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주간모기영 170호

[원중캉의 생태주의로 영화읽기]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 미야자키 하야오, 파국을 수용하는 방법

2025.07.26 | 조회 35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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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중캉의 생태주의로 영화읽기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 미야자키 하야오, 파국을 수용하는 방법

한동안 SNS 피드를 도배하던 ‘지브리 풍’ AI 이미지들을 만나기 전까지, 부끄럽게도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 세계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거의 없었습니다. 누구나 한 편쯤은 보았을 그의 대표작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2001)이나 <하울의 움직이는 성>(2004) 등에서 느꼈던 다소 기괴하고 불편한 감상 정도가 하야오에 대해 제가 가진 이해의 전부였지요. 그러다 최근 재개봉한 지브리스튜디오의 첫번째 장편, <바람 계곡의 나우시카>(1984)속에서 생태주의 영화의 원형이 무엇인지를 엿보게 되면서 인류문명의 폭력성과 자연과의 공존이라는 주제에 평생을 몰두했던 그의 작품세계에 새롭게 압도되었습니다. 서둘러 미야자키 하야오의 일대기를 다룬 다큐멘터리, <미야자키 하야오: 자연의 영혼>(2024, 레오 파비에)와 가장 최근 작품인 <그대들은 어떻게 살것인가>(2023)를 연이어 찾아보며 한 시대를 대표하는 거장의 뒤늦은 팬이 되어버렸네요. 남은 여름기간 동안은 지브리의 모든 작품을 찬찬히 정주행하는 호사를 누려보고 싶은 열망이 샘솟습니다.

[이미지 1] <미야자키 하야오 : 자연의 영혼>(2024, 레오 파비에) / (출처 : 씨네21)
[이미지 1] <미야자키 하야오 : 자연의 영혼>(2024, 레오 파비에) / (출처 : 씨네21)

지브리의 작품들을 사랑할만한 이유는 수없이 많지만 저에게 특별히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지점은 미야자키 하야오가 일생을 통과하며 경험한 ‘절망’에 있습니다. 그는 자신의 작품 속에 언제나 현실세계에 스린 비참함을 가득 새겨두었지요. 하야오가 유년시절을 보낼 즈음 일본 열도는 세계대전의 패망으로 멸절의 수렁으로 미끄러지고 있었습니다. 원자폭탄의 불길 속에 인간의 몸들이 녹아내리고, 검은 쓰나미에 마을들이 잠겨버리고, 지진의 굉음 속에 도시들이 무너지는, 그야말로 눈앞에 드리운 종말의 풍경이 소년 하야오의 뇌리에 가득 스며들지요. 그러나 군수업자였던 아버지가 차지한 전쟁특수로 인해 그의 가정은 이웃들이 파멸하는 가운데서도 극도의 풍요를 누리는 분열적인 상황에 놓이게 됩니다. 하야오의 작품속에 반복되는 디스토피아적 세계관과 데칼코마니처럼 대비되는 유토피아적 이미지는 유년시절의 분열로 인해 탄생한 그의 다층적인 내면세계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땅이 오염된 게 문제에요. 
왜, 누가 세상을 이렇게 만든건지..
(…)
저 자신이 두려워요. 증오로 무슨 일을 저지를지 몰라요.”

<바람계곡의 나우시카>(1984), 절망에 빠진 나우시카의 말
[이미지 2] <바람계곡의 나우시카>(1984) 재개봉 보도스틸
[이미지 2] <바람계곡의 나우시카>(1984) 재개봉 보도스틸

이제는 생존을 걱정하게 되는 불볕더위 속에서 우리도 나우시카와 같은 탄식을 내뱉는 중이지요. 그리고 우리의 아름다운 세상을 무너트린 누군가를 향해 깊은 분노를 쏟아내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에게 더이상 아름다운 여름은 찾아오지 않을 것이며, 우리의 자녀들은 사람이 호흡할 수 없는 환경 속에 살아갈 가능성이 날로 높아지고만 말았습니다. 하야오는 스스로의 일생을 돌아보는 인터뷰에서, 자신이 평생토록 노력했지만 세상은 결국 단 한 치도 바뀌지 않았다는 말을 나누며 허탈한 웃음을 지어보입니다.

그런데 그가 그러한 냉소와 절망을 통과하고서 나누는 희망은 어딘가 더욱 근원적인 존재감을 드러냅니다. 독으로 가득찬 나우시카의 땅 그 아래에서 세상을 모래알만큼 조용히 정화시키고 있었던 나무들의 존재처럼, 그 희망은 무척 불가항력적이고 근원적인 것으로 다가온다는 사실이 마음을 붙잡습니다.

“부해의 나무들은 오염된 인간세계를 정화하려고 생겨난거야.
땅의 독을 흡수해 깨끗하게 만든 후 죽어서 모래가 되는거야.
이 지하동굴도 그렇게 생겨난거야. 곤충들은 그 숲을 지키고 있지.”

<바람계곡의 나우시카>(1984), 죽음의 부해 지하세계를 목격하게 된 나우시카의 말
[이미지 3] <바람계곡의 나우시카>(1984) 재개봉 보도스틸
[이미지 3] <바람계곡의 나우시카>(1984) 재개봉 보도스틸

최근 읽고 있는 <파국 이후의 삶>이라는 책에서도 이와 비슷한 수용의 언어들을 만납니다. 생태적 멸절을 야기한 제국의 파괴력 앞에서 신앙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평생토록 고민한 목회자의 언어는 결국 미야자키 하야오가 지닌 근원적인 희망과 닮았습니다. 그것은 체념이나 포기와는 다른, 절망을 통과하여 찾아오는 삶에 대한 절대적인 긍정이라고 말할 수 있을것 같네요.

“이런 이야기는 매일 뉴스를 지배한다. 탐욕스러운 정치인들, 광적인 총격범들, 탐욕스러운 거대 기업가들,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는 이윤과 기온, 실패하는 제도들, 종교적 스캔들,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착취, 유명인사들의 가십거리, 지구의 파괴 등 수많은 헤드라인 속에서 반복된다. 나는 최근 몇 년 동안 이러한 뉴스가 결코 새로운 것이 아님을 깨달았다. 그것은 그저 오래된 타락과 부정, 날마다 반복되는 다른 제목들일 뿐, 여전히 똑같은 추악한 이야기 일 뿐이다. 이런 붕괴의 추한 뉴스 속에 잠겨있을 때, 나는 항상 추함은 어디에나 있다는 똑같은 감정을 느끼며 살았다.
두 번째 이야기는 다르다. 어떤 의미에서는 더 오래된 이야기지만, 또 다른 의미에서는 늘 새로운 이야기다. 그것은 계속되는 아름다움의 이야기이며, 세상에서 항상 새롭게 펼쳐지고 있다. 그런 이야기들은 뉴스에 거의 등장하지 않지만, 아름다움의 경이로운 이야기들은 우리가 찾아볼 수 있다면 매일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 나는 불과 1미터도 되지 않는 가까운 거리에서 울새 한 마리가 풀과 진흙을 엮어 튼튼한 집을 만드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 둥지는 미래의 새끼들을 위한 사랑의 행위였다. 나는 그 새가 자신의 붉은 가슴을 이용해 둥지를 둥글게 다듬으며, 소중한 푸른 알을 품을 공간을 만드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파국 이후의 삶>, p.283, 브라이언 맥클라렌
[이미지4] <그대들은 어떻게 살것인가>(2023) 스틸컷
[이미지4] <그대들은 어떻게 살것인가>(2023) 스틸컷

“그 세계는 곧 불바다가 돼.” 
“친구를 만들 거예요. 히미와 키리코, 왜가리 같은.”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2023), 마히토와 큰할아버지의 대화

일생토록 세계의 파국을 맞이하며 살아온 거장의 시선에 기대어, 파국 이후의 삶을 무엇으로 살아내야 할지를 엿보게 됩니다. 그것은 친구를 만드는 일, 우리가 함께 살아있음을 환희하고 기뻐하는 일, 생명이 우리에게 주어졌음을 만끽하고 서로를 돌보는 일이지 않을까 여겨보는 여름날입니다.

“우리는 포기할 수도 있고, 그렇게 하고 싶다면 그렇게 해도 된다. 우리는 자유롭다. 하지만 만약 우리에게 비전과 용기가 있다면, 설령 세상이 난파선처럼 보일지라도, 지혜롭고 용기 있게 사는 길을 선택하는 것이 어떨까? 우리가 인간이라면, 우리가 구할 수 있는 모든 것을 구하며, 우리 주위의 모든 악에 맞서며 멋지게 살아야 하지 않을까?”

<파국 이후의 삶> p.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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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원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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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7월 26일 토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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