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아카이브 58. 리메이크가 더 재미있는 영화

리메이크가 더 재미있는 영화

마지막 추위가 매서운 2월의 첫 번째 레터는 작년의 다짐을 뒤늦게 실천하기 위한 주제로 골라봤습니다. 이름하야 리메이크가 더 재미있는 영화입니다. 작년 새해 첫 레터로 문학 작품을 각색한 영화를 소개했었는데요. 그때 각색과 리메이크가 어떻게 다른지 알아보면서 리메이크 영화도 소개하겠다 다짐했습니다. 그리고 지금에야 그때의 다짐을 실천하게 되었는데요.🥲 영화를 소개하기 전 한 가지 짚고 넘어가자면, 재미의 기준은 어디까지나 발행인의 취향이라는 점을 참고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소개할 작품의 경우 국내에서는 원작을 선호하는 분들이 더 많은 편이거든요.🤨 원작도 좋았지만 제 기억 속에 더 인상적으로 남아 있는 것이 리메이크작이기에 어디까지나 개인 취향으로서 더 재미있었다는 것을 참고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소개드릴 작품은 알파치노의 연기가 인상적인 <여인의 향기>와 마틴 스콜세이지 감독만의 서스펜스가 돋보이는 <디파티드>입니다.

여인의 향기(Scent of Woman), 마틴 브레스트,  1992년 개봉

<여인의 향기>는 이탈리아의 원작 소설을 각색한 이탈리아 영화를 다시 할리우드 버전으로 리메이크한 작품입니다. 불의의 사고로 실명한 퇴역 장교와 명문 고등학교의 가난한 모범생이 함께 시간을 보내며 서로를 이해하고 공감하게 되는 과정을 그렸는데요. 제50회 골든 글로브 드라마부문에서 작품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흔히 각색과 리메이크를 혼동하기 쉬운데요. 각색은 소설이나 웹툰과 같은 문학 작품을 영상화하는 것이라 할 수 있고, 리메이크의 경우 드라마나 영화가 원작인 작품을 다시 드라마나 영화로 만드는 것을 말합니다. <여인의 향기>의 경우 이탈리아에서 각색한 영화를 할리우드에서 리메이크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영화는 주연을 맡은 ‘알 파치노’의 연기가 인상적인 작품이기도 한데요. 알 파치노는 해당 작품으로 제65회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는데 이는 7번의 노미네이트 끝에 마침내 오스카를 거머쥔 것이라고 해요.😯 그의 연기뿐만 아니라 전설의 탱고신, 연설신 등 명장면이 많은 20세기 걸작 중 한편으로 꼽힙니다. 참고로 할리우드 버전의 <여인의 향기>는 이탈리아 버전과 일부 설정만 같을 뿐 전혀 다른 느낌의 작품이라고 하는데요. 개인적으로는 아직까지 원작을 볼 기회가 없어서 아쉽네요.

크리스마스에 고향에 갈 경비를 마련하기 위해 부활절 연휴 동안 아르바이트를 해야 하는 고등학생 ‘찰리’는 교내 게시판의 공고를 보고 찾아간 집에서 퇴역 장교 ‘프랭크’를 만나게 됩니다. 프랭크는 사고로 시력을 잃은 인물로 찰리는 그의 괴팍한 성격에 당황하지만, 주말 동안 그를 돌보기로 약속하고 학교로 돌아옵니다. 그리고 그날 밤, 예기치 않게 교내에서 벌어진 사건에 휘말리게 되면서 교장으로부터 사건에 가담한 친구들을 밀고하라는 압박을 받습니다. 한편, 집에서 프랭크를 돌보면 될 거라 여긴 찰리의 생각과 달리 프랭크는 오랫동안 준비해 온 비밀스러운 뉴욕 여행을 감행하는데요. 프랭크와 함께 뉴욕으로 여행을 가게 된 찰리는 그와 함께 최고급 호텔과 식당을 오가며 특별한 경험을 하게 됩니다. 과연 프랭크와 찰리의 뉴욕 여행 끝에는 어떤 결말이 기다리고 있을까요?

영화는 명문 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가난한 학생 ‘찰리’가 아르바이트 공고를 통해 만나게 된 시각장애인 퇴역 장교 ‘프랭크’를 주말 동안 돌봐 주면서 서로를 이해하게 되는 과정을 통해 ‘삶의 고독과 희망’을 이야기합니다. 찰리와 프랭크가 서로를 만나게 된 시점은 두 사람 모두의 인생에서 중요한 터닝 포인트였다고 할 수 있는데요. 특히 프랭크는 찰리를 만났을 당시 삶의 의지를 잃고 죽음을 결심한 상태였는데 ‘위기 앞에서도 도망치지 않고 바른길을 선택할 줄 아는 청년’ 찰리와 함께하며 생의 의지를 되찾습니다. 찰리 역시 괴팍함 속에 상처를 숨기고 살아온 프랭크를 진정으로 이해하며 공감하는데 두 사람의 짧지만 강렬한 여정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 앞에 놓인 수많은 ‘갈림길 앞에서 신념을 지키며 기꺼이 어렵고 힘들지만 옳은 길을 선택하는 삶’이 얼마나 가치 있는 것인가를 깨닫게 됩니다. 그렇기에 영화 속 많은 명장면 중에서도 알파치노의 연설 장면이 관객들에게 주는 울림의 깊이는 남다르게 느껴질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알 파치노의 후덜덜한 연기력은 덤이고요.🤭)

디파티드(The Departed), 마틴 스콜세이지, 2006년 개봉

<디파티드>는 홍콩 누아르 영화를 대표하는 <무간도>를 리메이크한 작품으로 갱단에 언더커버 요원으로 잠입한 경찰과 갱단에서 의도적으로 길러낸 경찰 스파이 사이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렸습니다. 마틴 스콜세이지 연출에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맷 데이먼, 잭 니콜슨, 마크 월버그, 알렉 볼드윈 등 쟁쟁한 배우들의 출연으로 화제를 불러 모은 작품이기도 한데요. 제79회 아카데미에서 작품상, 감독상, 각색상, 편집상을 수상했습니다. 스콜세이지 감독은 이전까지 아카데미 수상과는 인연이 없다가 이 작품으로 마침내 감독상을 수상했다고 해요.

영화는 원작의 전체적인 스토리와 인물 설정 등은 비슷하지만 분위기와 결말에서 큰 차이를 보이는데요. <무간도>가 캐릭터의 정체성에 초점을 맞추고 이야기가 진행된다면, <디파티드>는 원래의 자리에서 이탈하게 된 이들이 겪는 비극에 중점을 두고 서스펜스를 조금 더 강조한 것이 돋보입니다. 스콜세이지 감독은 원작 영화는 본 적 없고 각본만 보고 제작을 결정했다고 하는데요. “<디파티드>는 엄밀히 말해 <무간도>의 리메이크작이 아닌, 영감을 받아 캐릭터의 성격과 세상을 대하는 그들의 상반된 자세에 집중해서 만든 이야기”라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원작의 팬 층이 두터워 <디파티드>는 호불호가 많이 갈리는 편인데요. 개인적으로는 원작의 핵심은 헤치지 않으면서도 미국의 정서와 감독의 색이 잘 어우러진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남부 보스턴 매사추세츠 주 경찰청은 프랭크 코스텔로가 이끄는 보스턴 최대 범죄조직망을 일망타진하기 위해 신참 경찰 ‘빌리’를 조직에 침투시킵니다. 본인을 제외한 집안 전체가 범죄자인 빌리는 경찰 배지를 반납하고 사촌의 도움(?)을 받아 코스텔로의 신임을 얻기 위해 고군분투합니다. 한편 또 다른 신참 경찰 ‘콜린’은 경찰 내에서 승승장구하며 코스텔로를 제거하기 위한 특별 수사반에 배치되는데요. 사실 콜린은 코스텔로가 어릴 때 발굴해서 길러내 경찰에 잠입시킨 첩자입니다. 콜린은 경찰청의 동태를 코스텔로에게 알려주고 수사는 매번 난항을 겪습니다. 언더커버 요원과 첩자로 상대 조직에 균열을 만들어 가던 빌리와 콜린은 길어지는 임무에 정체성의 혼란을 겪고, 양쪽 모두 첩자의 존재를 눈치채면서 두 사람은 상대방의 정체를 캐기 위해 서로의 운명에 비극의 총구를 겨누는데요. 과연 빌리와 콜린의 뒤 바뀐 운명은 어떤 결말을 맺게 될까요?

<디파티드>는 서로 다른 목적을 갖고 상대방 조직에 잠입해서 살아가는 두 청년의 삶이 어떻게 충돌하고 변화되어 가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데요. 이야기의 큰 줄기와 인물 설정은 원작과 비슷하지만 결말에서 가장 큰 차이를 보인다고 할 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원작보다 리메이크를 좋아하는 이유 역시 원작과 다른 결말 때문인데요. <디파티드>의 명장면으로 엔딩 시퀀스를 꼽고 싶을 만큼, 콜린이라는 인물에 적합한 마지막이자 연출이었다고 생각해요. 관점에 따라 다르겠지만, 원작에서 ‘콜린’에 해당하는 인물(유건명)은 ‘어쩔 수 없는 생존을 위한 선택적 기회주의자’처럼 느껴졌다면, <디파티드>의 콜린은 ‘총으로 쏴 죽여버리고 싶은 쥐새끼’처럼 느껴질 때가 많았는데 결말에서 일종의 ‘권선징악’이 이루어진 것 같은 느낌이랄까요.😂 범죄를 다루는 서사에서 만큼은 ‘열린 결말’보다 ‘꽉 닫힌 결말’을 선호하는 취향이 반영된 것이기도 합니다. ‘리메이크가 더 재미있다’라고 표현했지만, <무간도>와 <디파티드>는 두 작품 모두 서사와 인물의 오리지널리티는 살리면서도 국가와 장소, 시대 배경에 맞춰 각각의 작품을 설득력 있게 그려냈다고 할 수 있는데요. 기회가 된다면 두 편 모두 감상해 보시길 추천합니다!

Epilogue

 🎞함께보면 좋은 추천 콘텐츠: <당신이 사랑하는 동안에(Wicker Park)>, 폴 맥기건,  2004년 개봉

<당신이 사랑하는 동안에>는 모니카 벨루치와 뱅상 카셀 주연의 프랑스 영화 <라 빠르망 (L’appartement)>의 할리우드 버전 리메이크 작품입니다. 2년 전 자신을 떠난 연인으로 인해 상처 입은 남자 주인공을 중심으로 서로 엇갈린 채 사랑을 찾아가는 도시 남녀의 사랑이야기를 그렸습니다. (원작은 유럽 버전 세기의 커플이라고 할 수 있는 모니카 벨루치와 뱅상 카셀을 실제 커플로 발전시켰는데요. 두 사람은 이 작품을 찍고 연인으로 발전, 결혼했다 이혼했습니다…😳) 영화는 갑자기 사라져 버린 옛 연인의 흔적을 우연히 발견하게 된 남자 주인공 매튜의 시점에서 과거의 추억과 옛 연인의 흔적, 주변 인물들과의 미묘한 상황을 독특한 구성으로 그려냈는데요. 절절한 멜로에 미스터리 스릴러 요소를 더해 색다른 느낌을 주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리메이크 버전을 먼저 감상한 후 원작을 보기도 했고, 리메이크와 원작이 결말에서 큰 차이를 보이기에 리메이크 버전을 선호하는데요. 원작이 ‘냉혹한 사랑의 현실’을 그렸다면, 리메이크 버전은 ‘이상적인 멜로’를 그렸다고 할 수 있어요. (발행인은 ‘권선징악’과 ‘해피엔딩’ 매우 좋아합니다.🥹) TMI를 추가하자면 주연을 맡은 조시 하트넷을 무척 좋아하던 시절이라 리메이크 버전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네요.😂 원작의 경우 프랑스 영화 특유의 감성(?)이 짙게 배어 있는 작품이자 모니카 벨루치의 리즈 시절을 볼 수 있는데요. 기회가 된다면 원작과 리메이크작 모두 감상해 보길 추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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