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어지는 이야기) 깐 - 대례 - 제창 - 은태 - 운정 - 그리고
<헌>
얼굴 한 번 보고 싶네. 데려와 봐. 엄마는 여자친구가 생겼다는 말을 듣자마자 그렇게 말했다. 왜인지 수줍은 말투였다. 그 섣부른 환대가 여전히 의문이긴 하다. 그때 엄마는 운정이라는 이름 말고는 여자친구에 대해 들은 게 없었던 것이다.
얼굴을 어떻게 봐요. 우리 집이 서울이랑 얼마나 먼데요. 나도 못 가는 촌을. 그렇게 말하고 끝났어야 할 일이었다. 상황이 이전과 다르게 흘러간 건 그 시기에 만난 여자친구가 다른 사람 아닌 운정이어서였다. 정말이지, 운정이 아니었더라면 그런 일은 없었을 거다.
운정은 선뜻 가겠다고 했다. 갈게, 하고 긍정의 대답을 건넨 적은 없었다. "몇 시까지 터미널로 가면 돼?"그게 대답이었다.
"시외버스 2시간에 마을버스 1시간 40분이 걸려."
운정은 작게 끄덕였다. 알아두겠다는 듯이. 나와 만나게 될 때도 그랬다. 모두 퇴근한 인쇄 공장 담벼락에서 손목을 겨우 붙잡고 사귀자고 말했을 때도 그렇게 고개를 끄덕였다. 뭘 먹으러 가고 싶다거나 오늘은 집에 가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눈치를 보일 때도 말없이 끄덕. 거절해야 할 이유가 있을 때는 "그날은 전 남편의 기일이라" 하고 간단하게 이유를 말했다.
딱히 갈등할 만한 상황이 없기도 했거니와, 갈등으로 번질 말의 습관이 없는 친구였기에 일 년이 지났다. 그렇게 십 년도 지날 거 같았다. 만일 그 시간을 툭 잘라낼 무언가가 있다면 때로는 못 견디게 따분하다는 듯한 그 얼굴이었다. 벌받는 시간을 견디는 듯 호불호를 드러내지 않는 그 미칠 것 같은 표정이었다. 실은 그 마음을 전달했을 때, 너 같은 사람도 여자에게 권태를 느껴? 하는 대답이 돌아올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더 컸다. 그런 말을 듣고 난 이후의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까. 나는 그런 상상을 하다가 꼼짝 없이 밤을 새우곤 했다.
무탈하게 애매하고 지루한 관계 속에서 "우리 엄마 보러 갈래, 할머니랑 같이 사시는데, 엄마의 엄마 아니고 아빠의 엄마인데 괜찮을까" 하고 물었더랬다. 운정은 이상한 아이였으니까. 어쩌면 못지않게 이상한 우리 집과 잘 맞을지도 몰랐다. 절뚝거리는 아들을 서울에 혼자 던지고 성공하기 전까지는 못 돌아온다며 땅을 팔아 지원하는 우리 집, 말이다. 유산을 넉넉하게 받아두어 어릴 때부터 바밤바가 얼마인지 시외버스 편도 가격이 얼마인지 알지도 못했지만, 그럼에도 바싹바싹 말라가고 숨이 막히던 집. 어쩌면 우리 집의 기형적인 부분과 운정의 부분이 맞닿아 잘 맞을지도 모르겠단 발상이 방문보다 먼저 튀어나왔다. 일관적으로 무기력한 운정의 모습이 엄마에게는 또 다른 장점으로 비칠지 몰랐다. 비록 나와는 다 맞지 않을지라도, 말이다. 그렇게 해서라도 만남이 이어진다면 그건 그것대로 좋지 않을까. 헤어지는 건 슬픈 거니까. 남이 된다는 것도 못지않게 슬프니까. 잘 맞는다거나 맞지 않는 건 나중의 일이었으니까. 어쨌거나 나는 운정 이외에는 다시 누굴 만날 수 없을 거란 생각이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건 내 방식의 가장 지독한 사랑이었다.
복잡하면서도 성의 없는 초가을의 시골행은 그런 의도와 바람 속에서 그렇게 결정되었다. 돌아보면 전부 가을이었기에 가능한 일이 아니었을까 싶다. 날씨의 방해가 없었기에 성사되는 일들이 간혹 있다. 달리 말하면, 계절이 지나가면 언제 그랬냐는 듯 수포로 돌아간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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