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둔자로 알려졌던 J.D.샐린저의 역작, 호밀밭의 파수꾼을 소개합니다.
1.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 (J.D.Salinger / 1919.1.1~2010.1.27 ), 어떤 작가인가요?
세기의 걸작이라는 평가를 받은 장편소설 ‘호밀밭의 파수꾼’으로 일약 스타덤에 오르며 ‘샐린저 현상’이라고 할 만큼의 독보적인 대중의 인기를 얻었으나 외부와의 접촉을 극도로 꺼려 마흔 중반 도시를 떠나 고요한 근교에서 은둔하며 지냈습니다. 인터뷰도 잘 응하지 않았고 그에 대한 전기 출판도 원치 않았기 때문에 작가가 스스로 밝힌 자신에 대한 이야기는 거의 알려진 바가 없네요.
1919년 미국 뉴욕시에서 유대계 치즈 및 육류 수입 상인의 아버지와 아일랜드계 어머니 사이에서 출생, 유복한 환경에서 성장합니다. 사립학교를 거쳐 사관학교를 다녔는데 젊은 시절의 그는 뉴욕에 자주 다니던 클럽도 있었고 한때 영화배우를 해볼까 하는 생각을 할 정도였다고 하니 꽤 사교적인 성격으로 당시만 해도 여느 청년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던 것 같아요. 10대에 이미 글쓰기에 많이 몰두했고 몇몇 정기 간행물에 그의 글이 실리기 시작했어요. 1941년에는 크루즈에서 공연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작가로 근무하기도 했는데, 곧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며 크루즈 운영이 중단되고, 샐린저도 징집 대상이 되어 1942년에 참전하게 됩니다.
전쟁의 경험은 그에게 큰 상흔을 남깁니다. 2차대전 중 역사적인 작전에 여러 번 투입되었고, 이후 자신이 ‘수차례 살아남았다’고만 말 할 뿐 단 한 번도 전쟁 중의 경험이나 수용소에서 목격한 것들을 남들에게 자세하게 이야기 한 적은 없으며, 전쟁 막바지에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증세로 병원에 수용되었다고 하는데 PTSD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였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습니다. 당시 치료 중에 실비아 월터라는 여인을 만나 교제하고 몇 주 만에 결혼하지만 그녀가 나치 정보요원으로 활동했다는 걸 알게 되자 결혼을 취소, 8개월 정도의 짧은 관계는 끝이 납니다.
참전 중에도 지속적으로 단편 작업을 통해 글쓰기에 몰두했고, 당시 유럽에서 특파원으로 활동하던 헤밍웨이를 만나게 되며 작가가 되고자 하는 결심이 더욱 강해졌다고 합니다. 이 시기 홀든 콜필드라는 캐릭터가 나오는 이야기를 다듬었으며 ‘나는 미쳐간다 (I’m Crazy)’라는 제목의 단편 소설로 1945년 주간지 콜리어 (Collier’s)에 게재되었어요. 홀든 콜필드라는 캐릭터에 대한 이야기를 이후 장편으로 작업, 그의 대표작 ‘호밀밭의 파수꾼’이 탄생합니다.
1951년 7월 16일 발표한 그의 역작 ‘호밀밭의 파수꾼’은 출간되자마자 미국 전역, 특히 전후 세대인 청소년과 청년층 사이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어요. 이 책으로 감당하기 힘들 정도의 유명세를 얻은 작가는 결국 2년 후인 1953년에 뉴욕을 떠나 코니쉬라는 근교로 아예 이사하게 되고, 이때부터 은둔하는 생활이 시작됩니다.
코니쉬 생활 초반에는 지역 주민들과도 꽤 잘 어울리고 특히 청소년들을 자주 집에 초대하거나 함께 시내로 외출하기도 했었다고 해요. 그 당시 샐린저가 애정 하던 한 학생이 학생지에 실을 인터뷰를 요청해와 응했으나 결국 학생지가 아닌 지역신문 기사로 실리고 심지어 그 기사가 일파만파 전국으로 퍼져나가게 되는 일을 겪은 후 외부 세상과 더욱 단절한 채 지내게 됩니다.
아직 작가로서 제대로 자리를 잡기 전인 1940년부터 그가 성공한 뒤 은둔자의 삶을 살던 1965년까지 35편의 중단편 소설을 썼다고 하는데, 그중 샐린저가 직접 엄선하고 각각 제목을 붙인 아홉 편이 1953년 발표한 단편선 ‘아홉 개의 이야기’에 수록되었고, 또 다른 네 편의 원고는 1961년 발표한 중편 ‘프래니와 주이’, 1963년 발표한 ‘목수들아, 대들보를 높이 들어 올려라’로 나왔다고 하네요. 이 세 가지 출간물은 모두 ‘글래스 가(家)’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 작품들에 수록되지 않은 22편은 결국 그 어디에도 공식적으로 공개되지 않았습니다. 그의 열혈 팬들이 미발표 원고를 입수해 1974년 해적판으로 출판하는 일도 있었으나 작가가 저작권 침해 소송을 제기해 중지되었어요. 이 일 이후 샐린저는 더 이상 아무 작품도 출판하지 않고 공식 석상에 모습을 드러낸 적 없이 극소수의 지인들과만 교류했으며 2010년 91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합니다.
생전에 영국의 전기 작가 이언 해밀턴이 랜덤 하우스 출판사의 요청으로 그에 대한 책을 내기 위해 수차례 편지를 보내고 자료를 수집했으나 샐린저가 법원에 전기 출간 금지 신청을 내면서 결국 많은 부분을 삭제하고 전기가 아닌 일반연구서로 출간했으며 작가의 사후에야 몇몇 전기 작가들이 관련 책을 발표했어요.
제가 찾아볼 수 있던 온라인상의 샐린저에 대한 정보들 역시 대부분 사후에 발표된 그에 대한 일대기를 쓴 몇몇 작가들이 수집하고 모은 것들 및 그의 아들과 딸이 전한 것들이었습니다. 작가가 중년의 나이에 완전히 은둔 생활에 들어간 이후 생활상에 대한 이야기는 읽으면서 민망하고 미안한 생각이 들 정도로 특이하고도 너무 내밀한 것들이 많아 굳이 여기 다시 옮기지는 않으려 합니다. 아마도 너무 은둔하며 지냈다 보니 호기심을 자극하게 되어 지극히 개인적인 것들이 오히려 더 많이 알려지고 회자된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드네요.
천성적으로 예민하며 섬세한 기질도 있었겠지만 참전 이후 PTSD에 평생 시달렸던 게 아닐까 싶고 일종의 강박증도 점점 심해진 것 같아요. 남편과 아빠로는 낙제점에 가까웠던 듯하고 많이 외롭게 지냈던 것 같지만 그래도 그를 대중의 과도한 관심과 매체들의 호기심에서 보호해 주며 아끼고 보살펴 주던 소수의 측근들이 있었다고 하네요. 부디 글을 쓰며 나름의 위안을 얻었기를 바라봅니다.
2. 어떤 책인가요?
신문에 게재하던 글들을 통해 조금씩 이름을 알리게 된 샐린저를 일약 스타 작가로 발돋움하게 한 대표작이자 그의 유일한 장편 소설로, 1953년 7월 발표하자마자 세기의 걸작이라는 평단의 극찬과 대중의 인기를 모두 거머쥐게 됩니다. 전 세계적인 고전의 반열에 올라 현재까지 약 7천만 부 이상이 판매되었다고 하네요.
유명한 사립학교에 재학 중인 주인공 홀든 콜필드는 이미 이 전에도 몇몇 학교를 전전했던 이력이 있는 데다 지금 이 학교에서도 영어를 제외하고는 모두 낙제를 받은 상태로 퇴학을 당하게 됩니다. 그는 소위 문제아로 여겨지지만 사실 내면은 상당히 조숙하고 섬세하며 문학적인 소양이 풍부해요. 그저 데이트에만 혈안이 되어있는 룸메이트, 썩 매너가 좋지 않은 기숙사 옆방 친구, 자신을 이해해 줄 것 같지 않은 선생님들만 있는 학교생활은 몸에 맞지 않은 옷을 입은 듯 영 불편하고 답답하기만 합니다. 가족이 그리우면서도 차마 당당하게 돌아갈 수 없는 그가 예정보다 며칠 일찍 학교를 나와 방황하는 약 사흘간의 방랑기를 담은 성장소설입니다.
* 작가와 책에 대한 설명은 아래 링크들을 참고했습니다.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1047176&cid=60578&categoryId=60578
https://www.ypbooks.co.kr/m_detail_view.yp?code=1617301228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4&oid=001&aid=0004534215
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19071501032439173001
https://www.mk.co.kr/news/culture/view/2014/01/88647/
https://www.britannica.com/biography/J-D-Salinger
https://www.nytimes.com/2010/01/29/books/29salinger.html
3. 분량과 난이도
민음사 판본으로는 270여 페이지의 분량으로 그리 무리가 되는 분량은 아니에요. 주인공 홀든이 화자로 자신의 지난 삼일간의 이야기를 서술하는 형식이며 사건을 보는 그의 시선과 그의 생각을 따라 시간 순서대로 전개됩니다. 속상함과 스스로도 정의 내리기 힘든 복합적인 마음이 응어리져 쌓여있는 사춘기 소년답게 대체적으로 문장은 간결한 편이고, 무덤덤한 듯 다듬어지지 않은 강한 에너지가 느껴지는 비속어도 자주 사용합니다. 또 자기와 다른 방식으로 한심하기만 한 친구들과 세상 사람들에 대한 유머러스한 묘사도 종종 등장해서 전반적으로 수월하게 읽을 수 있는 작품이에요.
4. 이 책의 매력 포인트
한창 사춘기를 지나는 아이에 대한 생생하고 사실적인 묘사가 아무래도 이 작품의 가장 큰 매력이자 핵심일 듯합니다. 그 주체할 수 없던 폭풍 같은 에너지를 어떻게 견디고 다루며 결국 얼추 어른의 모습을 갖춰가게 되었는지 다들 기억하시나요?
어른과 아이 중간에 위치한 애매한 조숙함, 여전히 스스로 주체할 수 없는 폭발할 것 같은 에너지, 타인과 사회를 서서히 객관적인 시각으로 파악해가면서 자신이 그 어디에도 설자리가 없고 이해받지 못한다고 느끼는 외로움, 그럼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갈구하는 사회적인 관계와 애정, 사람들에 대한 포기할 수 없는 희망, 사회의 틀에 아직 어떻게 들어가야 할지 모르는 미숙함과 때로는 공격적이고 괴팍하게 터져 나오는 순수함을 십대의 언어로 날 것 그대로 솔직하며 생생하게 전달합니다. 뭍에 던저져 파닥거리던 생선과 같던, 잊고 있던 그 시절만의 섬세한 감정이 가득한 작품이었어요.
5. 그 외 – 영화 ’호밀밭의 반항아’
작가에 대한 정보를 찾아보다가 우연히 ‘호밀밭의 반항아’라는 2017년 제작된 영화를 알게 되었어요. 샐린저의 전기 작가 중 한 명인 케니스 슬라웬스키가 2011년 발표한 ‘샐린저 평전’을 바탕으로 제작했다고 하니 작가의 실제 모습에 많이 가깝다고 생각해도 될 것 같아요.
작가가 되고자 하던 젊은 시절 고뇌하던 그의 모습부터 대표작 ‘호밀밭의 파수꾼’이 어떻게 쓰였는지, 그리고 그가 왜 그토록 은둔하며 살았는지에 대해 많은 부분 이해할 수 있게 하는 영화였어요. ‘호밀밭의 파수꾼’의 문장들이 곳곳에 녹아있어 책을 읽고 영화를 보니 책의 감동이 배가 되는 느낌이었고 샐린저로 분한 니콜라스 홀트의 연기도 훌륭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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