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7.28 vol.30 | view more | SUBSCRIBE
CRSH : 이야기
안녕하세요, 정재경입니다. 덥고 습해서 가만히 있어도 몸이 무겁게 느껴지는 뜨거운 여름입니다. 그래서인지 무기력을 호소하는 분들의 목소리가 많이 들립니다. 제가 무기력함을 느낄 때 꺼내 읽는 책 중 하나는 <전기톱을 든 여인>이에요.
김윤신 작가의 이야기는 길에서 싹 틔운 작은 나무가 풍파를 만나 기어이 거목으로 자라는 모습을 닮았어요. 89세에 베니스 비엔날레 본전시에 초청되어 전 세계의 주목을 받고, 세계적인 아트플랫폼 아트시의 ‘2024 가장 영향력 있는 작가 10인’에 선정되며 그야말로 식물의 생명력으로 91세 현재에도 여전히 전기톱을 들고 작업중인 김윤신 작가의 이야기와 작품 속 나무에 대한 이야기를 준비했어요.
91세, 여전히 전기톱을 손에 쥔 조각가 김윤신은 "나무가 바로 나"라고 말합니다. 재료와 작가가 하나가 되어야 비로소 작품이 완성된다는 그의 철학 '합이합일 분이분일(合二合一 分二分一)'은, 인간과 식물의 경계를 허무는 동양적 사유와 맞닿아 있습니다. 이번 30호에서는 김윤신이 평생 만난 나무들을 하나씩 짚어보며, 그 나무가 품은 인문학적 의미를 함께 살펴봅니다.

우뚝 서고 싶었다. 바로 세우고 싶었다.
김윤신 작가는 1935년 함경남도 원산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릴 때부터 나무를 친구로 여기며 자랍니다. 작가는 일제 강점기와 해방, 한국전쟁을 겪었습니다. 해방 직전 함경도 야산 숲속에서 일본 병사들이 송진을 얻기 위해 베어버린 무수한 소나무 더미를 목격합니다. 생명력이 처참하게 훼손된 나무는 십대 소녀의 마음에 충격으로 남습니다.
하나뿐인 오빠는 군인이 되었고, 오빠의 안위를 위해 기도하는 엄마를 보며 자랍니다. 열다섯이던 1950년, 한국전쟁 시 엄마는 가족들을 데리고 피란을 가면서 작가에게 서울에 남아 오빠를 만나 생사를 전하라고 당부합니다. 아무도 없는 도시에서 육군의 사체가 보이면 오빠인가 얼굴을 확인하면서 견딥니다. 오빠의 생사를 모르는채, 서울에서 나가는 마지막 기차를 탔습니다.

쓰러진 소나무들과 주검더미를 헤치고 다니던 충격적인 기억은 바로 세우고 싶은, 우뚝 서고 싶은 마음은 예술적 토대가 됩니다. 오빠를 위해 기도하던 엄마의 토템적 의식과 함께 작가의 작품 ‘기원쌓기’ 연작으로 나타납니다.
한반도 산야를 지배하는 소나무는 예로부터 지조와 절개의 상징이었지요. 소나무는 척박한 땅에서도 뿌리를 깊이 내리는 종으로, 김윤신이 훗날 이국의 땅에 뿌리내리는 삶의 예고편처럼 읽힙니다.
아르헨티나의 아름드리나무들, 인생의 전환
1983년 조카를 만나러 떠난 아르헨티나 여행에서, 김윤신은 한국에서는 볼 수 없는 굵고 단단한 원목들에 매료되어 그대로 정착을 결심합니다. 이 때의 나이는 48세. 안정된 교수의 직업을 버리고, 작품 1,000점 만들어 가야겠다 마음 먹고 삶의 터전도 바꾸며 새로 시작합니다. 이후 40여 년간 남미 자생종 나무들이 그의 작품 세계를 이루는 핵심 언어가 되었습니다.
김윤신은 새 원목을 만나면 며칠을 관찰하며 나무의 단단함과 결, 껍질, 향기까지 파악한 뒤에야 톱을 든다고 말합니다. ‘나무에도 뼈와 혈관, 생명이 있다’는 그의 말은, 식물을 대상화하지 않고 하나의 생명으로 대하는 태도를 보여줍니다. 아르헨티나 큐레이터 세실리아 아멜리나는 캐롭 나무로 만든 그의 작품을 처음 봤을 때, 크기와 견고함이 하늘과 땅을 잇는 조형으로 다가왔다고 회고합니다.
| 나무 | 특징 | 작품에서의 역할 |
|---|---|---|
| 알가로보(algarrobo) | 굵고 단단한 목질, 남미 팜파스 대표수종 | '합이합일 분이분일' 연작의 |
| 라파초(lapacho) | 견고한 심재, 남미 열대·아열대 자생 | 조각의 형태를 지탱하는 구조재 |
| 칼덴(caldén) | 아르헨티나 대평원 고유종 | 견고한 조형미 표현 |
| 케브라초(quebracho) | '도끼도 부러진다'는 이름의 초고밀도 목재 | 건축적 구조 표현 |
| 유창목(guayacán) | 밀도 최고 수준의 원목 | 응집된 힘과 구조감 부여 |
| 팔로산토(palo santo) | 짙은 향을 지닌 방향성 목재 | 남미 전시작의 감각적 요소 |

포기하는 대신, '그냥' 한다
코로나 당시 아르헨티나에서는 70세 이상은 외출이 금지되었다고 해요. 팬데믹으로 좋은 원목을 구하기 어려워졌습니다. 작가에게 재료의 소멸은 작업의 중단을 의미합니다. 김윤신은 포기하는 대신 작업실의 나뭇조각과 폐목 파편을 이어 붙여 작품 활동을 계속 이어갑니다.
조각에 색을 입혀 볼까 생각하며 작품에 그림을 그리는 기법을 창시해내요. 이 시리즈의 이름은 '회화-조각' 입니다. 버려진 나무 조각들이 다시 생명을 얻는 이 작업 방식은, 2026년 호암미술관 회고전 '합이합일 분이분일'에서도 핵심적으로 소개되었습니다.

김윤신 작가는 <전기톱을 든 여인>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속상할 수도 있고, 때론 잘 안 되는 것도 당연한 거예요. 모든 생명체가 살아가는 데는 굴곡이, 계속이 있어요. 의당 받아들이면서, 넘어가면서, 자기를 다시 갖는 거지. 그렇게 다른 생각을, 어려움을 이겨내야 되는 거예요.”
일제 강점기, 해방, 한국전쟁을 지나며, 수많은 삶의 고비를 넘깁니다. 작가는 살아 있어서, 예술가로 살 수 있어서 감사하다고 말합니다. 그의 작품 속엔 희망이 느껴져요.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우리 모두는 나만의 무기력과 싸우고 있습니다. 무기력이 나를 해치게 두지 마세요. 무기력할 때 기억해둘 것은 ‘그냥’입니다. 오늘도 자연이 주는 생명이 에너지와 함께, 그냥 해 보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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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까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정재경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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