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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 열매가 냉장고 악취를 잡는 이유

길가 민원의 대상에서 냉장고 속 천연 탈취제로! 2억 년을 견딘 은행나무의 반전 이야기와 징코민 비화.

2026.10.27 | 조회 1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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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편지

2026.10.27 vol.42 | view more | SUBSCRIBE

  CRSH : 이야기  

 

안녕하세요, 정재경입니다.

상강이 지나고 아침 공기가 한층 또렷해진 가을입니다. 길가에는 은행나무가 노란 옷을 입기 시작했어요. 저희 동네에는 은행나무가 나란히 서 있는 길이 있습니다. 그 길을 지날 때, 그때가 저녁이라도 은행나무의 노란빛은 마치 아침 햇살처럼 눈에 가득 들이칩니다.

이 시기, 시각적 즐거움과 함께 만나는 반갑지 않은 자극이 있어요. 나무 아래 밟힌 은행 열매에서 풍기는 악취입니다. 미간이 살짝 찡그려지기도 하지요. 그런데 이 은행이 가진 의외의 효과가 있습니다. 바로 탈취 효과입니다. 나무의사 우종영 작가님께서 “은행을 냉장고에 넣으면 악취가 사라져요.”라고 알려주셨어요.

호기심이 생겼습니다. 작년 이맘 때, 길에서 깨지지 않은 온전한 형태의 은행을 주머니 가득 주웠습니다. 이미 납작해진 것들에선 악취가 나니까요. 데려온 은행을 깨끗이 씻어 종이봉투에 담아 냉장고에 넣었습니다. 그리고 며칠 뒤 냉장고 문을 열었을 때, 신기하게도 냄새가 달라져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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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억 년을 견딘 식물, '살아 있는 화석' 은행나무

 

은행나무는 약 2억 년 전부터 이어져 온 식물입니다. 나무의 다른 친척들은 대부분 사라졌지만, 오직 은행나무 한 종만이 지금까지 살아남아 ‘살아 있는 화석’이라 불립니다.

부채꼴 모양의 은행잎은 수억 년 전 화석 속에서도 지금과 거의 비슷한 모습으로 발견됩니다. 공룡이 살던 시대의 해와 바람과 비를 맞았던 나무가, 지금 우리가 걷는 도시의 길가에 서 있다는 사실이 새삼 신기합니다. 

은행나무는 암수가 다른 나무입니다. 암나무와 수나무가 따로 있어, 암나무에 열매가 맺으려면 수나무의 꽃가루가 필요합니다. 참고로 우리가 흔히 은행 열매라고 부르는 것은 엄밀히 말해 열매가 아닌 씨앗입니다.

이 나무는 생각보다 훨씬 강합니다. 병충해와 대기오염에 강해 오래전부터 도시의 가로수로 심어졌습니다. 매연과 먼지, 좁은 흙과 제한된 공간 속에서도 묵묵히 자리를 지킵니다. 2억 년을 살아남았다는 사실 자체가 그 강인함을 증명해 줍니다.

강원도 원주의 반계리 은행나무를 보신 적이 있나요? 수령이 약 1,300년으로 추정되는 나무입니다. 통일신라의 태동기부터 오늘날까지 한자리를 지켜온 공로로 천연기념물 제167호로 지정되었습니다. 이 나무는 CCTV로 방에서도 만나보실 수 있지만, 꼭 가서 보시길 권합니다. 거대한 은행나무가 주는 기운, 덩어리감 같은 요소는 화면으로는 느낄 수가 없으니까요. 

🔗 원주 반계리 은행나무 실시간 CCTV 보러 가기 

 

💊 한국산 은행잎과 약품 '징코민'의 수출 비화

 

은행나무 잎의 가치는 제약 산업에서도 의미가 있습니다. 1970~1980년대 한국산 은행잎은 유효 성분 함량이 뛰어난 덕분에 독일 슈바베(Schwabe) 등 해외 제약회사로 대량 수출되었습니다. 유럽이나 미국에서 약의 원료를 확보하기 위해 한국 전역의 은행잎을 수거해 갔습니다. 

사계절이 뚜렷한 한국에서 자란 은행나무 잎은 유럽이나 미국산에 비해 약리 유효 성분(징코라이드, 플라보노이드 배당체 등)의 농도가 월등히 높은 것으로 평가받았습니다. 이 성분은 혈액순환 개선제 및 뇌순환 장애 치료제의 원료가 되었습니다. 대표적인 약품이 바로 ‘징코민(Ginkgomin)’입니다.

당시 가을철 농가와 수거업자들에게 은행잎은 효자 품목이었습니다. 지금은 중국과 북미의 대규모 농장 조성과 도심 오염 문제 등으로 길거리 수거 수출은 줄어들었지만, 은행나무가 가진 약리적 가치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입니다.

 

🍂 천연 탈취제, 은행나무가 냄새를 잡는 원리

 

사실 은행이 냉장고의 악취를 없애는 정확한 원리는 다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우종영 작가님도 명확한 이유는 모른다고 하셨지요. 다만, 은행나무가 지닌 플라보노이드 및 테르펜 성분의 항균 작용과 화학적 흡착·중화 작용 덕분일 것으로 추정합니다. 

우리는 종종 확실한 이유를 알아야만 믿으려 합니다. 원리가 명확히 설명되어야 효과를 인정하고, 데이터가 있어야 경험을 수용하곤 하지요. 하지만 우리 삶에는 아직 과학으로 다 설명되지 않은 일들이 많습니다. 선대의 경험적 지식 중 일부는 과학이 입증해 냈지만, 여전히 밝혀내지 못한 영역도 존재합니다.

은행 열매뿐만 아니라 은행나무 잎에도 탈취 효과가 있다는 기록들이 있으니, 이번 가을에는 잘 씻은 은행 열매나 말린 낙엽으로 냉장고 냄새 제거에 도전해 보시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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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주, 악취를 잡는 작은 실험과 주의사항

 

이번 주에는 여러분도 아주 작은 실험을 하나 해보시면 좋겠습니다. 냉장고 안을 한번 들여다보세요. 은은하게 배어 있는 김치 냄새, 오래된 반찬 냄새처럼 설명하기 어려운 냄새가 있지 않으신가요? 그렇다면 겉 과육을 깨끗이 씻은 은행 몇 알을 종이봉투에 넣어 한쪽에 두어 보세요.

 

[은행 손질 및 섭취 시 주의사항] 

  1. 맨손 접촉 주의: 은행의 노란 겉 과육에는 피부를 자극하는 성분이 있어 맨손으로 만지면 가려움이나 붉은 반점, 심하면 물집이 생길 수 있습니다. 손질할 때는 꼭 고무장갑을 끼고, 나중에 손을 깨끗이 씻어야 합니다.
  2. 하루 권장 섭취량: 씨앗 내부에도 메틸피리독신이라는 독성 성분이 들어 있습니다. 날것으로 먹는 것은 절대 금물이며, 충분히 익히더라도 식약처 권장에 따라 성인은 하루 10알 이내, 어린이는 2~3알 이내로 섭취하셔야 합니다.

* 다만 길가에서 주운 은행을 절대 날것으로 드시면 안 됩니다.


가을은 내려놓는 계절입니다. 나무는 잎을 내려놓고, 흙은 여름의 열기를 정리하지요. 하지만 내려놓는다는 것이 모든 것을 버린다는 뜻은 아닙니다. 어떤 것은 흙으로 돌아가 비료가 되고, 어떤 것은 새로운 방식으로 다시 쓰입니다. 은행도 그렇습니다.

길가에서는 민원의 대상이 되던 열매가, 주방에서는 냄새를 다스리는 존재가 됩니다. 길가에서는 피하고 싶던 고약한 냄새의 열매가, 깨끗이 씻겨 봉투에 담겨 냉장고로 들어가면서 전혀 다른 쓰임을 얻게 된다는 이야기. 위험하다고만 여겨졌던 존재가 다루는 방식을 바꾸면 삶을 돕는 유익한 도구가 되기도 합니다.

 

이번 주, 당신의 냉장고에는 어떤 냄새가 머물고 있나요? 그리고 그 냄새를 잡아줄 나만의 ‘은행’은 무엇일까요? 이 메일에 바로 답장을 주시거나, 아래 버튼을 눌러 여러분의 작은 발견을 함께 나누어 주세요.

 

다음 편지에서 또 만나요. 🌿

초록의 마음을 담아, 정재경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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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RSH : 소식 

 

📌 배방 월천 도서관, 정재경 작가와 함께하는 ‘길위의 인문학’ 프로그램 진행

 

배방 월천 도서관은 정재경 작가와 함께 ‘마음 돌보는 인문학’을 주제로 길위의 인문학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참여자들은 식물과 함께 살아가는 이유부터 실내 식물 가드닝, 식물과 나의 삶을 마주하는 이야기까지 이어지는 5회차 프로그램을 통해 일상 속 초록생활을 경험했다.

공기정화식물로 만들어 보는 플랜트 어레인지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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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인문학의 시선으로 공간과 삶에 고유한 감각을 더합니다. 정재경 작가와 함께 식물의 에너지를 활용하는 치유와 회복, 협업을 함께하고 싶으시다면 아래 링크를 눌러 주세요. 강연, 콘텐츠 협업, 브랜드 컬래버 등 다양하고 새로운 시도를 환영합니다. 

 

Beauty & Lifestyle Brand: VIP 고객 초청 인문학 클래스, 브랜드 원료 기반 스토리텔링, 팝업스토어 공간 식물 큐레이션

Corporate HR: 임직원 멘탈 웰니스 강연, 오감 회복 식물 워크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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