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1 / 고도를 기다리며, 사뮈엘 베케트

무언가를 기다리는 우리 모두를 위한 책 / 작가 및 책 소개

2021.08.05 | 조회 93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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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느의 고전 읽기

변치 않는 가치를 지닌 고전 문학 이야기

1. 사뮈엘 베케트 (Samuel Barclay Beckett 1906.4.13~1989.12.22)

 

 

 

"현대극의 흐름을 바꾸어 놓은 작가"

 

아일랜드 태생의 작가로 1969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습니다. 소설과 희곡에 있어서 실험적인 방식으로 철학적인 주제를 다루었으며 특히 기존 연극의 문법을 완전히 뒤집은 반연극(antitheater)의 선구자로 이후 수많은 극작가들에게 영향을 주었어요. 영어와 프랑스어로 작업했으며 자신의 작품을 직접 번역하기도 했습니다. 오스카 와일드, 조지 버나드 쇼,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와 함께 아일랜드 출신 대표 문학가로 일컬어집니다.

그의 일생을 살펴보고 나니 어려서부터 언어와 공부에 아주 뛰어났었고 평생 동안 철학적인 고민을 멈추지 않았던, 지적 사고에 집중하고 또 그런 사유를 즐긴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젊은 시절에 만난 연인과 결혼, 큰 사건사고 없이 백년해로했고 외부로 개인적인 이야기를 노출하지 않았던, 어찌 보면 굉장히 까다롭고 예민하지만 다른 한편 남들에게 휘둘리거나 휩쓸리지 않고 중심을 잡고 지낼 수 있을 만큼 여유로웠던, 단단한 내면의 작가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아일랜드의 부유한 프로테스탄트 가정 출신으로 프랑스인 교장이 있는 초등학교를 다녔고, 이 시기부터 불어를 배우기 시작했어요. 14살에는 영국계 아일랜드 중산층의 학생들이 주로 다니던 포트라 로열스쿨에 진학, 최우수 학생으로 학업은 물론 수영, 크리켓, 럭비 등 다양한 스포츠에서 뛰어난 재능을 보였습니다. 이후 더블린에 있는 트리니티 칼리지의 로망스어 학과로 진학하여 프랑스어와 이탈리아어를 공부했고, 학업 있어서는 언제나 우수했던 그는 불어학 학사를 취득하며 수석으로 졸업합니다.

잠시 동안 교사 및 교수로서 커리어를 이어 나가게 되는데, 졸업 직후 북아일랜드의 벨파스트에서 교사로, 그리고 파리의 고등사범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쳤습니다. 이미 프랑스로 망명해 파리에서 지내던 아일랜드 출신 문학가 제임스 조이스와 안면을 트며 그가 교류하던 문인들 모임에도 합류하게 되고, 이 시기인 1930년, 그의 첫 시집 ‘호로스코프 Horoscope’를 발표합니다. 길지 않았던 파리 시기 이후 곧 아일랜드로 다시 돌아와 모교인 트리니티 칼리지에서 ‘프루스트 론(論)’을 발표, 1931년 불어과 조교수가 되지만 그리 만족하지 못하고 일 년 만에 사직합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며 상속받은 유산을 자금으로 1933년 더블린을 떠나 런던을 시작,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등을 다니는 방랑의 시기를 보냈어요.

이렇게 한창 세상을 둘러보던 때이자 아직은 문인으로 제대로 각인이 되기 전인 1930년대에 작가는 이미 시와 단편 등의 다양한 작품을 꾸준히 써냈습니다. 1934년에는 10편의 이야기를 엮은 단편집 ‘차는 것보다 찌르는 게 낫다. More Pricks than Kicks’를, 1935년에는 시집 ‘에코의 뼈들 Echo’s Bones’을 발표했고, 1992년에야 출판되었던 소설 ‘예쁘거나 중간 정도의 여자들에 대한 꿈 Dream of Fair to Middling women’ 도 역시 1930년대에 쓴 작품입니다.

1937년이 되어서야 긴 여행을 마치고 파리에 정착합니다. 1939년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 독일군 점령하에서도 중립국 아일랜드 출신이라는 신분 덕에 계속 안전하게 파리에 남아있을 수 있었고 이런 상황을 이용해 프랑스 레지스탕스 지하 조직에 합류하여 활동을 도왔으나 1941년, 그의 팀원들이 게슈타포에 잡혔다는 소식을 듣고 독일군 비점령지역인 남프랑스의 보클루즈 지역으로 피신합니다. 독일의 점령이 끝날 때까지 그곳에서 농사로 생계를 유지하며 창작활동에 전념했는데 1953년에 출판된 그의 두 번째 소설 ‘와트 WATT’가 이 시기에 쓴 작품이에요. 1945년 아일랜드로 귀국해 적십자에 자원하여 프랑스로 돌아와 노르망디의 군인병원에서 통역사로 근무, 이후 다시 파리로 돌아옵니다.

1946년부터 1949년 사이 파리에서 지내는 동안 현재 그의 대표작으로 알려진 다수의 작품을 집필했어요. 특히 기존의 소설 작법을 파괴하여 ‘누보로망’의 선구자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던 그의 삼부작 소설 ‘몰로이 Molloy (1951)’, ‘말론 죽다 Malone Dies (1951)’, ‘이름 붙일 수 없는 것 The unnamable (1953)’을 비롯, 세계적인 명성을 안겨준 희곡 ‘고도를 기다리며 Waiting for Godot (1953)’까지 다들 출판이 늦게 되었을 뿐 모두 이 시기에 쓴 작품들입니다.

지금에 와서는 그의 30~40대 중반 정도까지가 창작의 전성기였다고 평가하지만 당시에는 써 둔 작품들 대부분 세상의 빛을 보지 못한 상태였어요. 레지스탕스 시절에 만난 여자친구이자 훗날 그의 부인이 되는 수잔의 도움으로, 여느 다른 작가들과 마찬가지로 수차례 거절 끝에 1951년, 베케트의 나이 마흔다섯에 드디어 그의 삼부작으로 알려진 소설 중 첫 작품 ‘몰로이 Molloy’를 발표할 수 있는 출판사를 찾게 됩니다. '몰로이'가 그럭저럭 판매가 꽤 되긴 했으나 상업적인 성공보다는 오히려 프랑스 평단의 열렬한 반응을 얻음으로써 같은 출판사에서 다른 두 작품 그리고 그의 역작 ‘고도의 기다리며’까지 펴내게 되었어요.

이렇게 집필 후 꽤 시간이 지난 1952년에 발표한 희곡 ‘고도를 기다리며’는 1953년 파리의 소극장인 ‘바빌론 극장’에서 처음으로 무대에 오르고 당시 유례없는 성공으로 소위 대박을 터트리며 공연계와 문화계, 일반 관객 그리고 전 세계에 그의 이름을 널리 알리게 됩니다.

이후에도 이때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쉼 없이 작품 활동을 이어가지만 이전만큼의 빠른 속도는 아니었다고 해요. 독자적인 방식으로 이미 충분히 새로웠던 그의 스타일에 그대로 머무르지 않고 계속해서 탐구하며 실험적인 작품들을 시도했습니다. 그가 20대 후반 처음으로 발표했던 작품인 시집 ‘호로스코프 Horoscope’는 데카르트에 대한 내용이었는데, 그의 다른 모든 작품 대부분 단테, 르네 데카르트 등 여러 철학자들의 영향이 많이 드러납니다. 데카르트에 대해 잘 몰라도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명제는 다들 들어본 적이 있을 거예요. 이와 같이 인간 실존에 대한 근본적이고 깊이 있는 고찰을 희극 및 소설을 통해 표현하고자 했으며, 이를 위해 간결하고 축소된 서술을 사용하는 방향으로 점차 작품을 발전시켜 나갑니다. 따라서 극도의 간결성을 추구한 후기 작품들은 너무 난해하다는 평가를 받기도 하지만 시기를 불문하고 그의 모든 작품들은 기술적인 면에서는 흠잡을 곳 없이 정교하게 짜인 형태를 갖추고 있으며 언제나 위트가 빠지지 않는 것도 그의 작품들 전반을 관통하는 개성 중 하나입니다.

‘고도를 기다리며’ 이후 그는 명실공히 세계적인 작가로 발돋움하게 되었으나 미디어 노출을 꺼렸다고 하고 작품에 대한 해석도 작가가 분명하게 설명하는 것이 별로 없다고 하네요. 따라서 알려진 것이 많이 없는 작가이지만 이후 그에 대한 연구에 따르면 의외로 작가가 살아온 환경이 많은 작품에 드러난다고 합니다. 그가 살던 지역, 주변 경관, 집, 심지어는 쓰레기통에까지 이르는 생활용품과 도구들이 그의 무대와 소품에 자주 등장한다고 합니다.

1969년 노벨 문학 수상자로 선정되었을 때도 시상식에 불참, 이후로도 미디어 노출 및 인터뷰는 다 거절한 채 작품 창작에 몰두하는 생을 보냈으며 1989년 7월 부인 수잔이 사망하고 5개월 남짓 지난 12월에 베케트도 생을 마감합니다.

세속적인 사회의 시선으로 보면 스스로 폐쇄적인 삶을 택한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어쩌면 그는 인간 존재에 대해 누구보다도 깊이, 멀리 그리고 높이 아무런 제약 없이 자유롭게 사유하며 연구했던 생을 살았던 것 같기도 합니다.

https://www.bbc.com/news/education-20889073
https://www.bbc.com/news/education-20889073

 

 

 

2. 어떤 책인가요?

소수의 지식인에게만 알려져 있던 베케트가 일약 스타덤에 오르게 된 출세작이자 대표작입니다. 희비극의 성격을 띠고 있는 희곡으로, 기존의 익숙한 주제나 희곡 양식에서 벗어난 전개 방식이 특징이며 부조리극의 정수라고 일컬어지기도 합니다.

제목 그대로 무대에서 두 남자가 ‘고도’라는 사람이 오기를 기다리는 모습이 전개됩니다. 언제 올지, 아니 진짜 올지 안 올지도 모르는 고도를 기다리는 둘은 농담도 하고, 옛 생각도 하고, 놀이를 해보기도 하고 서로 투정을 부리기도 하며 시간을 보냅니다. 그러던 중 길 가던 나그네 포조와 그의 하인 럭키가 조금은 거부감 느껴지는 모습으로 나타나며 분위기가 반전되고 무대는 좀 더 풍부해지지만 결국 큰 소득 없는 대화가 계속 제자리를 맴도는 듯하고 그렇게 1막이 끝납니다. 그리고 다시 시작되는 2막, 그 다음날. 또다시 두 남자는 고도를 기다리고 또 포조와 럭키가 등장합니다.

오지 않는 고도와 그를 기다리는 것을 포기하지 못하는 두 남자, 같은 듯 다르게 흘러가는 기다리는 시간, 이전에도 그랬듯이 앞으로도 계속 이어지게 될 기다림을 통해 인간 존재의 부조리함을 생각하게 합니다. 등장인물들 간의 우스꽝스러우면서도 때때로 생각할 거리를 가득 품게 되는 선문답 같은 대화를 통해 독자와 관객은 고도가 무엇을 의미 하는지 그리고 삶에 대한 각자의 질문을 떠올리게 되며 마지막에는 간단히 설명하기 힘든 슬픔과 감동을 느끼게 됩니다. 

작가가 1940년대 프랑스의 지하 레지스탕스 조직의 활동을 돕다가 독일 비점령 지역인 보클루즈에 피신해 지내던 시기 경험을 바탕으로 집필한 작품입니다. 1948년에 쓰기 시작했지만, 예전 집필했던 소설들을 비로소 발표할 수 있게 되면서 겨우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한 때인 1952년에야 책으로 출간할 수 있었습니다. 이듬해인 1953년 파리의 작은 소극장인 바빌론 극장에서 초연을 했는데, 기존 희곡과 완전히 다른 단순한 배경, 모호하고도 추상적인 내용으로 이어지는 극 전개가 문화계에 신선한 충격이 되어 단숨에 화제가 되어 큰 성공을 거두게 됩니다.

바빌론 극장은 재정상태가 썩 좋지 않았고 그 당시 성공을 거두곤 하던 통속극과 전혀 다른 작품인 ‘고도를 기다리며’에 마지막 희망을 거는 상황이었다고 합니다. 당시 평론가가 일간지 피가로에 쓴 ‘광대들에 의해 공연된 파스칼의 명상록’이라는 평 이후 폭발적인 인기를 끌게 되고, 처음 삼주에서 한 달 정도로 계획했던 기간 보다 훨씬 길게 연장해 오랫동안 무대에 올리며 베케트에게는 명성을, 극장에는 기사회생의 기회를 안겨주었다고 하네요.

작가는 이 작품을 처음에는 불어로 썼고, 뒤이어 영어로 다시 썼다고 하는데 모국어를 사용하느라 자칫 고정된 스타일의 틀에 빠질 수 있어, 일부러 언어가 주는 한계를 극복하고자 하는 것이 그가 고도를 기다리며 뿐 아니라 다른 작품들을 불어로 작업하는 이유였다고 합니다.

앙상한 나무 한 그루만 있는 무대 
앙상한 나무 한 그루만 있는 무대 

 

 2013년 뉴욕, 고도를 기다리며 공연. 우리에게도 익숙한 패트릭 스튜어트(좌), 이안 맥켈런(우) 
 2013년 뉴욕, 고도를 기다리며 공연. 우리에게도 익숙한 패트릭 스튜어트(좌), 이안 맥켈런(우) 

 

 


작가와 작품 소개는 책 뒤편에 수록된 해설 및 연보와 아래 링크들을 참고했습니다.

https://www.britannica.com/biography/Samuel-Beckett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3574010&cid=58814&categoryId=58829

 

 

3. 이 책의 매력 포인트

워낙 유명한 작품이다 보니 여기저기서 주워들은 이야기로 꽤 난해할 것이라는 선입견이 있었어요. 그래서인지 실소가 터지는 우스꽝스러운 장면들과 선문답 같은 대화들을 따라가며 한동안은 ‘베케트는 어떻게 이런 식으로 작품을 쓸 생각을 했을까?’, ‘이런 형식의 희곡이 나오기까지 그전에 어떤 사조가 있었던 걸까?’ 등, 완전히 작품 속에 몰입하기보다는 자꾸 거리를 두며 괜히 제가 모르는 어떤 것을 더 찾아내고 이해해 보려는 듯 딴생각을 한참 했습니다. 그러다가 2막이 되고, 후반부에 다다르며 갑자기 모든 퍼즐이 맞춰지는 느낌과 함께 갑자기 슬픔과 애틋함이 몰려들어 예상외의 큰 울림을 느꼈습니다. 당시 감정을 한마디로 정리하기 힘들어 시간이 많이 필요했어요.

마지막 장을 덮고 즉각적으로 굉장히 정교한 이야기라는 생각을 했고, 책을 읽을 때 보다 다 읽고 나서 오히려 생각할 거리가 많아지는 여운이 아주 긴 작품이었습니다.

 

 

4. 분량과 난이도는 어떤가요?

민음사 판본으로 읽었고 150여 페이지 정도로 글로 읽기에는 비교적 적은 분량입니다. 연극으로 볼 경우 2시간 반 정도 걸린다고 하네요.

 아무래도 희곡이다 보니 장면을 잘 상상해가며 읽어야 하고 이야기를 관통하는 뚜렷한 사건이 없기 때문에 몰입이 잘되지 않는다면 조금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작가의 의도대로 굉장히 간략한 대사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대화의 내용이나 주제가 모호하고 추상적인 만큼 독자와 관객들에게 해석의 자유가 아주 폭넓게 주어진 작품입니다. 따라서 정답을 찾으려고 하지만 않는다면 오히려 자유롭게 읽을 수 있는 작품인 듯합니다.

 

블라디미르     무슨 얘길 하는 걸까?
에스트라공     제 인생의 얘기겠지
블라디미르     살았던 것만으로는 부족한 모양이지?
에스트라공     그 얘기를 꼭 해야하겠다는거지
블라디미르     죽었으면 그만일 텐데.
에스트라공     그걸로는 부족한 거야.


사뮤엘 베케트, 고도를 기다리며 (민음사 p.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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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좀 더 긴 감상문은 며칠 내 발송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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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시간 한결같은 빛을 발하는 고전 문학을 통해 마음의 위안을 얻고 있어요. 

누구나 들어봤음직한 작가의 작품, 너무 유명해서  마치 읽은 것 같지만 사실 들춰본 적도 없는 책, 어릴 때 아동용 요약본만 읽었던 책들, 그런 고전들 위주로 읽고 소개합니다.  

 

한달에 두세편의 작품을 소개하며, 한 작품당 두편의 뉴스레터가 발송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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