떤 상황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다’ 정도로 해석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자연스레 ‘뒤죽박죽 엉킨 사건·사고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자 했던’ 누군가의 일상을 떠올리게 한다. 어쩌면 이는 오랫동안 국경 없는 의사회 활동 및 다양한 NGO 경험을 몸소 체험하며 이를 내면화해 온 작가의 깨달음과 맞닿은 제목은 아닐지 생각해 본다. 이처럼 영화는 일부 각색된 부분을 제외하고는 서로 다른 마음과 방식을 가진 이들이 구호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이야기를 오롯이 담는다. 제목은 완벽한 하루이지만, 영화를 쭉 따라가다 보면 마치 현진건의 ‘운수 좋은 날’이 떠오를 정도로 제목과는 전혀 다르게, 이들에게는 모든 게 엉망인 날임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영화는 전쟁이라는 소재 위에 소소한 위트와 유머를 얹고, 복잡한 일과 속에 인물들의 내면을 조용히 따라가는 조화로운 연출 방식을 택하고 있다.

‘로프 하나 구하는 게 그렇게나 힘든 일인가?’

영화를 보는 내내 떠오른 생각이다. 맘브루와 그의 동료들은 시체를 끌어올리기 위해 그들의 온전한 하루를 로프 한 묶음에 고스란히 바친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본부에도 남은 비품이 없다. 그들은 로프를 찾기 위해 덜컹대는 비포장 길을 달리고, 공구상을 찾아다니고, 지뢰를 설치한 동물 사체 앞에서 밤을 지새운다. 온전한 밧줄을 구하는 일에 그렇게나 에너지를 쏟을 필요가 있을까.

B는 마을 공구상에 들어가 크게 안도한다. 그들이 찾던 로프는 이곳에 차고 넘치게 있고, 그 종류도 꽤나 다양하다. 그러나 사장은 말한다.

“우물에 던져버릴 정도의 사람이면 좋은 사람은 아니니 그냥 놔두쇼.”

맘브루 역시 펄럭이는 국기를 지키고 있는 이에게 국기 게양에 활용한 로프를 잠시 빌리고자 하지만, 듣는 이야기는 비슷한 맥락이다.

“국기를 내리는 순간 우리는 항복한 것과 다름없어요. 절대 빌려줄 수 없습니다.”

이 모든 실패를 뒤로한 채 이동하던 맘브루 일행은, 저 멀리 마을 어귀에서 물탱크에 담긴 물을 마을 사람들에게 파는 이들을 목격한다. 누군가가 맘브루 일행에게 귀띔한다.

“저 사람들이 저렇게 돈을 벌려고 일부러 우물에 시체를 던졌다는 말이 있어요.”

<어 퍼펙트 데이>(2017) 네이버 영화 이미지
<어 퍼펙트 데이>(2017) 네이버 영화 이미지

한편 친구들에게 괴롭힘 당하던 니콜라는 맘브루 일행에게 도움을 받게 되며, 자신의 예전 집에 로프가 있음을 알려 준다. 니콜라는 전쟁으로 먼저 피신한 부모님과 떨어져 할아버지와 함께 살고 있는 아이다. 하지만 니콜라의 집을 방문한 맘브루 일행은 니콜라가 말한 로프가 아닌, 다른 로프를 구하게 된다. 바로 니콜라 부모를 교수형에 처할 때 쓴 로프이다. 영화에서 명확하게 언급하지는 않지만, 실제 보스니아 내전에서 세르비아계 군이 민족, 인종, 종교적 문제로 인해 무슬림계 보스니아인들을 마을에서 몰아내고 학살한 사건과 겹쳐 보이는 장면이다. 결국 맘브루 일행은 누군가를 죽인 로프를, 누군가를 살리는 데 활용하게 된다. 

이곳, 전쟁이 스치고 지나간 폐허의 한복판

그렇다. 이 곳은 전쟁이 스치고 지나간 폐허의 한복판. 여전히 일상을 살아가는 이들 곁으로 눈치채지 못할 정도의 예리한 칼날이 스쳐간다. 사실 영화를 보다 보면 로프 한 묶음은 단순한 로프가 아님을 깨닫게 된다. 몇 미터 안 되는 로프는 이해관계를 둘러싼 모든 것의 은유이다. 문화, 사상, 국가 그리고 더 나아가 자본과 탐욕, 이념으로 인한 배타성, 세대 간 비극의 대물림까지. 전쟁이라는 이름으로 이 지역에 자행된 모든 비극은 가장 깊고 사소한 곳에 머물며, 결국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생명을 향해 칼을 겨눈다. 이들의 일상은 여전히 또 다른 이름의 전쟁 속에 머물고 있는 것이다. 이들에게 정말 일상은 영화의 제목처럼 완벽한 것인가? 반어적인 표현인가?

생각해 보면 구호 활동가들마다 각자의 방식은 다르지만, 이들은 모두 한 가지를 중심으로 연결되는데, 아마도 그들을 하나로 묶는 건 “생명을 살리고 싶다”는 마음일 것이다. 물론 그들 각자에게 놓인 환경은 끊임없는 무력감과 좌절로 가득하다. 오랜 시간 구호 활동에 몸담은 맘브루는 분쟁지역을 떠나 본국에 있는 애인 곁으로 돌아가고자 하고, 이상주의자였던 소피는 로프 하나 구하지 못하는 지독한 현실에 혼란스러워한다. 관료주의 시스템의 빈틈과 자원 부족, 지역 주민과의 소통 문제, 개인적 트라우마까지 겹치지만 그런 상황 속에서도 그들은 현재의 문제를 결코 외면하지 않는다. 그들이 하고자 하는 것은 이 세계에서 영웅이 되기 위한 몸부림이 아니다. 우물 안의 시체를 꺼내는 것, 한 아이의 공을 되찾아 주는 것, 사람들이 깨끗한 물을 마실 수 있게 돕는 것, 그리고 주민들이 지뢰를 밟지 않기를 희망하는 아주 사소한 바람을 가지고 오늘 하루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이들은 바로 이 ‘사소함조차 귀하게 여기는 마음’이 인간성을 파괴하는 전쟁에 맞서고, 인간다움을 복원하고자 하는 동력이 될 수 있다고 믿고 있는 것 같다. 이러한 이들을 통해 오늘도 하루가 지나가고 또 완성된다.

<어 퍼펙트 데이>(2017) 네이버 영화 이미지
<어 퍼펙트 데이>(2017) 네이버 영화 이미지

맘브루 일행의 하루처럼, 세상에 무엇 하나 마음대로 되는 일은 없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죽음이 삶에 이르고, 비극이 희망이 되고, 때론 무모함이 유일한 답이 되기도 한다. 정답이 없는 세상이라는 말은 이런 상황을 두고 한 말일 것이다. 

로프를 구해 돌아오던 맘브루 일행은 지뢰 장치가 있을 것 같은 동물 사체 앞에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못한다. 하지만 그렇게 밤을 보낸 후, 이른 새벽 소를 앞장세워 몰고 가는 여인의 뒤를 따르며 지뢰를 피해 간다. (이 여인은 무성한 지뢰밭도 소를 앞장세워 가며 모조리 피해 가는 놀라운 능력을 보여 준 바 있다. 실제 동물이 지뢰를 감지한다는 이야기도 있다.) 운 좋게 시작하는 아침에 한껏 들뜬 이들은 어제와는 반대로 오늘 하루의 완벽함을 꿈꿔 보지만, 우물에서 시체를 끌어올리던 도중 군부대의 개입으로 인해 결국 포기하고 만다. 전쟁이 끝났다는 것, 그래서 모두 철수해야 한다는 것, 이곳도 지뢰가 있을 수 있다는 가정을 제시하며 모든 구호 활동을 중단한 것이다. 좌절한 그들 앞에 또 다른 요청이 들어온다. 이웃 마을 하수관 문제를 해결해달라는 것. 

자, 이제 오물이 넘쳐나는 곳으로 맘브루 일행은 떠나야 한다.

“완벽한 날이네요.”

넘쳐나는 오물을 상상하던 소피는 차 안에서 어처구니없어서 웃는다. 아마도 뒤죽박죽한 이 모든 상황에 대한 반어적 농담이었을 것이다. 비만 안 내리면 오물이 넘치는 일은 없을 거라고 하는 B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내리는 비는 마을을 적시고, 먼지 덮인 차를 깨끗이 씻어 내고, 대지를 적신다. 그러나 놀랍게도, 결코 회복될 것 같지 않았던 완벽히 ‘망친’ 날을 뒤로한 채 진정한 기적은 시작된다.

마을의 우물가. 

거친 빗줄기에 주민들이 아우성이다. 모든 이를 놀리기라도 하듯, 맘브루 일행이 그렇게나 끌어올리고자 했던 우물 속 시체는 불어난 우물물에 의해 순식간에 밖으로 밀려나온다. 비록 오물이 넘치는 상황을 맞이하게 된 맘브루 일행의 일상과는 관계없는 곳이 되었지만, 인간의 의지나 무한한 노력과 상관없는 방식으로 기적은 이곳을 찾아온 것이다. 이 ‘기적’이란 이름은 때로는 이해할 수 없는 방식으로, 또 때로는 인간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어느 누군가의 일상을 채운다. 나도 모르는 사이 경험한 내 일상 속 기적. 오늘 하루를 가만히 묵상하다 보면 그 흔적을 쉽게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아마도 이런 것이 신의 방식이겠지. 

“맞네. 완벽한 날이네, 정말.” 

 

* 위 글은 빛과 소금 2025년 8월 호에 소개된 글입니다. 

https://www.duranno.com/sl/view/article.asp?nid=22999&scroll=64&page=contents


[모기영 소식]  모기영이 추천하는, 모기영스러운 영화 제3탄!

모기영이 추천하는, 모기영스러운 영화 모모영, 그 세 번째 소개작이 유튜브에 업로드 되었습니다. 

강원중 실행이사님이 소개하는 영화 <아버지의 길>, 함께 만나볼까요?

사진을 클릭하면 영상으로 이동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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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무리

벌써 8월이 시작되었습니다.  모기영은 7회 영화제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언제나 모기영을 기다려주시는 관객분들을 생각하며 오늘도 좋은 영화, 또 좋은 이벤트를 구상하고 있답니다. 

선선한 늦가을이면 생각나는 영화제, 모기영!

더 다양한 소식들고 찾아뵙겠습니다. 


 / 장다나

편집디자인 /  모기영 편집부

2025년 8월 2일 토요일

모두를위한기독교영화제 주간모기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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