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ornertable : 이 모든 작은 주고받음

🎼  방백(bahngbek) 「사랑」, 2014

안녕하세요. 구독자 님.

한 주 잘 지내셨나요?

부산엔 본격적으로 꽃이 피기 시작했어요.

저는 작은 빌라에 사는데요.

이 빌라의 관리인이자 주민이신 801호의 할아버지는 하루 종일 빌라 주변의 풀과 나무를 다듬으면서 시간을 보내세요. 빌라 뒤의 텃밭에는 먹기 좋은 채소를 심으시는 것 같던데. 빌라 정면의 키 작은 나무들은 무엇인지 알지 못했거든요. 그런데 꽃이 피면서 나무들은 제 정체를 드러냈어요. 매화와 동백이더라고요.

분홍색과 빨간색의 꽃망울이 탐스럽게 맺힌 풍경이 예뻐서. 먼 동네에 사는 가족과 친구들에게 사진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구독자 님 생활권의 나무들도 색을 내보일 준비를 하고 있나요?

만약 ‘아직’이라고 해도, 이제 만개까지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죠?

🚙 3월 넷째 주의 일: 마중과 배웅

4월 초에 고등학교 동창 둘이 부산에 내려온다는 연락을 받았어요. 결혼을 앞두고 청첩장을 주러 부산까지 오겠다니. 또 다른 친구도 그 일정에 동행하겠다니. 다들 바쁘고 피곤한 일상을 살고 있다는 걸 뻔히 잘 아는데 말이죠. 부산에서 좀체 움직이지 않는 저를 생각해 먼 길 행차하겠다는 두 친구가 고마웠어요.

토요일엔 친구들 마중을 (능숙하게) 나가기 위해서, 함께 움직일 코스에 맞게 운전 연습을 하기로 했어요. KTX를 타고 올 친구들 픽업을 위해 부산역을 찍고, 달맞이길을 거쳐, 청사포에 들렀다가 집으로 돌아왔어요. (조금씩 나아지는 운전 실력과 무관하게) 붐비는 도로의 어느 곳에 적당히 차를 멈추고, 자연스럽게 사람을 태우는 건 쉽지 않은 일인 것 같았어요.

일요일엔 동거인이 친구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서울 당일치기를 하러 가야 한다고 했어요. 하루 내 김포공항과 김해공항을 왕복으로 오가는 코스였어요. 아침 일찍 일어나 그를 김해공항에 데려다주고, 카페에서 책을 읽다가, 김해공항으로 다시 데리러 갔어요. 그 사이 책 한 권을 다 읽을 수 있었어요. 배가 조금 고팠지만요. 이렇게 지난 주말은 온통 마중과 배웅으로 가득 찬 시간이었어요.

면허를 취득하고도 10년을 장롱에 묵힌 저는, 그동안 비-운전자로 살면서 수많은 사람의 차를 얻어 탔어요. 책방을 하면서 가장 많이 얻어 탄 차는 애인과 아버지의 차였어요. 조금 멀리 강의를 하러 갈 때면 아버지가 종종 당신의 스케줄을 옮겨 저를 태워다 주시고, 강의가 끝날 시간에 데리러 오시기도 했어요. 어떤 군부대에서 책 읽기에 관한 강의를 한 적이 있었는데요. 부대까지 가는 길은 구불구불한 산길의 연속이었어요. 아빠는 운전 경력 40년을 향해가는 베테랑이라서, 그 정도의 급커브는 우습다고 했어요. 저는 조수석에 앉아서도 머리가 아팠는데 말이죠. 애인은 최북단의 동네에 사는 저를 위해 데이트가 끝나면 고속도로를 쌩쌩 달렸어요. 종종 다시 그의 집으로 돌아가 도착하는 시간까지 제가 깨어있지 못하기도 했어요. 기껏 배웅을 하고 피곤한 몸으로 귀가해 전화를 걸었는데, 상대가 전화를 받지 않으면 속상하지 않았을까요.

책방 손님들의 차도 많이 탔어요. 특히 모 사서 선생님의 차는 정말 많이 얻어 탔는데요. 앙증맞은 2인승 차량의 조수석에 주로 타곤 했지만, 가끔은 트렁크에 몸을 구겨 타며 낄낄 웃던 날도 있었고, 그 안에서 잔잔하게 흐르는 일본 노래 몇 곡은 귀에 익기도 했어요. 그 차로 강릉도 가고, 파주도 가고, 양주도 갔었지요. 에디터로 일하는 날들엔 처음 보는 포토그래퍼 님의 차도 뻔뻔하게 얻어 탔어요. 작가님의 카메라와 삼각대와 반사판을 껴안고 해가 지기 전까지 취재처를 함께 헤매곤 했습니다.

저는 짧은 다리밖에 없었지만, 자차가 있고, 운전을 할 수 있었던 많은 사람들이 곁에 있어서. 언제든 편하게 이동하고, 약속한 시간에 알맞게 도착하고, 안전하게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어요. 그들의 마중과 배웅의 순간 속에는 깨끗이 차를 닦는 시간과, 긴장과, 식은 땀과, 오랜 연습, 기다림, 그리고 용기 같은 것들이 담겨 있었다는 걸 서서히 알게 되는 날들입니다.

이제야? 이제라도?
제가 그런 것들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이 된 것이 기뻐요. 다행이에요.

🌸 3월 넷째 주의 장소 : 온천천

저희 집과 멀지 않은 곳에 온천천이 있는데요. 그곳에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다는, 그리고 이맘때의 유채꽃밭이 인기라는 소식을 들었어요. 동거인의 무리한 퇴근 덕분에, 해가 지기 전 잠시 걸을 수 있었습니다.

사람이 무척 많았어요. 꽃길을 천천히 걷는 저녁을 누리는 사람들이요. 그런 사람들이 많다는 게 안심이 되는 밤이었습니다. 인파에 휩쓸렸어도 불쾌하지 않았을 것 같은 밤이었어요. 더 많은 사람들이 이런 걸 멍하니 보고, 꽃잎이 내리는 길을 목적 없이 터덜터덜 걷고, 그러다 습관처럼 집에 가도, 안심만 되는 밤이었으면 해요.

구독자 님도 부디!

📚 3월 넷째 주의 책 : 룰루 밀러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곰출판, 2022

부산에 내려와 처음으로 독서 모임에 참여했어요. 작년부터 해야지, 해야지 생각했지만 마땅한 기회가 없었어요. 2월에 처음으로 시도했지만, 코로나 확진자가 많아져서 불참 인원이 늘어나 모임이 어그러졌고요. 그래서 3월의 끝이 되어서야 겨우 가보게 된 모임.

모임은 망미동에 있는 책방한탸에서 열렸고요. 지정 도서는 룰루 밀러의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였습니다. 여기저기에서 좋다는 칭찬 일색의 책이라 충동적으로 구매하긴 했지만, 이상하게 손이 가지 않아 첫 장을 넘기지 못하고 있었는데요. 마침 독서 모임이 열린다는 공지를 보니, 모임에 참여해야만 마지막 장을 넘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3월이 다 지나가기를 기다리면서 책을 읽었습니다.

물론 책을 다 읽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사람들과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하는 시간이 필요했어요. 동거인과 어조와 뉘앙스만으로 모든 것을 순식간에 알아차리는 대화가 아니라, 상황에 맞는 표현을 잘 골라 제대로 말을 나누는 대화 같은 것이요. 수다쟁이가 된 하루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몇 마디 말을 제 안에서 꺼낼 수 있었어요. 어느 시절에는 너무 많은 말을 하고 살아서 말실수를 하거나, 능숙하게 몇 시간을 떠들고는 목이 아파 괴로웠는데. 이제는 사람들과 말하는 연습이 필요하다고 느끼는 시절이에요. 이상하죠.

남들이 다 좋다는 이 책에는 몇 가지 단서가 붙어 있었어요. 절대 책에 관한 정보를 찾아보지 말고 처음부터 끝까지 읽으라는 것이었는데요. (그런 예고가 제겐, 다소 호들갑인 것만 같았지만) 읽는 내내 몇 번의 크고 작은 파고가 마음에 일었고, 덕분에 마지막 장을 넘기는 일이 그리 어렵지 않았어요. 흡인력이 있더라고요. 근사한 부분도 많았는데요. 혼돈 속에서도 서로의 그물망이 되어주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말하는 대목이 제 안엔 가장 크게 남았어요.

그 이유는, 읽자마자 제가 기꺼이 그물망이 되어주고 싶은 사람의 얼굴이 떠올랐거든요.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에서 그 사람에게 용기를 내어 메시지를 보냈어요. 평소에 그 사람은 제가 보낸 메시지에 답장을 제때 하지 않거나 종종 무시하기도 하는 편인데요. 오늘은 어쩐 일인지 늦지 않게 답신이 왔어요. 오랜만에 그와 안부를 주고받을 수 있어서 기뻤어요.

혹자는 읽은 후에 몸을 움직이게 만드는 책이 좋은 책이라고 하던데요.

구독자 님은 한 주 어떻게 보내셨나요?

지난 주의 편지에서, 제가 출처를 알 수 없는 사진에 관한 이야기를 했는데요. 그곳에 같이 갔었던 분들이 제 편지를 읽고, 정확한 위치를 알려주셨어요. 그러자 흑백 사진이 선명한 초록 빛으로 변하더라고요. 이것만으로도 시간을 내어 편지를 쓰는 이유가 분명하다, 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사이 코로나 (의심) 증상은 모두 사라졌고, 괜찮은 몸과 마음으로 4월을 기다리고 있어요.

2월에 뉴스레터를 시작하면서, 4월까지, 딱 3개월만 시험적으로(?) 해보자는 마음이었는데요.

일단 두 달 무사히 끝이 났군요.
적어도, 4월까지는, 꾸준히 쓸 수 있을 것 같아요.

읽어주시는 덕분입니다.

2022.03.30.
부산에서, 성은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