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 이송 (6)

2026.11.03 | 조회 6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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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신재

꩜

 

엘리프네 자동차가 언덕 아래로 미끄러져 갔다. 차도 가장자리에 쌓여 있던 터키소나무 잎이 우수수 날리자 단내가 거리를 모기장처럼 덮었다. 익숙한 세상으로 돌아온 것이 반가운지, 피코는 길목마다 성실히 영역을 표시했다. 토프락은 우리 단지까지 나와 동행했다. 빵집에서부터 갈라져 피코에게 누굴 따라갈지 택하게 할 수도 있었지만, 우리 둘 다 피코 곁을 서둘러 떠나고 싶지 않았다. 토프락이 그렇게 말했느냐고? 그런 건 말없이도 느낄 수 있었다. 토프락과 나는 삼각형을 이루는 모서리가 하나라도 무너질 때 어떤 기분인지 알았으니까. 피코가 앞장서고, 토프락과 나는 조금 거리를 둔 채 나란히 걸었다. 세 각을 이루며 걸으니 속이 편안했다. 세 각을 이루며 걸으니, 두려움이 요술풍선에 든 공기처럼 서서히 빠져나갔다.

"그 할아버지가 조로를 찾아 나서지는 않겠지?" 잔존하는 불안함을 완전히 밀어내고자, 나는 물음을 빙자해 동의를 구했다.

"어차피 걔네 가족은 내일이면 앙카라로 돌아간다며." 토프락은 언제 주웠는지 모를 대꼬챙이를 아스팔트 바닥에 질질 끌며 걷고 있었다. "토끼들은 안됐지만 어쩔 수 없지. 조로가 잘했다는 건 아니지만, 우리가 제대로 잠겨 있었다면 그런 불상사도 없었을 거야. 토스트 가게 측의 잘못도 전혀 없다고는 볼 수 없는 거지. 조로가 안 그랬다고 쳐. 다른 들개가 들어와서 죽이지 않았겠어? 어쩌겠어, 그게 얘들의 본능인걸." 토프락이 꼬챙이로 바닥을 짚더니 피코를 향해 한쪽 무릎을 굽혔다. "안 그러냐, 피코? 개 된 입장에서 네가 한번 말해 봐."

단지 입구에는 버터에 양파를 볶는 냄새가 났다. 정문과 가까운 하티제 할머니 집에서 풍기는 것이었다. 범상치 않은 양파 풍미가 닭고기 스튜로 전개될 것을 예견했는지, 피코는 닫힌 철제 정문을 폴짝 넘어 단지에 입성했다. 토프락은 우리 단지 건물들을 둘러보며 발을 굴러 흙먼지를 일으켰다. 그 애가 올려다보는 하티제 할머니네 이 층 발코니에 이불보가 나부껴 형광색 초승달을 가렸다.

"오늘도 리조트에서 잘 거야?" 내가 물었다.

"해먹이 없잖아. 맨바닥에는 도마뱀이 너무 많이 돌아다니거든."

토프락은 무언가를 기다리듯 잠시 뜸을 들였다. 여기서 무슨 말이라도 해야 할까? 내가 생략할 행동과 말이, 이 애에게도 상처가 될까? 아니 그보다, 나 자신에게 후회로 남지는 않을까? 나는 적절한 작별 인사말을 고르며 생각에 잠겼다. 토프락은 꼬챙이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내 옆으로 성큼 다가온 그 애에게서 기름과 구름의 냄새가 났다. 비행기 바퀴가 활주로에서 붕 뜨는 순간 발생하는 열의 냄새. 코로 냄새를 깊이 빨아들이자, 내 몸이 슬그머니 공중에 떠올랐다. 서늘하게 식은 내 어깨에 토프락의 뜨거운 손이 와 닿았다. 그 애는 두 돌덩어리를 건네고 있었다. 그것은 반으로 쪼개진, 나의 암모나이트 화석이었다.

"넌 이 귀중한 걸 찾지도 않네. 한국에 가서 보여줘야지, 에게해를 모르는 한국 친구들한테."

첨부 이미지

토프락과 헤어져 단지에 들어서니 기분이 야릇했다. 매일 홀로 드나들어도 아무렇지 않던 이 문이 휑하게만 느껴졌다. 내 발소리에 털이 풍성한 고양이가 로즈메리 덤불 뒤로 몸을 숨겼다. 불빛 한 점 들지 않는 비파나무 아래에는 두 그림자가 수런거리고 있었다. 대화 내용이 잘 들리지 않는 가운데, '신이시여' 하는 소리만 정확히 알아들을 수 있었는데, 우리 할머니 목소리였기 때문이었다.

"할머니?"

두 사람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손가락을 코에 갖다 댔다. 한 사람은 우리 할머니가 맞았고, 제2의 인물은 푼다 아주머니였다. 아주머니는 내게 가까이 와보라고 손짓하셨다. 아주머니의 얼굴은 어디가 마비된 것처럼 불편해 보였다. "여기서 이럴 게 아니라, 우리 집으로 가자꾸나. 어르신, 그게 낫겠지요?"

아주머니는 밖을 한참 살핀 후에야 유리문을 닫고 잠그셨다. 누가 쫓아오기라도 하듯 조심스러운 태도였다. 부엌에는 피코가 사료통에 코를 박은 채 꼬리를 살랑거리고 있었다. 좀 이상한 일이었다. 고양이를 일곱 마리나 키우는 아주머니는 피코를 테라스에서만 먹이셨지, 집 안으로는 들이신 적 없기 때문이었다. 내 의구심을 뒷받침하듯, 고양이들은 척추와 털을 한껏 세워 불만을 표출하고 있었다. 푼다 아주머니는 할머니와 나를 소파에 앉히시고 연한 홍차를 내오셨다. 그리고 리모컨을 두는 바구니에서 태블릿 피시를 꺼내셨다.

"이놈의 기계가 아주 느려 터졌어. 우리 아들이 안 쓴다고 준 건데 창이 열리려면 한나절이 걸린단다."

"자네 아들도 한심하기로는 마찬가지구먼." 할머니는 끙 하는 소리를 내시며 설탕도 넣지 않은 차를 들이켜셨다.

"어르신, 그래도 걔는 제 처랑 금실 하나는 좋아요."

할머니는 소파에 허리를 파묻으셨다. 푼다 아주머니는 신문 위에 놓인 반찬통에서 마른 담뱃잎을 한 꼬집 꺼내어 궐련지에 말기 시작하셨다. 장화를 신은 듯 발만 하얀 검은 고양이가 다가와 담뱃잎에 코를 대고 킁킁거렸다. 집 안에는 피코가 건사료를 씹어 먹는 소리만 우두둑우두둑 울려 퍼졌다. 피코는 우유까지 한 대접 핥아 마시고 소파로 다가와 내 양발을 깔고 앉았다. 실금이 간 태블릿 피시 화면에 파란 페이스북 로고가 뜨더니 상단에서부터 페이지가 천천히 로딩됐다. 대다수 안건이 페이스북에서 논의되는 이 고령화 마을에서, 커뮤니티 페이지가 중대한 역할을 수행한다는 얘기는 할아버지한테서 들은 적 있었다. 그러나 직접 거기 들어가 보는 건 처음이었다.

푼다 아주머니가 돌돌 말린 담배 끝을 라이터로 지지며 물으셨다. "얘야, 사람들이 대체 무슨 얘기를 하는 거라니?"

마침내 드러난 화면을 가득 메운 건 흙바닥에 축 늘어진 토끼 두 마리의 사진이었다. 게시자의 프로필 사진을 훑어보니 콧수염을 기른 젊은 남자가 일본 만화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애지중지 키운 우리 토끼를 누가 죽였습니까? 그의 물음 아래에는 벌써 백 개도 넘는 댓글이 달려 있었다. 댓글 창에서 연갈색 반점이 있는 하얀 개가 용의선상에 올랐다. 이 개가 토스트 세상에 들어가는 걸 내가 봤어요. 누군가 사진을 첨부하기도 했다. 혀를 쑥 내밀고 순진한 눈으로 카메라를 바라보는 그 개는, 맙소사, 우리의 피코였다. 내가 고개를 떨구니 피코는 사진에서 지은 표정을 똑같이 하고 나를 올려다보았다. 사람들은 그 개가 고양이를 쫓고 철망을 물어뜯는 개라고, 밤만 되면 포악해지고 어린이들을 노리기까지 한다고 했다. 내가 봤어요, 그놈의 몹쓸 소행인걸. 확언을 서슴지 않는 증인들도 등장했다. 아, 그 개를 마당에 들였을 때는 그런 비극은 예상했어야지. 더 파볼 것도 없어. 전적이 화려한 개야, 그 개가.

나는 엄지로 댓글 창을 있는 힘껏 눌렀다. 내 다급한 마음을 대변하기에 키보드 반응은 원망스러울 만치 느렸다. 한참을 타이핑했지만 고작 피코의 이름 두 자밖에 쓰지 못했다. 여론을 돌리려면 이다음 대체 뭐라고 적어야 할까? 백 명도 넘는 주민들을 나 혼자 힘으로 설득할 수 있을까? 조로의 짓이라고, 사실 그대로 밝히면 사람들이 믿을까? 어차피 엘리프네 가족은 동이 트기도 전 이 마을을 빠져나갈 터였다. 그렇지 않다고 한들, 엘리프의 부모님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조로를 보호하리라. 결국 피코만 더 큰 상처를 입을 게 뻔했다. 이 게임의 패자는 바뀔 수 없었다.

"뭐라고 쓰는 게냐?" 할머니가 물으셨다.

글자를 하나씩 도로 지우는 동안 내 왼쪽 아래 어금니가 시큰거렸다. 그건 난생처음 느껴보는 종류의 통증이었다.

아침 해가 열두 갈래도 넘는 빛을 발산하며 떠올랐다. 피케 셔츠 유니폼을 입은 공무원 둘이 트럭을 타고 단지에 왔다. 피코는 낯선 차가 내는 엔진 소리에 반응해 크게 짖기 시작했다. 푼다 아주머니는 한동안이라도 피코를 댁에 가둬두려고 애쓰셨다. 그러나 평생을 자유롭게 살아온 피코에게 진정한 집은 거리였다. 자기 집으로 되돌아가겠다는 의지를 꺾을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는 법이다. 밖으로 뛰쳐나간 피코는 결국 공무원들에게 끌려가면서도 속없는 얼굴을 하고, 자신에게 몰린 시선을 만끽했다. 마치 소풍이라도 가는 줄 아는 것 같았다.

단지 사람들은 골목으로 쏟아져 나와 거세게 항의했다. 대열의 맨 앞에 선 건 의외로 우리 할머니와 할아버지였다. 나는 두 분 등 뒤에 섰다. 고개를 돌리지 않아도 사람들의 움직임이 한눈에 들어왔다. 내 옆에서 하티제 할머니는 기도문인지 혼잣말인지를 중얼거리셨고, 잽싸게 나타난 투나는 이 모든 광경을 아이패드로 찍고 있었다. 푼다 아주머니는 착오가 있는 거라고 역정을 내시다가 종내에는 울음마저 터뜨리셨다. "그 개를 제발 데려가지 말아요. 죄가 있다면 이 세상에 홀로 뚝 떨어진 것뿐이라고요."

짐칸 뒷문이 닫히기 직전에야, 나는 용기를 내어 대열을 비집고 나갔다.

"피코가 그런 거 아니에요."

아빠 연배로 보이는 공무원 아저씨가 목장갑 낀 손으로 내 어깨를 두드렸다. "얘야, 신고가 들어오면 우리는 데려가야 한단다. 좋은 데로 가는 거야."

피코는 내게 맘보를 청하듯 철창에 두 손을 얹었다. 원망도 의심도 없는 사진 속 얼굴을 그대로 하고. 우리 모두의 열띤 반발은 아무 소용없었다. 트럭에 시동이 걸리고, 피코는 끝내 이송되었다.

내 책상 서랍 속에는 아직도 반으로 쪼개진 암모나이트가 누워 있다. 언젠가 에게해를 모르는 친구들에게 그걸 보여줄 때, 무슨 이야기를 해주어야 할까? 그 여름 이후 그 애들과 개들을 다시는 만나지 못했다. 다만, 날개 달린 백마가 밤하늘을 활공할 즈음, 리조트 꼭대기에 전깃불이 들어온 것을 가끔 보았을 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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