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9.22 vol.38 | view more | SUBSCRIBE
CRSH : 이야기
안녕하세요, 정재경입니다. 이번 주는 넉넉한 한가위, 추석 명절이 있습니다. 시댁과 본가 모두 차례를 지내 분주했는데, 약해지시는 부모님을 뵈며 그 바쁨은 행복의 한 종류였다는 생각이 듭니다. 오늘은 수확의 시기인 요즘, 쌀 이야기를 준비했어요. 지난 여름, 토종쌀에 대한 전시에 다녀왔는데, 재미있는 사실을 많이 알게 되었거든요.
토종쌀의 인문학, 《쌀을 닮다》와 강진주
2025년 여름, 일상여백에서 함창명주의 리브랜딩 프로젝트 ‘농잠’ 전시가 있었습니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서영희 선생님이 디자인한 옷과 패브릭 공예품, 명주와 잘 어울리는 일상의 도구들이 함께하는 단아한 전시였습니다. 그 전시에서 어떤 분과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는데, 대화가 무척 재미있었습니다. 자연에 대한 감수성이 매우 높았기 때문입니다.
그는 사진가 강진주였습니다. 토종 쌀에 빠진 그는 쌀과 관계가 있는 모든 것을 작가적 관점으로 기록해 왔습니다. 논, 농사를 짓는 도구, 농부, 밥솥, 밥그릇 같은 식기 등을 집요하게 촬영하고, 전시하며, 그 기록을 모아 2020년에는 《쌀을 닮다》라는 책으로 묶었습니다.
《쌀을 닮다》는 평택 오성면 신리마을을 중심으로, 쌀이 자라고 밥이 되기까지의 관계망을 인문학적으로 섬세하게 기록하는 사진집입니다. 이 책을 읽으며 ‘쌀’을 한 마을의 풍경·농부의 삶·오래된 도구·사람들의 기억·밥맛을 이어 주는 존재로 바라보는 강진주 작가의 시각이 흥미로웠습니다.
이 책은 미식 책 분야의 오스카상이라 불리는 '구르망 월드 쿡북 어워드'에서 쌀(Rice) 부문 1위를 수상했습니다. 한 마디로 그는 토종쌀에 진심인 예술가입니다.
토종쌀을 주제로 계속 되는 전시
마침 당시 갤러리 로얄에서 개인전 《모꼬지(The Time Savored)》가 진행 중이었고, 강진주 작가와 그곳에서 다시 만나 쌀과 작품 세계에 대해 더 깊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그 전시에서는 신을 벗고 들어가 쌀을 모티브로 한 작품을 바라보며 홀로 명상의 시간을 갖는 경험이 오래 기억에 남았습니다.
그가 발굴해 소개한 토종벼를 기르는 농부들의 뚝심, 아름다운 비주얼, 깊이 있는 이야기를 묵히긴 아깝다고 생각했고, 그 쌀들을 구입할 수 있게 해 달라고 졸랐어요.
얼마 전 그는 플레이스 누아에와 함께 '쌀집'이라는 이름으로 토종쌀 팝업스토어를 열었습니다. 그 팝업에 들렀다, 우봉희 농부의 강연을 만났습니다. 우봉희 농부는 경남 창원에서 자연농법으로 토종쌀을 키웁니다. 그의 재배 방식은 비료·농약·제초제는 물론 경운(밭갈이)도 하지 않고, 벼를 넓게 심어 통풍과 채광을 확보하며 수년간 잡초와 씨름하며 땅의 힘만으로 작물을 키우는 것이 핵심입니다.

토종벼를 키우는 농부, 우봉희
그는 식물을 키우는 핵심 요소 흙·물·햇빛 중 ‘흙’을 가장 중요하게 꼽습니다. 잎이 광합성으로 만든 탄수화물을 뿌리로 보내면, 뿌리는 이를 토양 미생물과 교환해 필요한 영양분을 얻는 방식으로 식물과 흙이 공존한다는 것입니다. 이때 벼는 강력한 방어물질(파이토케미컬)을 만들어 냅니다. ‘신토불이’가 강조되는 이유는 우리 기후에 적응한 식물들이 만들어 내는 강력한 파이토케미컬때문입니다.
우봉희 농부가 본인이 재배한 쌀로 만든 김밥을 예로 들며, 한여름에 상온에 3일간 두어도 상하지 않았다는 경험을 이야기했습니다. (일반적인 경우, 밥·김밥 같은 조리식품은 상온 방치 시 Bacillus cereus 등 식중독 위험이 있으므로 일반적으로 빠른 냉장 보관이 권고됩니다.)
그는 13~14년간 400~500종의 토종벼를 시험 재배하며 남부지방과 소비자 입맛에 맞는 품종을 선별해왔습니다. 그중 하나인 '귀도'는 1909년 일본인이 조선에서 채집해 기록을 남긴 평안북도 출신 품종이라고 소개합니다.
참고로, 일제강점기 이전 한반도에는 약 1,500여 종의 토종벼가 재배되고 있었으나, 일본이 자국의 쌀값 안정과 군량미 보급을 위해 생산량 높은 도입 품종을 강제로 확산시키면서 급격히 사라졌습니다. 현재 극립농업유전자원센터가 보존 중인 토종벼는 450여 품종에 불과합니다.토종은 형질을 그대로 유지하며 매년 씨앗을 받아 다시 심을 수 있지만, 개량종은 세대가 지날수록 형질이 분리되어 농가가 매년 종자를 새로 구입해야 합니다.
생물다양성·생태·문화 기억이 응축된 매개체, 토종쌀
‘토종쌀’은 식재료를 넘어, 생물다양성·생태 회복·문화 기억이 응축된 매개체입니다. 토종쌀이 땅에도, 건강에도 이로우나 농민이 관행농법을 벗어나기 어려운 이유를 토종쌀을 찾는 수요가 적기 때문으로 해석합니다. 건강한 토양에서 자란 자연재배 식재료를 소비자가 직접 찾고 선택하는 것이 농법 변화의 시작점이라고 당부합니다.
선물로 나누어 주신 ‘귀도’와 구입한 향찰현미로 밥을 지어 먹었습니다. 쌀알이 작아 밥이 금세 익었고, 은은하게 고소한 단맛, 진한 밥맛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할머니의 밥상처럼 계속 생각이 납니다.
마침, 강진주 작가가 소개하는 자연재배 토종쌀을 만나보실 수 있는 행사가 있습니다. 10월 3일, 갤러리 로얄에서 열리는 SANDWICH BAZAAR입니다. 토종쌀의 맛과 향, 그리고 각 품종에 깃든 이야기가 궁금하시다면 들러보세요.
📍 강진주 작가와 함께하는 18th SANDWICH BAZAAR
2026년 10월 3일
GALLERY ROYAL, SEOUL
초록의 마음을 담아, 정재경 드림
NEWS
불탄숲 도토리심기 운동본부, 청송군 도토리 심기
2025년 봄, 경북 의성군 안평면에서 시작된 산불이 안동·청송·영양·영덕으로 번져 45,157ha을 태웠습니다. 여의도 약 156배 규모입니다. 이후 민간 조사에서는 산림 피해면적을 116,333ha로 추산하기도 했습니다. 이 화재는 발화 원인이 인적 요인이로 밝혀졌으나, 기후 변화로 우리나라에서 이런 산불을 만날 가능성이 더 높아지고 있습니다.
나무의사 우종영 작가는 불에 비교적 강한 굴참나무와 신갈나무의 도토리를 직접 심어 내화수림대를 조성하자고 제안합니다. 이 수종들은 잎과 가지에 수분이 많고 휘발성 물질이 적어, 지표의 불이 나무 꼭대기까지 번지는 위험을 낮추는 데 도움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함께 도토리 심기, 어떠신가요? 저도 함께합니다.
👉 신청 https://cafe.daum.net/dotori25/Whck/24?svc=cafeapi
CRSH : 소식
📌 초록생활연구소는 (사)아이코리아 임신출산육아교실에서 예비 부모 15커플을 대상으로 ‘우리 가족의 정원 만들기’ 강의를 진행했습니다. 식물인문학의 기초와 플랜트 어레인지먼트 실습으로 구성한 60분간의 프로그램에서 예비 부모들은 식물과 자연을 일상과 교육의 관점에서 새롭게 바라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참여자들의 높은 관심 속에 프로그램을 마쳤습니다.
📌 정재경 작가는 거마도서관 2026 길 위의 인문학 「화(花)답: 꽃으로 묻고 인문학으로 답하다」에서 ‘꽃의 인문학’ 1·2회차를 진행했습니다. 꽃을 바라보는 인간의 시선과 꽃이 삶에 건네는 위로의 의미를 함께 살펴보는 진정한 초록생활을 익혔습니다. 미술과 문학, 일상 속 식물 이야기를 오가며 꽃과 인간의 관계를 탐구했습니다. 참여자들과 기억 속 꽃을 나누며, 자연과 삶을 새롭게 바라보는 시간을 만들었습니다.
📌 식물인문학자 정재경 작가는 국립민속박물관 《제로》전과 관련해 식물을 탐구하는 자문위원으로 참여했습니다. 전시 주제와 연관된 식물 자료를 살피고 의견을 나누었습니다. 전시 준비 과정에서 식물을 새로운 관점으로 공부할 수 있었던 경험입니다. 국립민속박물관 특별전 《제로ZERO: 민속의 길에서 만난 북한》은 2027년 2월 14일(일)까지 국립민속박물관 기획전시실Ⅰ에서 관람할 수 있습니다.
🌱 정재경 작가 & 초록생활연구소와 협업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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