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아카이브 37. 음악으로 기억될 영화

음악으로 기억될 영화 (feat. 엔니오 모리꼬네와 쥬세페 토르나토레의 하모니)

구독자님은 영화를 보고 나면 어떤 부분이 가장 기억에 남는 유형인가요? 저는 상황에 따라 다르지만 대부분 영화의 메시지나 특정 인물을 표현한 배우의 연기를 오래도록 기억하게 됩니다. (그래서인지 후자의 경우 ‘배우의 필모그래피를 파고들어 가다 또 새로운 배우를 발견하게 되고, 필모 도장 깨기를 하고, 또 새로운 배우를 발견하고…’의 무한반복이랄까요.🤔) 그러나 오늘 소개할 작품은 단호하게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음악으로 기억될 영화’라고요. 설령 영화는 보지 않았더라도 영화의 오리지널 스코어는 들어본 적 있는 작품일 거예요.

관객들의 마음속에 영원히 기억될, 음악을 통해 영화에 숨결을 불어넣는, 영화 음악의 위상을 바꿔놓은 인물을 꼽으라면 모두 엔니오 모리꼬네를 이야기하지 않을까요. 설사 엔니오 모리꼬네가 누구인지 모르는 사람도 그가 작업한 영화의 오리지널 스코어*는 분명 들어본 적 있으리라 확신합니다!

엔니오 모리꼬네(Ennio Morricone)를 영화음악 감독으로만 알고 계신 분들도 있을 것 같은데요. (레터 준비하기 전의 제가 그중 한 사람입니다…) 이탈리아의 작곡가이자 지휘자 그리고 트럼펫 연주자이기도 합니다. 영화 음악사에 미친 영향력이 큰 인물이라 영화 음악 작업만 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지휘자로서도 꾸준히 활동하며 전 세계의 다양한 오케스트라를 이끌었어요. 반세기가 넘는 세월 동안 400여 편의 영화 ・ 드라마 음악, 100여 곡의 클래식을 작곡한 20세기부터 21세기를 아우르는 전무후무한 음악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영화 음악의 위상을 끌어올리며 음악계 사람들이 영화 음악에 대해 가지고 있던 편견을 깨부수는데 가장 큰 기여를 한 이가 바로 엔니오 모리꼬네입니다. 당시에는 사용되지 않았던 ①실험적인 기법들을 도입하며 영화 음악의 세계를 다채롭게 발전시킨 것은 물론이고 ②영화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와 캐릭터의 복잡한 심리를 선율만으로 관객들에게 전달하며 공감을 불러일으켰는데요. 이는 ③20세기 영화 음악의 체계를 발명한 것과 같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음악원에서 트럼펫과 오케스트레이션을 공부한 후 다양한 분야에서 음악작업을 이어왔던 그는 ‘스파게티 웨스턴’으로 불리는 이탈리아 서부극의 음악을 만들며 주목받기 시작했는데요. 가장 유명한 것이 세르지오 레오네 감독의 <황야의 무법자>와 <석양의 무법자>입니다. 해당 작품을 보지 않은 분들도 음악 만큼은 모두 아실 거라 생각해요.😉 이외에도 쥬세페 토르나토레 감독의 <시네마 천국>, 롤랑 조페 감독의 <미션> 등이 대중적으로 가장 많이 알려진 작품으로 꼽힙니다.

할리우드로 진출한 후에는 돈 시겔, 브라이언 드 팔마, 워렌 비티, 쿠엔틴 타린티노 등과 함께하며 영화와 더불어 인상적인 음악들을 많이 남겼는데요.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경우 엔니오 모리꼬네의 열렬한 팬으로 평소에도 그의 음악을 작품에 잘 사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무엇보다 타란티노와 함께 작업한 <헤이트풀 8>으로 61년 만에 오스카 트로피를 거머쥐었는데요. 이는 아카데미 역대 최고령 수상으로 아카데미 음악상을 수상할 당시 그의 나이가 87세였습니다.

사실 엔니오 모리꼬네는 유독 아카데미와는 인연이 없는 편이었는데요. <천국의 나날들>, <미션>, <언터처블>, <벅시>, <말레나>로 후보에 올랐으나 모두 노미네이트에 그쳤고 가장 유력한 수상 후보였던 <미션>이 노미네이트에 그쳤을 때는 영화계 전반에서 의아하게 생각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이후 2007년 공로상을 수상한 바가 있지만 그동안 영화 음악사의 발전에 미친 그의 역량을 생각한다면 아쉬울 수밖에 없기에 마침내 거머쥐게 된 오스카 트로피가 더욱 의미 있게 다가옵니다. 여담으로 2016년 아카데미는 엔니오 모리꼬네뿐만 아니라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역시 8번의 고배 끝에 오스카 트로피를 거머쥐게 된 해이기도 합니다.🤓

엔니오 모리꼬네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영화감독을 꼽자면 세르지오 레오네와 쥬세페 토르나토레를 이야기할 수 있는데요. 세르지오 레오네가 엔니오 모리꼬네를 세상에 알렸다면, 쥬세페 토르나토레는 그의 음악이 가장 잘 어울리는 영화를 만든 감독에 가까운 것 같아요. 대표적인 작품이 <시네마 천국>으로 쥬세페 토르나토레 감독은 해당 작품으로 칸 영화제 심사위원대상, 아카데미와 골든 글로브 외국어 영화상, BAFTA 각본상 등을 수상하며 세계적으로 주목받기도 했습니다. 쥬세페 토르나토레(Giuseppe Tornatore) 감독은 정교한 캐릭터와 스토리텔링, 유려한 영상미, 감성적인 면모가 돋보이는 작품을 통해 자신만의 스타일을 구축했는데요. 특히 관객들로 하여금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작품의 경우 엔니오 모리꼬네의 음악을 통해 그 면모가 더욱 부각되면서 기억에 오래도록 남습니다.

시네마 천국, 쥬세페 토르나토레, 1988년 개봉

<시네마 천국>은 어릴 적부터 영화를 사랑한 토토의 유년기부터 장년기까지의 일생과 그의 삶에서 멘토와 같은 역할을 했던 알베르토와의 우정을 그린 작품입니다. 알프레도가 건네는 조언들은 토토뿐만 아니라 관객들에게도 깊은 울림을 선사하며 영화는 개봉 후 지금까지 영화사에 남을 걸작으로 평가받는데요. 국내에서도 첫 개봉 후 지금까지도 여러 차례 재개봉되며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엔니오 모리꼬네는 <시네마 천국>을 통해 쥬세페 토르나토레와 처음으로 호흡을 맞추며 장면마다 주인공들의 감정선을 섬세하게 전달하는 음악들로 영화에 숨결을 불어넣었는데요. <시네마 천국>의 사운드트랙 역시 명반으로 꼽힙니다.

어린 시절부터 영화를 사랑했던 토토는 학교 수업이 끝나면 마을 광장의 ‘시네마 천국(Cinema Paradiso)’이라는 극장으로 달려가 영사 기사 알프레도의 어깨너머로 기술을 배우며 때로는 손자와 할아버지, 때로는 아버지와 아들, 때로는 친구처럼 함께 합니다. 어느 날 관객들을 위해 광장에서 야외 상영 중이던 알프레도가 화재로 실명하게 되자 토토가 뒤를 이어 시네마 천국의 영사기사로 일하게 됩니다. 토토가 청년이 된 후에도 여전히 정신적 지주가 되어준 알프레도는 그가 사랑하는 여자의 부모님 반대로 헤어질 위기에 처하자 사랑보다는 자신의 꿈을 펼치는 인생을 살길 바라며 더 넓은 세상으로 나가 많은 것을 배우기를 권유하고, 이후 토토는 유명 감독이 되어 알프레도의 사망소식을 듣고 30년 만에 고향인 시칠리아로 돌아옵니다.

<시네마 천국>은 세대를 불문하고 관객들에게 ‘향수(nostalgia)’를 강렬하게 불러일으키는 작품이 아닐까 싶어요. 토토의 순수하고 장난기 어린 유년기부터 장년이 된 후 알프레도가 건넨 충고의 의미를 깨닫기까지의 과정을 따라가다 보면, 그 시절을 경험한 세대에게는 지나온 추억을 지금 세대에게는 가족, 친구 그리고 첫사랑의 의미를 생각해 보게 합니다. 어쩌면 향수는 국적과 장소에 관계없이 사람 사는 곳 어디에서건 각자의 추억을 돌아보게 하는 손에 잡히지 않는 타임머신 같은 감정 같기도 합니다. 영화는 영화사의 발전과정과 그 이면의 추억도 함께 그리고 있는데요. 제목이자 토토와 알프레도의 역사이기도 한 ‘시네마 천국(Cinema Paradiso)’이라는 극장을 중심으로 무성영화와 필름에서 유성 영화와 비디오테이프를 거쳐 디지털에 이르는 영화사의 발전 과정을 시네마 천국의 흥망성쇠를 통해 관객들에게 보여줍니다.

<시네마 천국>이 전달하고자 했던 감정에 관객들이 온전히 공감할 수 있었던 이유는 엔니오 모리꼬네의 음악 덕분이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이번에는 가장 좋았던 오리지널 스코어를 하나 골라봤습니다. 역시 <시네마 천국>하면 “Love Theme”이죠.🤭 도입부에서 흘러나오는 클라리넷 소리만으로도 영화의 수많은 명장면들이 떠오르게 합니다. 엔니오 모리꼬네, 존 윌리엄스와 함께 영화 음악의 3대 거장으로 불리는 한스 짐머는 엔니오 모리꼬네의 음악을 두고 “우리 인생의 사운드트랙”이라고 이야기하기도 했는데요. “Love Theme”을 듣고 있으면 그의 말이 무엇을 의미했는지 저절로 이해하게 됩니다.

피아니스트의 전설 (The Legend of 1900),  쥬세페 토르나토레, 1998년 개봉

<피아니스트의 전설>은 알렌산드로 바리코의 『노베첸토』를 영화화한 작품으로 평생을 바다 위에서 보낸 천재 피아니스트 ‘나인틴 헌드레드’의 아름답고 순수한 삶을 그렸습니다. 쥬세페 토르나토레 감독의 1998년 작품이지만 국내에는 2002년 첫 개봉 후 2020년 4k 리마스터링 버전으로 재개봉했는데요. 영화는 <시네마 천국>, <베스트 오퍼>에 이은 ‘예술’ 3부작 중 마지막 작품으로도 불립니다. 배에서 태어나 한 번도 육지를 밟아본 적 없는 천재 피아니스트라는 인물 설정과 그의 삶과 우정을 설득력 있게 그린 감동적인 스토리는 엔니오 모리꼬네의 음악이 더해져 짙은 여운을 남깁니다.

<피아니스트의 전설>은 쥬세페 토르나토레 감독과 엔니오 모리꼬네가 함께 한 숨겨진 명작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저는 국내 재개봉 이후 TV 영화 채널에서 우연히 보게 됐는데 호기심을 자극하는 이야기와 더불어 눈과 귀를 황홀하게 하는 피아노 연주 장면들이 무척 인상적이었습니다. 영화 속 연주 장면은 배우들이 직접 연주한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연주하는 연기’를 펼친 것이라고 하는데요. 나인틴 헌드레드 역을 맡은 팀 로스는 6개월 동안 피아노 연주자의 신체 동작이나 감정 표현을 관찰하고 연습하면서 완벽한 싱크로율을 보여주었다고 해요.

1900년, 유럽과 미국을 오가는 버지니아 호에서 태어나 평생을 바다 위에서만 살아온 천재 피아니스트 나인틴 헌드레드. 그의 유일한 친구이자 버지니아 호 악단의 트럼펫 연주자인 맥스는 운행이 중단된 버지니아 호가 폭파된다는 이야기를 듣고 여전히 배에 남아 있는 친구를 구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데요. 그 과정에서 나인틴 헌드레드의 탄생부터 버지니아 호에서의 첫 만남, 그의 첫사랑이자 마지막 사랑, 배에서 내리지 않는 천재 피아니스트 이야기를 듣고 찾아온 재즈 피아니스트와의 대결 등 버지니아 호에서 바다 밖 너머의 세상을 배워가던 전설 같은 나인틴 헌드레드의 인생사를 들려줍니다.

맥스가 들려주는 나인틴 헌드레드의 인생사는 단순히 관객들에게 경탄을 불러일으키는 것뿐만 아니라 그의 순수함, 예술을 향한 사랑,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을 통해 깊은 울림을 선사합니다. 맥스와 같은 마음으로 배에서 내리기를 간절히 소망하던 관객들에게 “88개의 건반으로 이루어진 유한한 피아노와 달리 무한한 건반이 펼쳐진 세상은 도대체 어떻게 연주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건 신만 가능한 영역이라 배에서 내릴 수가 없다” 말하는 나인틴 헌드레드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바다에 붙이는 ‘거친 파도’와 같은 수식어는 사실 우리가 발 딛고 있는 이 세상에 더 적합한 표현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간절하게 해피엔딩이기를 바라면서도 한편으로는 두려움에 떨며 살기보다 삶의 전부였던 배와 함께 사라지기를 선택한 나인틴 헌드레드의 마음이 이해되기도 했고요.

엔니오 모리꼬네의 음악은 <피아니스트의 전설>에서도 영화의 숨결이 되어 관객들에게 작품의 정서와 감동을 고스란히 전달해 주었는데요. ‘이 영화엔 이 음악이지’ 같은 딱 떨어지는 선택을 내리기 가장 어려웠던 것도 <피아니스트의 전설>의 스코어였어요.🥺 가장 대표적인 곡을 꼽자면 주인공이 처음 사랑에 빠지는 순간을 담은 “Playing Love”이겠지만… 개인적인 선택은 “Magic Waltz”입니다. 해당 곡은 엔니오 모리꼬네의 스코어가 아니라 이탈리아의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인 아메데오 토마시의 곡인데요. 나인틴 헌드레드와 맥스가 처음 만나는 장면에 삽입된 곡으로 넘실대는 파도로 흔들리는 선상 위에서 피아노와 혼연일체가 되어 곡 제목처럼 환상적인 왈츠를 추는 듯한 장면을 잊을 수 없어 선택했어요.🤓 (<피아니스트의 전설>은 추천곡 이외에도 피아노 대결 장면에 들어간 “Enduring Movement”, 엔니오 모리꼬네 편곡 버전의 “The Crave”등 좋은 곡이 정말 많으니 전 트랙을 감상해 보시길 추천드립니다!)

Epilogue

 🎞함께보면 좋은 추천 콘텐츠: <엔니오: 더 마에스트로>, 쥬세페 토르나토레, 2023년 개봉

<엔니오: 더 마에스트로>는 엔니오 모리꼬네에 대한 ‘완전무결한 초상’과도 같은 작품으로 엔니오 모리꼬네와의 인터뷰를 토대로 그와 함께 작업했던 동료들의 목소리와 그의 음악을 사랑하는 아티스트들의 이야기를 통해 그의 족적과 함께 발전해 온 영화 음악사를 들려주는데요. 감상하는 동안 음악을 향한 엔니오 모리꼬네의 열정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어 무척이나 인상적이었습니다. 거장이라는 수식에 걸맞게 자신의 일을 사랑하고 열정적으로 임하는 모습을 보며 최근 이런저런 이유로 매너리즘에 빠져있던 저의 모습을 되돌아보고 반성하기도 했는데요. 다큐멘터리라 지루하면 어쩌나 걱정했던 것과 달리 정말 흥미롭게 감상한 작품으로 기회가 된다면 구독자님도 꼭 감상해 보기를 추천드립니다.

🔖 Reference (씨네아카이브 참고자료 출처 표기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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