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운정의 손에는 쇠 파이프가 들려 있다. 파이프에 묻은 모래먼지가 빳빳한 남색 교복 치마에 묻었다는 사실도 모른 채 힘껏 휘두를 준비를 마쳤다. 새하얀 운동화가 더러워지고 있다는 사실 역시 모른 채 조금씩 뛴다. 묵직한 파이프를 들어 올려 뒤통수까지 당긴다.
이렇게 몇 초가 지나면 다시 이전의 삶으로 돌아가지 못할 거야.
그 사실을 운정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얇은 손모가지에 온 힘을 건다. 이 개를 죽이고 길을 지나가지 않으면 지금 당장 인생이 끝날지도 모른다. 그 여자의 존재를 들키다는 건 인생이 끝나버리는 일이나 다름없었다. 무엇이 더 소중한지 물을 필요도 없었다. 둘 모두 지키는 게 당연한 일이었다. 하나를 위해 갖고 싶은 다른 무언가를 포기하는 일은 운정에게 있을 수 없었다.
운정은 소성리 작은 마을의 자랑이자 부모의 유일한 희망이었다. 모범생, 보통 모범생 아니고 나랏밥 먹게 될 정도로 특출난 고등학생이라고 해야 맞겠다. 대학 합격 소식이 아니라 예상대로 수능 만점을 기대하고 있다는 운정 모친의 귀띔에도 마을 사람들, 일가친척이 모두 집에 모일 거라 했다. 앞으로 차차 적응해야 할 들썩임과 환대 속에서도 운정은 여유로웠다. 앞으로 쭉 이런 일이 벌어질 텐데 벌써 놀라면 안 되지, 이게 원래 내 삶이었던 거야, 생각했다.
수업 시간 도중 몇 번이나 울리는 진동을 느끼며 운정은 잔잔한 미소를 지었다. 졸업 전까지는 모범생 이미지를 유지해야 하므로 교실이 소란한 와중에도 전화를 받지는 않았다. 굳이 받을 필요 없었다. 모두가 모여 자신을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이 빤했다. 엄마의 부재중 전화 셋, 막내 이모 둘, 슈퍼 삼촌 둘, 그리고 연이은 메시지들. 보나 마나 빨리 집에 와서 같이 잔치를 하자는 메시지겠지,
하고 사촌동생의 메시지를 눌렀을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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