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녕하세요, 요리 전문 번역가 정연주입니다.
언제나처럼 연초에 생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나날을 보내게 되었던 2025년이 거의 끝나가고 있습니다. 그게 인생의 묘미이기는 하죠!
여러분의 올해 가장 기억에 남는 BEST 순간은 언제인가요?
가끔 누군가의 '0000년의 기록' 같은 콘텐츠를 보고 있노라면, 사실 예전에 마린블루스에 연말마다 그런 콘텐츠가 올라올 때부터 '나도 이런 걸 한번 기록해봐야지!' 라고 생각했거든요. 하지만 언제나 연말 즈음이 되면 거의 한 11월부터의 일만 기억에 남아있곤 해요. 연말 대상을 노리고 가을 이후에 복귀한다는 연예인들에게 공감할 수 있는 순간입니다. 올해 나 뭐했지...?
하지만 역시 올해의 BEST 순간은 무엇이었던가 되짚어보면... 올해 출간된 제 번역서 『스모크&피클스』, 『넷플릭스 공식 레시피북』, 『버번 랜드』, 그리고 레시피 개발 및 원고로 참여한 『채소과일식 레시피』, 경향신문에 연재한 칼럼과 캠핑 요리 뉴스레터에서 쓴 원고를 모아서 출간한 『캠핑 한 끼의 행복』... 등과 연관된 즐거웠던 일들이 떠오르네요.
역시 음식과 책과 연관된 일을 할 수 있어서 기쁩니다. 내년에도 출간 예정인 번역서들이 기다리고 있고, 또 올해는 아직 이루지 못했지만 내년에는 맞이하기를 바라는 BEST 순간도 있습니다. 희망이 있으니까 새해를 맞이하는 것도 즐거운 것이겠죠? 여러분의 소원도 빠르면 남은 올해, 그리고 내년에는 꼭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2025년 요리책 출간 경향
오늘 준비한 뉴스레터는 2025년에 출간된 요리책들의 흐름을 살펴보는 이야기입니다.
매년 12월이 되면 뉴욕타임즈 등 유력 매체들이 올해의 책 리스트를 발표하지요. 저는 이런 경향이 국내외로 더 자주 많이 보였으면 해요. 이런 매체들이 한 해 출간된 책 중에서 공들여 골라낸 리스트는 그 해의 출판계 흐름을 한눈에 보여주는 지도 같은 것이니까요. 이미 책장이 꽉 찬 분들(저요)에게는 또 한 번의 유혹이 될 수도 있지만, 동시에 지금 세상이 무엇에 관심을 갖고 있는지를 엿볼 수 있는 소중한 기회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뉴욕타임즈가 선정한 2025 주목할 책 100권 중에 음식 관련 책이 있기를 바라며 꼼꼼히 살펴보았습니다. 거기에 본아페티, 워싱턴포스트, 스미소니언이 각각 뽑은 올해의 요리책도 함께 체크했지요. 평소 신간을 꾸준히 확인하는 편인데도 역시나 제가 미처 알지 못했던 좋은 책들이 많더라고요.
그렇게 알게 된 총 약 130~140권 정도의 '올해의 책' 리스트 중에서 지금 세계 식문화가 어디로 나아가고 있는지를 또렷하게 보여주는 책들만 골라 하나의 흐름으로 묶어보았습니다. 누군가에게는 다음 요리에 대한 영감이 될 수도, 누군가에게는 인류학적 관찰이나 사회 분석의 단서가 될 수도 있겠지요.
과연 이 중에 어느 책이 제 장바구니에 들어갔을지 맞춰보실 분? 저는 또 여러분의 장바구니에는 어떤 책이 담길지 궁금합니다. 2025년을 마무리하는 이 시점, 전 세계가 주목한 요리책을 소개하는 이 뉴스레터 한 편이 여러분에게 다음 한 해를 준비하는 작은 영감이 되어주기를 바랍니다.
(모든 표지 이미지 출처: 아마존)
1. 한 입으로 읽는 문화의 지층
거의 매 뉴스레터마다 말씀드리지만, 저는 간단하게 '요리책'이라고 퉁치기는 하나 음식과 식문화에 대한 언급이 있는 모든 책을 좋아합니다.
이 파트에서 소개하는 2025년 최고의 책은 음식을 통해서 우리 사회를 날카롭게 해부하고, 우리 식탁 위의 음식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소비되는지 그 구조를 들여다봅니다. 하나의 음식이 만들어지는 방식을 고수하는 사람들이 어떤 삶을 살아가는지 보여줍니다. 화려한 인스타그램 사진 뒤에 숨은 이야기부터 내추럴 와인을 만드는 사람들이 왜 그 어려운 방식을 고집하는지, 그 철학과 삶의 방식까지... 음식에 깃든 세계와 감정, 의미를 생각하게 하는 책들입니다.

All Consuming — Ruby Tandoh
(선정: The New York Times, “100 Notable Books of 2025”)
베이킹 스타에서 음식 철학자로 변신한 루비 탄도의 에세이집! 이라고는 하지만 저도 딱히 이분의 베이킹책을 본 적은 없고, 홍보 문구에서 그렇다는 이야기만 들었습니다. 하지만 루비 탄도 작가의 이미 번역된 책인 『식탁과 화해하기』는 봤지요. 우리 현재의 식문화를 분석하는 책은 언제나 흥미로운데, 우리 식문화의 트렌드가 언제나 엄청난 속도로 변화하고 있기 때문일까요? 언제나 '이 작가가 지금 이야기하는 식문화 트렌드가 궁금하다'고 생각하며 신간을 집어들게 되네요.
뉴욕타임즈는 이 책을 '한 마디로, 유쾌한 소란(“A romp, in short.”)'이라고 평가했는데, 그 표현이 딱 맞을지 궁금합니다. 음식 콘텐츠의 홍수 속에서 우리가 무엇을 소비하고 있는지 되돌아보게 만드는 책입니다. (중간에 '버블티의 세계 정복'이라는 파트가 있습니다. 너무 궁금하지 않나요! 난 버블티에 정복당하고 싶어!)

Spilled — Stephanie Mercier Voyer, David McMillian, Zev Rovine
(선정: Bon Appétit, “The Best Cookbooks of 2025”)
사실 저에게는 이 책을 꼭 검토해봐주셨으면 하는 편집자님이 계신데, 이 레터를 보실지 모르겠네요. 내추럴 와인 제조업자와 농부, 셰프, 커뮤니티가 만나는 지점을 보여주는 책이라고 해요. 여행서이자 요리책이자 와인 책인데, 프랑스와 이탈리아를 가로지르는 여정을 담았습니다. 내추럴 와인 제조의 기초를 배우고 싶은 사람, 와인 제조업자의 철학과 이야기를 깊게 파고들고 싶은 사람? 모두 읽어봐야 한다!
루아르 밸리의 석회암 동굴, 시칠리아의 언덕, 새벽의 포도 수확, 와인 제조업자의 식탁에서 가져온 가정식 레시피 34개... 여유롭게 모든 일은 잊어버리고 석양과 함께 와인을 마시는 사치스러운 순간을 왠지 가질 수 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게 하는 책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와인에 대한 정보나 레시피를 넘어, 내추럴 와인을 고수하고 지키는 사람들의 삶 전체를 잠시 들여다보게 하는 책입니다. 어떤 방식으로 살아가고 싶은지, 어떤 신념을 지키며 음식을 만들고 소비하는지 돌아보게 하는 이야기입니다.
2. 식재료의 뿌리를 파면 세계사가 보인다
바닐라 한 줄기, 시금치 한 뿌리, 옥수수 한 알도 깊이 파고들면 역사와 문화와 경제가 깃들어 있지요. 그래서 오직 한 가지 식재료만을 다룬 문화사책, 향신료 전쟁을 통한 세계사책 등이 끝없이 나오는 것일지도 모르겠어요. 물론 당연히 저도 이런 책을 좋아합니다. 더 나아가면 식재료와 연관시키지 않으면 역사 공부가 되질 않아요. 기억에 남기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할까요.
여기서는 2025 최고의 책 중 한 가지 식재료를 주제로 한 소설, 논픽션, 그리고 북아메리카와 남아메리카의 특징을 각각 다룬 요리책을 뽑았습니다. 누가 무엇을 재배하고, 누가 그 지식을 소유하고, 어떤 음식이 잊혀져 가고 있는지 생각해볼 수 있는 책들입니다.

The Rarest Fruit — Gaëlle Bélem
(선정: The New York Times, “100 Notable Books of 2025”)
뉴욕 타임즈의 올해 주목할 책 100에서 제일 주목하고 싶은 책입니다. 아프리카 동쪽 해안의 프랑스 영토 레위니옹 섬은 바닐라로 유명하다고 해요. 하지만 1841년 노예 소년 에드몽 알비우스가 바닐라 꽃을 손으로 수분하는 방법을 알아낸 덕분에 전 세계가 이 향을 경험할 수 있게 되었다는 이야기는 알려지지 않았다고 해요.
숨겨진 향기로운 식재료에 대한 역사를 소설로 읽을 수 있다니. 결국 그 영광을 본인은 누리지 못한 이야기를 소설로 만들어냈다는 점도 멋집니다. 디저트를 좋아하는 분이라면 진짜 바닐라 깍지의 짙고 풍성한 향 또한 사랑하시겠죠. 그에 대한 소설이라면 역시 향기롭지 않을까요.

The Spinach King — John Seabrook
(선정: The New York Times, “100 Notable Books of 2025”)
'뉴요커'의 오랜 작가인 존 시브룩이 풀어낸 가족사 회고록입니다.
이 이야기의 시작은 이렇다고 해요. "이 자료를 작가인 아들에게 남긴 것을 보면, 아버지는 비록 스스로 말하기는 견딜 수 없어도 이 이야기가 전해지기를 원하셨던 것 같다." 아아... 이렇게 시작되는 추리소설이 있다면 저는 견딜 수 없이 끝까지 독파하고야 맙니다.
위대한 부의 뒤에는 위대한 범죄가 있다는데, 요컨대 '할아버지가 가족의 시금치 농장을 거대한 기업으로 발전시킨 과정을 회고하면서, 그 화려한 외관 속에 숨겨진 탐욕과 부정행위를 폭로하는' 논픽션입니다. 어딘가 그... 뽀빠이 캐릭터가 사실 시금치를 팔기 위해 탄생한 것이었다던가 하는 이야기가 떠오르지 않나요? 이 역시 뉴욕타임즈의 '올해 주목할만한 책 100'에 선정된 도서입니다.

Turtle Island — Sean Sherman
(선정: Smithsonian Magazine, “Best Cookbooks of 2025”)
'미국 음식'이란 무엇인가? 라고 묻는다면 무엇이 떠오르시나요? 오랜 세월 동안 아메리카 원주민 조상의 음식과 조리법을 복원하는 작업에 몰두한 숀 셔먼 셰프가 이야기하는 미국의 음식은 아마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많이 다를 것 같아요. 그가 운영하는 미니애폴리스의 레스토랑에서는 유럽 정착민이 들여온 재료인 유제품, 소, 닭, 밀 등을 일절 사용하지 않는다고 해요.
이 책에서는 북아메리카 전체를 13개 지역으로 나누어서 각 땅이 품고 있는 역사와 생태, 전통 식재료의 의미를 천천히 짚어갑니다. 400쪽이 넘는데 레시피는 100개 정도라고 해요. 레시피보다도 미국 본토와 원주민의 관계를 드러내는 데에 집중한 것이 아닐까 합니다. 그야말로 뿌리를 찾아가고 기억하는 과정이지요.

Recipes From the American South — Michael Twitty
(선정: The Washington Post, “Best Cookbooks of 2025”)
아마 이것 하나만 말하면 이 책을 쓴 남부 음식 역사가 마이클 트위티가 얼마나 한 음식을 깊게 파고드는 사람인지 알 수 있을 것 같아요. 이 책에는 비스킷 레시피만 무려 여섯 종류가 실려 있다고 합니다. 여섯 개요?! 그리고 각각의 비스킷 레시피에 지역적 배경과 역사가 담겨 있다고 해요. 대체 무엇일까요...? 그 외에도 미국 남부 음식의 방대한 역사와 더불어 에드워드 리 셰프님의 『스모크&피클스』가 그랬던 것처럼 옥수수와 사냥, 빵처럼 남부 음식을 대표하는 이야기를 통해 그 문화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저는 한식진흥원의 한식도서관을 좋아해서 가끔 가는데, 거기서 여러 우엉 김치 레시피가 수십 쪽에 걸쳐 실려 있는 김치 사전을 본 적이 있습니다. 이런 사소한 차이에 집중하고 파고드는 것이 제가 사랑하는 '요리에 미친 사람들'이 아닐까요? 맛과 더불어 사람과 남부라는 지역을 이해하게 만드는 요리책일 것이 틀림없습니다.
3. 음식으로 극복하는 디아스포라
어떤 이유로 제가 요즘 주목하는 분야가 있는데, 디아스포라 음식입니다. 파고들어보면 개개인의 슬픈 역사, 그리고 뒤로 빠져서 보면 전 세계가 공감하는 반복되는 역사이기도 하지요. 잃어버린 고향, 떠나온 고향을 음식으로 기억하는 이야기는 어쩌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영역일 거예요.
특히 팬데믹 이후로 외로움을 겪은 사람들이 제각기 고향의 이야기를 시작하면서 미국의 요리책 업계에는 이런 디아스포라에 대한 이야기가 두드러지고 있습니다. 창의적이고 아름답고, 강력한 회복력과 치유력을 보여주는 요리책들입니다.

My (Half) Latinx Kitchen — Kiera Wright-Ruiz
(선정: The Washington Post, “Best Cookbooks of 2025”)
제목부터 정체성의 복잡함이 드러나는 책입니다. 저자 키에라 라이트-루이즈는 에콰도르 출신 아버지와, 한국에서 태어나 미국에 입양된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전통적 방식으로 문화가 전승되지 않은 가정에서, 위탁 가정을 거치며 자란 그는 자신의 라틴계 정체성을 스스로 조립해가야 했습니다. 그렇게 쌓아온 여러 문화권의 레시피가 융합된 음식과 주방을 소개하는 책입니다.
한국에서 태어난 어머니의 이야기가 담겨 있고, 라틴계도 아시아계도 아닌 ‘반쪽의 정체성’ 속에서 살아온 경험이 음식과 에세이 곳곳에 녹아 있어요. 하지만 이 ‘반쪽’이라는 말은 부족함이 아니라, 두 문화가 겹쳐 만들어낸 풍요로움에 가깝죠. 정체성을 잃었다가 다시 만들어가는 과정의 기록이자, 반쪽이 아닌 두 세계를 품은 사람의 식탁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The Korean Vegan: Homemade — Joanne Lee Molinaro
(선정: The Washington Post, “Best Cookbooks of 2025”)
한국계 미국인 변호사에서 인플루언서, 그리고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조앤 리 몰리나로의 두 번째 책입니다. 한식을 비건으로 만드는 것이 생각보다 얼마나 어려운지를 생각해본다면 첫 책인 '비건 한식'으로 그 어려운 도전을 해낸 작가가 대단해보이지 않을 수 없어요. 이번 신간은 그 명성을 더 확장하는 느낌입니다.
참깨 초콜릿 케이크는 바로 만들고 싶고, 두부 카츠 샌드위치는 ‘쉬움’ 등급인데도 충분히 든든해 보이고, 김치볶음밥 와플은 맛이... 없을 수가 있을까요! 그리고 당연히 레시피는 물론 한국계로서 미국에서 자라며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간 경험이 이야기에 스며들어 있어 한국 독자에게도 깊은 울림을 줍니다. 전통의 ‘맛’을 비건 방식으로 재해석하면서도 그 본질을 잃지 않는 한식 레시피. 여기서 만날 수 있습니다.

Family Thai — Arnold Myint
(선정: The Washington Post, “Best Cookbooks of 2025”)
제가 언제나 다시 가보고 싶은 곳이 있다면(많지만) 그 중 한 곳이 태국입니다. 다양한 단백질을 간편하고 맛있게 조리하는 법에서 제일 매력을 느끼기는 했는데, 그 외에도 정말 소박하고 화려하고 간단하고 복잡한 온갖 음식이 많아서 4박5일 정도로는 너무너무 부족했거든요. 그런 태국 음식의 집밥 레시피를 소개한 책입니다.
팟타이도 물론 사랑하는데, 이 책에는 팟타이 레시피가 실려있지 않대요. 대신 아널드 마인트 셰프와 그의 어머니, 대가족의 레시피가 뒤섞여서 전통 레스토랑 요리와 '가정식' 식탁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요리책이라고 합니다! 태국행 비행기표를 사는 것이 빠를까요, 이 책부터 사는 것이 빠를까요? 둘 다 할 수 있으면 제일 좋겠죠.
4. 바쁠 때도 쉴 때도 맛은 포기할 수 없어
멋진 미식 경험도 물론 소중하지만, 사실 매일같이 반복되는 일상의 모든 식사를 그렇게 즐길 수는 없죠. 우리의 일상을 지탱하는 건 평일의 간편한 식사와 주말의 조금 특별한 메뉴가 아닐까요. 가족이 함께 나누는 일상, 그리고 소중한 지인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을 음식과 함께 특별하게 보내는 방법을 알려주는 책들입니다.

Nights and Weekends — Alexis deBoschnek
(선정: Bon Appétit & The Washington Post, “Best Cookbooks of 2025”)
주중의 저의 모습과 주말의 저의 모습은 전혀 다릅니다. 주중에는 철저하게 영양소 배분에 입각해 빨리 만들고 먹기 쉬운 음식으로 연명하다가, 주말이 다가오면 '이번 주말에는 뭘 해먹지?' 하고 손이 더 가고 맛있는 레시피를 이것저것 떠올리게 되거든요. 그러니 이 책 제목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저만 그런 것 같지는 않아요. 그러니 본아페티와 워싱턴 포스트 모두 이 책을 '2025 최고의 요리책'으로 꼽았겠지요. 영양 가득하고 맛있는 식사를 실용적이고 간편하게 만들 수 있는 평일 밤의 레시피와, 조금 더 몰입할 여유를 선사하는 주말을 위한 레시피로 구성된 책입니다. 우리의 일상에 딱! 맞춤형인 책이라고 할 수 있겠죠.

Good Things — Samin Nosrat
(선정: Smithsonian Magazine, “Best Cookbooks of 2025”)
"이 책에서는 내가 가장 유용하게 여기고 사랑하는 일상적인 레시피를 만나게 될 거예요."
지난 뉴스레터에도 소개한 적 있지만, 역시나 두 곳에서 올해 최고의 요리책으로 꼽혔으니 다시 한 번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소금, 지방, 산, 열』의 작가 사민 노스랏이 음식으로 우리의 삶이 얼마나 풍요로울 수 있는지를 역시나 상세하고 친절하게 안내하는 책이에요. 요리를 잘하는 사람은 많지만, 잘한다고 해서 꼭 잘 가르치는 것은 아니잖아요. 전작을 보신 분이라면 알겠지만 사민 노스랏의 가르침을 따라가면 '요알못'도 무언가를 만들어낼 수 있게 됩니다.
전작이 총론이었다면, 이번 책은 각론이 되겠죠. 음식을 맛있게 만드는 기본과 원리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소금, 지방, 산, 열』이었다면 그 음식으로 나와 사랑하는 사람들 간의 시간을 어떻게 행복하고 소중하게 만들 수 있는지를 알려줍니다. 물론 테크닉적인 가르침이 철저한 것은 여전하고요. 요리를 시작하고 싶다면 사민 노스랏의 따뜻한 목소리와 함께해봅시다.

The Choi of Cooking — Roy Choi, Tien Nguyen, Natasha Phan
(선정: Bon Appétit, “The Best Cookbooks of 2025”)
이 책도 올해 뉴스레터에서 소개한 적 있는 신간 중 하나입니다. 제 일상의 많은 것이 그러하듯이 제 넷플릭스의 찜한 콘텐츠 리스트도 온통 음식 콘텐츠인데요, 그 중에서 가장 자주 업무 동료(?)로 활약한 것이 '더 셰프 쇼'가 아닐까 싶습니다. 존 패브로 감독과 로이 최 셰프, 그리고 가끔 데이비드 장 셰프가 등장하는 이 시리즈를 너무너무 좋아하거든요. 중간에 우리나라 밥솥은 밥 다 됐으면 '쿠쿠가 취사를 완료했습니다'라고 말해준다는 이야기를 믿지 않는 존 패브로 감독을 보신 적이 있나요? 너무 웃겨요.
여튼, 16년 전에 첫 요리책을 출간한 로이 최 셰프의 최신작입니다. 첫 작품 이후로 음식을 생각하는 방식이 어떻게 진화했는지를 한 눈에 보여주는 책이고요. 챕터 구성부터 전통적인 전채, 샐러드, 메인 대신 '맛의 범주'로 나눠져 있습니다. "Make It Grain", "Pisces Season".... 번역하는 사람은 머리가 좀 아플 것 같은 타이틀이네요.
셰프이자 레스토랑 운영자인 메헤르완 이라니는 이 책에서 가장 좋아하는 레시피로 '한국식 매운 닭조림'을 꼽았는데, 한국 재료를 사러 아시안 마켓에 가는 즐거움을 누린 이후에는 전부 갈아서 더치오븐에 넣으면 끝이기 때문이라고 해요. 오늘날 사람들이 추구하는 요리 그 자체죠. 편안하고 재미있고 맛있지만, 어렵지 않은. 요리의 즐거움을 보여주는 책이 아닐까요.

Lebanese Baking — Maureen Abood
(선정: Bon Appétit, “The Best Cookbooks of 2025”)
두바이의 초콜릿 열풍도 그렇지만, 저는 프랑스에서 먹은 페르시아 장미 쿠키 이후로 언젠가 레바논을 비롯한 아랍·페르시아권 디저트가 세계적인 트렌드로 올라오는 순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바클라바의 바삭함, 장미수의 은은한 향, 오렌지 꽃물의 달콤함... 이 모든 것이 한데 어우러진 중동 디저트의 세계는 정말 매혹적이거든요.
이 책에서 가장 놀라운 점은 얇고 바삭바삭한 필로 반죽을 직접 만드는 법을 알려준다는 건데요... 그게 가능한가요? 하지만 저는 얇은 필로에 켜켜이 녹인 버터를 바르며 초간단하게 만드는 레바논의 각종 디저트와 파이류를 좋아하니, 뭐든지 일단 궁금합니다. 르 꼬르동 블루에 다닐 때도 오리살과 과일을 넣은 필로 페이스트리 보자기(?) 같은 걸 만든 적이 있는데, 그게 진짜 맛있었거든요! 중동 디저트 열풍, 불어라...!
2025년을 보내며
올해도 수많은 요리책, 음식 인문서의 신간 소개를 읽고 또 책을 읽었지만, 어떤 책이 사람들의 마음에 어필하는지를 생각해보면 역시 진정성인 것 같아요. 화려한 겉멋보다 솔직하게 자기 이야기를 하고 그걸 음식으로 풀어내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을 도리가 없죠. 그렇게 올해도 의미 있는 식문화의 기록들이 제 앞을 지나갔습니다.
경제가 참 힘들지만 그래도 올 한해도 그럼에도 책을 사랑하고 음식을 사랑하는 분들과 많은 시간을 보냈죠. 개인적으로는 이 뉴스레터를 시작하고 또 매달 1회씩 진행하는 음식 인문서 독서모임을 시작하기도 했습니다.
뭐랄까, 좋아하는 걸 좋아한다고 마구마구 이야기해야 저와 비슷한 사람을 더더욱 많이 만나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있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꽤 그럴만했다, 귀한 분들을 많이 만나게 되었다고 실감하는 나날입니다.
연말입니다. 바빠서 그간 만나지 못했던 사랑하는 사람들과 잠시나마 회포를 푸는 시기이지요. 그런 시간에 맛있는 음식이 빠질 수 없겠죠. 추운 날씨이지만 건강 조심하시며 행복하고 맛있는 시간을 풍성하게 보내시기를 바랍니다. 저는 새해에 또 다시 심장을 떨리게 하는 요리책/음식 인문서 신간 소식과 함께 돌아오겠습니다.
즐거운 연말연시되세요.
요리 전문 번역가 정연주
번역 문의: dksro47@naver.com (영한, 한영, 일한)
의견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