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아카이브 59. 오리지널이 다른 이유

태양은 가득히 (Plein soleil), 르네 클레망, 1960년 개봉 (국내개봉 1973년)

<태양은 가득히>는 예전에 소개한 <캐롤>의 원작 소설을 집필한 퍼트리샤 하이스미스의 추리 소설 『재능 있는 리플리씨』를 영화화한 작품입니다. ‘선탠을 한 필름 누아르’라는 별칭에 걸맞게 작렬하는 태양 아래에서 벌어지는 인간의 욕망과 음모를 그렸는데요. 치밀한 구성과 복선, 마지막 반전이 돋보이는 작품으로 이탈리아 지중해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아름다운 풍광 역시 영화의 매력을 배가 시켰습니다. 특히 톰 리플리 역을 맡은 알랭 들롱의 연기가 돋보이는데요. 고전 영화가 낯선 분들도 ‘알랭 들롱’하면 이 작품을 떠올릴 만큼 <태양은 가득히>는 알랭 들롱을 지금의 자리에 있도록 만들어준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영화는 1999년 미국 버전으로 리메이크되어 <리플리>라는 제목으로 개봉했는데요. 엄밀히 따지면 <태양은 가득히>가 아닌 원작 소설을 리메이크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전체적인 분위기, 작품 해석, 결말까지 <태양은 가득히>와 다른 부분이 많거든요. 개인적으로는 <태양은 가득히>를 더 좋아하는데 맷 데이먼의 리플리도 훌륭했지만, 알랭 들롱의 리플리는 누구도 따라잡을 수 없을 것 같더라고요.🤭 최근에는 넷플릭스에서 시리즈로 제작되기도 했는데요. <태양은 가득히>가 ‘선탠을 한 필름 누아르’라면 <리플리: 더 시리즈>는 흑백 화면이 돋보이는 작품으로 원작의 오리지널리티와 현대적인 감각이 적절하게 조화를 이룬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리플리>와 넷플릭스 시리즈 중에서 하나를 고르라면 넷플릭스 시리즈를 추천합니다!)

일확천금을 꿈꾸는 청년 톰 리플리는 고등학교 동창이자 부잣집 외동아들 필립의 아버지로부터 그림 공부를 하러 간 로마에서 빈둥대는 아들을 데려오면 5천 달러를 주겠다는 제안을 받고 이탈리아로 향합니다. 필립을 만난 톰은 그의 비위를 맞춰주며 따라다니고 필립은 톰을 멸시하면서도 자신의 비위를 잘 맞추는 톰을 데리고 이탈리아를 누비고 다니는데요. 두 사람은 나폴리에서 필립의 연인 마르쥬를 만나 함께 요트로 항해를 즐깁니다. 그러나 필립은 톰이 데이트를 방해한다 생각해 그를 대놓고 멸시하고, 필립을 향한 톰의 열등감은 점차 증오로 변하면서 두 사람의 관계에도 미묘한 긴장감이 감돌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톰은 오해의 불씨를 피워 필립과 마르쥬 사이를 갈라놓는데요. 마르쥬가 배에서 내린 후 파도가 치던 날 톰은 말다툼 끝에 필립을 죽이고 맙니다. 톰은 필립의 시체를 우비로 감싸 와이어로 묶어 바닷속에 넣은 후 육지로 올라와 필립의 신분을 위조하고 그의 사인과 필적, 목소리까지 따라 하며 필립 행세를 하기 시작하는데요. 과연 리플리는 자신의 범죄를 숨기고 신분상승을 향한 욕망을 실현할 수 있을까요?

쉘 위 댄스(Shall we ダンス?), 수오 마사유키, 1996년 개봉 (국내개봉 2000년)

<쉘 위 댄스>는 근면 성실하게 살아 온 단란한 가정의 가장이 반복되는 일상에 무력감을 느끼던 차에 호기심에서 시작한 사교댄스를 통해 삶의 활력과 행복을 되찾는 과정을 그린 작품입니다. 극적인 사건이나 갈등 없이 춤과 음악에 소소한 유머가 더해진 잔잔한 일본 영화로 국내에서는 개봉 후 사교댄스 열풍을 일으키며 흥행에 성공했는데요. 일본에서도 평단과 관객들의 호평을 받으며 2천만이 넘는 관객수를 동원한 것은 물론 미국에서도 개봉 당시 가장 흥행한 외국 영화로 기록되었다고 합니다.

영화의 제목이자 춤곡으로 삽입된 ‘Shall we dance?’는 율 브린너와 데보라카 주연의 고전 영화 <왕과 나>의 주제곡으로 주인공이 왈츠를 추는 장면에 삽입되었는데요. 두 영화의 왈츠 신은 모두 명장면으로 꼽히기에 기회가 된다면 유튜브에서 클립을 찾아 감상해 보시기를 추천합니다! (특히 <왕과 나>의 왈츠 신이 아주 신명 납니다!😆) <쉘 위 댄스>는 2004년 미국 버전으로 리메이크되어 리차드 기어와 제니퍼 로페즈가 주연을 맡았는데요. 개인적으로는 원작의 발끝에도 미치지 못하는 작품이 아니었나 싶을 만큼 실망스러웠던 관계로 안 보는 걸 추천하고 싶네요.🥺

중년의 접어든 스기야마는 직장과 가정에서도 성공적이고 안정적인 삶을 꾸려나가고 있는 가장입니다. 근면 성실하게 집과 직장을 오가던 어느 날, 전철 안에서 무심코 올려다본 그의 시선이 사교댄스 교습소 창가에 서 있는 여인에게 가 닿는데요. 그 뒤로도 항상 같은 시간 창가에 서 있는 여인과 사교댄스에 호기심이 생긴 스기야마는 마침내 교습소에 발을 들여놓게 되고, 단조로웠던 그의 일상에도 작은 변화와 활력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언터처블 1%의 우정(Intouchables), 올리비에 나카체&에릭 토레다노, 2011년 개봉

<언터처블 1%>의 우정은 사고로 목 아래가 마비된 상위 1%의 부자와 이민자 가정의 하위 1% 무일푼 청년이 함께하며 서로를 이해하고 우정을 나누는 과정을 그린 작품입니다.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했는데요. 실존 인물인 필립은 억만장자로 패러글라이딩 사고로 목 아래로 전신이 마비되어 24시간 자신을 돌봐줄 사람으로 빈민가의 청년을 고용하게 되고, 두 사람은 신분과 환경의 차이를 뛰어넘는 우정을 나눈 것으로 유명합니다. (필립의 친구이자 무일푼 청년은 극 중에서 흑인계로 설정되었지만 실제 인물은 아랍계입니다.) 영화는 부자와 빈자, 백인과 흑인, 장애인과 비장애인으로 나뉘는 양 극단의 두 주인공이 서로를 이해하게 되는 과정을 감동적으로 그렸는데요. 작위적이지 않은 서사 전개와 유머가 돋보이는 작품으로 사운드 트랙을 잘 활용한 영화로도 꼽을 수 있습니다. 재미있는 부분은 두 사람의 음악 취향마저 극과 극으로 서로가 어떻게 살아왔는가를 보여준다는 사실입니다.😆

영화는 전 세계적으로 흥행했는데요. 프랑스에서는 10주 연속 박스오피스 1위에 올랐고, 유럽과 미국 등지에서 1,000만 달러가 넘는 흥행 수익을 올렸습니다. 국내에서도 100만이 넘는 관객을 동원했는데요. 유럽 영화 관람 비율이 높지 않다는 것을 감안해도 높은 흥행 수치가 아닐까 싶어요.🧐 2017년에는 미국 버전으로 리메이크되기도 했는데요. 리메이크 소식을 듣고 잘 나올 것인가 의심스러웠는데 의심이 확신이 되어 최악의 리메이크라는 평이 대부분입니다. (뉴스레터에서 만큼은 별로였던 영화도 혹평은 자제하려 하는데 개인적으로 보지 않기를 잘했다 싶을 만큼 평이 안 좋은 걸 보면 흥행에만 초점을 둔 섣부른 리메이크는 좋은 결과로 이어질 수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24시간 돌봐줄 사람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전신마비 억만장자 필립은 가진 것이라곤 건강한 신체가 전부인 무일푼 백수 청년 드리스를 고용주로서 만나게 됩니다. 거리낌 없는 자유로운 성격의 드리스에게 호기심을 느낀 필립은 그에게 특별한 내기를 제안하는데요. 2주 동안 필립의 손발이 되어 24시간 밀착 간호를 버틸 수 있는지 시험해 보겠다는 것! 참을성 1도 없는 드리스는 오기가 발동해 얼결에 내기를 수락하게 되고 모든 것이 극과 극인 두 사람은 예측불가의 동거를 시작하게 됩니다.

미라클 벨리에 (La Famille Belier), 에릭 라티고, 2014년 개봉

<미라클 벨리에>는 청각장애인 가정에서 유일하게 듣고 말을 할 수 있는 코다(CODA, A Child of Deaf Adult) 폴라가 노래에 천부적인 재능을 지녔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가족에 대한 책임감과 자신의 꿈 사이에서 갈등하며 성장하는 과정을 그린 가족 성장 영화입니다. 영화는 실제 코다인 베로니크 폴랭의 자서전을 원작으로 하는데요. 농인 부모가 청인 자녀에게 지나치게 의존하는 모습으로 그려졌다는 비판도 있었지만, “농문화 관점에서 부모의 품을 벗어나 꿈을 펼치려는 자녀와 부모 사이의 성장을 가족영화로서 잘 살린 작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개봉 당시 영화관에서 봤을 때는 ‘주인공의 성장’에만 집중했다면, 레터를 준비하며 영화 비평을 통해 ‘농문화’라는 새로운 관점을 배우게 되었는데요. “농인들은 소리에 대한 욕구가 없기 때문에 결핍도 없고, 수어라는 언어체계를 통해 소통하기에 장애를 느끼지도 않는다”고 합니다. 수어가 주류사회에서 통용되는 언어가 아니기에 “언어장벽에서 오는 불편함으로 소외를 당하는 것이지 본질적으로 장애가 있다고 느끼지 않고, 자신들의 상태를 장애가 아닌 정체성으로 사고하며 자신들만의 언어와 문화를 공유하는 공동체 의식”을 가진다고 하는데요. 이를 ‘농문화’라고 하고 서구와 일본에서는 이미 중요하게 다루는 부분이라고 해요. 영화에서 엄마는 폴라가 들을 수 있는 아이로 태어난 것에 서운함을 느끼는데요. 영화를 볼 때 굉장히 이질적인 감정이 드는 장면이었는데 ‘농문화’의 관점에서 보면 이상할 것이 없는 장면이었던 거죠. 비평을 읽고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근시안적 사고로 농문화를 대하고 있었다는 생각에 반성하게 되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미라클 벨리에>는 농문화에 대한 인식을 대중들에게 각인시킨 작품이라는 점에서 의의가 있는 영화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영화는 2021년 미국판으로 리메이크되어 <코다>라는 제목으로 개봉했는데요. 제94회 아카데미에서 남우주연상, 각색상, 작품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이뤘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원작의 임팩트와 엔딩 시퀀스의 여운(원작의 ‘Je Vole’은 가사가 폴라와 가족들의 상황을 잘 담아낸 곡으로 기회가 된다면 들어 보길 추천합니다!)이 좋았기에 리메이크작은 선호하지 않는데요. 아카데미 작품상 역시 사회 분위기에 휩쓸린 수상이 아니었나 싶더라고요. (훌륭한 영화지만 작품상까지는 아니었다는 것이 개인적인 견해입니다.🥲) 원작과 리메이크 버전의 가장 큰 차이는 원작에서는 배우들이 모두 청인으로 수어를 배워 농인을 연기했다면, 리메이크 버전은 주인공을 제외한 가족 모두 실제 농인 배우들이 연기한 것이라고 합니다.

가족 중 유일하게 듣고 말할 수 있는 폴라는 파리에서 온 전학생 가브리엘에게 첫눈에 반해 그가 있는 합창부에 가입합니다. 지금까지 한 번도 노래를 불러본 적 없었던 폴라에게서 천부적인 재능을 읽어낸 합창 선생님은 폴라에게 파리 합창 학교 입학 오디션을 제안합니다. 그러나 폴라는 가족들과 세상 사이에서 소통 창구 역할을 하는 본인이 떠나면 가족들에게 찾아올 혼란을 걱정하는데요. 아버지가 홧김에 출마한 마을 시장 선거 준비과정에서 가족들과 폴라 사이에 갈등이 생기고, 꿈과 책임감 사이에서 고민하던 폴라는 엄마가 숨겨왔던 진심까지 알게 되면서 급기야 오디션을 포기합니다. 과연 폴라는 가족들의 품을 떠나 자신의 꿈을 찾을 수 있을까요?

더 길티(Den skyldige), 구스타브 묄러, 2018년 개봉

<더 길티>는 긴급 신고 센터에서 한 여성으로부터 의문의 신고 전화를 받고 오직 전화를 통해 사건을 파헤쳐 가는 과정의 스릴과 서스펜스를 담아낸 덴마크 영화입니다. 선댄스 영화제를 시작으로 세계 유수의 영화제에서 관객상을 휩쓸며 화제를 모았는데요. 긴급 신고 센터라는 한정된 공간 안에서 주인공의 전화 통화로만 이야기가 전개되는 독특한 구성과 마지막 반전이 돋보이는 작품입니다. 전화기 너머의 모든 소리가 단서가 되고, 보이지 않는 공간을 소리로 추적하는 과정에서 유발되는 긴장감이 관객들의 몰입도를 끌어올리는데요. 특히 스릴러 장르를 좋아하는 분들이 좋아할 영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범죄 스릴러 장르는 좋아하지만 끔찍한 장면은 보기 힘들어하는 분들도 부담 없이 볼 수 있습니다!)

영화는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기도 한데요. 감독은 우연히 듣게 된 팟캐스트 ‘시리얼(XSerial)’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합니다. 시리얼은 ‘1999년 미국 볼티모어 주에 사는 여고생 살해 사건을 다룬 논픽션 라디오 드라마’로 사건을 재구성해 범인으로 지목돼 유죄를 선고받은 남자친구가 진범이 아니라면, 사건의 진실이 무엇인지를 파헤치는 구성으로 전개된다고 해요. 방송에서 납치범 옆에서 암호로 응급센터 교환원과 이야기를 나누는 여고생의 실제 전화 통화를 들은 감독은 통화 내용이 안겨주는 긴장감과 소리로 연상되는 이미지에서 출발한 상상력이 긴장감을 유발하는 경험을 통해 이를 영화적 상상력으로 발전시키게 되었다고 합니다.

영화는 공개와 함께 리메이크 판권 전쟁을 불러일으키며 다시 한번 화제를 모았는데요. 전쟁의 승자는 제이크 질렌할에게 돌아가 2021년 동명의 제목으로 미국 버전이 개봉했습니다. 리메이크버전은 제이크 질렌할이 제작과 주연을 모두 맡았는데 개인적으로는 원작의 스릴과 재미에는 미치지 못하는 결과물이 아니었나 싶더라고요. 사실 리메이크가 별로라기보다는 원작은 독창성과 생경한 언어 그리고 낯선 배우의 연기가 극에 사실감을 더했기 때문에 리메이크가 상대적으로 저평가될 수밖에 없는 부분도 있는 것 같습니다.🤔 ‘스릴러 장르를 좋아한다, 북유럽 영화에 도전하고 싶다’하는 분들은 리메이크버전이 아닌 원작을 감상해 보길 추천합니다! (더불어 덴마크 영화를 비롯해 북유럽 영화도 흥미롭고 인상적인 작품이 많은데요. 기회가 될 때마다 한 편씩 찾아서 보다 보면 영화 감상의 폭을 넓힐 수 있으니 부담 없이 접해 보시길 추천드립니다!)

재판 중인 사건으로 경질되어 긴급 신고 센터에서 근무 중인 경찰 아스게르는 다음 날 진행될 최종 재판에 대한 긴장으로 좀처럼 일에 집중하지 못합니다. 그러던 중 심상치 않은 신고 전화를 받게 된 아스게르는 경찰의 직감으로 전화를 건 여성이 납치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피해자를 구출하기 위해 절차까지 무시하며 사건에 몰입하게 되는데요. 과연 아스게르는 무사히 피해자를 구해낼 수 있을까요?

Epilogue

리메이크가 더 재미있다, 원작이 남다르다, 이런저런 평(?)을 했지만 원작과 리메이크 모두 각자의 개성과 만드는 이들의 노고가 있기에 우위를 비교하는 것 자체가 모순이 아닐까 싶은데요. 발행인 취향에 따라 마음껏 떠들고 구차한 변명을 주절거리는 것 같지만(비겁한 변명입니다…!🥹), 작품의 우위를 따지는 것이라기보다는 스토리, 장르, 연출 등 취향에 따라 나만의 영화를 선별하는 뾰족한 기준이 만들어지는 과정이라고 생각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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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eference (씨네아카이브 참고자료 출처 표기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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